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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 “건축은 삶을 바꾸는 중요한 도구”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 『묵상』 출간 기념 건축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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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 관한 설명뿐 아니라 제가 오랫동안 품었던 속내를 드러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때문에 책을 내고는 발가벗은 기분이 들었어요. (2019. 09. 04)

『묵상』  은 건축가 승효상이 로마, 파리, 그리스, 아일랜드, 티베트 등 30여 개의 도시, 그리고 50여 곳의 건축적 장소를 기행하고 그 장소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한 책이다.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라는 부제가 가리키듯  『묵상』  에서 승효상은 ‘청빈’, ‘명료함’, ‘사유’, ‘진실’ 등을 이야기한다. 이는 그가 건축가 김수근의 제자로 ‘김수근 건축’을 하던 시기를 지나 ‘승효상 건축’을 시작하게 되면서 ‘빈자의 미학’을 선언한 후 30년 동안 끊임없이 탐구한 건축의 의미와 지향점을 응축한 사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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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3일과 24일 양일간, ‘승효상과 함께하는 건축여행, 영성의 지도’라는 이름으로 독자와 함께 하는 국내 건축 답사 여행이 진행되었다. 명례성지, 봉하마을, 부산 구덕교회, 통도사, 하양 무학로교회 그리고 사유원으로 이어지는 답사에 대해 승효상은 “현대인들에게 부족한 영성을 상기시킬 수 있는 여정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출발하며 승효상은 먼저  『묵상』  을 “언젠가는 한 번 쓰면 좋겠다고 생각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로 ‘승효상 건축’을 시작한지 꼭 30년이 된다며  『묵상』  을 펴내는 일 역시 30년 건축을 하면서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수도원에 관한 설명뿐 아니라 제가 오랫동안 품었던 속내를 드러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때문에 책을 내고는 발가벗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당분간 어떤 글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제의가 들어오는데요. 단박에 거절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한옥 성당의 위엄 ‘명례성지’


명례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신석복 마르코를 위한 곳이다. 혹독한 고문을 받는 신석복을 빼내려는 형제들에게 “나를 위해 한 푼도 포졸들에게 주지 마라”라고 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순교자 신석복을 기리는 명례성지는 낙동강변 언덕에 위치해 있고, 신석복의 생가 터를 포함한 약 만 평 규모의 자리에 성지 조성이 진행 중인 곳이다. 이곳에 있는 한옥 성당은 1897년 지어졌으나 소실되어 1938년 축소, 재건했고 현재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승효상은 명례성지 일대를 “우리가 귀하게 볼 만한 건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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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례성지 한옥 성당

 

 

“이제민 신부님이 이 한옥 성당을 관리하다가 신석복의 생가터 전체를 성지화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제게 설계를 부탁하셔서 현재는 1단계로 기념 성당만 완성된 상태고요. 전체가 만 평이라 가톨릭에서 얘기하는 ‘14처’를 공간화 하기로 했습니다. 예수가 처형되기까지 들른 곳이 14곳이 있는데 흔히 성당을 가면 내부 벽에 액자로 걸려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공간화시키기로 한 것이죠. 그렇다면 부지 전체를 회유하게 될 겁니다.”

 

승효상은 특히 “한옥 성당의 권위를 저하시킬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추가로 짓는 시설 모두는 “조경적 차원에서 짓겠다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완성된 기념성당 역시 절벽에 붙어 있어 기존에 있던 한옥 성당의 위엄과 풍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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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례성지 기념 성당

 

 

“더구나 이곳은 낙동강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언덕입니다. 이 풍경과 어떻게 일치시키느냐가 아주 중요한 테마가 되었고요. 앞으로 14처를 짓게 되면 더 확실한 낙동강변의 풍경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성서적 풍경(biblical landscape)’이라는 이름으로 기획했습니다.”

 

 

두 번째, 자기 성찰을 위한 곳 ‘봉하마을’

 

“에드워드 사이드는 『권력과 지성인』이라는 책에서 ‘지식인은 자기 스스로를 항상 경계 바깥에 세워서 경계 안을 관찰하고 대안을 내놓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경계 밖은 춥고, 배고프고, 쓸쓸합니다. 그 사람은 불행하지만 그 사람 덕분에 세계는 발전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승효상은 노무현 대통령 역시 “경계 바깥의 사람”이었다고 설명하며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준비하던 때의 일화를 전했다. 처음에는 생가 뒤쪽의 산이 묘역을 조성할 곳으로 거론되었으나 승효상은 “그곳이 도무지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는 것이다. “국립현충원에 묻히지 않겠다, 저 높고 귀한 자리에 가지 않겠다, 선언하신 분”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며 주변을 살피다 지금의 도로변 삼각형 땅을 제안했고, 현재 그곳에 노무현 대통령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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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 묘역

 

 

“묘역은 죽은 자를 위한 장소가 아닙니다. 산 자인 우리를 위해 만드는 게 무덤이라는 시설입니다. 산 자인 우리가 죽은 자를 모티프 삼아 삶을 성찰하는 공간이죠. 그래서 옛 사람들은 항상 무덤을 주변에 뒀어요. 집안에 사당도 두고, 뒷산에 조상을 묻어 늘 같이 거주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덤을 도시 바깥으로 쫓아버렸습니다. 도시의 지속이란 상업 공간뿐 아니라 경건한 공간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그런 점에서 우리의 도시는 큰 위기에 처한 것이 사실입니다.”

 

죽은 사람을 위한 장소보다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로써 묘역의 역할을 생각했다는 승효상은 “이곳이 단순히 참배를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위해 가는 걸음이라고 생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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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 묘역

 

 

세 번째, 부산 ‘구덕교회’


승효상은 어린 시절을 교회에서 자랐다. 독실한 개신교도였던 승효상의 부모님은 피난민으로 부산에 정착해 그곳에 교회를 설립하고 살았다. 교회를 지을 때 벽돌을 옮기던 기억, 교회 마당에서 놀던 기억을 언급하며 승효상은 이 때의 기억이 “내 건축을 지배하는 기억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교회는 저의 중요한 정신적, 신체적 기반입니다. 대학에 합격하고 그곳을 떠나면서 한 기도가 ‘다시 돌아와 이 교회를 짓게 해주십시오’였습니다. 이후 건축을 파고들면서 구덕교회는 다 잊었는데요. 어느 날 옛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교회를 새로 지어야겠는데 네가 할 수 있겠느냐고요.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부산을 떠날 때 했던 생각이 갑자기 났어요. 동시에 이것은 반드시 내가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40년이 지나 다시 방문한 교회 주변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대로였다. “이 풍경을 어떻게 유지시키느냐”가 관건이었다는 승효상은 “내게는 구덕교회가 나의 근본을 되돌아보게 하는 공간”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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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덕교회

 

 

네 번째, 도시 같은 절 ‘통도사’

 

이튿날 통도사로 향하며 승효상은 “이 절은 참 특별한 절”이라고 설명했다. 통도사는 ‘불보사찰’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찰”이다. 646년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통도사의 대웅전은 국보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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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자장율사는 진골 출신이죠. 당나라 장안에 가서 7-8년 수련을 했고, 그곳에서 깨달음을 얻어 석가모니의 두개골 일부와 몇 가지 사리를 가지고 옵니다. 황룡사, 월정사 등을 만들었고요. 통도사를 7세기 중반에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1,400년이 지나는 동안 굉장히 많이 변형이 됐겠죠. 통도사를 도시 같은 절이라고 해요. 보통 절의 구성은 ‘만다라’의 도형 체계를 따르거든요. 가장 높은 곳이 석가모니가 있는 영역, 대웅전이고요. 바로 아래 단계가 승려들이 사는 영역, 그 아래 단계가 중생들이 사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통도사는 한 단위가 세 개 있습니다.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이죠. 이 영역이 각자 독자적인 사찰입니다. 이 사찰을 이어주는 주 진입로가 천왕문(天王門), 불이문(不二門)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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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대웅전

 

 

주 진입로가 동서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가운데 직교하는 세 개의 절이 놓여져 있는 통도사의 독특한 형태를 설명하며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가서 보면 난개발 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아주 정연한 시스템에 의해 구축된 곳이 통도사”고 말했다. 마치 도시의 대로, 소로, 골목길과 큰 건물, 작은 건물이 규칙적으로 놓인 형태라는 이야기였다. 또한 승효상은 건축가로서도 “도시의 구조”인 통도사를 보며 건축에 대한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다섯 번째, 다름을 인식하는 장소 ‘하양 무학로교회’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예수는 집 안에서 말을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들녘에서 이야기를 했죠. 따라서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는 건물을 유형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끌어 안고, 이들을 깊이 사랑한 예수의 무조건적 사랑을 설명하며 승효상은 “그 예수의 삶을 본받는 삶이 기독교인들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런 삶을 추구하는 기독교인들, 이른바 “부름을 받은(ecclesia)” 사람들은 “세속적인 사람들의 삶과 달라야 한다”며 교회는 그 다름을 인식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경건함을 쫓아 세상과 구별돼 살기를 원하는 사람의 공동체로써의 교회, 그들을 위한 공간으로써의 교회당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런 교회당이 화려하고 장식이 많다면 본질에 어긋나는 것이죠. 교회당은 대표적인 타입이 있는 게 결단코 아니고요. 고딕의, 높은 첨탑이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민, 화려한 십자가상이 있는, 으리으리해서 사람을 기 죽이는 공간이 교회당의 본질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회당은 그런 교회의 본질과는 아주 거리가 멉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교회당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하양 교회의 조원경 목사님이 저를 찾아오셔서 교회당을 새로 짓게 되었습니다. 마침 벽돌공장에서 벽돌을 지원하겠다고 감사한 제안을 하셔서 이곳을 벽돌로 지었어요. 벽돌은 인간이 최초로 만든 건축재료죠. 이왕 주시는 것이니 벽뿐 아니라 바닥, 천장, 가구 등을 전부 다 벽돌로 만들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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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 무학로 교회

 

 

여섯 번째, 사유를 위한 공간 ‘사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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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재 제공

 

사유원은 승효상 건축가와 오랜 인연이 있는 건축주가 만든 수목원이다. 정식 오픈은 하지 않았고, 수목의 정착을 위해 일반의 방문도 받지 않고 있다. 이곳에 파빌리온을 비롯한 몇 개의 건물을 설계했다고 소개하며 승효상은 이곳을 “세계에 한 곳뿐인 수목원”이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현암’이라고 이름 붙인 작은 집과 연못 주변의 공연 공간인 ‘사담’, 수목원 북쪽 봉우리의 전망대 기능을 하는 ‘명정’ 등의 건축물이 완성되어 있다. 이에 대해 승효상은 “경치를 해치지 않으면서 자기 스스로를 성찰하는 곳”으로 공간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특히 ‘명정’은 “아름다운 경치를 전혀 볼 수 없도록 땅을 파 들어가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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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원_명정

 

 

1박 2일의 여행을 마치며 승효상은 “내가 설계한 건축을 보여드린다는 것은 글로 과거를 고백하는 것보다 제게는 더 잔혹한 일”이라며 “이번 여행에서 보여드린 곳들은 저의 가장 최근의 고민들을 고백하는 심정으로 보여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축은 우리 삶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중요한 도구”라며 “우리의 보다 좋은 삶을 위해 좋은 건축에서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지막 질문이 남습니다. 진리가 무엇일까요? 그 답을 찾든 찾지 못하든 이 질문을 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늘 자신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다른 진리가 있을 수 있고, 그 모두가 모두에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니 각자가 자신의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504쪽)


 

 

묵상승효상 저 | 돌베개
모든 사람에게 다른 진리가 있을 수 있고, 그 모두가 모두에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니 각자가 자신의 진리를 찾아 여정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각자가 자신의 진리를 찾아 여정을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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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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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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