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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끝나고 나면

완벽한 조용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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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을 씻어낼 만한 좋은 소리가 듣고 싶었다. 동시에 어느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 놓고 멍하니 누워 있었다. (2019. 08. 30)

출처 언스플래쉬.jpg

언스플래쉬

 

 

'a sound mind in a sound body'라는 속담이 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처음에 뜻을 모를 때는 소리를 내는 몸 안에 소리를 내는 마음이 있다는 건가 싶었다.  sound라는 단어 안에 '건전하다' '건강하다'는 의미가 있다는 걸 알고 난 뒤에도 소리를 내는 몸을 상상하고는 한다. 


소리가 늘 몸속에 남아 있다. 아침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면 더 자고 싶다는 비명이 몸을 울렸다. 어깨치기를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혼잣말로 '뭐야 왜 그러는데' 중얼거리다 보면 종일 소리에 절은 소리 장아찌가 된 기분이었다. '사운드 바디'지만 '사운드 마인드'하진 않은 상태. 


주중 출퇴근길에는 활력을 끌어내기 위해 댄스 음악을 듣는다. 월별로 결제하는 플랫폼은 늘 비슷한 음악을 권유했다. 이 가수의 음악을 들으셨군요! 이 사람의 음악도 좋아할 것 같아요! 손가락을 놀려 비슷한 시기에 나왔거나, 비슷한 장르를 노래하는 가수로 생각 없이 넘어간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진자 운동을 하면서 늘 듣던 음악만 듣고 나니 '요새 애들은 어느 가수를 모른다며?' 같은 말들이 떠오른다. 사람의 음악 취향은 10대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거의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늘 이렇게 듣는 음악만 듣다가 끝나게 되겠지.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귀가 간질거렸다. 몇 번이고 이어폰을 빼고 귀를 팠는데, 귀가 잘못된 게 아니라 이어폰 전선이 망가져서 지직거리는 잡음을 내는 거였다. 한쪽만 꽂은 채 덜렁거리며 걷다 달려오는 자전거 바퀴에 줄이 엉켜서 사고가 날 뻔했다. '죄송합니다' 와 '괜찮으세요?'를 서로 대여섯 번쯤 주고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눕자 몸은 조용해졌지만 머릿속은 시끄러워졌다. 내 잘못이었던 것 같은데. 저쪽도 너무 빨리 달려오지 않았나. 이런 기분을 씻어낼 만한 좋은 소리가 듣고 싶었다. 동시에 어느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 놓고 멍하니 누워 있었다.


sound에 건전하다는 뜻이 있다면, sound sound는 건전한 소리가 되는 걸까. 건전한 소리라는 건 순리에 맞는 소리를 의미하는 걸까. 사람들은 합을 벗어난 꽹과리처럼 시끄럽게 산다. 피치가 맞지 않은 상태로 피리를 불고, 줄이 풀린 상태로 기타를 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버거울 때가 있다. 관계로 부대끼다 보면 나 빼고 다 나가 달라고 하거나, 어딘가 무향실(無響室)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미국 미네아폴리스 오필드 연구소의 무향실은 배경 잡음이 -9.4데시벨로 측정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곳이라는 기록을 얻었다. (중략) 무향실은 인상적인 침묵을 지닌다. 두 가지 비정상적인 감각을 동시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외부 소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이 곳에서 감각이 고장 난다. 방문객들은 분명 눈으로 실내를 보지만 이 공간이 있다고 나타내는 소리는 전혀 듣지 못한다.
- 『지상 최고의 사운드』  ,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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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없는 곳에서조차 우리는 소리를 듣는다. 존 케이지는 1952년 하버드 대학교의 무향실을 방문한 뒤 1952년에 침묵 속의 곡 <4분 33초>를 발표했다. 수많은 유리섬유 쐐기로 둘러싸인 케이지는 침묵을 발견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곳에서도 혈액이 순환하는 소리나 침 삼키는 소리 등 자기 몸속의 소음 때문에 완전히 조용하지는 않았다. (같은 책, 257쪽) 그러니까 일시적으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장소를 찾아낼 수는 있겠지만, 이내 자기 속으로 빠져들어 완벽한 조용함은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히는 걸 보면 내가 지금 관계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겠지.


창밖으로 소리가 들렸다. 산책 나온 강아지가 발바닥으로 착착 땅을 밀며 뿌듯한 얼굴로 걷고 있었다. 눈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소리가 보였다. 길에서 담배를 피우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리마저 미화되어 들렸다. 강아지와 고양이와 사람들이 지나가자 멀리 들리는 자동차 소리를 빼고는 조용해졌다. 그제야 듣고 싶었던 소리를 깨달았다. 가만히 있는 상태. 외롭고 재미 없는 공백의 상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침묵. 이런 소리가 듣고 싶었다.

 

당분간은 음악을 듣지 말고 다녀볼까. 외로운 침묵이 듣고 싶다. 음악이든 관계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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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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