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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35화 : 철도는 누구의 것인가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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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조선 사람을 위해서 철도를 놓았겠나. 일본은 처음부터 대륙으로 나가는 반도의 철도를 군용철도라고 정했다네. (2019. 0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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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일철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이백만의 치밀하게 근검절약하는 습성을 배우며 자라났다. 그는 각자의 월급만큼을 차떼기의 상여금으로 알고 가져가기로 마음속으로 정한다. 즉 자신은 삼십 원 김군은 십 원으로 분배한다. 그리고 나머지 십 원은 공평하게 오 원씩 나눈다. 즉 각자에게 삼십오 원, 십오 원으로 계산이 떨어졌다. 이렇게 한두 달에 차떼기로 생기는 돈은 일철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특히 김군에게는 횡재나 다름없는 일인 모양이었다. 어느 날 퇴근길에 야마구치와 헤어져 일철과 김은 종착역인 용산 화물역에 도착해서 역전으로 나왔다. 일철은 그날 야마구치에게서 받은 탄떼기 수고비를 김군에게 나눠주기 전에 잘 가던 주점에 들렀다. 


 “야마구치상은 참말 좋은 분 같아유.”


김군이 싱글벙글하며 말했고 일철은 덤덤하게 물었다.


 “철도국에는 어찌 들어오게 되었나?”


 “예 아버지가 고향에서 사설철도 선로반에서 오래 일하셨시유. 그래서 저도 충남선 철도 구간에서 용인으로 있다가 이리 오게 되었구먼유.”


그들은 수육을 놓고 막걸리를 마셨다. 김군은 일철이 주전자를 내밀면 잔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받았다. 


 “나는 그전부터 철도는 누구의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네.” 


 “예? 누구 꺼라뉴?” 


 “일본의 것인지 조선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는 말이지.”


김군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야 이전에는 남만철도회사에 위탁 경영을 주었다가 되찾아 왔으니께, 조선총독부 꺼구먼유.”


 “글쎄 그러니까 일본의 것인가?”


 “그야 머 우리는 나라가 없으니께……”


하다가 김군은 머쓱해져서 이일철을 빤히 쳐다보았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본이 조선 땅에다 철도를 깔기 시작했는데 부설권도 망해가는 나라에서 탈취한 걸세. 땅도 노동력도 거의 징발하여 헐값으로 건설했지. 주객이 바뀐 셈이 아닌가.”


 “빼앗겼든 어쨌든 이제 남의 꺼 아닌감유?”


김군은 연이어 일철에게 물었다.


 “하여간에 집은 우리 집인디 가산이 망혀서 다른 임자가 들어와 살구 있으니 워쩐대유?”


 “집이야 지었다가 허물수도 있다지만 땅을 떼 가겠는가? 여긴 조선 사람이 살고 있는 내 땅이니 우리 것이 될 걸세.” 


 “에이 어느 세월에유?”


일철은 순진하고 맑은 김군에게 어느 결에 정이 들어가고 있었다. 


 “도둑이 내 집의 재물을 훔치러 들어오면서 담에다 사다리를 걸치고 들어왔네. 일본이 조선 사람을 위해서 철도를 놓았겠나. 일본은 처음부터 대륙으로 나가는 반도의 철도를 군용철도라고 정했다네. 그래서 마음대로 강압적인 징발 징용을 할 수 있었던 거지.” 


 “이런 난세에 일자리를 얻었은께 우리는 그래두 운이 좋잖아유?”


김군의 말에 일철은 체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구먼, 야마구치상의 촌지도 받고 있으니. 다만 내가 하구 싶은 말은 우리가 주인이란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 말일세.”


한참이나 두 사람은 말없이 술만 마시고 있다가 김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 기분이 좋아졌구먼유. 우리가 주인이라니께!”


 “그래 지금은 곁다리로 남의 시중이나 들고 있지만 우리가 주인이지. 그걸 잊지 말자구.”


그들이 술자리를 끝내고 나오니 밤 아홉 시 무렵인데도 주위는 깊은 밤처럼 적막했다. 일철이 술값을 치르고 남은 야마구치의 촌지 중에서 김군의 몫으로 일 원짜리 한 장을 건네주었다. 두 사람은 오늘도 어쩐지 계면쩍었다. 어물쩍 주고받기를 끝내자마자 두 사람은 인사말도 변변히 못하고 돌아섰다.
신금이가 아기를 재워 놓고 시아버지의 공방이며 마당을 대청소 중이었는데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막음이 고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산이 에미야, 에미야!”


금이가 싸리비를 던지고 문간에 나가니 막음이 고모가 웬 여성을 뒷전에 달고 찾아왔다. 고모가 먼저 그 여성에게 신금이를 소개했다.


 “인사해여, 우리 조카며느리야.”


금이가 그녀를 살펴보니 위에는 흰 저고리에 아래 검정 개화치마를 입었고 머리는 단발이었다.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시원하게 큰데 꼭 다문 입술이 야무져 보였다. 그녀는 허리를 숙이며 신금이에게 인사했다.


 “한여옥이라구 합니다.”


신금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의 신체 윤곽이 햇빛 속에서 희부염하게 녹아버리는 걸 보았다. 그녀의 뒤에 두쇠 이철이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고 그가 아기를 안고 있는 게 보였다. 아기는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을 쳐들고 조막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뭘 멀뚱히 보고 섰어?”


막음이 고모의 웃음기 섞인 핀잔에 금이는 그제야 퍼뜩 제정신이 들었다. 


 “나는 지산이 엄마요.”


고모가 곁에서 거들었다.


 “말하자면 우리 두쇠 형수짜리여. 걔 형이 이 사람 서방님이고 깔깔.”


금이가 눈짓으로 고모에게 물으니 그녀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철이의 여자냐는 말을 묻지는 않았으나 두 사람은 대번에 의사를 소통한다. 


 “어서 들어와요.”

 

신금이가 안방으로 안내했고 고모는 자고 있는 아기를 보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에그 우리 지산이 자는 것 좀 봐라. 저 애는 착하구 순해서 거저 키우는 셈이지.”


 “삼춘 본지도 한참 되었는데 요즈음 어디서 멀 하구 지내는지.”


한여옥의 눈치를 살피며 금이가 혼잣말 비슷이 중얼거리자 막음이 고모가 말했다. 


 “두쇠가 엊그제 이 사람을 데리구 왔어.”


신금이는 그녀가 시동생의 여인임을 첫눈에 알아보았고 그들 사이에 아이가 생겨날 줄도 미리 알게 되었던 것이다. 언젠가 시동생을 살피면서 두 여성이 보인다고 말했던 것도 새삼 기억이 났다. 그때 일철은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질책을 했고 이철은 쓰다달다 말없이 그 자리를 피하여 밖으로 나가버렸던 것이었다. 막음이 고모가 말했다. 


 “당분간은 내가 데리구 있을 참인데 우선 방도 알아보고 이부자리나 세간붙이도 마련을 해줘야겠다.”


 “우리 집에 있어두 되는데요.”


신금이의 말에 막음이 고모는 마치 자기가 신세를 끼치기라도 한다는 듯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녀, 그럴 일이 아니라구. 오라버니가 시방 건넌방 쓰구 기시잖아.”


 “건넌방은 원래가 도련님 쓰시라구 비워두고 있었는데요.”


 “그럼 오라버닌 공방으로 물러가야 하잖여. 우리 집에 자네 시집오기 전에 잠깐 썼던 쪽방이 그런대루 쓸만하니까 당분간 우리 집에 있기루 했네.”


잠자코 앉았던 한여옥이 입을 뗐다.


 “갑자기 폐를 끼치게 되어 죄송합니다. 요새 이이철 씨와 저에게 긴박한 사정이 생겨서 당분간 근신해야 되겠기에……”


신금이는 대번 알아들었다. 


 “그러면 방을 한시바삐 알아보아야겠네요. 근데 도련님은 어디서 뭘하구 있대요?”


한여옥은 입이 무거워서 자기네들 사업에 관하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막음이 고모가 그녀 대신 대답했다.


 “머 사람들 다리 놓고 연락하러 다니는가 보더라.”


신금이는 이철이 적색노조의 영등포 연락책이라는 사실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아마도 최근에 당국의 사찰이 심해졌겠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신금이는 지산이 때문에 나가지 못하고 이철과 한여옥이 최소한의 살림붙이를 장만할 수 있도록 막음이 고모에게 삼십 원을 쥐어 보냈다. 나중에 방을 얻게 되면 다시 돈을 보태주리라 생각했다. 저녁에 일철이 퇴근하여 돌아오자 신금이는 시동생 이철에게 배우자가 생긴 사실을 알려주었고 당분간 고모 댁에서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이도 쫓기는 처지에 집으로 와서 살 수는 없겠지. 그나저나 둘이 살림할 수 있도록 어디 주택가에 전셋집이라도 알아봅시다.”


신금이는 아들 지산에게 늘 얘기해 주곤 했다.


 “나는 지금도 느이 작은 어머니가 죽지 않고 어디서 잘 살고 있겠거니 생각하구 있다. 기가 세고 만만찮은 사람이었거든.” 

           
한여옥은 경상도 소도시의 한의원집 딸이었다. 보통학교를 마치고 열일곱 살에 완고한 부친의 강압으로 혼인을 시키려 하자 일본으로 도망쳤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전문학교 예비 과정을 다니다가 더 이상 학비 조달이 안 되어 돌아왔다. 전라도의 대지주 댁 서방님을 만나 혼인했지만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억압을 참지 못하여 스스로 뛰쳐나와 만주로 가서 대륙 곳곳을 유람하고 돌아와 경성에서 카페의 여급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가 사상운동에 연결된 것은 아마도 만주에서부터였을 거라고 짐작을 할 뿐이었다. 그녀가 조선의 사회주의 조직에 가입하게 된 시기가 그 무렵에 모스크바 동방대학을 나온 젊은 지식인들이 대거 조선으로 운동 거점을 찾아 입국하던 때와 맞아 떨어진다. 아마도 국제선을 자처하는 여러 선들이 국내의 운동접점을 찾아 지도를 받으라며 나서던 바로 그때에 그녀가 국내조직의 어느 선과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가 이이철과 만나고 함께 살게 된 과정은 이철과 여옥이 제각기 신금이에게 조금씩 털어놓은 이야기 조각들에 의해서 불완전하게나마 완성이 되었던 것이다. 


 이철은 형이 신금이와 혼인한 뒤에 집에서 나와 신길정에 쪽방을 얻어 혼자 자취하며 파업했던 방직공장을 나와 다시 전기공장에 데모도로 취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 열세 시간 이상을 공장에 매어 살아가지고는 여러 직장별로 흩어져 있는 조직 구성원들과의 연락을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는 방우창처럼 보다 활동이 자유로운 가두노동자가 되기로 했다. 물론 중앙과의 유일한 선이었던 이 동지와 협의를 했었다. 차츰 서로 간에 활동을 통하여 신뢰가 쌓인 뒤에 통성명이 이루어져 그의 이름이 이관수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가 일본 유학을 거친 고보의 교사 출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이이철이 속한 조직 중앙이 형성하게 된 것은 제4차 조선공산당 조직이 검거되고 코민테른의 십이월 테제가 나온 뒤에 새로운 자각과 흐름이 시작된 무렵이었다. 그것은 만주사변이 일어나던 무렵이었고 류재익이 감옥에서 나온 뒤의 겨울부터였을 것이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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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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