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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환타 “여행은 땅바닥에 발을 대며 시작하는 것”

『환타지 없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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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기본적으로 땅바닥에 발을 대면서 시작하거든요. 패키지여행은 관광버스 위에서 바라보는 삶이죠. 그러면 그곳의 사람들을 눈 아래로 바라 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길바닥에 서서 땅을 딛고 있으면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죠. (2019. 08.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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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깨는 여행 작가 ‘환타(幻打)’ 전명윤. 그가 쓴 가이드북은 “불편하게 여행지의 속살을 자꾸 후볐”다고, 박찬일 셰프는 말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보지 못했거나, 보고도 알지 못했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했을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까닭이다. 두 번째 에세이  『환타지 없는 여행』  에서도 속살을 파고드는 작업이 계속됐다. 인도의 민낯이 보여주는 가난과 계급 차별, 여성 인권의 실태와 변화의 움직임을 말한다. 홍콩에서 ‘범죄인 송환 반대 운동’이 일어난 배경이 무엇인지, 주말마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배회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휴양지인 줄로만 알았던 오키나와가 실제로는 “내부 식민지”와 다를 것 없는 슬픈 땅이라는 사실도 들려준다.

 

“결핍이 있는 곳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는 작가, 환타가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는 분명 낯선 것이었다. “일단 떠나요. 그러면 모든 게 달라질 거예요!”라고 외치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여행하는 삶이란, 여행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오는 삶”이라 덤덤하게 말한다. 현지 맛집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하자, 갑자기 많은 여행객이 몰렸을 때 생길 법한 문제들부터 걱정했다. 만약 여행 에세이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핫스팟, 맛집, 빠른 경로에 대한 정보라면  『환타지 없는 여행』  에서는 조금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여행의 목적이 ‘그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는가’를 알기 위함이라면, 그 위에 자신의 삶을 겹쳐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과 함께 길을 떠나고 싶어질 것이다.

 

1996년 인도를 처음 여행하면서 여행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환타 작가는 <딴지일보>의 인도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시사저널>, <세계일보> 등에 여행, 문화, 국제분쟁 등 다양한 주제로 글을 썼다. EBS <세계테마기행>을 비롯해 각종 방송과 팟캐스트에 출연한 바 있다. 현재는 <시사인>에서 ‘소소한 아시아’라는 코너를 연재 중이다.  『프렌즈 홍콩ㆍ마카오』 ,  『프렌즈 베이징』 , 『프렌즈 인도ㆍ네팔』 , 『프렌즈 오키나와』 ,  『상하이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서를 집필했고, 첫 번째 에세이 『생각으로 인도하는 질문여행』  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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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내가 먼저 시작하지는 말자’고 생각해요


『환타지 없는 여행』  은 기존의 여행 에세이와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제가 여행 작가로서 되게 이상한 포지션이기는 해요. 흔히 ‘이곳에 가면 꿈과 환상이 펼쳐져요’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까요. 가끔은 ‘여행 작가로서 내 취향이 너무 마이너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시기를 잘 만난 것 같아요. 이제는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가다 보니까, 그 지역의 내밀한 부분이나 그곳 사람들의 디테일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고요.

 

‘여행’과 ‘환상’은 굉장히 가까운 단어가 아닐까 싶은데요. ‘환상을 타파한다’는 뜻으로 필명을 지으신 이유는 뭔가요?


처음 여행한 곳이 인도였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인도는 깨달음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제가 본 인도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내제된 폭력, 카스트 제도, 여성에 대한 억압이 너무 많더라고요. 실제로 ‘인도라는 정신적 지주’를 만나러 온 여행자들을 많이 만났었는데, 너무 괴로워하는 거예요. 자기가 생각한 인도는 이런 곳이 아니었다고요. 그 분들을 보면서 뭔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름을 ‘환타’라고 짓게 된 거죠.

 

어떻게 여행 작가가 되셨어요?


제가 두 번째로 인도 여행을 갈 때, 그 즈음에 한국에서 홈페이지 붐이 일었어요. 당시에는 인도 여행과 관련된 책이나 정보가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인도를 알려주마’라는 건방진 이름으로 홈페이지를 운영하다가 <딴지일보>의 요청을 받아서 처음 글을 썼어요. 그러고 나서 다시 인도를 갔는데, 여행자들이 제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정보를 출력해서 들고 다니는 거예요. 일단 되게 신기했어요. 그리고 제가 만든 저작들을 누군가 인쇄해서 가지고 다니는 게 좋더라고요. 이후에 무작정 원고를 만들었어요. 14개월 동안 인도를 취재하고 12개월 동안 책을 써서 출판사에 샘플을 보냈어요. 이후에 책이 나오게 됐고요.

 

‘사람들은 어떤 가이드북을 필요로 할까’, ‘가이드북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무엇을 줘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죠. 또 하나 중요한 게, 현지인들에게 최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게 쓰는 거예요. 제가 책에서 소개했던 식당이 옷가게로 바뀐 적이 있었어요.

 

그 이야기가  『환타지 없는 여행』  에도 나오죠. 한국인 손님들이 몰려오니까 단골들은 떠나고, 그런데 한국 여행자들은 여름 겨울 방학 때만 많이 오고, 장사가 꾸준히 안 돼서 업종을 바꾸게 됐죠.


네, 그런 경우들이 되게 많았어요. 모든 행위들이 누군가에게는 이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줄 수 있잖아요. 피해를 주는 부분을 최소화하는 것도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어려운 이유는 경쟁 때문이죠. 이를테면 인도의 특정 지역이 있는데, 현지인들에게는 성지이기도 하고 나체 수행자들이 많아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면 해괴망측할 수도 있고, 그냥 책에서 보고 호기심에 찾아간 사람들한테는 눈요깃거리 밖에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런 곳은 가급적 소개하지 않는데, 문제는 다른 가이드북에서 먼저 소개하면 ‘나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소개해야지’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도 ‘최소한 내가 먼저 시작하지는 말자’라는 게, 저한테는 되게 중요한 가치예요.

 

가이드북을 쓰는 데 있어서 ‘스스로 세운 원칙’이 있나요?


일단은, 협찬을 안 받겠다는 거예요.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가이드북은 ‘리뷰의 모음’이잖아요. 그걸 독자들이 돈을 주고 산다는 건, 제가 공정하게 취재했을 거라는 믿음을 거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협찬을 받으면 이중적인 수익을 얻는 게 되죠. 기만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협찬 없이 취재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요?


100%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요새는 미식이 유행인데, 미슐랭 쓰리스타 같은 곳을 취재하면 거의 인당 30~40만 원이 나오거든요. 40만 원을 투자해서 책 한 쪽을 쓰는 거죠. 그럴 때는 부득이하게 취재 요청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것도 영 찝찝해서, 요즘은 친구들 서너 명을 모아서 미식단을 꾸려요(웃음). 제가 비싼 식당을 다 예약하고, 같이 가서 요리 설명도 해준 다음에 저만 돈을 안 내는 거죠(웃음).

 

현지 맛집 가이드를 자처하시는 거네요(웃음).


네, 그런데 제 수익은 없어요. 취재비만 빠지는 거죠. 그 대신 제가 사진 찍기 전에는 음식 먹으면 안 된다고 하고요(웃음). 원칙을 지키는 게 조금 힘들기는 해요. 그런데 적은 돈이나마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도 않고요. 또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그만큼 요구를 하거든요. 공공기관에서 협찬을 받았다고 해도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부분은 조금 크게 실어 달라’는 식으로 요구가 들어와요.

 

또 다른 원칙이 있다면요?


몰래 취재하는 거예요. 제가 취재하러 온 줄 알고 대접이 달라지면 공정하게 취재를 못 하잖아요. 그래서 거의 다 몰래 찍어요. 그냥 여행자처럼 찍고 가능한 시스템을 축소화하려고 하고요. 식당에서 음식을 다 먹고 돈까지 지불하고 나면 그때는 그 집에 대한 저의 평가가 끝난 거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그때 물어봐요. 식당의 경우에는 외국인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황인종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런 것들이 되게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명함부터 내밀면 저한테 되게 잘해줄 거잖아요. 그걸 가지고 평가할 수는 없어요. 음식에 있어서도 ‘그 식당에서 가장 좋은 요리’가 아니라 ‘그 식당에서 늘 내는 요리’가 기준점이 돼야 해요. 그런데 취재를 요청한 경우라면 제일 잘하는 요리를 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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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시민들의 연대, 지금 한국은?


인도에서는 성폭력 이슈가 계속 이어지고 있나요?


음... 인도 사회는 많이 바뀌었어요. 2012년에 성폭행 사건이 있었잖아요. 넷플릭스에서 <델리 크라임>이라는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한 사건인데, 사실 인도는 그게 이슈가 되는 나라가 아니에요. 일단 도시와 시골의 차이가 있어요. 도시는 법률의 지배를 받는 지역이지만, 시골 같은 경우는 경찰이나 관료들이 말단까지 파견된 적이 없어요. 지방 말단에는 ‘판차야트’라고 하는 브라만 노인들로 이루어진 의회가 있어요. 그들이 입법, 사법, 행정을 거의 다 맡아서 해요. 동네의 양반 노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법률 공부를 한 사람들도 아닌데 판결을 하고요. 그때 기준이 되는 게 ‘마누법전’이에요. 3천 년 전에 만들어진 법전인데, 얼마나 성차별이 심하겠어요. 실제로 ‘여자가 금을 훔치면 윤간을 해야 된다’는 조항이 있어요. 문제는 그런 조항을 지금에 적용시킨다는 거죠. 관련 뉴스도 나왔었어요. 어떤 자매가 ‘윤간형’을 받아서 법원에 제소했다는.

 

그 사건은 어떻게 됐나요?


우리나라 기자들도 인도의 실상을 잘 몰라서 기사가 그렇게 났던 것 같은데, 인도 법률적으로도 ‘윤간형’이라는 건 있을 수 없죠. 마을 의회에서 판결했던 거예요. 그런데 이 자매가 굉장히 똑똑해서 고등법원으로 갔어요. 당연히 법률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마을의 아저씨들이 처벌을 받았죠. 그래도 여성들은 그 마을에서 못 살아요. 죽을 수도 있어요.

 

도시에서는 법에 근거해서 판결을 내린다고 하지만,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 않을까요?


훨씬 많아요. 영화 <밴디드 퀸> 아세요?

 

네, 그 영화를 보면 매매혼이 이뤄지고 남편이 어린 아내를 성폭행하잖아요.


그게 인도의 시골에서는 되게 흔한 일이에요, 진짜로. 그런데 2012년의 성폭행 사건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이게 보도화, 이슈화가 됐다는 거예요. 인도의 각 미디어에서는 여성 기자들이 데스크와 엄청 많이 싸워요. 그러면서 이 사건도 이슈가 된 거예요. 당시에 제가 시위 현장에 있었는데, 여성 단체와 젊은 층들이 정부를 상대로 시위를 할 때였어요. ‘국가가 무엇을 했느냐’고요. 한편에서는 할아버지들도 시위를 했어요. 국가 편이 아니었고, 미친놈들이 국가의 위신을 망쳤다고 시위를 했어요. 그런데 이 사건에서 인도 시민들이 잘한 면이 있는 게, 양측이 이야기를 해서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국가가 변해야 되는 건 맞다’고 의견을 모은 거예요. 그래서 구호를 세 가지로 통일해서 더 이상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하고 연합 집회를 했어요. 쉽게 말해서 어버이연합과 진보진영이 뭉친 거예요.

 

결과는 어땠나요?


인도 정부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죠. 선거를 앞두고 있었거든요. 두 가지가 바뀌었는데, 첫 번째는 형법을 개정한 거예요. 성폭행으로 인해서 사람이 죽을 경우 사형까지 가능하도록 했어요. 두 번째는 신속 법원을 만든 건데요. 인도는 재판이 진행되는 속도가 되게 느려요. 1심이 3년 걸리고, 3심까지 하면 10년 정도 돼서 그 사이에 증인이 죽는 일도 생겨요. 그런데 성폭행 사건은 1년 안에 1심을 끝내고 3심까지 3년 안에 끝내는 걸로 바뀐 거예요. 저는 이 사건을 가지고 한국과 비교를 많이 하는데, 지금 차별금지법과 관련해서 힘을 합쳐서 싸우지 못하는 게 정말 답답해요. 연대할 수 있는 라인이 되게 많다고 보거든요. 진짜 아쉽죠.

 

프롤로그를 홍콩에서 쓰셨다고요. 한국에는 언제 돌아오셨어요?


6월 29일에 갔다가 7월 3일에 왔어요.

 

지금 홍콩의 상황은 어떤가요?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한창인 걸로 아는데요.


조금 안 좋은 상황이죠. 시위대 중에 10대, 20대 초반 친구들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삼포세대예요. 홍콩은 부동산 값이 비싸서 독립을 하기가 어렵고, 우리나라보다 GNP가 훨씬 높은데도 최저임금이 말도 안 되게 낮아요. 사람들이 살기 힘들죠. 그런 것들이 중국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는데, 거기에는 합리적인 면도 있고 비합리적인 면도 있어요. 사실 모든 정책 주장이 다 그렇죠. 대중들의 욕망이 분출되는 공간에서 합리성을 기대하기는 힘든데, 그것이 세상을 바꿔내기도 하잖아요. 홍콩 청년들도 조금 막연하게 중국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게 반중 감정으로 드러나고 있어요.

 

며칠 전에도 충돌이 있었죠?


시위대가 연락사무소를 공격했어요. 홍콩 정부와 중국 사이를 연락하는 곳인데, 거기는 중국이거든요. 물론 큰 공격은 아니고 중국 국가 문장에 페인트칠을 하거나 하는 정도였는데, 사회주의자 중국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상황인 거예요.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중국 국방부 대변인이 이럴 경우에는 중국군을 출동시킬 수도 있겠다는 발언을 했는데, 실제로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아직까지는 그러지 못할 거예요. 지금 홍콩에 미국인이 7만 5천 명쯤, 영국인이 4만 명 정도 있거든요. 미국 정부가 자국민을 대피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군이 들어가면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그러니까 섣불리 액션을 취하지는 못할 텐데,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는 건 사실이에요.

 

『환타지 없는 여행』  을 읽으면 ‘우리나라에 해외 뉴스가 정확하게, 충분한 양으로 전달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돼요. 홍콩의 반중 시위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도되는 것 같아요. 한중 관계를 고려해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걸까요?


그것도 그렇고요. 심도 있게 국제 뉴스를 취급하는 채널이 없어요. 사건 자체만 보도를 해버리면 모든 게 다 난데없어지거든요. 홍콩의 경우에도 ‘민주화 시위를 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정도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지, 이 사람들이 언제부터 싸워왔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어요. 어떻게 보면 피상적이죠. 그리고 한국은 신문에서 국제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적어요. <조선일보> 같은 경우가 2면을 쓰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인도 언론만 하더라도 전체 16~20면 중에서 4면이 국제면이에요. 일본 <아사히신문> 같은 경우에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추적 기사를 정말 많이 써요. 우리는 해설 기사가 없고 사실 보도만 하니까 맥락을 알기가 쉽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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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땅바닥에 발을 대면서 시작하는 것


여행지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관심이 많으시죠. 꾸준히 발언도 하시고요. 모든 여행 작가들이 그런 건 아닌데, 왜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하세요?


저도 요즘 생각을 해봤는데, 지역적 결핍이 있는 곳에 끌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인도, 중국, 오키나와, 홍콩에 대한 가이드북을 썼는데요. 홍콩이나 오키나와는 성격이 비슷한 ‘내부 식민지’예요.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어요. 인도나 중국에 대해서 썼던 건, 너무 커서 정리가 필요한 나라를 건드렸던 거고요. 가이드북으로 쓸 나라를 정할 때는 ‘내가 이곳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곳에 대해 잘 쓸 수 있을지’를 가지고 판단해요. 어떤 지역을 좋아하게 되는 가장 큰 계기는 그곳 사람들과의 이야기들이에요. 단지 에세이에 나오는 무용담이 아니라, 그냥 그게 보여요. 홍콩의 필리핀 노동자들도 그냥 보였어요. ‘저 사람들은 왜 저기에 저렇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럴 수 있는데, 저는 다가가서 굳이 물어봐요(웃음). 갑자기 ‘여기도 최저임금이 있나?’ 궁금해지고, 그러면서 진행이 되는 거죠. 저는 이게 여행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책에서 “여행은 기쁨만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아니다”라고 썼는데, 패키지여행 같은 경우는 좋은 공간에서 개인적인 풍류와 여유와 낭만을 누릴 수 있어요. 그건 되게 예쁜 세계일 뿐이죠. 그런 아름다운 안락함도 있겠지만, 사실 여행은 기본적으로 땅바닥에 발을 대면서 시작하거든요. 버스 위에서 바라보는 삶이 아닌 거예요. 패키지여행은 관광버스 위에서 바라보는 삶이죠. 그러면 그곳의 사람들을 눈 아래로 바라 볼 수밖에 없어요. 눈을 볼 수 없고 머리통밖에 못 봐요. 그런데 길바닥에 서서 땅을 딛고 있으면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수 있죠. 그러면서 그 사람들을 알아가는 거고,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제가 보는 걸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거죠.

 

오키나와에 대해 알게 된 사실도 많았는데 ‘집단 자살 사건’은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일본 군인들이 자살을 종용했던 건가요?


2차 대전 때 일본에서 지상전이 벌어졌던 유일한 곳이 오키나와예요. 그때 섬 인구의 1/3 정도가 죽었어요. 굉장히 끔찍한 일이죠. 일본이 전쟁에서 질 게 뻔한 상황에서 최대한 연합국의 공격을 밀어내야 협상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오키나와에서 지옥을 만들려고 했어요. 섬 주문들을 모두 동원해서 벙커를 파고 그 안에서 민간인을 방패삼았어요. 미군이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진군할 수 없게끔 만들어 놓은 거예요. 오키나와 사람들한테는 ‘미군한테 잡히면 여자는 성폭행한 뒤에 찢어 죽이고, 남자는 산 채로 탱크로 깔아 죽인다’라고 이야기했어요. 비참함을 막기 위해서 자결을 해야 된다고 한 거죠.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고요. 실제 사례를 보면, 가족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죽은 경우들이 있었어요.

 

정부는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했나요?


전혀 보상도 못 받고 있고요. 당시의 민간인 학살이나 피해에 대해서 국가 차원의 조사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어요. 다 오키나와 지역에서 이뤄지는 거예요. 그래서 사례들도 한정적이죠.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민할 법 하네요.


네, 그래서 오키나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어떤 국가도 우리를 보호해준 적 없다’, ‘어떠한 군대도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또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가 되게 많잖아요. 베트남전 때 고엽제를 살포한 B-29 폭격기가 오키나와 기지에서 떴어요. 그래서 당시에 베트남 사람들은 오키나와를 ‘악마의 섬’이라 불렀대요. 오키나와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운이 좋아서’ 계속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네, 이렇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게 많잖아요.

 

여행하면서 돈도 벌고요(웃음).


그렇죠, 이것도 일인 줄은 모르죠(웃음).

 

여행이 일이 되면, 운이 좋다고 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웃음)?


저는 안정적인 소득은 없어요. 정말로 책의 인세로 먹고 살거든요. 그래도 일터가 넓으니까 뭘 해도 일이 돼요. 인도는 대한민국의 33배, 중국은 100배가 되는 땅이잖아요. 어디 가서 밥만 먹어도 그게 일이 되고 정보가 돼요. 물론 스스로 해야 된다는 단점이 있고, 가끔은 화성에 혼자 떨어진 로봇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월-E 같은(웃음). 그래도 저는 제 일터가 넓은 게 좋아요. 많은 걸 볼 수도 있고, 가끔 제가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들어주잖아요. 그건 행복한 거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고민은 비슷해도 결은 다 달라요


"누군가 나에게 상하이 여름휴가 티켓을 선물해주었다면 나는 거절했을 것이다"라고 쓰셨어요. 여름휴가를 보내기에 딱 좋은 여행지는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현재는 베트남으로 떠나시는 걸 말리고 싶어요. 일본 불매 운동이 일어나면서, 일본을 가려고 했던 여행자들의 절반 가까이가 베트남으로 갔거든요. 지금 베트남은 서비스가 아예 안 돌아가는 상황이라, 이번 여름의 휴가지로 베트남은 별로예요. 개인적으로는 몽골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지금 몽골은 시원할 때고요.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어마어마한 별’이죠. 7~8월이 은하수가 가장 많이 필 때예요. 5~10월까지만 은하수가 보이고 이후에는 잘 안 보이거든요. 그래서 밀키웨이를 보시기에도 좋고, 바삐 여행하는 게 아니라 편히 쉬고 싶으시다면 몽골이 괜찮아요. 대신 음식은 조금 힘들죠. 다 양고기니까요.

 

‘맛있다’는 평가에 인색하시다면서요? 그래서 ‘환타가 맛있다고 하는 곳은 진짜 맛집’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던데, 추천하실 만한 곳이 있나요?


음... 사람들이 몰릴 지도 모르니까, 문 닫은 곳을 소개할게요. 홍콩에 ‘윙와’라는 식당이 있었어요. 완탕면을 파는 곳인데,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가게세를 감당하지 못해서 작년 8월에 문을 닫았어요. 집집마다 완탕면 국물을 내는 비법이 다른데 ‘윙와’는 상어 가시를 써요. 면도 직접 대나무 밀대로 만들어서 뽑고요.

 

사람들이 몰릴까 봐 걱정되세요? 왜요?


현지 장사를 하는 집들이 많은데, 외국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가게가 있을 수 있어요. 외국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데 현지인이 보기에는 답답하고, 그러다 보면 불친절한 가게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어요. 그리고 친절한 가게라고 해도, 현지 장사를 하는 집에 외국인이 몰려가면 단골들이 떨어지거든요. 관광지라면 상관이 없는데, 마을 사람들이 사는 지역의 경우에는 그곳 사람들의 식당을 뺏는 일이 되거든요.

 

‘맛집’은 끝내 공개 안 하실 건가요(웃음)?


되게 좋아하는 집이 있는데, 오키나와 이시가키 섬에 있는 ‘아카시 레스토랑’이에요. 아주머니 세 분이 운영하시는 소바 집인데요. 일반적으로는 오키나와 소바가 정말 맛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 집은 면도 숙성해서 쓰고, 절인 고기를 숯불에 다시 구워서 얹어주는데 고기 익힘 상태가 되게 좋아요. 어느 정도로 인기가 있느냐 하면,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데 그 시간에 40~50명이 줄을 서있어요. 섬 최북단에 있어서 이시가키 본 섬에서 한 시간을 더 가야 되는 곳이거든요. 주변에 볼거리도 별로 없고요. 그런데 소바를 먹으려고 사람들이 거기까지 가는 거예요. 그 집에서 삼시세끼 국수를 먹으려고 민박에 머무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번에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뽑은 일본 오키나와 소바 랭킹에서도 1위를 했더라고요.

 

책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한국 밖 어딘가에서 우리 사회의 모든 단점을 넘어서는 이상향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천국이나 이상향 따위는 없었다”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왜 계속 여행을 하세요?


새로운 걸 보는 거겠죠. 냉정하게 말하면, 사람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거든요. 그런데 고민은 비슷하게 하지만 그 결들이 달라요. 그 나라가 만들어낸 사회적?정치적 환경에 따라 고민의 결이 달라지겠죠. 약간은 개인적 사명감인데,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국에 전하고 싶다는 욕망이 되게 강해요. 아직까지 우리는 폐쇄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함부로 남을 평가하고, 이를테면 ‘저 사람들은 그래서 가난해’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되게 화가 나요. 그렇다고 같이 싸울 수는 없고, 설명을 해서 설득하고 싶어요. 그리고 가이드북을 쓰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계속 공부하면서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책을 쓴다는 핑계로 그 지역에 있는 모든 책을 봐도 돼요. 이 직업이 제일 좋은 점은 그건 것 같아요. 한 지역만 파고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일과 상관없이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세요?


직업병이 정말 무서운 게, 여행을 가면 저도 모르게 취재를 하고 있어요(웃음).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식당 메뉴판 사진을 찍고 있는 거예요(웃음). 신문 읽으면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파악하려고 하고요. 책으로 쓰지 않을 뿐이지, 여행간 곳에서 하는 일은 비슷해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환타지 없는 여행전명윤 저 | 사계절
아시아 곳곳에서 바로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돌고 돌아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는 말한다. 여행하는 삶이란 여행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오는 삶이라고. 여행은 오직 이 전제 아래에서만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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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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