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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추억을 기록하는 집

『북촌의 네버랜드』 서채홍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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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사계절 내내 골목을, 공원을 놀이터로 삼아 무럭무럭 성장한다. 이 책은 추억이 깃든 집과 골목길, 좋은 이웃,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2019.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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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마을에 아주 신기한 집이 있다. 그 집에서는 누구도 시간을 재촉하지 않는다. 때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때로는 세상이 멈춘 것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아이들의 시간을 기다려주는 집. 그 속에서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집에만 가면 아이들은 눈이 커지고, 숨이 가빠지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여느 집과 다르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이 집과 금방 사랑에 빠진다. 그 비밀을 『북촌의 네버랜드: 아이들의 시간을 기다려주는 집』  을 쓴 북디자이너 서채홍 작가를 만나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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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라는 제목, 그리고 ‘아이들의 시간을 기다려주는 집’이라는 부제가 인상적이에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제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이거예요. “아빠, 새 장난감 만들어주세요.” 저희 집에서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을 만들어 노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네버랜드’라는 제목을 짓게 되었어요. 처음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제가 손으로 뚝딱뚝딱 만든 장난감을 가지고 아이들과 어울려 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이것저것 재미난 것을 만드는 ‘만들기 실용서’가 되려나 했어요. 그런데 다 쓰고 보니 아내와 함께 세 아이를 낳아서 키운 이야기, 북촌 한옥마을을 무대로 여기저기에서 펼쳐진 이야기들이 알록달록한 실에 꿰어져 있네요. 그 사이사이에 재촉하기보다는 기다리려고 했던 저희 집의 여러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그래서 ‘시간을 기다려주는 집’이 된 것 같습니다.

 

북촌에는 어떻게 오게 되셨어요?


처음 이 동네로 이사를 온 건 2005년 8월이에요. 당시에 다니던 회사의 동료들과 취재차 이 마을을 방문했는데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오래된 한옥, 구불구불한 골목길, 담장 너머로 훌쩍 자라난 나무들. 첫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불편했어요. 북촌으로 오기 전에 살던 집은 아파트였는데 생활은 편했지만 아이가 도시의 소음, 특히 도로 위의 차들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뿜어내는 소음 때문에 괴로워했어요. 그런데 여기는 우리 가족이 원하던 조용함이 있었죠.


곧바로 아내와 다시 북촌을 찾았고, 부동산을 통해 전셋집 두 곳을 소개받아 그중 한 집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어요. 좁고 춥지만 작은 마당이 딸린 조용한 집에서 조금 더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죠. 마당은 아이의 치료 공간이자 활동 공간으로도 딱 알맞았어요. 이곳으로 온 후에 태어난 둘째 아이와 셋째 아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가 되어주었고요. 어쩌면 이 책에 담긴 거의 모든 이야기는 바로 이 마당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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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 손재주가 대단하세요! 비법이 뭔가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하다고 하기에는, 제 직업이 북디자이너예요. 미술을 전공했고요. 그 덕분이라고 할까요?

 

그래도 이렇게 아이와 함께 만들고 노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집에 오면 먼저 쉬고 싶기도 하고요. 놀이의 영감, 원천이 따로 있나요?


음, 우선은 아이들의 요청이죠. “아빠, 이거 만들어주세요, 저것도 만들어주세요.” 아이들의 요구가 끊이지 않으니까요.


제 어린 시절의 기억에도 추억을 남겨준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 기억을 안고 살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나도 이 아이들에게 소중한 기억을 남겨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특별한 기억을 하나 들려드릴게요.

 

어느 날 밤, 삼촌은 막 잠든 우리를 흔들어 깨웠다. 오늘은 칠월 칠석이니 지금 바다에 나가 달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길을 후레시로 비추며 달빛에 기대어 30분쯤 걸어갔을까. 눈앞에 크고 검은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삼촌은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이내 배 한 척을 몰래 빌려왔다.


배는 달이 높이 뜬 바다 한가운데에 멈추었다. 우리는 뱃전에 기대어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파란 원을 그리며 소리 죽여 웃었다. 손을 들어 올리면 손가락 끝에서 파란 구슬 같은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갑자기 삼촌이 윗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속에서 커다랗고 새파란 덩어리가 우리가 탄 배의 밑창을 감싸고 돌았다. 곧이어 커다란 불빛이 물 위로 솟구쳤다. 배가 흔들렸다. 삼촌은 꼭 먼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처럼 보였다. _  『북촌의 네버랜드』  40~41쪽, 「영원한 여름의 밤」 중에서

 

나중에, 그러니까 2013년에 극장에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소년 파이가 뗏목을 타고 바다를 표류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배 주위로 발광 플랑크톤이 모여들고, 파이가 바닷물을 휘젓죠. 그때 갑자기 거대한 고래가 파란 불빛이 되어 수면 위로 솟구치는데, 그 장면이 꼭 제가 어린 시절에 거제에서 본 그날의 풍경과 똑같았어요.


그걸 보면서 생각했어요. ‘젖먹이 시기를 지나고 무언가를 비로소 기억할 수 있는 유년기가 되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인생의 추억이 하나씩 기록되기 시작하는구나. 그리고 우리는 그 추억을 간직한 채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구나’라고요. 나를 꼭 닮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매일매일이 이 생각을 더욱 뚜렷하게 각인시켜 주었어요.

 

신기한 이야기네요! 다른 에피소드도 들려주세요.


하루는 막내 민겸이의 담임선생님께서 장래희망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어요. 그런데 아이는 거기에 ‘화가’라고 적었더군요. 그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저도 딱 그 시기에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으라고 했을 때 ‘화가’를 적었거든요. 진짜 신기했어요. 그전까지 아이에게 아빠는 어렸을 때 화가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없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는 돈을 썩 잘 버는 일이 아니죠. 그래서 부모가 좋아하지 않아요. 아이가 쓴 장래희망을 보고 ‘아, 나는 좋아해 줘야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응원의 편지를 써주기도 했어요.


이렇게 생활하면서 아이와 나의 비슷한 면을 자꾸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 경험은 어떤 면에서는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해주었죠. 또한 그걸 통해서 다시 아이를 이해하게 되고,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더 응원해주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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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북촌으로 이사 오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온 가족이 유럽 자동차 여행을 가는 것으로 끝나요. 온 가족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라고 하셨는데, 어떠셨나요?


흥미로운 시간이었어요. 그동안 가족이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거리는 언제나 첫째 지원이에게 달려 있었어요. 처음에는 자동차나 혹은 비행기로 1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우리 가족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였죠. 그러다 지원이의 건강이 조금씩 좋아지면서 여행 거리가 늘어나더니 어느새 4~5시간의 자동차 여행도 거뜬히 해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때 아내가 먼저 말했어요. 한 달간 유럽으로 가서 자동차 여행을 하자고요! 가족이 함께 생활해도 온종일 같이 지내는 날은 많지 않잖아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졌다가 밤에나 다시 만나는 날이 대부분이니까요. 그런데 여행에서 한 달 동안 하루 종일 함께 지내면서 아이들의 새로운 면모를, 아이들이 이만큼 성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지원이의 건강뿐 아니라 어린 아이인 줄만 알았던 민준이와 민겸이가 듬직한 소년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는데 뭉클하더라고요.

 

이 책이 북촌의 네버랜드에 살고 있는 선생님 가족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부부의 살아온 과정과 아이들을 키워온 과정, 이웃들과 또 이웃의 아이들과 지냈던 시간이 정말 아름답게 잘 정리되는 거예요. ‘우리가 이렇게 지내왔구나’하고 정리되어서 너무 좋더라고요. 과거를 거창한 무용담으로 미화하는 게 아니라 살아온 길을 있는 그대로 정리하게 되었어요. 글쓰는 일에는 그런 힘이 있더라고요. 책을 쓰는 동안 그것이 가장 좋았어요. 다 쓴 후에 제가, 그리고 아내가 가장 만족한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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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채홍


보리출판사, 푸른숲출판사 등에서 북디자이너로 일했다. 지금은 북디자인 스튜디오 채홍디자인을 운영하고 있다. 잊고 있던 취미가 아이 셋을 낳아 키우면서 다시 터져 나왔다. 마치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것인 양 화가, 작가, 목수 등 꿈꾸던 일들을 놀이처럼 하며 지낸다. 오동나무로 고무동력배를 만들고, 숲에서 찾은 열매와 나뭇가지로 연하장을 만들고, 소원을 이루어주는 신기한 손바닥책을 만드는 데 재주가 있다. 아내, 세 아이와 함께 북촌 한옥마을에 살며, 하루하루 겪은 일상의 기억들을 따뜻한 감성으로 SNS에 기록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부러움과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북촌의 네버랜드서채홍 저 | 사계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때로는 세상이 멈춘 것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아이들의 시간을 기다려주는 집. 그 속에서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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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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