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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28화 : 천리안이 있다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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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철로변에 있는 작은 집으로 들어갔다. 한옥도 일본집도 아닌 유리창 달린 어중간한 맞배집이 길가에 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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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그날이 어떤 날이냐는 것이다. 막음이 고모는 주안댁이 그날만은 나타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더란다. 그녀는 신금이가 자신과 비슷한 기질을 가진 데 대해서 매우 흡족하게 생각했다. 그래서는 일철이와 그의 아내 금이와 고모인 자기 세 사람 사이에는 남들이 모르는 특별한 신뢰관계가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일철은 철도원양성소 본과 운전부를 졸업하자마자 기관사 견습조수를 발령 받아 일단 경인선에 배치를 받았다. 첫 승차라 아직 객차는 아니었고 화물 운송에서 시작했다. 견습 기간은 육 개월로 이후에는 어느 선에 배치를 받을지 아직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조선철도를 만주철도회사에 위탁 경영을 맡겼던 총독부가 다시 직영으로 찾아온 뒤에 개설한 철도학교를 나온 졸업생을 우선적으로 각처에 배치하겠다는 정책이었다. 그것은 외진 지선에 이르기까지 총독부 교육기관의 제대로 교육 받은 인력으로 채워 넣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을 것이다.

 

경인선 객차의 종점은 한강철교가 개통된 뒤에도 수년간 노량진이었다가 용산이 되었다. 그러나 경부선과 경인선의 접점이 영등포였으며 수십 군데의 공장이 들어서며 산업화물이 늘어났고 경부선의 지선으로 출발한 호남선도 지나게 되니 영등포역은 자연스럽게 남경성역이 되었다. 화물 창고가 수십 채로 늘어났으며 역 구내의 철로도 여러 선으로 복잡하게 얽히게 되었다. 공장지대와 철도공작창으로 연결된 철로가 영등포 시내를 관통하게 된지 오래되었다. 경인선은 인천이 항만인데다 산업화로 공장지대가 늘어나 경부선의 끝이었던 부산에 다음 가는 주요 화물운송로였다. 낮에는 물론이고 특히 객차가 운행되지 않는 야간에는 밤새도록 화차가 왕래했다. 일철은 이제 막 시작한 견습이라 주로 야간 화물차에 배치를 받았다. 그는 해가 훤히 떠오른 아침나절에야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침밥도 건성으로 숟가락 드는 시늉을 하고는 죽은 듯이 늘어져 잤다.     


일철의 견습기간 육 개월은 금이가 버드나무 집에서 신혼살림을 차린 기간이었다. 시아버지 이백만은 자기가 쓰던 안방을 아들 부부에게 내주고 건넌방으로 옮겼고 출근 퇴근으로 이어진 평범한 기술공의 일상을 이어갔고 주말과 휴일이 오면 별다른 취미도 없이 마당 건너편에 만든 공방에 틀어박혀 철물 공예품들을 만들었다. 손자 이지산이 소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당산 철도관사에 입주하게 되는데 이백만은 거기서는 공방을 차려놓지 못했고 다시 샛말에 집을 장만하여 나오게 될 때까지 일손을 놓아야 했던 것이다. 이백만은 그때가 생애 중 가장 길고 지루한 기간이었다고 손자에게 털어놓기도 하였다. 이철은 형이 장가를 들고 아버지가 건넌방으로 옮기게 되자 슬그머니 신길정 동네에 방을 얻어 나가버렸다. 처음에는 사나흘에 한 번씩은 집에 들르더니 일주일 열흘씩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차츰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면서 방직공장에서 전기공장으로 직장을 옮겼고 여전히 기술공 데모도를 전전했다. 식구들은 그가 여전히 활동가의 역할을 계속하고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금이는 그맘때에 지산이를 배어서 차츰 배가 불러오는 중이었다. 바야흐로 초여름이었는데 느닷없이 호박김치가 먹고 싶었다. 호박김치는 주로 가을에 담그는데 찌개를 끓여 먹으려고 얼른 담가서 푹 익기 전에 해물을 넣고 끓였다. 이제 겨우 일 년도 못되어 친정 집의 반찬 생각이라니 하며 금이는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대문이 삐꺽 열리더니 막음이 고모가 마당에 들어섰다. 일철이 야근하고 돌아와 정신 없이 쓰러져 자는 중이라 고모가 호들갑을 떨며 큰소리를 내기 전에 금이는 쉬잇, 하는 시늉으로 입술에 손가락을 대어 보였다. 고모는 보퉁이를 들고 왔다. 둘은 낮에는 비어있는 시아버지 이백만의 공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보통이를 끄르니 조그만 항아리가 나왔고 뚜껑을 열자 시큼한 냄새가 풍겼다. 


 “아니 이게 머예요, 혹시 호박김치 아녜요?”


 “아니 자네가 어찌 아나? 이거 우리계서 늘 해먹는 김친데. 입맛 없고 밥이 잘 안 넘어가면 이보다 맛난 게 없다네.” 


 “신통도 하네여. 고모님 그렇잖아도 이거 먹구싶다구 생각하구 있었는데.”


 막음이 고모는 손뼉을 쳤고 다시 금이가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우며 쉬이이, 했다. 


 “흥, 척하면 삼척 뚝 하면 뒷집에 호박 떨어지는 소리 아닌감. 내 그럴 줄 알았지. 우리 강화에선 꽃게를 넣어 끓여 먹네.”


 “김포 우리 동네선 밴댕이나 잔 갈치를 넣어 끓여 먹어요.”


 “물 건너 황해도 사람들은 젖국 넣어 끓이더만.”


막음이 고모가 잠깐 기다리라는 듯이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대문 밖으로 휭하니 나갔다가 한식경도 채 못 되는 사이에 돌아왔다. 그녀는 한손에 자잘한 서해 갈치 세 마리를 새끼줄에 꿰어 들고 왔다. 풍롯불 지펴서 호박찌개를 끓이고 그 반찬 하나 만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 마음이 맞고 통하니 막음이 고모도 기분이 좋았던지 금이에게 말했다.


 “배도 부르고 하니 우리 마실이나 좀 다녀올까?”


 “어디 뚝방 나가서 샛강 바람이라두 쐴까요?” 


 “한쇠는 저녁때나 되어야 일어나지?”


 “예, 그렇긴 한데……”


여기서 가까운 데라면서 자기를 따라오라며 막음이 고모가 앞장을 섰다. 금이는 따라 나서긴 했지만 영문을 몰라서 차츰 걸음이 느려졌다. 


 “어디 가시게요?”


 “응 내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조오기 철로변에 갈 데가 있네.”


철로변이라면 시장 사거리에서 곧장 올라가 샛말로 굽어지는 부근이었다. 공장 다닐적에 나가던 교회가 그 부근이었다. 


 “누구, 사람 만나러 가는 거예요?”


 막음이 고모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천리안이 있다네.”


둘은 철로변에 있는 작은 집으로 들어갔다. 한옥도 일본집도 아닌 유리창 달린 어중간한 맞배집이 길가에 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아래는 한창 팔리기 시작한 고무신 작업화 등속의 신발 가게였고 가파른 사다리가 있었다. 소녀가 파리채를 휘두르고 있다가 막음이 고모의 계시지? 하는 소리에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금이는 고모가 이끄는대로 사다리를 조심스레 딛고 올라갔다. 한지를 하얗게 바른 지붕 다락방 안에 교자상 펴놓고 웬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낮잠 한숨 자려는데 웬일이여?”


하면서도 그 노파는 고모의 등 너머로 금이를 쏘아보았다. 눈길이 마주쳤는데 어쩐지 금이는 시선을 피하기 싫어서 저절로 노려보게 되었다. 할머니의 눈길이 슬그머니 아래로 쳐지더니 그때부터는 고모만 바라본다. 금이는 할머니의 옆에 서너 살배기 계집아이가 앉아있는 걸 보았다. 몽당치마 저고리에 철지난 낡은 배자를 입고 있었다. 금이를 본 계집아이는 배시시 웃었다. 막음이 고모가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응 오늘은 내 조카며느리를 데리구 왔수. 천리안으루 좀 봐주시라구.”


했더니 할미가 쌀을 한줌 쥐어 금이를 향해 툭툭 뿌리면서 중얼거렸다.


 “천리안은 머 새댁이 그렇구먼.”


금이가 가슴께에 맞고 후두둑 떨어지는 쌀을 털어내며 물었다.


 “그건 왜 저한테 뿌리세여?”


 “기가 쎄서.”


하고는 할미가 되물었다.


 “시방 우리 태주가 보이지?”


막음이 고모는 실실 웃으며 옆으로 비켜 앉았고 금이가 말했다.


 “마마 걸려 죽은 아이 아닌가요? 할머니 손녀로구먼.”


늙은 무당은 아랑곳 하지 않고 방울을 흔들더니 하품을 연신 하면서 어깨를 추스렸다 내렸다가 하면서 진저리를 치고는 어린 계집아이의 목소리로 말했다. 


 “응 아들을 낳겠구나. 똑똑하구 잘 생겼네. 애비두 별 탈 없이 입신출세를 하겠구나. 근데 생이별 수가 있어. 부모 자식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야 한대. 아주머니 혼자서 온 가족 거느리구 험한 세상을 헤치구 나가야 한댄다.”


배자 입은 계집아이는 금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쫑알거리고 있는데 입만 오물오물 움직일 뿐 소리는 할미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할미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는데 막음이 고모가 교잣상을 탁 내리치며 외쳤다.


 “오늘은 잘 안 뵈는 모양이네. 그만하슈, 그만해.”


할미가 한숨을 푹 내쉬며 까뒤집었던 눈을 바로 했고 신금이는 털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수고 많았어여. 아들 낳고 남편두 출세를 하겠다니 좋은 말씀 고마워여.”         


 막음이 고모는 어쩐지 풀이 죽어서 금이를 데리고 그 집을 나섰다. 


 “저 할망구가 오늘은 영 신통칠 않은 모양이네.”


 “나는 그 명두인가 태주인가 하는 계집아이하구 눈을 맞추었다구요.”


금이가 쾌활하게 말했고 막음이 고모는 또 평소 습관대로 손뼉을 쳤다.


 “자네가 천리안인 걸 내가 공연히 헛걸음 시켰구나! 나는 그런 건 안 보인다네.”


 “두쇠 도련님 말에 의하면 이런 걸 다 미신이라구 할텐데여. 그냥 타고난 소질이겠지요. 세상은 벼라별 일들이 다들 뒤섞여서 돌아가기 마련이니까.”


막음이 고모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저 할미가 나더러는 수만 리 길을 떠나 살게 되는데 천금만금 남부럽지 않게 산다데. 근데 머 좀 외로울 거라고 하더만.”


신금이는 언제든 낙천적이어서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앞날이 정해졌다면 애달캐달 바꾸려 않고 그냥 받아주며 재밌게 살라구여.”


이듬해 금이는 말 그대로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다. 대문간에 매달은 새끼 금줄에는 붉은 고추가 꿰어져 있었고 아기가 백일이 될 때까지 매달려 있었다. 일철은 경인선 기관사 조수의 견습기간을 끝내고 경부선 화물차에 배치를 받았다. 그의 성실하고 조용한 성품이 일본인 간부의 눈에 들었는지도 모르고 그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철도공작창의 고원으로 말썽 없이 묵묵히 일해 온 덕분인지도 몰랐다. 하여튼 다른 산악지대나 지선의 광물 운반을 하는 기관차가 아니라 애초에 대륙으로 나가는 본선이라 할 경부선의 기관조수로 발령 받은 것은 운이 좋았다고 철도원 선배들은 모두들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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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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