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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 캣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월간 채널예스> 201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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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줄 알고 내가 준비했지. 나는 곧바로 닭가슴살을 풀었다. (2019.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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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코쿠(四國)에 사나기지마(佐柳島)란 고양이 섬이 있다. 가가와(香川) 현의 다도츠(多度津) 항에서 배(1일 4회 운항)를 타면 40~50분 정도 걸리는 섬이다. 한국에 널리 알려진 아오시마(靑島)나 아이노시마(相島)와 달리 사나기지마는 우리에게 생소한 고양이 섬이지만, 일본의 고양이 사진가들에게는 꽤 유명한 섬이다. 많은 사진가들이 이른바 플라잉 캣(flying cat)이라 불리는 점프샷을 찍기 위해 이 섬을 찾는다.

 

그만큼 사나기지마가 다른 섬에 비해 점프샷을 찍기 위한 조건이 좋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비밀은 방파제에 있다. 방파제와 방파제 사이의 간격이 1미터 정도로 고양이가 점프하기에는 무리가 없고 안전한 거리인 것이다. 배경도 한 몫을 한다. 사나기지마의 푸른 바다와 하늘, 섬이 절묘하게 어울려 플라잉 캣을 돋보이게 만든다.

 

사실 점프샷이란 게 대중에겐 별 거 없는 장면일 수도 있지만, 고양이를 찍는 사진쟁이들에겐 묘한 성취감과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 다수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스스로에게 만족한 사진은 스스로에게도 행복감을 전해주는 법이다. 해서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나기지마의 방파제 앞에 눕거나 앉아서 고양이가 날아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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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샷은 장소와 타이밍, 행운이 함께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사진이라 할 수 있다. 운 좋게 나는 사나기지마에서 여러 컷의 점프샷을 얻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의외의 장소에서 찍은 거였다. 방파제가 아닌 골목의 지붕을 날아오르는 고양이. 주인공은 젖소냥이 되시겠다. 녀석을 만난 것 자체가 나에겐 행운이었다. 섬을 한 바퀴 돌고나서 방파제 그늘에 앉아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때울 때였다. 젖소냥이 한 마리가 다가와 앙칼지게 울어댔다. 먹이 좀 나눠먹자는 거였다.

 

섬을 돌아다니며 간식으로 가져온 닭가슴살을 다 풀고 딱 하나만 남은 터라 나는 그것을 던져주고 김밥을 마저 먹었다. 그런데 녀석이 그것을 물고는 순식간에 골목의 담장으로 뛰어오르더니 풀쩍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이쪽 지붕에서 저쪽 지붕으로 우아하게 날아올랐다.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새처럼 날아가는 플라잉 캣의 모습은 마치 정지화면처럼 내 눈에 머물렀다.

 

내가 지금 무엇을 본 거지? 나도 모르게 남은 김밥을 꿀꺽 삼켜버린 나는 사뿐하게 건너편 지붕에 착지해 어디론가 사라지는 고양이의 뒤꽁무니만 멍하게 바라보았다. 녀석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건 식사를 다 마치고 주섬주섬 쓰레기를 가방에 구겨 넣을 무렵이었다. 아까보다 더 강력하게 녀석은 목청을 높였다. 먹이 선심을 더 쓰라는 거였다. 남은 간식이 떨어져 나는 저녁에 먹으려고 산 빵을 꺼내 세 조각으로 나눠 한 조각을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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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밖에 줄 게 없었지만, 녀석은 뒤도 안 돌아보고 그것을 문 채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급하게 나도 카메라를 꺼냈다. 이쪽 지붕에서 저쪽 지붕을 향해 녀석이 날아올랐다. 숨을 멈추고, 찰칵! 단 한 번의 기회. 다행히 녀석의 모습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녀석은 아직 나에게 두 조각의 빵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터라 금세 지붕에서 내려와 ‘맡겨놓은 빵’ 내놓으라고 당당한 요구를 했다. 그렇게 두 번이나 더 젖소냥이는 플라잉 캣이 되어 지붕과 지붕 사이를 날아올랐다.

 

대체 녀석은 저것을 누구한테 배달하는 걸까. 간신히 담장에 올라 녀석의 행방을 추적하니 나무로 가려진 창고지붕에 무언가가 움직였다. 거기 새끼 두 마리가 있었던 것이다. 각각 올블랙과 턱시도. 두 녀석은 엄마가 물어온 먹이를 먹느라 지붕에서 아귀다툼을 벌였다. 어미냥이가 플라잉 캣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저것이었다. 이제 막 꼬물이 티를 벗은 아깽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몇 번이고 공중배달을 감행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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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에서 내려온 어미냥이는 또 다시 먹이 갈취를 시도했지만, 나에겐 더 이상 줄 것이 없었다. 어미를 통해 아깽이들에게 빵을 전해준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나는 다음날 첫배를 타고 다시 섬을 찾았다. 편의점에서 소포장 사료와 닭가슴살 네 봉지(매대에 딱 네 개만 남아 있었다)도 샀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어제의 장소로 향했다. 어제부터 줄곧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는 표정으로 어미냥이는 똑같은 장소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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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냥이 옆에는 올블랙 아깽이가 한 마리 더 있었다. 이 아깽이는 진즉에 지붕에서 내려와 하수구를 은신처로 삼은 듯했다. 푸짐하게 사료를 부어주었지만, 아깽이는 내 눈치를 보며 분주하게 하수구를 들락거렸다. 사료를 풀었지만, 어미냥이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처음에 몇 입 먹는 시늉만 하더니 나와 눈을 맞추고는 냐앙거리며 울어댔다. 이거 말고 물고 갈 수 있는 걸 달라는 거였다.

 

그럴 줄 알고 내가 준비했지. 나는 곧바로 닭가슴살을 풀었다. 하나는 어미냥이에게, 또 하나는 하수구 꼬마에게. 나머지 두 봉지도 차례로 어미냥이에게 인도되어 지붕 위 아깽이들에게 배달되었다. 아마도 지붕 위 아깽이들이 스스로 지붕을 내려올 때까지 어미냥이의 플라잉 캣 노릇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쪼록 젖소냥이 가족의 무탈과 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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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용한(시인)

시인. 정처 없는 시간의 유목민. [안녕 고양이]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 [고양이 춤] 제작과 시나리오에도 참여했으며,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는 일본과 대만, 중국에서도 번역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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