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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좋은 만화가 될 수 있다고 응원해준 친구들 (G. 구정인 만화가)

김하나의 측면돌파 (89회) 『기분이 없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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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은 첫째 날 같은 경우에는, 그 경험이 워낙 강렬해서 머릿속에서 저절로 이야기가 계속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2019. 06. 27)

[채널예스]-측면돌파_구정인-작가님.jpg


 

김혜진 : 지금 마음이 어떻지, 하고 생각해보니까… 마음이 없는 것 같아요.

          
심리상담가 : ……   우울…한 건가?

 

김혜진 : 아뇨, 우울하지는 않아요. 기분이 우울하지는 않은데요. 기분이 없는 기분이랄까요.  슬프거나 답답하거나 화가 난다거나… 그렇지 않으니까, 오히려 기분이 좋은 쪽에 가까운 것  같은데요? 평온하다고 해야 하나.

 

심리상담가 : 그게 뭐가 좋아요? 전혀 좋아보이지 않는데. 혜진씨, 지금 본인의 상태가 편안해요?


김혜진 : …아뇨. 좋은 의미로 편안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심리상담가 : 무감각? 무덤덤?


김혜진 : 음… 네. 그런 거 같아요.


심리상담가 : 그런데… 전에 혜진씨는 치열하게 이 생각 저 생각 여러 감정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그랬는데.  지금은 바람 빠진 풍선 같네.  평소와 다른 위험신호라면, 왜 그런지 들여다봐야 해요.


김혜진 : …네.

 

만화가 구정인의  『기분이 없는 기분』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구정인 만화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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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신 분은 30대 여성의 삶과 우울, 성장을 그린 만화가입니다. 오랫동안 어린이책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불현듯 만화가로 변신! 첫 작품  『기분이 없는 기분』  으로 ‘2019 다양성만화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며 단숨에 주목받는 작가가 되신 분이죠. 구정인 만화가님 모셨습니다.

 

김하나 : ‘구정인 만화가님, 작가님’ 이렇게 불리신 지가 어느 정도 되셨나요?


구정인 : 이제 책 나온 지가 한 달 반 정도 됐으니까…(웃음), 지금은 사실 디자이너라고 소개하는 게 더 익숙합니다.


김하나 : 디자이너로 활동하신 기간은 어느 정도 됐었나요?


구정인 : 한 13년 정도…?


김하나 : 중견 디자이너이시군요(웃음). 그러면 30대 후반에 들어서서 만화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구정인 : 만화를 그려야지, 만화가가 돼야지, 이렇게 결심한 적은 없어요. 그런데 이 책이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보니까, 제가 이 사건을 겪고 회복하려고 애를 쓰면서 저절로 그리게 됐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디자이너다 보니까 소설이나 산문보다는 조금 더 글과 그림이 같이 있는 형태가 익숙했고요. 그렇다고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으로 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고, 또 평소에 만화를 좋아하다 보니까, 저절로 만화가 됐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기분이 없는 기분』 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일단, 굉장한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림체 같은 것은 아주 담담하게 되어 있지만, 사실 이 이야기의 시발점은 일상을 뒤흔드는 큰 사건이잖아요. 이걸 보고는 ‘작가님의 자전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을까? 이 부분을 여쭤보는 게 결례가 될까?’ 많이 고민을 했었는데요. <채널예스> 인터뷰를 봤더니 ‘자전적인 이야기가 맞다’고 하셨더라고요. 사건은 카페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김혜진’이라고 하는 사람이, 직업인이기도 하고 주부이기도 하고 아이 엄마이기도 한데, 전화를 한 통 받으면서 시작되죠.


구정인 : 네.


김하나 : 전화 내용은 어떤 거였죠?


구정인 :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였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지 한 달쯤 된 상태로 발견됐다, 이웃에게 냄새가 많이 난다고 신고가 들어와서 경찰이 발견하게 됐다’는 내용의 전화였습니다.


김하나 : 이 사건이 작가님이 겪은 실제 이야기와 많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는 거죠?


구정인 : 네. 제가 사실 자전적인 경험이었다는 말씀을 안 드리려고 했었고, 출판사에도 홍보할 때 그런 문구를 넣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드렸었어요. 그런데 책이 나오고 나니까, 책 소개에 그런 내용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자 분들이 이걸 완전히 자전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조금 포기를 하고(웃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김하나 : 그러면, 이제 자신의 이야기라고 말씀을 하셨으니까, 섞어서 같이 이야기를 할게요. 김혜진은 아버지와 연락이 안 되고 간간이 궁금하기도 했을 테지만, 앞으로는 볼 일이 없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구정인 : 그 결심은 굉장히 단단했던 것 같아요. 책 뒷부분에 다시는 아버지를 안 보겠다고 할 때의 상황을 보면 굉장히 화가 많이 났던 상황이어서, 아버지가 연로하셔도 또는 크게 성공하셔도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고. 그래서 장례 때 ‘사람들이 비난하면 어떻게 하지?’ 생각할 때도 ‘그때 내가 결심한 거니까, 흔들리지 않고 비난도 받아야지’ 하고 생각한 것 같아요.

 

김하나 : 모든 등장인물들이, 머리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다 흰색으로 되어 있어요. 칠이 되어있지 않은데, 혜진만 유일하게 검정색 옷을 입고 검정색 머리로 나와요. 그렇게 연출하신 이유가 있나요?


구정인 : 혜진의 내면만 입체적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납작하게 그리고 싶었어요.


김하나 : 그게 혜진에게 비춰지는 모습이기도 했겠죠?


구정인 : 아무래도 그렇겠죠? 남편과의 관계도 굉장히 중요하고 남편이 큰 역할을 하지만, 남편의 감정 같은 것들은 그려지지 않고 납작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김하나 : 정말 고심을 많이 한 만화책이겠구나 싶었어요. 만드시는 시간은 어느 정도 걸렸나요?


구정인 : 전체 기간은 2년 정도 걸렸고요. 스케치를 하고 스토리를 짜고 수정을 하면서 구성하는 데에 1년 반이 걸렸고, 출간을 위한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딱 2개월 걸렸어요.


김하나 : 구상하시는 동안에 책 계약이 되어 있었어요? ‘이 만화를 책으로 만들겠다’ 이런 계획을 가지고 점점 구체화해가기 시작하신 건가요?


구정 : 처음 1년 정도는 혼자서 계속 작업을 하고, 마음이 불안할 때는 친구들한테 보여주고 조언을 얻기도 했어요. 그래도 처음 1년간은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이게 과연 뭐가 되기는 할까?’ 이런 불안감이 컸었어요. 1년쯤 돼서 스토리가 70% 정도 만들어졌을 때 창비 출판사에 투고해서 계약을 했고요. 그때부터는 편집자님과 상의하면서 진행했습니다.

 

김하나 : 김혜진이라는 인물이 이 사건을 겪고, 깊은 우울증에도 빠지게 되고, 그걸 회복해가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요. 작가님도 비슷한 궤도를 겪고 조금 회복하신 뒤에 만화 작업에 들어가셨던 건가요?


구정인 : 아뇨, 회복하지는 못하고 많이 힘들 때… 많이 힘들고 회복을 하려고 노력을 아주 많이 하던 시기에 시작을 했어요.


김하나 : 작가님 내부에서 뭔가 이야기 같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내가 이걸 꺼내놔야 조금 더 나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가요?


구정인 :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지는 않았는데 그냥 자동적으로… 특히 경찰서에서 연락을 받은 첫째 날 같은 경우에는, 그 경험이 워낙 강렬해서 머릿속에서 저절로 이야기가 계속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만화를 그리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책의 1장에 해당하는 내용을 그냥 이면지에 끄적끄적 그려봤어요. 그리고 친구들한테 보여줬더니, 그 친구들은 작가이기도 하고 편집자이기도 한데, 이걸로도 좋은 만화라고 앞으로 계속 해보라고 응원을 많이 해줬어요. 농담으로 ‘가자, 앙굴렘!’이라고 말하기도 하고(웃음)…


김하나 : 앙굴렘 만화축제(웃음).


구정인 : 네(웃음), 그래서 계속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김하나 : 혜진은 이 수많은 일들이 감당도 안 되고, 하지만 ‘나는 괜찮다’라고 계속 되뇌면서 살아가는데, 일을 하는데도 사람들이 자꾸만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위로를 하죠. 그 위로가 어떻게 느껴졌을까요?


구정인 : 그 위로를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위로 받을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슬프고 싶지도 않고, 상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왜냐하면 혜진은 아버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상실도 아닌 거죠. 그러니까 ‘왜 나에게 위로를 하지?’ 하고 애써 외면하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괜찮다고 이야기하던 혜진이, 속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몸이 괜찮지 않아지죠?


구정인 : 네, 그렇죠.


김하 :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 힘든 상태가 되는데, 그런 상태는 어느 정도 이어졌어요?


구정인 : 음… 그 상태는 사실 어느 정도냐에 따라 1년이기도 하고, 완전히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건 2~3개월 정도 될 것 같은데,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확연히 좋아지고…


김하나 : 저는 너무 알겠더라고요. 이렇게 무기력증과 깊은 우울증을 겪지는 않았지만, 며칠이라도 내가 느꼈던… 스스로 쓰레기 같다는 느낌… 책을 보면, 혜진이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머리도 제대로 못 묶어주고 바래다주지도 못하고 침대에 있으면서 ‘내가 뭘 했다고 이렇게 피곤한 듯이 누워있지?’ 하고 생각하잖아요. 남편이 너무 잘하고 밥도 차려주고 하는데도 몸을 못 일으키고…


구정인 : 네.


김하나 : 누구나 그런 날들이 있죠. 그런데 그런 날이 아주 심한 상태로 2~3개월씩 이어진다는 건 진짜 힘들었을 것 같아요.


구정인 : 네. 그래도 혜진은 빨리 병원에 가고 옆에서 남편이 조력을 많이 해줬기 때문에,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죠.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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