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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17화 : 우리 모두가 조선사람인데 서로 도웁시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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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주조부 고원이 넘겨받은 종이쪽지에 적힌 치수를 확인하고 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거푸집 제작에서 착오가 있었군.” (2019. 06.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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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또는 할머니한테 잘해야겠네! 그러면 얼마 후에 그 손님의 할머니 초상이 나더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쉬쉬하면서 단속을 하여도 신금이는 막무가내였다.

 

하루는 언문 신문에 난 광고를 한자씩 천천히 읽는 걸 보고 아버지가 놀라서 그녀에게 신식교육을 시킬 결심을 하게 되었다. 신금이는 오빠 시절에는 없던 군의 보통학교에 들어갔다. 신금이는 사 년제 보통학교를 나오면 당연히 여자고등보통학교에 보내줄 거라고 믿었다. 경성과 지방도시에 사립 여고보가 여럿 있었지만 아버지는 막내딸을 타관 대처에 보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학교마다 기숙사가 있다고 보통학교의 담임선생이 누누이 설명했으나 아버지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당시의 모든 아버지들이 딸에게 그랬듯이 이제 곧 열다섯 살이면 혼기가 되어 오는데 집에서 얌전히 가사 일이나 배우다가 신랑감을 만나 시집을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방에 틀어박힌 딸을 안타까워했다.

 

막내며느리가 좋은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막내며느리는 염창리에서 시집을 왔는데 자기 마을의 또래 동무 하나가 방직공장에 들어가 교육도 받고 기술도 배워 지금은 조장이 되어 출세를 했단다. 월급도 많이 받고 남편도 같은 공장의 기술자를 만나 지금은 영등포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는 얘기였다. 엄마는 막내며느리를 앞세우고 옷감이며 귀한 건어물 등속의 선물을 한 보따리 준비하여 그 여자를 만나러 영등포로 나갔다. 행주나루에서 물이 들 때에 돛배를 타면 염창 지나서 선유도 양화나루까지 반나절이면 당도했다.


막내며느리의 동무는 금이가 보통학교를 졸업했다는 말을 듣자 대번에 취직은 다 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장담을 했다. 공장에 삼년의 야학강좌가 있으니 돈을 벌면서 공부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신금이네 집이 김포에서 논 삼십 마지기 가진 중농이라고는 했지만 자식은 많고 배운 일이 농사일 밖에는 없어 분가한 자식들도 근근이 살아갔고, 본가 식구들마저 열심히 농사 지어 겨우 밥술이나 먹고 살 정도였던 것이다. 세상은 쌀보다 돈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금이가 그래도 보통학교를 나온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유용한 일이었다. 조선어 대신 ‘국어’를 배워 어른들이 못하는 일본어를 말하고 읽고 쓸 줄 알게 된 것이다. 신금이는 막내올케를 따라 영등포로 나갔다. 방직공장에 취직할 때까지 한 달쯤 그녀의 동무 집에 양식을 주고 숙식을 했다. 기숙사 방은 사조 다다미방에 네다섯 명이 함께 기거했는데 기숙사 식당에서 된장국에 절인 채소와 가끔씩 생선 한 토막이 나오는 밥을 먹고 일이 끝나면 강좌실로 가서 두세 시간의 수업을 받았다. 일주일에 일요일만 하루 쉬었고 오후부터 저녁까지 외출을 할 수 있었으며 여덟 시에는 귀사해야 했다. 그러나 듣던 바와는 다른 게 너무도 많았고 하루 노동 시간도 열 시간이 보통이었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서 아침 먹고 일곱 시부터 일을 시작하여 열 두 시에 점심 먹고 오후 한 시에 다시 일을 시작해서 저녁 여섯 시에 일을 마쳤다. 그러고는 기숙사 안의 교실에 가서 졸며 강의 듣고 열시 넘어서 쓰러져 잠들었다.


일이 밀리면 연장 근무라고 밤 아홉시 넘어서까지 일하는 날도 많았다. 기숙사의 규율이 엄하여 일요일 하루 이외에 공장 바깥으로 나가는 외출이며 심지어는 배정받은 방을 벗어나 다른 동료의 방을 방문하는 것도 금지였다. 그래도 보조 직공들은 그들을 부러워했다. 용인 여공과 인부들은 임시직이었고 임금도 일당이었으며 공장의 고된 허드렛일이나 했는데 조금이라도 게으르거나 실수를 저지르면 그날로 해고였다. 신금이는 이년 만에 견습을 떼고 직공이 되었고 삼 년의 강좌를 마친 뒤에는 조장이 되어 자기 방직기를 보조 두 명과 더불어 담당하게 되었다.


이일철이 철도원양성소 학교의 이학년이 되던 해에 만주사변이 터졌다. 교실에 들어온 선생이 군에서 파견된 교관 장교를 소개했고 그는 지난주에 일어난 만주 류조구 사건과 그 경과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는 먼저 있었던 장춘의 만보산 수로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조선인 이민 농민들과 중국인들과의 마찰을 간단히 설명했다. 중국인들이 토지를 외지인에게 임대하려면 현청의 허가를 받지 않는 한 무효라는 규정을 속이고 계약한 뒤에 조선 농민들의 수로에 관한 권한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측과 중국군의 작은 충돌이 있고 나서, 만주의 조선인 이민을 일본 진출의 선발대로 인식하던 일본측은 이를 빌미로 중국이 조선인을 억압 침탈하고 있다는 선전을 조선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케 하였다. 그리하여 이런 사건을 진실이라 믿었던 조선인들은 경성은 물론 지방 도처에서 화교의 음식점이나 상점 농장 등을 습격했다. 사정을 알게 된 조선인 각 사회단체가 진상을 알리고 일본 측의 선전에 속지 말라면서 조중 인민의 친선을 강조하고 나섰다. 물론 학교에 틀어박혀 기술교육을 받는데 전념하고 있던 이일철이 그런 실정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진작 일본은 만주 전역에 철도를 놓고 남만주철도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이로써 일본인 및 그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련다는 구실로 관동군의 만주 주둔을 합리화하였다. 일본군 참모부는 만주의 실질적 점령을 위하여 중국이 자신들의 이권을 침해할 목적으로 만주철도를 먼저 폭파했다고 선전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관동군 특무의 작전으로 실시된 자작극이었다. 일본군은 1931년 9월 18일 만주지방 군벌인 장학량의 군영이 있는 봉천을 공격하고 만주철도 인근의 주요도시들을 점령했다. 남경의 중국 국민당정부는 속수무책으로 무저항 관망주의를 택하였다. 교관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로 현정세보고의 마무리를 했다. 


 “우리의 영용무쌍한 대일본제국의 관동군은 단지 오 일 만에 요동성과 길림성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고 오랫동안 종속되어왔던 이 지역을 중국으로부터 독립시키기에 이르렀다.”


이일철이 아직 철도원양성소에 재학 중이던 이듬해 겨울방학 중에 만주국 건립이 선포되었고 청의 마지막 황제였던 부의가 집정에 취임했다. 만주는 이제 완전히 일본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의 아우 이이철은 보통학교를 나와 인근 철공장에서 아버지 이백만처럼 선반을 배우고 있더니 철도공작창에 인부로 들어갔다. 인부에서 정식 공원이 되는 길은 아버지처럼 기술이 뛰어나고 성실해야 되었다. 그는 형 같이 학업 성적이 우수하지는 못했지만 눈치가 빠르고 똘똘한 편이라서 조수 노릇을 곧잘 해냈다. 이철이가 아버지 이백만의 동료 기술 고원 아래에서 선반을 연마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조장 고원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주조부에 가서 거푸집의 원형 치수가 올바른지 확인해 오라고 일렀다. 그는 주물을 들고 부서로 찾아갔다. 치수를 확인한 고원이 쇳물을 거푸집에 붓고 있던 인부 용역들을 다그쳤고 그들 중에 누군가가 손을 들며 말했다.


 “우리는 보내준 틀에 용액을 붓고 굳혀서 빼었을 뿐입니다. 처음부터 치수가 잘못되어 내려온 게 아닐까요?”


 “하여튼 어느 쪽이 되었든 잘못한 조는 변상하고 책임을 져야지.”


잠시 주조부 고원이 넘겨받은 종이쪽지에 적힌 치수를 확인하고 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거푸집 제작에서 착오가 있었군.”


그들 중에 다른 사람이 손을 들고 물었다.


 “불량품이 몇 개입니까?”


이철이 대답했다.


 “일곱 개요.”

 

 “그건 내가 변상하겠시다.”


고원이 그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여보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조선사람인데 서로 도웁시다. 다시 부어내는데 이십 분쯤 걸릴 테고 우리가 그 수량만큼 더 일해서 만들어내면 되지 않소?”


고원 역시 수년의 용역 인부를 거쳐서 고원이 된 사람이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했다. 


 “당신 오늘 일당에서 빼도 좋겠소?”


그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시구려. 해고는 하지 말고.”


그의 말에 주조부의 고원은 함께 웃어주면서 말했다.


 “해고는 무슨……”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한꺼번에 풀리는 듯하였다. 이이철은 그 인부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저녁에 퇴근하여 귀가하는 길에 그가 허리끈에 도시락을 매달고 좌우 어깨를 흔들며 앞서가는 게 보였다. 이철이 걸음을 재게 놀려 그의 등 뒤로 다가서며 말을 걸었다. 


 “댁이 어디세여?”


 “아니 이게 누구요, 선반조수 아니신가?”


 “말 놓으세여. 보아허니 아저씬데.”


이철이 쾌활하게 말하니 그는 손을 내저었다.


 “내가 모르는줄 아슈? 이백만 고원 아들이라며? 우리네야 막일꾼인데 머.”


그가 시장 뒷거리 봉노에서 기거한다고 말하자, 자기 집도 거기서 멀지 않다고 가다가 어디 선술집에서 대포나 한잔씩 나누자고 이철이 먼저 제안했다. 시장거리 주변에는 오래전부터 밥집도 많고 술집도 많아서 퇴근시간 무렵이 되면 부근이 온통 떠들썩하고 앉을자리도 없었다. 가정 있는 자들은 주말이 아니면 으레 반찬거리로 생선이나 한두 마리씩 사들고 총총히 귀가하기 마련이지만, 돌아가 봤자 여럿이 함께 일세를 내고 묵는 봉놋방 신세의 노동자들은 아는 이끼리 추렴하여 저녁 요기 겸 싸고 푸짐한 안주에 막걸리나 소주를 마셨다. 두 사람은 선술집 화덕에서 청어구이와 빈대떡을 시켜 막걸리 주전자에 받아 놓고 판자선반 가에 서서 막걸리를 마셨다. 먼저 통성명과 고향이 어딘지 주고 받았다.


 “나는 방우창이라 하오. 충청도 천안에서 왔소.”


 “이이철이구요, 아부지 고향은 강화라는데 나는 영등포 태생이우 .”


방이 웃으면서 이철에게 물었다.


 “솜털이 보숭보숭한데 몇 살이우?”


 “예, 열여덟입니다.”


 “허 이팔청춘은 넘겼으니 대장부가 분명하우. 나는 이제 갓 서른 살이라 퇴물이지.”


이철이 처음부터 궁금했던 점을 그에게 물었다.


 “근데 오늘 불량 나온 거 아저씨가 뒤집어 쓰셨잖아요? 그런 이가 드문데.”


방우창은 언제나 그랬듯이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텐데. 오늘 하루 없던 셈 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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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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