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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인문학자 강판권 “숲만 보지 말고 나무를 제대로 보라”

『숲과 상상력』 나무를 통해 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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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지 않은 꽃이 있나요? 예쁘지 않은 생명체가 없어요. 잘생기고, 못 생기고는 내 상, ‘아상(我相)’에서 시작한 거거든요. 내가 못 생겼다고 하니까 못 생긴 거지 이 세상에 잘나고 못 나고는 없어요. 오직 위대한 것만 있습니다. (2019.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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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보다 중요한 것은 한 그루의 나무다. 한 그루의 나무 없이는 숲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충고하지만, 나는 오히려 “숲만 보지 말고 나무를 제대로 보라”고 주장하고 싶다.(중략) 인간은 자연생태의 공간에서 시간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은 공간 밖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이 같은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한 그루의 나무는 그 자체로 인간 존재의 필요조건이다.(8-9쪽)

 

『나무예찬』  , 『나무철학』  ,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  등을 펴낸 ‘나무 인문학자’이자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판권 교수의 새 책 『숲과 상상력』은 ‘사찰과 숲’, ‘역사와 숲’, ‘사람과 숲’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숲과 숲을 이루는 나무를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경남 합천 해인사 소나무숲, 제주도 비자림, 서울시 종로 종묘, 강원도 횡성 자작나무숲, 전남 구례 산수유마을 등을 다니며 숲과 직접 만났고 그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사색했다. “숲은 인간이 악기를 연주하지 않아도 언제나 공연을 한다”(171쪽)며 숲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겨울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 온몸을 맡긴 나무의 순진함과, 진실하기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나무의 당당함을 느낄 수 있다”(201쪽)며 나무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한다.


지난 5월 12일, 서울식물원 보타닉홀에서 ‘숲과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강판권 교수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나무 한 그루를 자세히 관찰하는 일의 가능성부터 숲의 의미, 거기서 이어지는 상상의 세계를 폭넓은 이야기로 들려준 강판권 교수는 “우리는 나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하며 우리는 나무를 통해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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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의 마중물, 관찰


관찰(觀察), 즉 ‘자세히 본다’는 행위가 인간의 창의성을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말한 강판권 교수는 관찰을 “우리 본성의 마중물”이라고 말했다. “마중물이 있어야 샘물을 끌어낼 수 있다. 샘물이 우리의 본성이며, 그것을 창의성이라고 부른다. 이를 위해 마중물이 필요하고, 그것이 관찰이라고 생각한다.”는 설명이었다. 나무를 많이, 자세히 볼수록 잠재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자세히 관찰하고 있는지, 그리하여 어떤 사유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주변에 은행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은행나무의 암꽃을 봤느냐고 물어보면 봤다고 말하는 분이 드물어요. 은행나무 열매는 알지만 은행나무의 암꽃은 못 봤다는 거죠. 지금쯤 암꽃이 폈을 텐데요. 모든 것을 다 잊고 암꽃을 봐야겠다, 하고 암꽃을 찾아 나서보세요. 여러분이 평생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마음을 쓰게 될 겁니다. 그 과정이 엄청나게 행복합니다. 이때 가치의 전환이 일어나는 거거든요. 성리학에서 말했듯 공부를 통해 ‘성인(聖人)’이 되는 거죠.”

 

은행나무의 ‘행(杏)’자는 살구나무를 뜻한다. 열매가 살구 열매를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강판권 교수는 “이름이 어디서 오는가”를 따져보는 일 역시 관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며 “이름에서 열매를 보고, 열매를 통해 또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고, 그 생각의 생각의 생각의 꼬리를 계속 물고 가는 것, 이것이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은행나무 잎사귀가 무슨 모양인가요? 오리발을 닮았다고 해서 ‘압각수(鴨脚樹)’라고도 하거든요. 그러면 잎사귀를 봐야겠죠. 앞면을 보면, 뒷면도 봐야 해요. 무늬가 있는지 없는지, 앞과 뒤의 무늬가 같은지 다른지도 봐야 합니다. 계속해서 잎사귀 하나를 자세히 보고 있으면 생각이 어마어마하게 풍성해집니다. 그것이 상상력을 만들어내요.”

 

그런데도 우리는 넓은 식물원을 한 시간 만에 돌아본다며 안타까워했다. 강판권 교수는 자세히 보려고만 한다면 식물원의 식물들을 20년이 걸려도 다 못 볼 것이라면서 꽃 하나, 잎사귀 하나를 더 자세히 관찰하기를 거듭 당부했다.

 

“사람은 앞뒤가 있죠. 나무는 앞뒤가 없습니다. 수평으로 살고, 수직으로 살고요. 우리가 나무처럼 살아야죠. ‘내 나이 몇 살인데…’ 할 것이 아니라 어떤 가치로 살아갈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나무 하나를 자세히 보는 철학이 있어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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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보는 태도


이어 강판권 교수는 나무가 “평등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이것을 “생태(eco)”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숲과 사람의 관계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관계를 잘 맺어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서 이를 ‘간(間)’의 철학으로 설명했다. 

 

“틈이라는 것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철학입니다. 우리가 있는 이 장소를 ‘공간(空間)’이라고 부르죠. 공간, 즉 비어있기 때문에 이곳에 들어올 수 있어요. 비어있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잖아요. ‘시간(時間)’은 시와 시의 사이고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인간(人間)’입니다. 인간관계도 사이가 좋으려면 적당한 틈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는 의미거든요. 부모와 자식 간에, 친구 간에, 연인 간에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 하면, 다시 ‘생태’예요. 평등한 관계로 맺어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데요. 상대를 모르면 막 대하게 됩니다.”

 

숲은 사람처럼 생명을 지닌, 나무들의 공동체다. 이런 공동체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동거한다. 그러나 숲을 찾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숲이 사람만의 공간이라고 착각한다. 오히려 숲은 나무들의 공간이다.(중략) 나무는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나무를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나무 없이는 살수 없지만, 나무는 인간 없이도 살수 있다. 인간이 나무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숲을 학습의 장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267-268쪽)

 

나무를 공부하고, 나무에 대해 자세하게 알아야 평등한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고 설명한 강판권 교수는 이어 공자의 ‘인’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살려면 상대방을 일으켜 세워라”라는 공자의 말씀을 소개하면서 “어쩌면 나무를 진정으로 만난다는 것은 『대학(大學)』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격물치지, 사물을 깊이 연구해 지식을 넓히는 것이 가능해지는 거예요. 불교 사상으로 말하자면 ‘해인(海印)사상’입니다. 바다에 내 얼굴을 찍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 딱 드러낸다는 거죠. 그 모습이 진짜 모습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진짜 모습을 가리죠. 끊임없이 거짓말을 해요. 포토샵을 하고요.(웃음)”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이름을 불러야 한다면서 ‘잡초’, ‘잡목’과 같은 말을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사소한 말 안에도 우리의 사고와 의식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각자가 갖고 있는 개성을 이해하라, 다름을 받아들여야 한다, 라고 말한 강판권 교수는 이것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꽃과 나무’가 아니죠. 꽃은 아무리 해도 심을 수 없습니다. ‘풀과 나무’라고 해야죠. 풀을 이야기해야 잎

을 말할 수 있고요. 그래야 꽃도 말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해 존재를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진정으로 그 존재를 존재론적으로 봐야 하는 거예요. 그 앞에 앉아서 색깔도 보고, 왜 그런 모양인지 생각하고, 알아야 해요. 원리는 간단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예요. 모든 생명체가 그렇죠. 여러분이 이 자리에 오신 것도 살아남기 위해서인 거예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여기에 가치의 차이는 없습니다. 어떤 꽃이 예쁘다, 안 예쁘다, 말하죠. 예쁘지 않은 꽃이 있나요? 예쁘지 않은 생명체가 없어요. 잘생기고, 못 생기고는 내 상, ‘아상(我相)’에서 시작한 거거든요. 내가 못 생겼다고 하니까 못 생긴 거지 이 세상에 잘나고 못 나고는 없어요. 오직 위대한 것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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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야 상상할 수 있다

 

“봉황 아시죠? 이때 ‘봉’은 수컷이고요. ‘황’은 암컷이에요. 흔히 좋을 때 ‘봉 잡았다’고 하죠. 그런데 안 좋을 때는 ‘황 됐다’고 해요. 성차별인데요. 그런데 봉황이 실체가 있나요? 분명히 있어야 상상이 가능한 거잖아요. 봉황은 닭이나 꿩을 보고 상상을 한 겁니다. 확대해서 상상한 거죠. 팔공산 ‘동화사’에 가면 ‘봉서루(鳳棲樓)’가 있습니다. ‘봉황이 깃든 누각’이라는 뜻이고요. 그 옆에 대나무가 있는데요. 봉황은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고 해서 심어둔 거죠. 그것을 먹고 알을 낳아요. 동화사 봉서루 앞에 가면 큰 알이 있어요. 가면 볼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12간지 중 상상의 동물은 용뿐이다. 강판권 교수는 “대한민국 곳곳에서 용을 볼 수 있다. 풍수에서는 산, 그 중에서도 산줄기가 용이다. 또 지렁이를 ‘토룡’이라고 불렀다”며 용과 관련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용은 물”이며, 한옥의 지붕에 있는 ‘용마루’는 화재를 방지한다는 의미에서 용머리를 만들어 얹히기도 했다는 것. 강판권 교수는 이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 뒤 “자연생태를 알아야 인문생태를 알 수 있다”고 다시 강조했다.

 

“나무를 통해 인문학적 상상을 해보려면 특징을 알아야 해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담긴 역사성이 엄청 많거든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자세히 보십시오. 눈으로 보셔야 합니다. 또 다양한 경로로 보시고, 반드시 기록하세요. 인간이 다른 존재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시대가 됐습니다. 철학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식물원에 많이 오더라도 별 의미가 없어요. 나무 한 그루와 진정으로 만나시길 바랍니다. 공자 역시 진정으로 식물을 만날 수 있는 자가 본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했거든요. 그런 분이 세상을 바꿀 겁니다.”

 

독일가문비는 23층짜리 열매를 수없이 달고 있는 셈이다. 열매 모양은 기본적으로 소나무 열매를 닮았으며 길쭉한 껍질은 뱀허물이나 거북 등처럼 아주 독특했다.


숲에서는 하늘로 높이 솟은 나무들이 나른하게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도 전부 볼 수 없을 만큼 큰 키를 자랑하는 나무 중에는 경사 때문에 몸이 조금 기운 것도 있지만 대개는 하나같이 곧았다. 곧은 모습이 독일가문비의 특징이다. 나는 고개가 아플 때까지 나무를 올려다봤다.(255-257쪽)


 

 

숲과 상상력강판권 저 | 문학동네
나무는 함께 사는 법을 안다. 나무는 평생 한곳에서 옆의 나무와 치열하게 햇볕 경쟁을 하지만, 다른 생명체에게 자신을 조금씩 내어주는 상생의 길을 택한다.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숲길을 걷는 즐거움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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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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