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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활이 편안해 보인다면

그런데 부모님은 어떠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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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아이가 있는 삶에 조금 수월하게 적응했다. 기저귀를 갈고, 아이를 씻기고, 젖병을 소독하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재우는 일을 분담했다. (2019.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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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처가와 걸어서 10분 거리에 산다. 아이가 아프단 소식을 회사에서 들어도, 예정에 없이 퇴근이 늦어져도 크게 당황할 일 없다. 가장 믿을 수 있는 분들이 가장 가까이에 계신다. 갑작스러운 일이 생길 때만도 아니다. 친한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을 때, 우리는 아이를 부탁 드리고 부담없이 다녀온다. 우리의 생활이 편안해 보인다면 전적으로 두 분에게 기대고 있어서다.

 

부모가 되었고 육아를 한다고 하지만, 부부 단 둘이서만 아이를 돌볼 때의 어려움을 우리는 겪지 않는다. 눈도 못 뜬 아이를 깨워 씻기고 옷 입혀 함께 출근하는 동료들의 고충을 모른다. 육아도우미의 노동을 존중하고픈 마음과 아이를 세심히 돌봐달라 당부하고픈 마음 사이에서 고뇌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모른다. 우리 부부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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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가까이 사는 이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그들은 가끔 아이를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겨두고 둘이서 오붓한 식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말이면 찾아 뵙고 더 오래되어 숙련된 손 맛의 집 밥을 함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아프거나 다른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 빠르게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외따로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 서효인, 『잘 왔어 우리 딸』 , 221쪽

 

두 분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은 것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신혼생활부터 처가 근처에서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의존이 시작된 것은 역시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다. 아이를 낳은 후 조리원을 거쳐 아예 처가로 들어갔다. 가장 힘들다는 첫 100일을 처가에서 보냈다. 아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고 뒤집기도 하고 슬슬 굴러다닐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으니 한 4개월 정도 처가에서 생활한 셈이다.

 

덕분에 아이가 있는 삶에 조금 수월하게 적응했다. 기저귀를 갈고, 아이를 씻기고, 젖병을 소독하고, 우는 아이를 달래며 재우는 일을 분담했다. 아니 분담했다기 보다, 잠시 거들었다는 게 정확하겠다. 퇴근해서 씻고 잘 차려진 밥상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내가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는 수시로 깨고 때때로 아이를 한 시간씩 안으며 다시 재워야 해서, 잠은 늘 부족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면 나는 나 혼자만 건사하면 되었다.

 

낮에도 아이를 보고 밤엔 수유하느라 잠 잘 틈이 없는 아내가 걱정되었지만, 부모님들이 옆에 계시므로 안심할 수 있었다. 부모가 되었다지만 나는 양육을 분담하는 시스템 속에서 부수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내 역할은 아버님과 어머님이 대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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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인 조성희의 경우 모계 확대가족을 구성했고 남편은 양육 공동체의 체계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이처럼 보살핌 노동과 그것을 둘러싼 중재ㆍ관리 노동을 두 세대 여성이 함께 수행한다. 이것은 두 세대 모두에서 젠더갈등을 회피하게 되는 계기가 되면서 돌봄노동의 여성화가 대를 이어 계속되는 양상을 낳는다. 
- 조주은,  『기획된 가족』 , 126쪽

 

아내와 함께 아이의 주양육자 역할을 하신 건 아버님이셨다. 어머님은 출근을 하셨지만 아버님은 집에서 일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와 함께 집에 계시니 자연히 아이를 함께 돌보시는 일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하시는 일은 아니었다. 대단히 적극적이셨다. 아이가 잠을 자지 못해 보채면 몇 번이고 안아 재워주셨고,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목욕시키는 일을 도맡아 하셨다. 아이 빨래도 아버님의 몫이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큰 뒤에는 아이와 산책도 늘 함께 하셨다.

 

아버님의 양육은 우리가 처가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매일 오셔서 아이를 안고, 유모차를 끌고 함께 산책하셨다. 아이의 빨래도 매일 가져가셔서 빨고 말려 가져다 주셨다. 아내와 나는 때때로 아버님이 칸트 같다고 말했다.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오셔서 아이를 돌봐주셨다. 아버님의 일상은 잘 짜여진 것으로 보였다. 일을 하시고 건강을 관리하시고 집안을 돌보는 일들이 규칙적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였다. 아버님은 이미 구축된 일상 속에 지안이의 자리를 기꺼이 만들어주셨다. 나는 아버님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내가 보지 못한 아이의 모습도 아버님은 훨씬 많이 기억하신다. 길가의 꽃을 보며 아이가 ‘꽃’이라 처음 소리내고 까르륵 웃던 모습을 나는 영상으로 봤다. 아버님은 그 영상 속에서 아이를 바라보며 웃고 계셨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 받은 편지도 100일을 맞은 날 아버님이 써 주신 것이다. 아버님은 100일 동안 눈에 담긴 지안이의 모습을 편지에 잘 담아주셨다. 아버님은 지금도 지안이의 생일에는 꼬박꼬박 편지를 써주시고, 그 편지가 일종의 성장앨범처럼 지안이가 지나온 날들을 기록하고 있다. 내가 출근을 한 동안 아내 혼자 매일 아이를 돌봐야 했다면 부담이 무척 컸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님이 계셔서 감사했고 든든했다.

 

아내가 복직을 한 후부터는 어머님이 큰 도움을 주신다. 직장을 그만 두셨다. 어머님이 당신의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오셨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당연히 가벼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별 내색없이 매일 아침 7시면 집으로 오신다. 둘 다 출근시간이 이른 편이라 나는 7시 이전에, 아내는 7시 반 이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안이는 엄마 아빠를 보지 못하고 할머니를 마주한다. 세수를 시키고, 밥을 먹인 후, 어린이집 등원을 챙겨주신다.

 

아침에 엄마 아빠가 없다는 걸 지안이는 이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엄마 아빠를 찾으며 운다.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울기도 한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다독이는 일도 어머님이 해주신다. 아이가 자연스런 감정을 누르도록 돕는 일이 어른의 마음을 짠하게 만드는 터라, 울다 그친 아이를 어린이집 문으로 들여보내는 어머님의 마음을 나는 때로 상상해본다.

 

아이가 하원을 하기까지는 쉬실 시간도 필요하고, 개인적인 일이나 돌보실 집안일도 있을텐데, 어머님은 또 그 사이에 우리 집을 정리하신다. 설거지도 하시고 냉장고도 정리하시고 어질러진 장난감들도 정리하신다.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정리체계가 흐트러져서 손대기엔 너무 큰 일이 된 터라, 또 퇴근하면 기운도 없고 그나마 있는 기운을 아이와의 상호작용에 주로 할애하는 터라 우리는 이 집을 정리하는 일에 어느 정도 정도 손을 놓았다. 최소한의 상태만 유지하려고 했다. 또한 정리보다는 아내와 내가 서로에게 ‘개인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더 신경을 썼다. 하지만 어머님은 구석 구석 물건들의 위치를 조정하며 조금이라도 더 깔끔해지도록 챙기신다. 그래서 우리 집은 나날이 더 깨끗해지고 있다.

 

지안이 하원 시간이 되면 아버님도 오신다. 지안이와 만나 산책도 하시고, 빵집을 가고, 집에 와서 책을 읽고, 밥을 먹는다. 목욕도 시켜주신다. 지안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장 일관되게 지안이 곁을 지켜준 사람은 사실 아버님인 셈이다. 퇴근해서 우리가 할 일은 간단간단한 집안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매번 다 하진 못해서 무언갈 남기는 날이 있고, 그러면 다음날 또 두 분이 해주신다.

 

그러니 아이가 없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는 육아의 힘겨움을 토로할 입장은 안 된다. 아내와 나는 시간을 조정해 책도 읽고 휴식도 갖는다. 나와 아내 둘 다 주기적으로 원고도 쓰고 있다. 우리 부부는 소소하나마 욕심이 많고,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싶어 한다. 부모님 덕분에 아이를 돌보는 일과 우리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꾀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모두 거인의 어깨를 딛고 서 있다지만, 아내와 나는 어머님과 아버님의 허리를 딛고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가 누리는 행운은 부모님의 헌신에 빚지고 있다.

 

그런데 부모님은 어떠실까. 부모님 역시도 그런 균형이 필요하실텐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아이를 돌보는 데 쓰고 계신 건 아닐까. 우리의 균형을 꾀하는 일이 부모님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가능한 것이라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근사근한 사위가 못 되는 터라, 그게 내 성격이라는 이유로, 그간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대화가 필요한 게 아닐까. 어머님 아버님의 삶의 질을 위해서 혹시 우리의 일상에서 어쩐 조정이 이뤄져야 하지는 않을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실천은 잘 되지 않는다. 아마도 망설임이겠지. 시간은 한정적이고 양육노동의 양도 정해져 있다. 우리의 부담이 늘어야 부모님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지금 겨우 누리고 있는 약간의 시간들을 놓고 싶지 않아 생기는 망설임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죄송하고 참담하다. 부모 자식 관계는 내리사랑이고, 그게 자연스러운 마음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의 헌신을 당연시할 수는 없다. 앞으로 우리 가족의 과제는 아내와 나뿐만 아니라, 아버님과 어머님 삶의 균형을 함께 고려하는 삶일 것 같다. 두 분에게 지금 이 시기가 고생하신 나날로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 분이 웃으실 때 참 보기 좋다.

 

우리 부부가 이사 왔고 엄마의 고생길은 두 배로 열렸다. 그의 수고를 진심으로 염려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오늘도 부득불 설거지를 하고 가겠다는 엄마, 화장실 바닥을 닦아주겠다는 암마, 우리집 고무장갑을 '내 고무장갑'이라고 부르는 엄마를 위해 멀리 도망쳐야 했던 게 아닐까. 
- 부너미,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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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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