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보이저, 175년 만의 기회를 만난 여행자

『호모 아스트로룸』 연재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1981년 8월, 토성은 그 거대한 중력으로 보이저 2호의 궤도를 바꿔서 다음 목적지로 향하게 했다. 아직 그 누구도 다가간 적이 없는 천왕성과 해왕성을 향한 여정이었다. (2019. 05. 20)

03.png

ⓒ NASA/JPL 목성을 접근-통과(스윙바이)해 토성으로 향하는 보이저 상상도


 

1965년, 마침 매리너 4호의 화성 접근통과를 준비하느라 제트추진연구소는 아주 바빴을 무렵이었다. 근처에 있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대학원생 게리 플랜드로Gary Flandro는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1983년에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전갈자리에서 사수자리에 걸친 대략 50도 범위에 늘어선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1976년부터 1978년 사이에 탐사선을 쏘아 올리면, 이 네 행성을 모두 순서대로 거쳐 갈 수 있었다.

 

열쇠는 ‘스윙바이swingby’라는 항법이었다. 스윙바이란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서 우주선의 항로와 속도를 바꾸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탐사선이 토성 뒤편을 스치듯이 지나가게 되면, 궤도가 앞쪽으로 휘어지면서 토성이 자전하는 운동에너지를 얻어 가속할 수 있다.


이렇게 스윙바이를 반복하며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순서대로 방문하면 된다. 플랜드로가 생각해 낸 이 여정은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고 불렸다. 한 번에 행성 네 군데를 거쳐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가려면 30년이나 걸리는 해왕성에까지 ‘고작’ 12년 만에 갈 수 있는 계획이었다.

 

플랜드로는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그랜드 투어는 행성 네 개가 거의 같은 방향으로 늘어설 때만 가능한 일인데, 이 기회는 무려 175년에 한 번뿐이었다! 1983년 이전에는 1800년경에 같은 기회가 있었다. 물론 그때는 탐사선을 쏘아 올릴 기술이 없었다. 다음 기회는 22세기에나 있었다다. 어쩜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마침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고 행성 탐사선을 만드는 기술 수준에 도달했을 무렵에 175년에 한 번 있는 기회가 찾아오다니!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같은 방향에 늘어선 것은 물론 과학적으로 보면 그저 우연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마치 행성이 인류를 부르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우주는 인류가 우주를 더 깊게 이해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행성은 고독하게 우주를 수십억 년이나 떠돌면서 계속 누군가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고대인이 밤하늘의 별을 보며 느꼈던 ‘운명’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태양계 너머로 향하는 보이저 2호의 비밀!

 

 

04.png

             ⓒ NASA/Caltech


 

지난해 말, 역사상 두 번째로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 2호의 41년간의 탐사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

 

1980년 11월에 보이저 1호는 토성과 타이탄의 조사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보이저 2호는 토성 스윙바이까지 아직 9개월 정도 남은 상태였다. 이때 기술자들은 보이저 2호의 궤도에 관한 ‘비밀’을 밝혔다.

 

행성과 위성의 위치 관계상, 타이탄을 방문하면 천왕성과 해왕성으로는 갈 수 없다. 따라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1호의 궤도는 타이탄으로 가는 쪽이었다. 그런데 2호의 궤도는 둘 중 한 궤도를 택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토성에 접근하는 각도와 거리를 조정함으로써, 스윙바이 후 목적지를 변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기술자들이 숨겼던 비밀이었다.

 

만약 보이저 1호가 타이탄 탐사에 실패했다면, 보이저 2호도 타이탄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1호가 타이탄을 충분히 탐사했으니, 보이저 계획의 본래 목적은 모두 달성한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자들은 보이저 2호의 목적지를 천왕성과 해왕성으로 변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미 보이저 1호가 이룬 압도적인 성과를 직접 확인한 상태였기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워싱턴의 관료들 또한 천왕성과 해왕성을 보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랜드 투어로 가는 길이 열렸다. 아니, 보이저 1호가 2호를 위한 길을 열어 준 것이다.

 

보이저의 임무를 계획한 JPL의 기술자 로저 버크도 이 음모를 꾸민 사람 중 하나였다. 버크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관료주의에 맞선 기술자의 작은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전 인류의 영구적인 이익을 위한 일이었지요.”

 

1981년 8월, 토성은 그 거대한 중력으로 보이저 2호의 궤도를 바꿔서 다음 목적지로 향하게 했다. 아직 그 누구도 다가간 적이 없는 천왕성과 해왕성을 향한 여정이었다.



 

 

호모 아스트로룸오노 마사히로 저/이인호 역 | arte(아르테)
이 친절하고 호기심 넘치는 이야기꾼은 우주탐사 역사의 첫 장부터 아직 빈 종이로 남아 있는 미래의 우주탐사까지, 그 서사를 극적으로 그려 낸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오노 마사히로

호모 아스트로룸

<오노 마사히로> 저/<이인호> 역 15,300원(10% + 5%)

우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뭘까? 암흑물질과 우주배경복사? 아니면 영화 [그래비티]에서 봤던 희고 둔한 우주복 안에서 숨을 몰아쉬는 우주 비행사와 좁은 우주선 창밖으로 새까맣게 보이는 텅 빈 우주 공간의 모습? CG로 만들어진 우주의 모습 속에 스스로를 대입하는 것보다, 암흑물질과 우주배경복사를 이해하는 나를 ..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수학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엄마표 유아수학 공부

국내 최대 유아수학 커뮤니티 '달콤수학 프로젝트'를 이끄는 꿀쌤의 첫 책! '보고 만지는 경험'과 '엄마의 발문'을 통해 체계적인 유아수학 로드맵을 제시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수학 활동을 따라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아이도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나를 바꾸는 사소함의 힘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시대. 불안과 번아웃이 일상인 이들에게 사소한 습관으로 회복하는 21가지 방법을 담았다. 100미터 구간을 2-3분 이내로 걷는 마이크로 산책부터 하루 한 장 필사, 독서 등 간단한 습관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내 모습을 느끼시길.

지금이 바로, 경제 교육 골든타임

80만 독자들이 선택한 『돈의 속성』이 어린이들을 위한 경제 금융 동화로 돌아왔다. 돈의 기본적인 ‘쓰임’과 ‘역할’부터 책상 서랍 정리하기, 용돈 기입장 쓰기까지,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자연스럽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저마다 삶의 궤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은 비슷한 생애 주기를 거친다. 미숙한 유아동기와 질풍노동의 청년기를 거쳐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늙어간다. 이를 관장하는 건 호르몬. 이 책은 시기별 중요한 호르몬을 설명하고 비만과 우울, 노화에 맞서는 법도 함께 공개한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