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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혁, 안희연 시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낭독회

다음 세계의 문을 여는 시집 『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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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혁 시인 “평소의 저와 비슷한 면을 많이 담고 싶었어요.” 안희연 시인“ 제가 가지고 있는 단어의 문을 연다고 생각했어요.” (2019. 0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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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VOL.3이 출간되었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소설가의 작품을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인 후 단행본 시리즈로 묶어 발간하는 프로젝트다. 핀 시리즈의 ‘핀 pin’은 머리칼이나 옷, 종이 등의 사물을 부분적으로 여미거나 연결하는 데 사용하는 뾰족한 물건으로, 문학의 정곡을 찌르면서 작가와 작가를 결합하고 독자와 작가를 연결하는 새로운 플랫폼이라는 의미이다. 이번 핀 시리즈 시인선 세 번째 컬렉션은 이제니, 황유원, 안희연, 김상혁, 백은선, 신용목 시인의 시 20여편과 에세이 한 편이 묶였다.


지난 4월 17일은 핀 시리즈 시인선 VOL.3의 김상혁 시인과 안희연 시인의 낭독회가 열렸다. 김상혁 시인은 시집  『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 에 담긴 산문 「맞아요, 그 풍뎅이」를 시작으로 시 「고치지 않는 마음이 있고」, 「새를 사랑하면 새 교수에게 사랑받는 제자가 될 수 있다」, 「쉽게 말하지 않았던 그날의 낭독회에서」, 「유턴」, 「아내가 이걸 모르겠다 싶었다」, 「전처가 여길 약속 장소로 정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내를 지나 양을 지나 염소를 지나……」, 「우리는 바닥을 치우다가 사랑을 나누었다」, 「우리는 올가을 학동사거리에서 결혼할 것이다」, 「같은 엔딩을 누군간 생각하지만」, 「그리고 언젠가는 새 주인이 든다」 등 1편의 산문과 11편의 시를 낭독했다.


안희연 시인은 시집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에 담긴 산문 「빚진 마음의 문장」과 시 「전망」, 「발만 남은 사람이 찾아왔다」, 「내가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비롯」, 「나의 겨자씨」, 「메이트」, 「밸브」, 「터닝」, 「변속장치」 등 1편의 산문과 9편의 시를 낭독했다.

 

두 시인의 낭독 후에는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을 운영하는 유희경 시인의 사회로 김상혁, 안희연 시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섭섭해진 친구가 뾰족하게 내민 입술처럼
어색한 시간을 뚫고 다가오는 그 뾰족함처럼
제때 아닌 도착이 있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부모가 모르는 키스가 있고
책에서 배운 적 없는 포옹이 있다 하지만 너무 시간이 없어서
너무 바빠서 고치지 않는 마음이 있고
내가 더 무너지게 되는 때가 있다

 

- 김상혁 시인 시 「고치지 않는 마음이 있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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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서접 ‘위트앤시니컬’을 운영하는 유희경 시인

 

 

유희경 : 낭독을 들은 후에 김상혁 시인님 점점 이야기꾼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희연 시인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김상혁 시인님처럼 재미있고, 웃기는 시를 써보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 이후에 안희연 시인님이 「전망」이라는 시를 낭독하셨어요. 보시는 것처럼 안희연 시인님이 항상 선한 웃음을 지으시는데, 시에서는 뒤통수가 저릿한 느낌을 주는 게 있어요(웃음). 두 분 시의 느낌이 참 달라서 좋았습니다. 오늘 낭독해 주신 김상혁, 안희연 시인님입니다.

 

김상혁 : 시 쓰는 김상혁입니다. 늦은 밤에 이런 중심가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안희연 : 웃기는 시를 쓰고 싶은(웃음) 안희연입니다. 반갑습니다.

 

유희경 : 두 분 시 들으면서 정말 좋았습니다. 책을 마무리하고 시간이 좀 지났지만, 한 권의 책이 나왔잖아요. 저는 시집 한 권을 내고 나면 마음이 빈 것처럼 느껴져서 뭔가 사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요즘 갖고 싶은 게 있는지 질문하고 싶었어요.

 

안희연 : 안에서 이 질문을 한다고 하셔서 반농담으로 공기청정기가 갖고 싶다고 했거든요.

 

유희경 : 시집 출간 후에 마음이 허전하거나 그렇지는 않으셨나요? 혹시 지금은 기분이 어떤지, 허전한 마음은 무엇으로 달래고 계시는지 여쭤볼게요.

 

안희연 : 사실 시집이 나오고 기분도 만끽하고 그래야 하는데, 4월 말까지 산문집 마감을 꼭 해야만 하는 상황에 닥쳐서요. 여기 오기 전까지도 급하게 마감을 하고 왔어요. 그래서 책이 나왔다는 기쁨을 누릴 시간이 정말 단 하루도 없이 매일 기계처럼 글을 쓰고 있어요. 실감이 난다는 감정과는 너무 멀고, 책을 낸 것도 이미 전생이 되어버린 것 같은 정도의 거리감이 느껴지거든요.

 

유희경 : 허전할 틈이 없었네요.

 

안희연 : 그렇게 지내다가 오늘 독자분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떨리는 거예요. 혼자 집에 갇혀서 글을 쓸 때와는 다르게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하니까 부담감이 어마어마하게 밀려왔어요. 이런 자리가 시인들에게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내가 뭐라고 시간을 들여서 이렇게 큰 자리를 마련해주시나 생각도 들고요. 준비하시는 분들은 퇴근도 못하고 일을 하시는 거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사실은 어떤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이 자리에 왔어요.

 

유희경 : 그런데 도착해서 샌드위치를 드셨다고…. (웃음) 김상혁 시인님은 어떠신가요?

 

김상혁 : 낭독회 전에 어떤 걸 갖고 싶냐고 물으셨을 땐 허무맹랑한 걸 말씀드렸는데요. 현실적인 걸 생각해 봤어요. 요즘 독채를 갖고 싶습니다.

 

유희경 : 독채요? 아까 말씀하신 게 더 현실적인 거 같은데요.

 

김상혁 : 이유가 있어요. 요즘에 가족이 모두 돌아가면서 감기에 걸리고 있거든요. 또 저도 책을 계속 마감하면서 함께 사는 식구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어서, 그게 너무 미안해요. 그래서 작은 목조로 된 독채를 지어서 작업실도 만들고, 고양이 여섯 마리도 지낼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유희경 : 그럼 그 독채에는 책과 작업실, 김상혁 시인님과 고양이, 이렇게 들어가는 건가요?

 

김상혁 : 아내와 아이가 들어갈 수도 있죠. 일단 지어지면 누가 들어갈지는 아직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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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혁 시인

 


8월 한낮의 사거리는 빛난다

 

무더운 세미나실에 앉아 죽음이 인간을 완성한다는 대목을 곱씹으며, 그런데 우리가 20년 전에 만났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 테지? 속삭였다 여기서 우리란 방학 중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 모인 대학원생 가운데 나와 그녀

 

우리는 올가을 학동사거리에서 결혼할 것이다

 

10월의 사거리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우리의 친구들은 식장으로 가파르게 이어지는 언덕을 우르르 오르고 있을 텐데 그렇지…… 20년 전이라면…… 다시금 기억을 천천히 되감으면서

 

- 김상혁 시인 시 「우리는 올가을 학동사거리에서 결혼할 것이다」


유희경 : 낭독회 전에 질문했을 때 SUV라고 답하셨는데요. 그게 좀 덜 허무맹랑한 것 같습니다. 이제 핀 시리즈에 대해 질문을 할까 합니다. 작은 시집이 조금씩 생기고 있지만, 시인들이 이런 경험을 많이 못 해봤잖아요. 벌써 세 번째 시리즈의 결과물이다 보니 앞서 나온 것들을 보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 황유원 시인과 낭독회를 할 때는 황유원 시인께선 ‘내가 못 할 것들을 묶었더니 묶음이 되더라’고 말씀하셨고, 이제니 시인은 ‘아프리카에서의 연장선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하셨어요. 두 분의 시집을 읽으면서도 두 분 만의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어떠세요?

 

상혁 : 시를 쓰면서 너무 개인적이라고 느꼈던 것, 기존 시집에 싣지 못했던 것들을 모았어요. 저는 일상에서 진지한 걸 잘 못 견디는 편이에요. 대화가 진지해지면 이어나가지 못하는 편이거든요. 저의 어떤 진지한 면들은 글에 모두 몰아넣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내에게 보이는 면과 글로만 진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이번 시집에는 평소에 하는 제 말투를 담고 싶었어요.


핀 시리즈 이전에 나온 두 권의 시집과는 다르게 평소 저의 모습과 말투를 그대로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 애정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읽힐지 두렵기도 한 시집이기도 합니다.

 

유희경 : 그래서인지 낭독을 할 때 편안해 보이고, 듣는 분들도 힘을 빼고 듣고 계신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어요. 안희연 시인님은 어떠셨나요?

 

안희연 : 핀 시리즈에 담기는 시가 기존 시집보다 편수가 적어서 쉬울 거라고 착각을 했어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고, 똑같은 공력, 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처럼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책이 나오는 일이기 때문에 편수와는 관계없이 똑같은 공력이 들어갔던 것 같고요. 처음엔 소 시집 형태니까 기획해서 작업해볼까 하는 야심 찬 계획도 가지고 있었거든요. 제가 백은선 시인과 굉장히 친한데요. 은선 같은 경우는 핀 시리즈를 위해 시를 새로 쓴다는 거예요. 역시 은선은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저도 시도해보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유희경 : 편수가 적어서 그런지, 많았다면 보이지 않았을 예각이 두드러졌던 것 같아요. 감정선과 예리한 것들이 더 잘 보이는 시집이었어요.

 

안희연 : 기획을 해서 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 가지 생각한 건 있는데요. 제가 가지고 있는 단어의 문을 연다고 생각했어요. 단어가 가지고 있거나 거느리고 있는 어마어마한 세계의 문을 열고, 우주와 같은 시공간이 펼쳐지는 모든 단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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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연 시인

 


검은 개가 혀를 빼물고 죽어 있는 골목에서 한 사람이 길을 잃는다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에서 악마를 볼 때 나무의 척추가 부러진다
빗소리는 세 사람을 옥상으로 데려가 죽음이 보낸 초대장을 읽어준다

 

그리고


난 저 문장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씨앗 하나를 심었을 뿐인데
벌어진 일들

 

- 안희연 시인 시 「전망」 부분

 


나의 전생은
커다란 식빵 같아

누군가 조금씩 나를 떼어
흘리며 걸어가는 기분

그러다 덩어리째 버려져
딱딱하게 굳어가는 기분

 

(중략)

 

물주전자가 물을 담기 위해 만들어졌듯
있겠지, 내가 담을 것과 내게 담길 것

때로는 길을 잃기 위해 신발을 신는다
오겠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에
진짜 이름을 붙여줄 날

 

- 안희연 시인 시 「메이트」 부분


유희경 : 말씀하신 것처럼 안희연 시인님 시집에 담긴 시의 제목들은 짧은 단어를 툭툭 치는 느낌이었어요. 오늘 두 분이 낭독한 시 제목에서부터 두 분이 굉장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죠. 그래서 묘하게 어우러지는 게 굉장히 좋았습니다. 앞에서 김상혁 시인님이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 주고, 뒤에서 안희연 시인님의 예리한 감상이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는데요. 앞으로 남은 2019년, 혹은 더 나아간 미래에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안희: 제가 정말 급하게, 하루하루 마감만 하면서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모든 계획을 전부 5월로 미루고 있어요. 꽃구경도 5월에 가야지. (웃음) 아픈 것도 지금은 안 되니까 5월에 아프자. 이렇게 다 미루고 있어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서요. 가고 싶은 전시나 보고 싶은 영화는 쌓여만 가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어쨌든 그런 것들을 제치고, 현실적으로 이루고 싶은 걸 말씀 드리자면, 올해 운전 연수를 받아서 어떻게든 운전을 해보는 게 목표입니다.

 

유희경 : 김상혁 시인님은 어떠신가요?

 

김상혁 : 핀 시리즈 이전에 낸 시집이 1~2집이었다면 이번 시집이 저한테는 2.5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전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걸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기 위한 가교 구실을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조금씩 바꿔 가는 게 좋은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데, 이상하게 시집 한 권을 마치고 어느 정도 지나면 지겨워지더라고요. 지겹다는 게 싫은 감정이 아니라 또 쓰기가 좀 꺼려지는 거죠. 요즘은 마침 산문 청탁이 많이 들어와서 잠시 시를 안 쓰는 시간인데요. 그 시간이 힘들면서도 필요한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어떻게 하면, 몸을 틀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어요.

 

유희경 : 김상혁 시인님이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에서 어떤 부분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점에서 여한 없는 작업을 한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핀시리즈라는 작지만 큰 시집이 그런 역할을 해준 것 같습니다. 핀 시리즈 세 번째 컬랙션까지 이어지면서 점점 쌓이는 느낌이 들어요.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설레고 기대되는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시인들이 정말 많은 분께 눈 마주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앞으로도 핀 시리즈를 아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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