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내 코에 완벽한 향을 찾아서

모두에게 좋은 향은 없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코끝이 차가워지는 추운 날씨에 맡으면, 타닥타닥 타 들어가는 장작불 냄새도 나고, 눈이 수북이 쌓인 겨울 숲 냄새도 나는데… 내 코에는 완벽한 향이, 어떤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2019.03.29)

ss.jpg

             출처 언스플래쉬

 

 

“회원님~ 한약 드시죠?"

 

미루고 미뤄왔던 운동을 연초부터 시작했고, 한달 쯤 되는 날 운동 선생님의 갑작스런 질문을 받았다. 한약은 8살 때 이후 먹어본 적이 없는 내 입장에선 적잖이 당황했다. 이미 내가 한약을 먹고 있다고 확신하고 그 사실을 확인하려는 것임을, 동의를 구하는 그의 강렬한 눈빛을 보고 알았기 때문이다. 혹시 다른 회원이랑 나를 헷갈리고 있는 걸까? 저쪽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회원에게 물어본 걸 잘못 들은 걸까? 내가 너무 골골대서 당연히 한약을 장복하고 있을 거라 짐작하는 걸까?

 

"아... 아.. 니요? 저 안 먹는데…"
"엇 정말요? 회원님이 오실 때마다 한약 냄새가 나요. 몸에 좋은 거 챙겨 드실 것 같은 이미지라서, 한약 드시는구나 했는데"
“한약 냄새요? 저한테서 나는 거 맞아요?”
“네네~ 회원님이 문 열고 들어오실 때마다 났어요!”

 

충격이었다. 발향이 잘 안 되는 편이긴 해도 매일 꼬박꼬박 향수를 뿌리고, 핸드크림도 틈틈이 바르고, 보통 공복 상태로 운동을 가기 때문에 운동 전에 챙겨 먹은 보양식도 없는데… 충격이 가시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떤 냄새인지를 되물었고, 몇 번의 질문과 대답이 오간 끝에 ‘달큰한 나무향’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무향! 그건 겨울에 즐겨 뿌리는 향수에서 나는 향이었다. 비로소 나는 한약의 충격에서 벗어났지만, 그 냄새가 향수의 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은 충격에 휩싸였다. 한약 향이 향수로 만들어지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돈을 주고 사서 그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니! 의 얼굴이었다. 


아 맞다. 이 향이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향이었지. 그렇다고 해도, 지난 한달 간 나에게서 한약 냄새를 맡았다는 사실이 살짝 슬프기까지 했다. 나를 위해, 내가 맡으려고 향수를 뿌렸지만 그래도 한약 향은 너무 충격적인 리뷰였다. 코끝이 차가워지는 추운 날씨에 맡으면, 타닥타닥 타 들어가는 장작불 냄새도 나고, 눈이 수북이 쌓인 겨울 숲 냄새도 나는데… 내 코에는 완벽한 향이, 어떤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코로 맡아진 냄새는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냄새를 기억하는 것은 냄새에 시각적인 ‘이미지’를 그려주는 것이며, 더 정확히 말하면 냄새가 더 이상 단순히 감각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고 다루기 쉽도록 그 특성이 잘 드러나고 이해하기 쉬운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장 끌로드 엘레나, 『나는 향수로 글을 쓴다』 154쪽

 

나는 ‘장작불’과 ‘겨울 숲’의 이미지를 그렸지만, 선생님은 ‘한약’의 이미지를 그려 기억하게 된 향. 그 날 이후로 이 향수를 뿌릴 때면, 나뭇가지처럼 생긴 여러 가지 한약재와 함께 옥색 사기 그릇에 담긴 거무스름한 탕약의 이미지가 함께 떠오른다. 절대적으로 좋은 향도 또 나쁜 향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나는 싫어하지만 어떤 이는 좋아서 흠뻑 뿌리고 다니는 향수의 냄새에 관대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며칠 전 출근 길 불어오는 미풍에서 봄 냄새를 맡았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겨울이 가고, 미세먼지를 뚫고 기어코 봄이 오는구나! 이 계절에서 저 계절로 옮겨가면서, 공기의 냄새가 미묘하게 바뀐다. 새로운 계절이 다가 오는 냄새. 봄의 등장을 온 몸으로 느낀다.


한 가지 향만 꾸준하게 쓰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반대다. 좋아하는 여러 가지의 향수를 두고 그날 아침 기분과 날씨에 따라 선택한다. 봄이 왔다고 느끼면 가장 먼저 뿌리는 향수를 바꾼다. 오늘의 선택은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나는 베르가못 향수. 뿌린지 1초도 안돼서 기분이 풋풋해진다. 더 이상 새롭게 시작하는 학기는 없지만 이 향을 맡는 순간에는 신입생 새내기로 돌아간 기분이다. 향수병에는 노란색 라벨이 붙어 있어, 프리지아 꽃다발을 선물 받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오렌지 껍질을 벗기면 그 향이 물보라처럼 공기 속으로 스며든다. 오렌지 100개의 껍질에서 얻을 수 있는 에센셜 오일의 양은 고작 1밀리리터이지만 그 알싸한 향은 다른 향들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시트러스 노트는 향수의 탑 노트에 상큼한 맛을 선사한다. 미들 노트가 전해지기 전에 이미 첫인상을 결정짓는 것이다. (중략) 모로코 사람들은 향이 품고 있는 비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향수 제조가 영혼에 이르는 길일 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일부이며 일종의 의식이라고 믿는다. 병에 걸렸을 때에는 오일과 연고로 치료하고 길모퉁이에서는 행상인들이 지나가는 사람의 코앞에 향수가 묻은 막대기를 흔들어댄다.
-셀리아 리틀턴, 『향기 탐색』

 

킁킁. 지쳐있을 때마다 손목에 코를 대고 남아 있는 잔향을 맡는다. 다른 이에게는 어떨 지 몰라도, 이 봄 내 코에게는 완벽한 향이다.

 


 

 

나는 향수로 글을 쓴다장 끌로드 엘레나 저 / 신주영 역 | 여운
조향사가 되기까지의 열정과 과정,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해준 사람들 그리고 삶의 소소한 즐거움은 물론 그가 새로운 향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민과 갈등 그리고 향수를 만들 때 베이스가 되는 향과의 ‘우연한 만남’ 등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최지혜

좋은 건 좋다고 꼭 말하는 사람

오늘의 책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시와 소설

매 계절 발표된 좋은 시와 소설,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를 함께 엮어내는 ‘시소 프로젝트’의 첫 번째 책. 이번 책에는 2021년 봄부터 시작해 지난 한 해를 아름답게 물들인 여덟 작가의 작품을 담았고,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도 비하인드 스토리와 선정과정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포토그래퍼 사울 레이터의 최고 작품들

컬러 사진의 선구자 사울 레이터의 사진 에세이집. 미발표 유작을 수록해 그의 빛나는 순간을 완성했다. 1940년대 초기작부터 2000년대 후기작까지 엄선하여 그만의 시선이 어떻게 변화하고 완성되어가는지 엿볼 수 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깊은 감동을 줄 사진과 글이 가득한 작품집.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새로운 이야기

추리와 로맨스 장르를 결합한 어린이 소설. 주인공 민준은 첫눈에 세미를 보자마자 마음을 빼앗기지만, 세미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 간의 갈등과 내면을 다룬 이야기가 독특하고 신선하며, 거듭되는 반전은 추리 소설의 묘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제대로 움직여야 통증이 사라진다

왜 다들 통증을 달고 살까? 대한민국 최초의 스포츠의학 전문가이자 국내 재활 치료 1인자인 홍정기 박사가 공개하는 움직임 회복 프로젝트. 폭발적인 화제를 모은 EBS 클래스ⓔ 강의를 바탕으로 통증을 해소하고 바른 움직임을 찾을 수 있는 기적의 운동법을 소개한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