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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행사

<월간 채널예스> 201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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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혼자 떠들었구나! 저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내 얘길 들었을까. (2019. 0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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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손은경

 

 

사람들 앞에서 말을 많이 하고 집에 돌아온 날이면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자리에서든 일방적으로 말하는 위치에 있으면 불안했다. 질문하거나 듣는 시간이 말하는 시간과 비슷해야 좋은 만남일 확률이 높았다. 발언의 지분이 서로에게 골고루 나뉜 대화에만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올겨울에 나는 아주 많은 말을 하며 지냈다. 책을 팔기 시작한 지난해 11월부터 1월까지 세 달간 열다섯 번의 인터뷰와 세 번의 라디오 출연과 열여섯 번의 북 토크 행사를 치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말하는 자리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설 때마다 같은 말을 읊조렸다. “내가 뭐라고….”

 

그러다 막상 인터뷰 장소나 라디오 녹음실이나 행사장의 토크 무대에 도착하면 그렇게 자조할 새가 없었다. 분명한 청자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추운 날에 다른 걸 할 수 있는 시간을 아껴서 내 앞에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 얼굴을 마주하면 성심 성의껏 내 소개를 하고 책 얘기를 하게 되었다. 자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는 어김없이 불안해졌다. 오늘도 혼자 떠들었구나! 저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내 얘길 들었을까. 말실수하는 나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역시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사주를 보러 갔다. 새해맞이 의식이기도 했다.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을 말한 뒤,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말하는 순간이 많아 걱정이 된다고 토로했다. 명리학자 선생님은 대답했다. “무대에 설수록 좋은 팔자예요. 큰 무대일수록 좋습니다.”


나는 복잡한 기분으로 되물었다. “정말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출판계나 교육계에 종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대충 그러고 있기는 한데… 계속 여기에 종사해야 할까요?”


“네. 그리고 매일 일기를 쓰세요.”


“일기요?”


“일기를 매일 쓸 경우 부적이 따로 필요 없는 팔자입니다.”


그런 팔자라니….

 

여러 기쁨과 스트레스와 질병을 가져다준 일간 연재를 생각하며 연초의 거리를 걸었다. 하던 걸 계속하면 되는 것인가.  『일간 이슬아』 가 일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무대에 서면 좋다는 예언도 들었으니 이왕 하는 것이니 모든 행사에 최대한 잘 임해보기로 했다. 행사에 잘 임한다는 건 무엇인가.


첫 번째로는 좋은 에너지를 품고 그 장소에 가는 것이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일하고 읽고 쓰는 생활을 유지해야 그럴 수 있었다. 행사 전날 밤에는 심사숙고하여 옷을 골라놓았다. 옷으로 용기를 내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내 몸을 편안하게 감싸는 옷일수록 용기가 났다. 하루는 내 몸이 너무 왜소하고 초라해 보여서 어깨에 ‘뽕’이 들어간 가죽 재킷을 입고 북 토크에 갔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해 보이는 외투였다. 진짜 동물 가죽은 아니고 인조 가죽이라고 사람들에게 강조했다.

 

두 번째로는 같은 얘기를 반복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 같은 이야기를 자리만 바꿔서 몇 번이고 반복하는 내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아주 가증스러웠다. 북 토크 때마다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자료를 만들어 가자 나의 편집자님은 조금 염려하셨다. “매번 새롭게 준비하려면 피곤하실 텐데요!” 그래도 피곤한 게 부끄러운 것보다 나았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행사를 낭독과 이야기로만 채우는 게 빈약하게 느껴져서 세 번째로 준비한 것은 6만 원짜리 중고 기타와 미니 앰프였다. 말이 지겨워질 즈음에 노래를 하기 위해서였다. 쉬운 코드만 쳐가며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불렀다. 내 글보다 좋은 가사가 세상엔 수두룩했고, 그 노랫말에 기대어 내 마음을 효과적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사실 책에 관해서라면 덧붙이고 싶은 말이 딱히 없었다. 내 글과 그림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노래는 여러 번 불러도 지겹지 않았다. 어느새 나의 북 토크 행사는 약간 디너쇼처럼 변해 있었다. 무대에서의 실수와 민망함을 추스를 새도 없이 책에 사인을 하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멀어져 갔다. 고맙고도 두려운 사람들! 여전히 그들에 대해 알게 된 것 없이 열심히 나를 보여주기만 하다가 행사의 밤이 저물곤 했다. 역시 불안한 일이었다. 나는 또 같은 말을 읊조리며 집에 돌아갔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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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슬아(작가)

연재노동자 (1992~). 서울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썼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저15,300원(10% + 5%)

어느 날 이슬아는 아무도 청탁하지 않은 연재를 시작했다. 시리즈의 제목은 '일간 이슬아' 하루에 한 편씩 이슬아가 쓴 글을 메일로 보내는 프로젝트다. 그는 자신의 글을 읽어줄 구독자를 SNS로 모집했다. 한 달치 구독료인 만 원을 내면 월화수목금요일 동안 매일 그의 수필이 독자의 메일함에 도착한다. 주말에는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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