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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장을 만나고 번역에 도전한 사연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번역자 최재형 서양 세계에 미지의 나라인 ‘조선’을 처음으로 알린 파란 눈의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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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알게 되고 번역에 이르게 된 일은 2014년 가을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라는 책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2019.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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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스물다섯 살의 한 선교사가 조선 땅에 입국했다. ‘제임스 S. 게일’이란 이름을 가진 파란 눈의 그는 사십여 년간 조선 땅에서 조선인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정동에 모여 살면서 좀처럼 그곳을 벗어나지 않던 대부분의 외국인과 달리, 게일은 부산에서부터 서울, 평양을 거쳐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조선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조선인들과 어우러지며 깊이 교류하였다. 특히 그는 조선의 마지막 10년이라 할 수 있는 1888년부터 1897년까지 10년의 시간을 담은 책을 『Korean Sketches』라는 제목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하였는데, 해당 원서는 서방 세계에 그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소개한 최초의 저서이다. 이미 여러 권 소개된 바 있는 게일의 다른 기독교 서적과 달리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고, ‘서울역사박물관’에 해당 원서의 초판이 전시되어 있을 만큼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책이다.

 

이 책의 역자 최재형은 성년이 될 때까지 서울 고척동에서 자랐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싶었지만 형편상 어학연수, 유학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한 외부 탓으로 돌려왔다. 뉴욕 여행 중 시차 적응이 안 되어 TV를 보던 중 영어 방송만 본다면 한국도 미국이나 다름없다고 깨달았다. 그때부터 영어 방송과 책 등으로 직장 생활 틈틈이 영어를 독학했다. 많은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 대우 좋다는 대기업에 합격했을 때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만 11년 후 암에 걸려 단명하겠다는 생각에 퇴직했다. 퇴직 후 흥미롭게 읽었던 본 책을 번역했다. 현재 서울 영등포에서 ‘한걸음 복싱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조선인보다 더욱 조선을 사랑한 파란 눈의 이방인,
제임스 S. 게일은 누구인가?

 

복싱연구소를 운영하시는데 번역을 하셨다는 것이 아주 특이한 이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되셨나요?

 

책을 번역한 사람이 복싱 체육관을 운영 중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놀라십니다. 선뜻 떠올리기 힘든 조합이니까요. 하지만 사실은 선후가 뒤집혀 있어요. 책을 번역할 당시에는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지 않았고, 책을 모두 번역하고 난 몇 개월 뒤에 복싱 체육관을 열기로 한 것입니다.

 

책을 알게 되고 번역에 이르게 된 일은 2014년 가을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라는 책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순수하고 담백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학문을 존중하고 무력을 싫어했다. 한국인의 심성에 대하여 게일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는데,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일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시작되는 게일의 견해를 보고 그가 대체 누굴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지요. 엘리자베스 책 뒤의 참고서적 목록을 살펴보고 그가 쓴 책 『Korean Sketches』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의 한 문장 때문에 번역을 하셨다는 건가요?

 

딱 한 문장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고요, 그것을 포함한 작은 우연들이 이어져 인연이 된 덕분입니다. 우선 책을 읽다가 참고 서적을 눈여겨본 것이 그렇고, 국내 서점 사이트에서 『Korean Sketches』를 검색해보니 아무 자료도 안 나와서 구글에 검색을 했는데 마침 원서가 보이더라고요. 다운 받아 읽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책에서 우리나라 단어도 나오고, 오래된 보물지도를 찾은 것 같은 그런 기쁨이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은 ‘재미있게 책을 읽는 것’ 딱 여기까지일 수 있었거든요. 제가 전문 번역가도 아니고, 번역에 뜻이 있었던 것도 전혀 아니었고요.

 

그렇게 얼마간이 그냥 지나갔어요. 그냥 책 읽기 좋아하는 직장인인 채로.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을 한 거예요. 그렇게 마음을 먹긴 했는데 생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둔다고 하면서 그동안 생각해온 사업 아이템 몇 가지를 아내에게 제안했어요. 그런데 직장 그만두는 것도 청천벽력일 아내에게 목돈을 들여 사업하겠다는 말은 정말 먹혀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럼, 얼마 전에 읽은 정말 좋은 책이 있는데 역사적 가치가 엄청난 것에 더해 정말 재미있다, 서양에서는 19세기에 이미 출간된 책이 정작 주인공인 우리나라에는 출간되지 않았다, 이걸 내가 번역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제안을 했어요. 아내는 책 써서 무슨 돈이 되겠냐, 굶어 죽기 딱 좋은 것 아니냐, 하고 입으로는 역시 반대했지만, 따로 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어서 그냥 놔두더라고요.

 

아무래도 처음 번역을 하셨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특히 이 책은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러한 부분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우선, 제 부족한 실력으로 영문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어요. 게다가 현대 영어가 아니라 120년 전 영어잖아요? 120년 전 서양 독자를 상대로 한 글을, 당시 서양인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을 배경지식이 전무한 오늘 이 땅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내야 하는 것도 숙제였습니다. 그리고 원문 한 문장이 기본 반 페이지 정도 죽 이어지는 만연체여서, 읽기 쉽도록 간결하게 단문으로 줄여내는 작업도 상당히 신경 써야 했어요.

 

마지막으로는, 말씀하신대로 우리 문화나 역사에 대한 이해 부분입니다. 영어를 잘하더라도 저변에 깔린 문화와 역사를 모르고 번역하면, 저자의 의도를 전달하지 못하고 의미를 잃은 문장의 나열밖에 될 수 없거든요. 수박이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 수박이라는 단어를 아무리 설명해봐야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없듯이요. 그런 면에서 비록 부족하지만 그동안 독서를 통해 『논어』, 『맹자』 등 고전을 접해온 것과 역사 중에서도 실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풍속사 책을 꾸준히 읽어온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침 이 책이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서 직접 전시된 책을 보고 오셨다고 들었어요. 직접 책을 만나 보니 기분이 어떠셨나요?

 

번역을 한창 진행하던 때였는데요, 잠깐 머리 좀 식힐 겸 집 근처의 박물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유리장 안에 진열된 원서를 발견했어요. 처음엔 아주 반갑고 기뻤지요. 신기한 마음에 그 자리에 서서 그렇게 표지만 볼 수 있는 책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약간 서글픈 거예요. 이렇게 우리에게 큰 의미를 지니고 가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단순히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너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재미와 따뜻함을 품고 있는 이 책이 100년도 더 전에 서양에만 일부 소개되고 우리와는 단절되어 유리장 저편에 죽어 있는 현실이 말이에요. 꼭 제대로 살려내서 빛을 보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읽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저자 제임스 게일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죠. 저자 게일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사람인가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우리의 역사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위대한 한국학자입니다. 게일은 1890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을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최초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계속 발전시켜 1960년대까지 시장을 지배했습니다. 근 80년간 대체재가 나오지 못할 정도로 완성도가 있었다는 의미이죠. 그 후 모든 『한영사전』의 모태가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이것만 해도 대단한 업적을 남긴 훌륭한 언어학자라고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이는 그가 남긴 족적의 1%도 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우리나라에 최초로 서양 문학을 한글로 번역해 출간하였고요, 우리 문학을 최초로 번역해 서양세계에서 출간한 사람도 그입니다. 우리나라와 관련한 40여 권이 넘는 국영문 저서를 출간하고, 잡지에 게재한 논문 및 기고문은 수백 편이나 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외국인인 그가 언문(한글)뿐 아니라 한문에도 완전히 능통했다는 거예요. 이미 1895년 『동국통감』을 번역하여 우리 역사를 서양 세계에 알렸고, 단군 조선에서 삼국시대와 고려를 거쳐 심지어 자신이 직접 겪은 고종 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를 집대성하여 〈A History of the Korean People〉이란 제목으로 무려 4년간 잡지에 연재하였지요. 과연 오늘의 어느 학자가, 아니 그 이전 혹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어느 학자가 이정도로 우리 언어와 문화, 역사를 깊이 연구하고 이해하였을까요? 그가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서양인이라는 데 생각이 이르면 그에 대한 존경과 더불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말할 수 없이 커집니다. 앞으로도 서양과 우리나라, 더 나아가 동양 문화 전반에 대해 통달한 그와 같은 대학자는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하는 게 제 생각이에요.

 

게일의 업적 중 역자님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발로 뛰는 부지런함과 열린 마음, 그 결과로 도출된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균형 감각입니다. 게일은 조선 사람 속에 살며 그들과 어우러졌습니다. 사랑방에 의자도 없이 하루 종일 양반다리로 앉아 무릎 뼈가 바깥으로 휘는 고통을 느끼고, 본인 표현으로 절절 끓는 온돌방에서 밤새 불 꿈에 시달리며 통구이가 되었죠. 그리고 그는 서양식으로 의자에 앉는 것보다 서로 방바닥에 앉아 있을 때 대화가 훨씬 깊어지고 친밀해진다는 것을, 아랫목에서 허리를 얼큰하게 지지고 나면 추운 겨울 켜켜이 쌓인 하루 피로가 싹 가신다는 것을 알고 존중하게 됩니다. 이러한 학자로서의 개방적 사고와 실천적 면모야말로 앞서 언급한 위대한 한국학자로서 그가 이룩한 업적의 근간이 아닌가 합니다.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이 지닌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우리 조상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 준 것이 가장 눈에 띕니다. 찬란한 『조선왕조실록』을 남긴 민족답게 우리 선조께서도 많은 역사적 기록을 남기셨지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소한 일상이나 삶의 풍경을 기록하는 데는 인색하셨습니다. 거대한 문화, 정치, 철학 담론은 수없이 넘쳐나지만 진짜 살아가는 모습의 기록은 아주 빈약한 것이죠. 그것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미쳐 역사 서가의 대부분이 철학사, 문화사, 정치사로 채워져 있어요. 생각과 논리의 흐름은 배울 수 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결여되어 있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너무나도 부족한 풍속사적 사료로서 그 가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나가는 여행자로서, 혹은 외부의 관찰자로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단편적으로 기록한 다른 서양인들의 책들과 다르게 10년 이상을 완전히 동화되어 살며 언어와 역사, 문화에 완전히 통달한 상태에서 기록한 따뜻하고 열린 저술이라는 데 독보성이 더욱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제임스 S. 게일 저/최재형 역 | 책비
‘청일전쟁’, ‘아관파천’, ‘갑신정변’, ‘명성왕후 시해’ 등 본인이 직접 겪은 역사의 현장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전해준다. 잃어버렸던 우리 역사를 되찾은 듯한 선물과도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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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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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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