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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너무 겸손해지지는 않으려고요”

차곡차곡 담긴 정세랑 월드 첫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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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고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았다면 심심해 보이는 친구에게 꼭 사주고 읽어보라고 해요. 그 작품으로 바뀐 제 세계, 기쁨, 쾌감 같은 걸 나누고 싶어요. (2018.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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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설레는 이름이 된 작가 정세랑’. 띠지에 적힌 홍보문구는 아마 ‘정세랑 월드’에 빠진 사람이 만든 문구일 것이다. 설탕을 입힌 반짝거리는 폭탄, 8년 만의 첫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에는 정세랑 월드가 차곡차곡 담겨 있다. 이 세계에 빠지면 어떤 이야기를 읽더라도 즐겁고, 빨리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다. 순수하게 남들에게 권하고 싶어진다.


『피프티 피플』  이후 2년, 인터뷰 전날 열렸던 북 토크에 150명 넘는 인원이 몰려 한 시간 넘게 사인회를 진행할 만큼 정세랑의 인기는 날로 커졌다. 한 명이 한 권씩 보는 게 아니라 한 명이 다섯 권씩 사서 주변에 권하는 정세랑의 팬은 정세랑을 그대로 닮았다. 좋은 걸 보면 남들에게 적극적으로 내밀고, 나쁜 것들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독자들. 그래서 정세랑은 오늘도 문학계의 잘못을 지적하고, 대책을 촉구한다. 절망해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뒷배’에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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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이야기 다음


첫 단편집이라고 해서 놀랐어요. 이미 두 권쯤은 나왔다고 생각했거든요. 웹진 <거울>에서 2012년쯤 단편집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정말 늦었네요. 장편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에 더 많이 마음을 뺏겼던 것 같아요. 단편을 꾸준히 쓰면서도 조금 더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내야겠다고 미루고 있다가, 어떤 단편이 쓴 시기에서 너무 멀어져 버리면 시대성도 떨어지고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0년부터 쓴 글이 묶였어요.


이렇게까지 늦게 내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 (웃음)


단편을 실은 기준이 있었나요?


스무 편 넘는 단편에서 SF는 따로 묶기로 했어요. SF 작가연대에 속해 있기 때문에 SF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3분의 1이 빠지고, 나머지 3분의 1은 성격이 비슷한 단편을 뺐어요. 비슷한 인물, 비슷한 주제나 등장인물의 수 등이 겹치는 게 싫어서요.


읽으면서  『피프티 피플』 의 조각이 모여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영화의 프리퀄처럼요.


나중에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있다는 주제에 계속 집중해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제가 어떤 걸 쓰고 있다는 걸 깨달은 기회였어요.


나중에 묶여봐야 알더라고요. 평론가가 말해줘야 아는 것도 있고요.


모두 다르게 쓴다고 생각했는데 통하는 게 있더라고요. 허희 평론가 님도 제 작품을 읽고 전혀 몰랐던 사실을 짚어주셨어요. 제 작품을 보고 트렌스 내셔널리즘을 이야기하셔서 처음 들어봤는데, 어 이거 하는 것 같다 싶었어요. (웃음)


단편과 장편을 작업할 때 차이가 있나요?


단편 쪽이 아이디어를 조금 더 과감히 실험할 수 있었어요. 아이디어 한두 개가 서로 붙으면 단편을 쓸 수 있는데, 장편은 그것보다 조금 더 기획이 필요하거든요. 단편은 가볍게 실험할 수 있어서 쓰는 것 자체는 더 즐거워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작품의 결이 바뀐 게 있다면.


초반에 썼던 인물은 고립된 상태가 많았어요. 회사에서 안 좋은 상황에 부닥쳐 있다거나, 자기가 죽었는데 죽었다는 사실을 자기 혼자만 알고 있다거나요. 그런데 뒤로 갈수록 다른 사람들과 친구들, 동료들과 연결된 인물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20대의 고립 상태에서 벗어난 게 글에서도 보이는구나 싶었어요.


초기 장편은 연애 이야기가 많았는데, 단편에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연애 이야기가 줄어들었어요.


20대 때 쓴 건 다시 쓸 수 없어요. 그때는 정말 안정된 관계를 원했던 것 같아요. 30대 중반으로 넘어오면서 사랑하는 반려동물이나 친구들, 혹은 책 속의 인물과도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데 그걸 꼭 연애 관계에서 찾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만든 변화 중 하나였을 거예요.


「옥상에서 만나요」에서 “모든 사랑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116쪽)”라고 쓰셨어요. 어떤 뜻이었을까요?


특히 젊은 세대에게 여러 가지 주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성장이 일어나던 예전 사회보다 열악한 상황이잖아요. 절망에 처해 있을 때 사람들이 사랑 이야기를 많이 찾더라고요. 드라마에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주인공이 재벌 3세와 사랑에 빠지는 추진력도, 사실 우리가 뺏긴 게 너무 많기 때문에 권력과 부를 나눠 받고 싶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절망 대신 사랑을 택하면 안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뒤집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썼던 것 같아요.


말씀을 들으니 그렇네요. 사랑에 빠지고 행복한 사람들은 행복한 이야기를 찾으려고 하지 않겠죠.


빠져나갈 구멍이 막혀있기 때문에 사랑 이야기에 기대는 마음은 저도 알 것 같아요. 제가 정말 힘들었을 때 집에 들어와 읽고 싶은 건 언제나 로맨스 소설이었어요. 그건 사실 나눠 받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죠. 그래서 만약 이 절망감이 해소되면 우리가 사랑 이야기를 훨씬 덜 찾을 것 같아요. 더 좋은 직장, 안전한 주거환경, 사회적 인정, 여러 가지 것들이 사람들의 갈망을 해소해준다면요. 저도 로맨스를 많이 썼지만, 로맨스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했던 게 지금 와서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싶을 때가 있어요. 작가로서 가진 게 너무 없고 늘 위험을 느끼면서 살았기 때문에 구원으로서의 삶, 절대적인 대상으로서의 사랑 이야기를 많이 썼던 건데, 그 달콤함을 완전히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이 다음 단계에 관해, 절망에 대해 더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죠.

 

 

능청스러운 거짓말의 격차


「영원히 77사이즈」는 스물여섯 살 때 쓰셨다고요. 처음 발표한 제목은 ‘영원히 66사이즈’였어요.


별 이유는 아니고 몸에 더 관대하게 쓰고 싶었어요. 나이 들면서 보니까 66사이즈는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88사이즈로 할까도 생각했는데 어감이 88올림픽 같기도 해서, 조금 더 라지 느낌으로 가고 싶었어요. 엑스라지도 좋고요. 99사이즈라도 상관없었어요.


77사이즈의 주인공이 뱀파이어가 되는 이야기가 신선했어요. 뱀파이어는 대개 창백하고 호리호리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묘사되잖아요.


소모적인 연애 관계에서도 빠져나오고 여행도 맘껏 하고 위험한 집에서 살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죠. 누가 이 여자를 공격하려 해도 상관없게 된 그 해방감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여행 가서 누가 자기를 위협하면 조금 물어버리면 되니까요.


어디든 가는 멋진 뱀파이어가 되었고요.


이 여자는 계속 자기가 죽었고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 여자의 일생은 지금부터 재밌어지거든요. 서울에서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사람이 되었는데 정작 자신은 자기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그 차이, 정말 일어난 일과 서술자의 말의 격차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물론 습격 자체는 기분 나쁘고 폭력적인 상황이었지만, 뱀파이어 소설은 항상 그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웨딩드레스 44」는 결혼을 하거나,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나와요.


지금은 결혼에 대해서 이미 어느 정도 답이 나온 상태잖아요. 성소수자든 누구든 하고 싶으면 방해 없이 결혼할 권리를 얻어야 하고, 다 같이 결혼하는 분위기보다는 다양한 삶의 형태로 나아가야 한다는 답이요. 그 답이 나오기 전까지의 고민이 담긴 것 같아요. 2016년에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고, 지금도 의미 있는 이야기지만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르고 ‘2016년에는 왜 이런 걸로 고민했을까’ 생각하는 게 최종 목표예요. 결혼이 훨씬 더 가벼워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 이야기가 낡으면 저는 기쁠 거예요.


「웨딩드레스 44」 발표 당시 웹을 통해 많이 공유됐었어요. 퍼져나가기 좋은 형식이기도 했고요.


스마트폰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형태였죠. 글의 형태를 미리 아는 게 작가에게 중요해요. 웹에서 읽힐 건지 책에서 읽힐 건지, 전자기기도 어떤 단말기에서 읽힐 건지 여러 가지 것들을 처음부터 고려하고 쓰면 확실히 쓰는 방식이 달라지더라고요.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읽히는 경험은 작가에게 항상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인생에 한두 번 일어나잖아요. 수많은 사람에게 SNS와 메신저로 건네지는 게 보이면 파도의 느낌이 들면서 재미있어요. 계속 이슈가 된다면야 좋겠지만, 한번쯤 일어난다면 작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고요.


SNS를 통해 읽힐 때는 기분이 어땠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열심히 쓸걸…?”(웃음) 그렇게 퍼져나갈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죠. 심지어 번호별로 오려 붙이다가 실수를 한 게 제일 속상해요. 여섯 명인가 여덟 명의 이야기가 안 붙은 상태로 나가버린 거예요. 다들 ‘웨딩드레스 44’지만 44명이 아닌 건 문학적 생략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여주셔서 나중에야 깨달았어요. 제일 많이 읽힌 글인데 작가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한 글이 되어버렸죠. 다행히 그 이후 수정해서 책에 실을 수 있었지만, ‘컨트롤 엑스’와 ‘컨트롤 브이’를 항상 조심해야 해요. 너무 정신 없을 때라 제대로 못 봤어요.


지금도 정신 없으시잖아요.


아, 이렇게 살다 죽을 것 같아요. (웃음) 가족 중 한 분이 저 대신 점을 봐주셨는데, 죽기 직전까지 일한다는 거예요. 이 죽기 직전이 80대인지 50대인지 알 수 없잖아요. 이게 과연 좋은 운일까 싶어요.


단편 중에서 작가님의 모습이 가장 많이 들어간 작품은 뭘까요?


「알다시피, 은열」의 화자일까요? 역사 전공인데 자꾸 딴짓하는 게 저랑 닮았어요.


작가님도 역사교육과를 나오셨죠? 대학에서 역사를 배운 경험이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을 거예요.


자료를 수집하는 법, 해석하는 법이 큰 도구가 된 것 같아요. 특히 시점에 따라 기록이 달라지는 걸 소설에서도 많이 써요. 사료도 누가 거짓말을 하거나 어떤 사람의 일방적인 증언이 들어가기도 하잖아요. 예를 들면 「옥상에서 만나요」 화자는 자꾸 자기가 불러낸 것을 남편이라고 부르고 자기 생활을 결혼생활이라고 부르지만, 그건 사실 결혼생활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거든요. 이야기는 계속 결혼 밖으로 나가는데 화자는 계속 결혼이라고 말할 때 생기는 차이가 문학적이라고 생각해요. 능청스러운 거짓말을 하는 거죠.


「이마, 모래」에서는 장르 문학의 느낌이 있었어요. 다른 세계를 설정하고 이야기한다는 측면에서요.


식문화가 파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마, 모래」를 썼었어요. 어떤 음식이 유행하면 모든 사람이 그 음식을 먹잖아요. 치즈 등갈비가 유행하면 다들 그걸 먹고, 조개구이가 유명해지면 또 몰려가서 먹고, 그런 것들이 재미있으면서도 너무 강렬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뭐든지 한 번에 유행하고 그다음에 싹 사라지는 게 조금 불편해요. 다들 잔잔하고 다양하게 있는 상황을 더 좋아해요.


배명훈 작가님의  『푸른파 피망』 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가상의 세계 안에서 식자재를 가지고 반목하잖아요.


맞네요, 통하는 게 있어요. 그분이 아이디어를 주셔서 그랬나 봐요.


작가의 말도 그렇고, 배명훈 작가님이 많이 등장해요.


아무래도 제일 친한 작가고, 도움도 많이 주세요. 그분에게 작가가 혼자 쓰는 것 같지만 어떤 생태계를 이뤄서 쓴다는 걸 배웠어요. 이 생태계가 건강하지 않을 때 개개인은 다 불행해지는 거죠. 작가의 생태계를 많이 생각하시는 분이고, 많이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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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를 계속 환기시켜 줄 사람


최근 문화부 장관이 되어야겠다는 말씀도 하신 적이 있는데(웃음), 권위주의자는 아니지만 문단의 권위를 받는 건 중요하다는 말이나, 힘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말을 계속하셨어요.


이용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자본이나 권력이 있어야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완전한 순수성을 지켜서 옳은 사람들이 인정받고 나쁜 사람들이 벌을 받는 세상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그럴 때 어떤 주도권을 가지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막상 우리 세대가 그 주도권을 가지면 잘 쓸 수 있을지 늘 의문이 있어요.


주도권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깥에서 자기를 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제게 어떤 권력이 있다는 걸 알아요. 이를테면 이 인터뷰도 제 목소리를 내는 데 쓰고 있고,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권력이 있어요. 그걸 어떻게 쓸 것인지가 제 예민한 주제인데,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어떤 신인 작가를 뽑는 심사위원이 된다면, 그것 역시 권력이에요. 문학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작가를 뽑아야 한다고 제가 주장하는 자리잖아요. 그래서 심사위원은 1년에 한 번만 하려고 해요. 그 이상으로 하면 문학장에서 제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힘이 바로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힘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꽤 큰 힘이에요. 슈퍼히어로처럼, 자기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늘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 지면에서 완전히 고유의 목소리가 나오진 않아요. 부담스럽진 않나요?


인터뷰는 한 번 해석된 목소리로 나올 수밖에 없고, 압축해서 나오면 자극적일 수밖에 없어요. 어쩔 수 없으니 조심도 해야겠지만, 너무 조심하느라고 힘을 안 쓰면 안 된다는 생각도 해요. 계속 문학계가 투명하게 돌아가지 않고, 다양한 신인을 육성하지 않고, 공적인 자원을 소수의 사람에게 배분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환기해 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리고 악플은 감수하고 있죠.


악플이 아주 힘들죠.


제 중심부를 해치진 않는데, 피부를 조금씩 긁는다는 느낌은 들어요. 금속이 산에 부식되는 것처럼요. 스무 개 남짓 달리면 조금 녹고 마는데, 수백 개 수천 개 악플이 달리는 사람도 있잖아요. 조금씩 녹여 들어오는 그 적의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 들어요.


그래도 정면으로 맞선다는 느낌이 있어요.


너무 학습된, 겸손한, 눈을 깔고 옆을 보는 작가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도발적이라고 싫어할 수도 있지만 특히 젊은 여성 작가들에게 강요하는 아스라한 분위기가 있잖아요. 먼 곳을 분위기 있게 바라보는 형태요. 저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겠지만 똑바로 보고 똑바로 말하는, 의견이 강한 여자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너무 겸손해지지는 않으려고요.


작가님 특유의 문체가 있듯이 말체도 있어서, 세게 말해도 그게 ‘센 여자’로 비치진 않더라고요.


그렇죠. 생글생글 웃으면서 시비 거는 타입이에요. (웃음)


작품에 담긴 사상도 센데, 그렇게까지 세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사실 굉장히 음흉한 전략일 수도 있어요. 큰 변화를 원하면서 크림이나 설탕 같은 거로 코팅해서 내놓는 것 같아요. 어떤 작가가 어떤 전략을 취할지는 사실 작가마다 다른 게 맞아요.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작가가 있을 수 있고, 숨기면서 미로와 암호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저처럼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 안에 뭐가 있는 것처럼 전할 수도 있어요. 그 다양한 전략들이 재미있어요. 독자 입장에서 어떤 작가의 전략이 마음에 안 들 수는 있겠죠. 예를 들어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너무 보편을 추구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는데, 통계를 끌어안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특이한 전략이었거든요. 이 작품은 다른 전략을 취했어야 한다는 비판은 아닌 것 같아요. 그게 마음에 안 들면 직접 쓰셔야 해요.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건 또 좋은 일이죠.


「옥상에서 만나요」를 보면, 주인공이 행복하게 사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군가에게 비급서를 전해주는 열린 결말로 끝나요. 주인공도 언니들에게서 비급서를 받고요.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행동하는 추동력은 뭘까요?


이상한 사람도 많고 사악한 사람도 많지만, 우리에게는 공통으로 돕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까이서 보면 보이지 않고 멀리서 봐야 보이는 특징인데, 어떤 분들이 어떤 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뒤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할 때가 있거든요. 그냥 일을 그만두지 않고 조직의 비리나 성폭력을 고발한다든지요. 공지영 작가님이나 최영미 시인도 오래전 그 사람이 자신에게 한 일을 밝히는 건 사실 다른 어린 여성 작가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단순히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이익보다 뒤에 오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걸 표현하기


책이 2만 권 나가면 2만 명이 한 권씩 보는 게 아니라, 4천 명이 5권씩 산다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어요.


사실 더 적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2천 명이 10권씩 사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있어요. 어제 행사에서 지금까지 30권을 샀다는 독자분이 있어서 ‘앗 잠깐만, 더 적을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죠. (웃음)


정세랑의 세계가 코어 팬을 불러들이는 걸까요?


작가랑 독자가 닮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게 있으면 엄청나게 남들에게 권하고 다니는 사람이거든요. 제 책의 독자분들도 좋은 게 있으면 혼자 알고 있는 분들이 아닌 거예요. 다정하면서도 강렬하게 좋아하는 걸 표현하는 분들이시구나, 나도 저런 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다만 모든 독자분이 그러는 것 같지는 않고, 조용한 작가의 행사를 하면 줄도 조용히 거리를 두고 띄엄띄엄 선대요. 직설적인 작가님 북 토크의 독자분들은 행사장에 들어오면 여기저기 살피지 않고 직선으로 걷는다고 하고요. 독자랑 작가랑 정말 닮아있는 것 같아요. 재밌어요.


행사에서 독자들을 만나면 기분이 어때요?


인터넷 세계에서 족적이 없는, 하지만 책을 정말 좋아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래서 평소 웹에서는 볼 수 없던 반응도 느꼈어요. 긴 편지도 써오시고, 손으로 만든 자수 제품도 가져오시고요.


열심히 ‘팬심’을 전파하는 분들을 볼 때마다 원동력이 뭘까 생각하고는 해요.


제가 느낀 기쁨을 친구들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거죠.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고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았다면 심심해 보이는 친구에게 꼭 사주고 읽어보라고 해요. 그 작품으로 바뀐 제 세계, 기쁨, 쾌감 같은 걸 나누고 싶어요.


‘중년 프리랜서’로 계약이 밀려있는데, 고갈이 되진 않나요?


그래서 쉬어야 하는 것 같아요. 휴식시간을 어떻게 방어할지가 프리랜서의 가장 큰 고민이에요. 억지로든 쉬어서 충전하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년에 쉰다고 했는데 전혀 못 쉬었죠. 1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컨베이어 벨트처럼 굴러가 버렸어요.


지금 남은 계약은 몇 개 있나요?


장편이 네 개, 단편집 두 개, 에세이 두 개, 엽편도 언젠가 모아야 해요.


대중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정도면 대중소설가인데요?


많이 팔려야 대중소설가라고 할 수 있는데, 요즘 너무 책이 안 팔리니까 겨우 턱걸이로 대중소설가 아닐까요? 작게 모아서 한 권씩 내다보면 10만 부 팔 수 있겠죠.


정세랑의 에세이도 궁금해지네요.


웃긴 일이 이상하게 많이 생기는 타입이에요. 다양한 장르를 쓰지만 제 장르는 코미디에 가깝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몇 개월만 통으로 주어지면 쓰기 좋을 텐데, 못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글을 쓰는 작가분들을 존경하게 됐어요. 이분들이 온갖 진퇴양난과 힘든 상황을 겪으면서도 계속 글을 썼다는 게 너무 대단하고, 살아남는 것 자체로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게 생기는 것 같아요. 완벽하지 않고 약점이 있어도 일단 살아남고 자리를 잡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옥상에서 만나요정세랑 저 | 창비
‘나’는 “내 후임으로 왔다는 너”를 염려하며 ‘너’가 “나와 내 언니들의 이야기를” 발견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남긴 자리에 앉은 누군가에 대한 염려는 그 마음만으로 단단한 연대의 힘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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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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