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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나를 돌보기 위해서라도 살아줘”

『나머지 시간은 놀 것』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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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건강한데 그렇게 하려면 집이 있어야 하잖아요. 주거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다른 것들이 이뤄질 수가 없는 것이고요. 거기에 한국사회는 너무 오랜 시간 노동을 시킬 뿐 아니라 일터에서 심리적으로 갈구는 게 만연해 있어요. (2018. 1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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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한국일보> 전 기자가 자유인이 되어 마음껏 놀면서 쓴 책,  『나머지 시간은 놀 것』  이 출간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노는 게 좋아 숲 속에서 혼자 놀기도 많이 놀았다는 그 또한 밥벌이로 일을 하면서는 노는 걸 즐기지 못했다고 한다. 대체 잘 논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를 만나 ‘논다’는 것의 의미부터 물어보았다.

 

‘나머지 시간은 놀 것’이라는 제목에 어떤 의미를 담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책을 보면 정원 일을 하기 위해 비오는 날을 기다리고, 나무 한 그루를 심기 위해 뒷마당 시멘트를 망치로 두들겨 깨는 거친 노동을 하는 등, 기자로 일하실 때보다 더 바쁘게 일하시는 것 같은데 작가님께 논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머리말에 ‘논다’와 ‘쉰다’를 구분해서 말씀하셨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제목의 의미는 말 그대로예요. 사람들이 꼭 필요한 일 이외에 너무도 많은 일을 하고, 너무도 많은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고들 사는데 이제는 스스로에게 마음껏 놀 시간을 주었으면 싶어서요.


사실 사람은 아프지 않은 다음에야 몸과 머리를 늘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지요. 그 중에 뭐가 일이냐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건 ‘일’이고요, 하고 싶어서 하면 ‘놀이’예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게 쉽나요? 피터 드러커가 그랬잖아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잘하는 일로 밥벌이를 할 수밖에 없다고.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면 아인슈타인도 물리학자가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을 거라고.

 

물론 업무 자체보다는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일이 힘든 경우도 많으니까 저 말 자체도 좀 더 분화가 되어야 할 것 같지만요. 저도 기자일 때 일 자체는 배우는 것도 많고 자라는 느낌도 들어서 재미있었어요, 다른 게 힘들었지. 저만 그런 게 아닌지 ‘원래 조직생활은 일만 하는 거면 돈 내고 다녀야 하는데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돈을 받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면 직장 다니는, 다녔던 사람들 중에는 공감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쉰다’는 것은 인간관계 때문이든 업무 자체 때문이든 너무 지쳐서 의미 있는 활동을 안 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겠고, ‘논다’는 것은 자기가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즐기는 행위라고 구분합니다.

 

중고 재봉틀로 옷을 만들거나 메주를 띄우고, 손빨래를 하고 노푸를 하는 등 환경을 생각하며 느리게 사는 삶을 실천하고 계십니다. 요즘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무엇보다 한국사회의 주거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이렇게 한량처럼 사는 게 집이 없으면 불가능하거든요. 이미 2001년 김대중 정부에서 한국인이 이 정도에서는 살아야 한다는 최저 주거조건이 나왔어요. 1인 가구도 부엌과 화장실과 침실이 있는 3.6평 정도의 공간에서는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이걸 정부에서 지정했다는 것은 그 이하의 주거 조건에 살지 않도록 정부가 정책을 펴겠다는 뜻인데, 그 후로 정부가 4번 바뀌었는데도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잘 먹고 잘 사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마음이 아픈 게 그겁니다.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건강한데 그렇게 하려면 집이 있어야 하잖아요. 주거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다른 것들이 이뤄질 수가 없는 것이고요. 거기에 한국사회는 너무 오랜 시간 노동을 시킬 뿐 아니라 일터에서 심리적으로 갈구는 게 만연해 있어요. 일을 하면 몸과 마음이 진이 다 빠져서 사는 것 같이 사는 걸 할 수가 없는 구조예요. 집은 잠만 자는 곳, 음식은 한 끼 때우는 것, 일만이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인 사회에서 느린 생활을 말한다는 게 송구할 지경입니다.

 

정책이 바뀌어야 하고 정책을 바꾸라고 행정부 입법부의 심부름꾼들(그조차 못 깨닫고 있는 공직자들)을 압박해야 해요. 여유 있는 사람들도 당연히 힘을 보태 줘야 합니다. 이건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양심의 문제입니다. 누구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나서야 한다고요. 잘 챙겨 먹으라는 잔소리는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생활은 할 수 있게 조건을 갖춰 준 다음에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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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요리를 못한다고 하면 싸울 정도로는 한다’고 하셨는데 기자로 일하시면서 언제 요리실력을 닦으셨나요? 또 삼시 세끼를 거의 집에서 해 드신다고 했는데, 많은 주부들이 한 끼니 해결하고 나면 다음 끼니를 걱정하고 준비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일에 쓰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손쉽게 하면서 잘 놀 수 있는 팁을 주신다면 어떤 걸까요?

 

자랄 때는 제가 설거지 담당이어서 저도 음식은 결혼한 다음에야 만들어 봤어요. 부부 둘일 때는 대충 먹었는데 애들이 생기고는 요리를 잘하고 싶었어요. 주말 하루(전에는 신문사는 토요일 하루만 쉬었거든요)만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안타까워서 무엇이든 해주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나가놀려고 했는데 아이들은 엄마랑 집에서 뒹굴뒹굴 하는 걸 더 좋아하더라고요. 집에서 뒹굴뒹굴 하려면 역시 맛있는 걸 해 먹는 게 제일이라 애들이 좋아할 음식을 이것저것 만들려고 애썼고 요리책을 많이 봤어요.

 

무엇이든 노력하면 나아지더라고요. 신선한 재료는 간만 맞으면 맛있다는 걸 알고 나니까 음식 만드는 법이 어렵지 않게 되었어요. 기본 양념만 알면 어디에나 써먹을 수 있고요. 우리 집은 불고기갈비, 돼지갈비 양념은 모두 배즙, 마늘, 간장으로 통일입니다. 시간을 덜 들이고 음식을 해 먹는 요령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책에 있습니다. 하하~

 

오래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부모님 상을 치르고 난 상실감을 마당의 식물을 가꾸며 치유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떤 점에서 정원가꾸기가 힐링의 역할을 하는 걸까요?

 

돌봐줘야 할 것들이고 나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니까요. 자라나고 예쁘고…. 어찌 보면 자식들의 특성하고 비슷합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사랑하는 존재들이라고 말해도 되겠네요.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모를 정도로 슬플 때 ‘내가 있잖아, 나를 돌보기 위해서라도 살아줘!’ 하는 존재들이 있어서 다시 힘을 내고 살아가다 보면 슬픔에 군살이 돋아서 점점 힘차게 살아지게 되는 것처럼요. 식물들은 그게 자식 키우기보다는 더 쉽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대신 식물들은 제게 용돈을 안 주네요.

 

갖고 싶은 라일락을 구하기 위해 모르는 사람 집의 우체통에 엽서를 넣고 연락을 기다리는 대목에서 컬렉터의 면모가 보입니다. 또 낯선 사람들과도 공통된 취미로 쉽게 마음을 트는 것도 인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식물로 사람들과 교유하면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식물 이야기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할 수 있어요. 일단 공통의 화제가 있다는 건 말을 꺼내기도 좋고, 계속 이어가기도 좋고, 말을 자꾸 하다보면 친해지는 거고요. 전 정말 일보다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할 만큼 사람을 못 사귀는 편인데 식물이 매개가 되면 쉽더라고요. 식물 가꾸는 사람들은 좀 비슷한 점이 있어요. 키우고 싶은 식물은 많고, 시장에서 사오는 것보다는 마당에서 키운 것이 생명력도 강한데 마당은 한정돼 있으니 잘 자라서 넘치는 것들은 남들에게 줘서라도 살리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어요. 이런 것들을 서로 다 알고 있으니까 아무 조건 없이 퍼주게 됩니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순간 벌써 오래된 계꾼을 만난 셈이 되는 거지요. 서로의 마당에 넘치는 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실 전 지구적으로 우리는 모두 그런 관계일 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마당의 식물 중 가장 좋아하는 것 세 가지를 꼽는다면요?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건 꼽을 수가 없어요. 어떤 걸 말하고 나면 아니 그거도 있는데 싶고, 계절마다 또 눈에 들어오는 게 다르고요. 남들이 정원에 잘 안 심는 엉겅퀴나 참당귀 할미꽃 개쉬땅나무 같은 애들도 좋아하지만 모란 작약 붓꽃 수국 같은 인기 원예종도 당연히 좋아하고요. 산초나무는 정원용으로 꽃도 수형도 볼품없지만 이 나무를 심으면 호랑나비과의 온갖 예쁜 나비들이 몰려와요. 이번 가을에는 분홍 겹꽃이 늘어져서 피는 무궁화 삽목 가지를 구하러 수원 양묘장에도 다녀왔어요.


요즘 특별히 신경 쓰고 있는 나무를 세 가지 고르라면 철쭉과 동백, 그리고 분꽃나무가 있어요. 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예쁜 꽃나무가 철쭉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키가 작은 게 아쉽다 했는데 이게 5미터까지도 자란다잖아요. 어렵게 구해서 심고는 매일 양동이로 물 다섯 통씩을 날라가며 살렸는데 아직도 기세가 약해요. 겨울을 잘 나길 기도하는 심정이고요. 동백은 아파트에서 키우던 친구가 집을 줄인다며 저한테 준 것인데 우리 집 마당에 오자마자 쑥쑥 크고 있어요. 친구 말로는 마당에서도 잘 사는 품종일 거라고는 했지만 동백은 원래 따뜻한 남쪽에서만 꽃눈이 월동을 하거든요. 그래서 짚으로 싸줄까 말까, 어떻게 싸줄까 고민 중이고요. 분꽃나무는 설탕향이 나는 공 모양 꽃이 풍성하게 달리는 토종나무예요. 꽃시장에 있는 건 꽃잎도 잎도 두툼한 유럽 개량종인데, 토종은 모양도 더 섬세하고 향기도 더 짙어요. 대신 삽목이 어려워서 구하기 힘들지요. 원주 친구가 산의 나무를 삽목해서 9년 전에 주었는데 그 나뭇가지로 저도 올해에야 삽목에 성공해서 정말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것이 자라고 있어요. 잘 키워서 내년에는 앞마당으로 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책에 보라색 솔이 기막힌 라일락 가지를 구한 이야기를 썼는데 결국 그 가지를 살리지 못했어요. 그걸 준 이웃이 늦가을에 잊지 않고 뿌리가 있는 어린 포기를 다시 주었어요. 책의 후일담이네요. 그게 내년에 잘 살아날지도 궁금해요. 봐요. 세 가지만 말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끝이 없다니까요. 하하!

 

다음 작품으로 쓰시고 싶은 책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우거진 숲을 짧은 시간에 조성하는 방법을 연구한 일본 생태학자와 인도의 실천가, 한국의 조경운동가들을 소개하는 ‘오래된 숲이 있는 도시’와 한국의 불평등 문제를 살피는 ‘돈의 경로’라는 책을 구상하고 있어요. 어쩌면 가벼운 여행기나 아이들을 키운 이야기를 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북청년단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몇 년 전부터 생각만 하고 있어서 어떤 책이든 써야 쓰게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만.

 

 


 

 

나머지 시간은 놀 것서화숙 저 | 나무를심는사람들
제철 식재료로 삼시세끼를 간소하게 챙겨 먹으며, 좋은 것은 직접 만들어 쓰면서, 소슬한 시골 숲길과도 같은 정원을 가꾸며 놀이와 삶이 다르지 않은 일상을 꾸려 가는 이야기가 경쾌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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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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