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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섭 “근대 이전의 한반도, 남자는 없었다?”

『한국, 남자』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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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을 수호하기 위해서 달려드는 사람들은 코어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그 언저리에서 남성성을 지키기 위해서 달려드는 사람들만 희생되는 거예요. 희생되는 동시에 또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인 거죠. 그렇게 해서 지켜낸 남성성의 헤게모니는 결국 남성 내부의 높은 사람들이 다 가져가고요. (2018.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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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렇게 한(국)남(자)스럽니?’라는 말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한국남자는 몇이나 될까. 뒤이어 따라붙는 질문은 ‘한국 남자 같다’는 말은 어떤 의미로 통용되고 있으며, 듣는 한국 남자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 하는 것이다. 질문의 답은  『한국, 남자』 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남성성’이라는 것의 실체, 그것이 생겨나고 공고해진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까닭이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국 남자는 그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이상적인 상을 현실로 구현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실패를 언제나 다른 사회적 약자들 특히나 여성의 탓으로 돌려왔다. 사회적으로는 폭력과 억압의 주체이고, 내적으로는 실패와 좌절에 파묻혀 있다”는 것. “곤란한 존재들”로 한국 남자를 규정한 이 이야기의 부제는 ‘귀남이부터 군무새까지 그 곤란함의 사회사’다.

 

남성성을 공격받았다고 느끼는 한국 남자들이 억울함을 토로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가장으로서의 권위는 사라졌고, 자신들은 여전히 병역의무를 지고 있으며, 여성들은 그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더 이상 불평등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럼에도 자신들의 노고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 등등. 『한국, 남자』 는 이들의 목소리 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그들의 주장은 무엇이고 근거는 타당한지, 면면히 들여다본다.

 

이를 위해 사회학자 최태섭은 조선 후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남자의 사회사를 추적했다. 『잉여 사회』 ,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억울한 사람들의 나라』  등 전작에서 보여줬던 ‘팩트에 기반 한 날카로운 통찰력’은 이번 책에서도 빛을 발한다. 국내외 연구 결과와 통계 자료를 폭넓게 활용하며 ‘한국의 남성성’의 민낯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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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의 억울함과 ‘상상적 박탈’


이번 책에 대한 남성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책을 읽으신 분들의 반응인지는 확실치 않은데요. 제 기사에 댓글을 달거나 페이스북으로 직접 찾아와서 글을 남기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주장이 10년째 똑같아요(웃음).

 

어떤 건가요?


요즘 여자들이 무슨 차별을 받느냐, 왜 군대를 무시하냐, 여자는 왜 당직 안 서고 정수기 물통은 남자만 갈아야 하느냐 같은 거죠.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남초 커뮤니티에 이번 책에 대한 기사가 공유됐나 봐요. 저는 직접 보지 못했고 전해 들었는데, 그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대요. ‘저는 아직 군대는 안 갔지만, 군대를 무시하면 안 되죠’라는(웃음). 자주 등장하는 댓글 중에 ‘남자는 돈 버는 기계다’라는 것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 중에 정말로 돈 버는 기계로 살아본 사람이 있어 보이지는 않아요. 돈을 버는 기계로 살아봤으면 알 수 있는 디테일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도 그렇게 살아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보고 들은 건 많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저렇게 말하지는 않을 텐데’라는 생각이 항상 들어요.

 

한국의 젊은 남성들 중에는, 아버지 세대가 가장으로서 누렸던 것들을 자신들은 할 수 없음에 분노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책에서는 그 전제 자체가 허상이라고 하셨어요.


지금의 30대만 보더라도 집안에서 아빠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가 별로 없었거든요. 그리고 한국 남자들이 대부분 아빠랑 안 친하죠. 특히 아버지 세대들이 아들에게 어떤 남성성을 전수해주거나 유대 관계를 맺는 것에 굉장히 서툴렀고요. 딱히 집에서 아빠가 군림하는 모습을 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건 있었을 거예요. 엄마가 아빠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서 ‘아빠도 챙겨야지’라고 계속 말하는 거죠. 아마 그런 것 속에 아버지가 있었을 거예요. 물론 1980년대 이전에는 군림하는 아버지가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일 하느라 바빠서 부재하는 경우가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그렇게 많이 체감했을까 싶고, 생각해 보면 그것도 만들어진 어떤 것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어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향수인데, 그걸 지금의 젊은 세대가 느끼고 있다는 게 이상한 구도인 거죠.

 

“상상적 박탈”이라고 표현하셨죠.


네. 애초에 한국 남성들이 엄청나게 존경 받으면서 가장 노릇을 했던 적이 있느냐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거든요. 맨날 술 먹고 집에서 난동부리는 폭군이었거나, 아니면 돈을 열심히 버느라 대체로 집에 없었죠.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는 종류의 가정은 한국에 있었던 적이 별로 없는데, 어디에서 그런 원형을 보고서 이야기하는 건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멀리는 조선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셨어요.


사실 그럴 마음은 조금도 없었는데(웃음), 하도 전통 타령을 해대니까 ‘대체 전통이 어땠는데?’ 하고 본 거예요. 물론 제가 참조한 건 극히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핵심은 ‘근대 이전에 한반도에 과연 남자라는 것이 있었느냐’는 거예요. 그건 남자가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던 무언가의 존재인 거죠. 대장부나 사대부 같은 말로 불렸던 존재가 있었던 것이고, 그걸 지금의 남자랑 등치시킬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들은 소수의 권력자였으니까요.

 

그렇죠.

 

나머지 남자들은 거기에 동원되는 존재였던 건가요?


동원의 구조는 이후에 더 강화되지만, 어쨌거나 조선 후기에는 사회 지도층끼리 모여서 명예 배틀을 하는 거였죠. ‘나는 생계에는 전혀 관심 없고 글만 읽는다’는 걸 가지고 스웩을 자랑하는, 무능력 배틀 같은 걸 했던 거죠(웃음). 그리고 ‘팩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대체로 왜곡된 팩트를 가지고 와서 주장하는 일이 많거든요. 그래서 팩트 확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자료를 쌓아놓고 계속 봤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의 통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죠(웃음).

 

왜요?


출처별로 자료가 다 다르고 정리된 자료가 없는 거예요. 같은 연도에 대한 자료도 서로 숫자가 안 맞는 거죠. 그래서 조금 애를 먹었어요.

 

연구자 분도 그런 상황인데, 일반 대중이 혼란을 겪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데이터를 보면서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는 거죠.


그렇죠. 그리고 언론에서 통계를 소개해줄 때 맥락을 자세하게 같이 알려주면 좋은데, 대체로는 보도 자료에서 부각시킨 부분들을 가지고 와서 선정적인 데이터만 뽑아서 쓰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통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많이 왜곡돼 있죠. 너무 안 믿거나 아예 믿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인 거예요.

 


불공평한 게임


“이 책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고 쓰셨어요. “이미 존경받아 마땅한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의견이나 관점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책들이 세상에 넘쳐나기 때문”이라고요.


그렇죠.

 

이미 좋은 페미니스트 책들이 넘쳐난다면 ‘굳이 이 책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민도 하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사실 이 책 자체도 이미 페미니스트들이 해놓은 남성성 연구에 많이 기대고 있고요. ‘이렇게 좋은 책들이 있는데 내가 이 책을 써야 될까’라는 생각을 몇 번 하기는 했어요. 또 관련된 주제에 대한 책들이 최근에 나오고 있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 이유는, 저 역시 글쟁이 생활을 하면서 계속 이 문제를 고민해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하는 차원에서도 한 번은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그 결과물이 이 책인 거죠.

 

개인적인 고민도 있었다고 하셨죠.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의 주체로, 또 타인과 연대하고 돌보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답을 내리기 쉽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그렇죠. 이 작업을 통해서는 그냥 보여준 것이고요. 솔직히 말하면 답이 없어요(웃음). 이걸 느끼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부적절함이라는 게 계속 있는 거거든요. 한국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부적절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미래는 한국 남자에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지금의 ‘한국의 남성성’으로 계속 간다면 미래는 없다는 뜻인가요?


그렇기도 하고요. 미래를 새롭게 여는 존재는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의 입지적인 상황에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라는 고민을 해야 되죠.

 

저자님이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남성상’은 어떤 건지 궁금한데요. 사실 여기에 ‘남성’이라는 단어를 굳이 붙여야 할까 고민이 돼요. ‘이상적인 인간상’이 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여성상’, ‘남성상’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제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 지향하는 바도 그건데요. 이 책을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이상적인 남자’ 같은 건 없고 불가능하다는 거였어요. 책 말미에서 소개했듯이 서구에서도 그런 건 무너진 지 오래예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연구가 이미 많았어요. 코넬(R. W. 코넬)의 ‘남성성 이론’이나 그 이전에 모스(조지 L. 모스)가 이야기했던 ‘이상적 남성성’ 의 경우에도, 결국에는 달성되지 않았던 거잖아요. 식민지인으로 태어났던 한국의 남성들에게는 더더욱 달성 불가능한 것이었고, 그건 이후에도 마찬가지 문제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것 자체가 엄청난 협박으로써 사람들의 삶이나 행복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요. 이제는 ‘남성성이라고 불리는 알 수 없는 것’ 말고 ‘어떤 인간에 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에요.

 

여성들의 경우에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거부하잖아요. 그건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고 우리가 원하는 바도 아니라고요. 그런데 남성들은 반대예요. 만들어진 ‘이상적 남성상’을 견지하려고 해요. 이유가 뭘까요?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얻는 게 있다고 느끼는 걸까요?


그게 코넬이 이야기했던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문제와 맞닿아 있죠. 지금 한국에서 가장 최고의 남성성이라고 하면 뭘까요? 돈 많은 사람이죠. 이재용 같은. 그런데 한국에 이재용이 많지는 않잖아요. 단 한 명이잖아요. 어쨌든 능력 있고 돈 많이 벌고 부자인 남자가 결국은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는 건데, 그것에 동참함으로써 얻는 부수적인 이득이 있다는 게 코넬의 주장이에요. 이른바 ‘가부장제적 배당금’이라는 건데요. 그런 게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할 수 있게 되고, 동시에 자신이 ‘남성 아닌 다른 존재들’ 보다 우위에 있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것도 결국은 불공평한 게임이에요.

 

불공평한 게임이라고요?


남성성을 수호하기 위해서 달려드는 사람들은 코어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코어에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아무 문제없을 거예요. 심지어 자신이 남자가 아니라고 해도 문제없겠죠. 그 언저리에서 남성성을 지키기 위해서 달려드는 사람들만 희생되는 거예요. 희생되는 동시에 또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인 거죠. 그렇게 해서 지켜낸 남성성의 헤게모니는 결국 남성 내부의 높은 사람들이 다 가져가고요.

 

통사적으로 한국 남자의 역사를 정리해 놓고 보니까 눈에 띄는 지점들이 있어요. 그 중에 하나가 생계가 위험해지는 상황이 되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강화된다는 거예요.


그렇죠. 최근의 흐름도 경제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으니까요. 당대의 남자들이 겪게 되는 결핍이나 가난 같은 문제들을 두고 마치 남자들만 엄청 상처 받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죠. 그 안에서도 착취 같은 것들이 계속 벌어져왔다는 게 사실이고요. IMF 때도 그랬고 국가적 환란이 있을 때마다 그랬죠.

 

책에서 제시하신 통계를 보면, 경제적 위기가 있을 때마다 생계 전선에 뛰어드는 여성의 비율도 높아졌잖아요. 그럼에도 남성들만 희생된 것처럼 부각됐어요.

 

맞아요. 그 흐름이 이른바 IMF 이후에 나타났던 ‘기 살리기 프로젝트’라든지 고개 숙인 가장에 대한 동정론이죠. 당시에 유행했던 소설들도 『아버지』나  『가시고기』 처럼 부정에 갑자기 주목하는 것들이었고요. 그 소설들의 플롯을 보면, 가족은 몰라주는 아버지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젊은 여성이 등장해요. 그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1990년대 초반에는 풍요 속에서 변화를 모색했던 시기가 있었던 거고, 군사적인 문화나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도 계속 있어 왔는데요. 그게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까지 가기 전에 IMF가 터지면서 ‘남자들이 불쌍하다’는 식으로 가버리게 됐죠.

 

최근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학습에 있어서 남학생이 여학생에 비해 뒤처지는 게 세계적인 현상이라면서요?


네, 전 세계적으로 남학생들의 학습부진이 나타나고 있는데 오히려 선진국에서 그런 것 같아요. 일본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재밌는 이야기가 있었죠. 해나 로진이라는 저널리스트는 미국의 경우 하층 경제도 여성 위주의 경제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하면서 가모장제가 출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남자문제의 시대』 라는 책을 쓴 다가 후토시라는 사회학자는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해요. 일본이 훨씬 더 성차별적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한국도 비슷한 거죠. IMF 때 가장 먼저 잘려나간 사람들이 젊은 여성이었다는 건 굉장히 시사적인 부분이잖아요. 성차별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경제의 실질적인 변화로 나타나는 데에도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거죠.

 

젊은 여성들을 가장 먼저 해고하면서 내세웠던 근거도 ‘가장 이론’이겠죠. ‘그래도 너희는 책임져야 할 처자식은 없잖아’라는.


그렇죠. 그리고 ‘너희들은 시집가면 되잖아’라는 거였겠죠.

 

그만큼 ‘가장’에 대한 신화가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일 거예요.


동시에, 국가 자체가 정상 가족이라는 걸 통치의 기본 단위로 두고 정책을 만들다 보니까 그쪽으로 쏠려 있는 면도 분명히 있어요. 경제적인 문제를 가족이라는 단위 안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게 되고, 국가도 그 가족이라는 단위를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그런 정상 가족을 구성하지 못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탈락시켜내는 구조가 있어요. 이제는 약간 이성애 파업 시대잖아요. 출산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결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절반이 안 돼요. 사람들은 이미 엄청나게 달라졌는데, 여전히 국가나 제도가 그걸 못 따라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게 단순힌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고, 국가 자체를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가져올 거라고 봐요. 계속 가구 단위로 세금을 걷고 지원하면, 복지도 조세도 완전히 다 헝클어질 거거든요. 새로운 방식의 가족 구성권이나 1인 가구에 대한 여러 가지 정책적 고려가 없으면 유지 자체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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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되기 싫은 남자들 주저앉히는 사회


앞서 ‘남학생들의 학습부진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요. 그런 경험을 하면서 성장한 남성이 여성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가질 거라고 보세요?


적어도 20대 이전까지는 남자들이 계속 져요. 서른 넘어가면서부터는 확 차이가 나는데, 20대 이전까지는 취업률이나 대학진학률도 적고요. 여전히 최상위 1%에는 남학생이 더 많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어쨌든 학교 성적이나 내신에서는 계속 져요. 적어도 그건 있는 거죠. ‘요즘 세상에 여자가 무슨 차별을 받아’라고 말하는 남성들의 경우, 거기에 자신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다는 거예요.

 

20대까지는 남성이 여자한테 지는 경우가 많지만 30대 이후에는 달라진다고 하셨어요. 이유가 뭔가요?


기본적으로는 학업에서 밀리는 것도 있는데요. 확실히 군복무 때문에 지연되는 게 굉장히 큰 것 같아요. 대기 시간까지 포함하면 군복무에 2년에서 3년 정도가 걸리는데, 어쨌거나 그 기간 동안 사회에서 배제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취업 연령이 여성에 비해서 늦을 수밖에 없고요. 요즘에는 어학연수나 다른 이유로 휴학하는 남자들도 많으니까 30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취업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죠. 그러면 30대부터 차이가 나는 거예요.

 

취업이나 승진 과정에서는 남성들이 혜택을 보는 부분이 있지 않나요?


그렇죠. 여전히 호봉이나 승진 문제에 있어서 그렇고, 특히 임금 격차 문제가 그래요. 임금 격차를 보면 20대에서 제일 낮거든요. 그런데 30대 넘어가면서부터 벌어지기 시작해요. 그래도 30대에는 70~80% 정도까지 되는데, 40대가 넘어가면서부터 차이가 확 벌어지죠. 그때 남자들이 돈을 제일 많이 벌 때인데 여성들은 오히려 임금이 확 떨어지기 시작해요. 경력단절하고 똑같이 가는 거죠. 여전히 임금격차 그래프를 그려보면 여성들이 돈도 많이 못 벌고 취업률도 낮은 상황이에요.

 

‘2000년대 이후 벌어지고 있는 젠더 전쟁’에 대해서도 다루셨어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흥미로운 사실은, 인터넷 공간이 ‘남초 영역’이 되었다는 거예요. 


『대한민국 넷페미사』 라는 책에서 권김현영 선생님이나 다른 분들이 말씀하신 건데요. 초창기 PC통신에서도 불링이나 성차별적 발언이 있었지만, 거기에서는 그래도 싸울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인터넷으로 넘어가면서부터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졌다는 거죠. 권김현영 선생님 표현에 의하면 인터넷의 많은 기획들이 여성을 ‘콘텐츠화’ 했다고 해요. 여성 자체가 콘텐츠가 되어버렸고, 여성들이 인터넷을 경험하면서 그런 종류의 성차별 혹은 성폭력에 계속 노출됐던 거죠. 군가산점 논쟁 이후에도 해당 학생들이나 그걸 옹호했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신상을 털어서 성인 사이트에 게재했잖아요. 그런 종류의 공격이 계속 있었죠. 사실 인터넷 이용률을 보면 남녀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요.

 

그러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남초 영역’이 된 걸까요?


그런데 여성들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계속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거죠. 여성들이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는 익명이거나 회원제로 운영되고, 오픈되어 있고 떠들썩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은 거의 다 남초 커뮤니티예요. 지금도 웹 순위를 보면 거의 다 남초 커뮤니티이고요.

 

‘침묵의 나선 이론’이 떠오르네요. 침묵하기 시작하면 더 소리가 없어지는 거죠.


그렇죠. 그 사람들이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메갈리아 때 보게 된 거예요. 사실은 다 숨어서 활동하거나 혹은 남자인 척하면서 커뮤니티에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생각으로 나온 거고, 그 사람들을 봤더니 인터넷 공간의 문법을 완벽하게 체득하고 있었던 거죠.

 

‘나는 한남이 되기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남성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 것 같나요?


저에게 질문하시기 전에 책을 먼저 봐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웃음). 이미 책에 다 써놨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를 개관적으로 먼저 파악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오늘의 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조금씩 해나가는 방식밖에는 없지 않을까요.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또 그렇게 다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도 사회가 주저앉히는 경우가 많아요. 하다못해 명절날 부엌일 하러 들어가면, 부엌에 계신 여자 어르신들이 한 마디씩 하시잖아요. 그런 것처럼 기존의 사회가 그런 사람들을 계속 주저앉히는 면들이 많은데요. 그거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거기에 너무 강직하게 대하면 사람이 부러져버리니까요. 그러지 않고 자신도 지키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조금씩 고민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남성의 경우에는, ‘한국의 남성성’에 반대해도 적극적으로 발언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소외되고 배제되는 게 두려워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러면서 동조 아닌 동조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항상 그렇잖아요. 목소리 크고 무례한 사람들 몇 명이 있고 나머지는 그냥 가만히 있는 거잖아요. 어느 집단을 가나 그런 식이고요. 거기에서 저항하거나 벗어나는 사람들한테는 불이익이 돌아가기도 하고... 사실 저한테는 군대가 그런 곳이었어요. 사실은 그 안에서 굉장히 타협을 많이 했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내가 군대를 바꾸겠어’라는 생각은 사실 그 안에 들어가면 하지 못하거든요. 개개인이 굉장히 무능해지고 의미 없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그런 데에 가면 나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거운 일이 돼버리죠.

 

그런 개개인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저도 그걸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개개인이 다 바뀌는 게 전체를 바꾸는 일이 되겠지만, 그 전에 구조적인 접근들이 선행되고 어떤 기반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마련해줄 수 있다면 오히려 사람들이 행동하는 게 더 편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어두운 미래의 서막 열게 될까


군대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국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죠.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억울함을 토로할 때, 그 마음이 어떤 것일지 이해는 되세요?

 

일단 전혀 유쾌한 경험은 아니니까요. 굉장히 불쾌한 경험이죠. 다들 군복무에 대해서 느끼는 경험은 ‘아깝다’일 거예요. 그 시간이 아까운 거죠. 군대에 가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고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야 되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그 시간 동안 뭔가 생산적인 일도 하지 못하는 게, 그냥 대기해야 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죠. 그런데 보상체계를 만들어놓지 않은 건 박정희나 그런 사람들이니까요. 국가에 조금 더 제대로 된 보상체계를 마련하라든지, 혹은 군복무에서 조금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해달라든지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되잖아요.

 

하지만 그런 발언을 하기가 쉽지 않죠?


군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신분 자체가 민간인이 아니기 때문에 말을 함부로 했다가는 굉장히 고초를 겪어요. 그걸 경험했던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해주면 좋은데, 오히려 군내의 인권이나 복지 개선을 위해서 뭘 한다고 하면 ‘이게 군대냐, 애들을 더 빡세게 굴려야지’라는 식의 댓글을 달거든요. 군 복무 기간 단축한다고 하면 ‘무슨 소리냐, 3년으로 늘려야지’ 하고요. 이제 자신하고는 관계없으니까 하는 농담인데, 그래서 안 바뀌게 되죠.

 

그건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과시하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나 때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요즘은 정말 편해진 거야’라고 하잖아요.


그렇기도 하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저는 아직 군대를 안 갔지만, 군대를 무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식의 담론들이 인터넷이 흔히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심리일까요?


사실은 두려운 거죠, 군복무가. 앞으로 나에게 닥칠 일이 뭔지 알 수 없으니까 두려운 거고요. 어쨌거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까, 어떻게든 정당화 해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 같은 게 있는 거죠.

 

‘내가 겪어야 할 두려운 일인데, 그에 대한 보상까지 전혀 없으면 어떻게 하나’ 싶은 건가요?


그렇죠. 정당화 기제가 굉장히 큰 것 같아요. 특히 군 생활을 정말 힘들게 한 사람들, 따돌림을 당했거나 폭력에 희생됐던 사람들 중에서 그런 거에 되게 열 올리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사실은 다 국가가 보상해야 되는 문제이고 국가가 군복무 제도를 합리화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거고요.

 

국가를 상대로 개선을 요구하지 않고 여성을 원망하는 이유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일까요?


그렇죠. 그리고 군 가산점 이야기를 10년째 하고 있는데, 요즘에는 워낙 공무원 지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안 되는 거거든요. 이미 헌재에서 판결을 내린 게, 그것 자체가 군복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무담임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리였잖아요. 군 가산점을 통해서 군복무자들에게 보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불평등을 낳게 된다는 이야기죠. 군 가산점의 부활을 주장하는 사람 중 누구도 그 논리를 반박한 적이 없어요. 그러면 이제 버려야죠. 게다가 그게 모든 군복무자들에 대한 보상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이제 다른 뭔가를 찾아야죠. 군복무를 더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문제에 있어서 계속 앞장섰던 사람들이 군필자가 아니었다는 건 너무 아이러니한 일이에요. 그리고 따지고 보면 그 사람들에 의해서 군필자들이 지금의 혜택을 보고 있는 건데, 그 사람들한테 고마워하기는커녕 맨날 ‘군대도 안 갔으면서’ 하면서 욕만 하는 게 아이러니하죠.

 

이번 책을 쓰시면서 새로운 질문들이 생겼다고 쓰셨어요. 그 중 하나가 ‘남자의 성욕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거라면서요?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남자의 성욕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대하고, 동시에 여성을 완전히 대상화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보세요?


그렇죠. 그런데 관대한 동시에 아무것도 안 가르쳐줘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거죠.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어떤 방식으로 발견하고, 그것을 어떻게 타인과 나눌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10대 같은 경우에는 남자에게도 금지하고 있잖아요. 되게 이중적이죠. 금지와 지나친 허용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굉장히 뒤틀려있어요.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성욕은 정상 가족에서 부부의 성욕, 그것도 남편의 성욕밖에 없죠. 그런데 실제의 성욕은 그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연령과 방식으로 폭발하고 있고, 그것들은 어떤 공식적인 방식으로도 다뤄지지 못하기 때문에 이상한 방식으로 나가게 되는 거죠.

 

책에서 조선 후기부터 현재까지의 한국 남자 이야기를 살펴보셨잖아요. 나중에 누군가 『한국, 남자』  같은 책을 쓴다면, 지금의 시기는 어떻게 기록될까요?


엄청난 페미니즘의 물결과 엄청난 백래시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시기로 기록하겠죠. 사회경제적으로는 굉장히 어려운 시기로 기록할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단순히 백래시만 있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고,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당위가 계속해서 찾아오고 있잖아요. 관계만 변하는 게 아니라 산업구조, 경제도 변하고 있고요. 이 기회를 잘 잡는다면 단순히 지나간 에피소드 정도로 ‘예전에 이런 시기가 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한 시기가 될 것 같아요. 어두운 미래의 서막을 여는 시기로 기록되겠죠.

 

지금 우리는 겪어야 하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것이고, 어쩌면 잘 지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어요. 어쨌든 겪어야 될 일이 터진 것이고, 이번에는 그렇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은 시기이니까요. 물론 일부 너무 격화되는 측면이 있고, 상호간의 대화가 아니라 단절로 가는 면들이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있기는 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가 활발하다는 것 자체에는 여전히 희망을 걸어볼 만한 지점이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남자최태섭 저 | 은행나무
가부장제 질서 아래서 성별의 꼬리표가 규정짓는 바를 이해하지 않는 이상 성별 질서의 타파는 어렵다. 여성에 관한 논의는 이미 많으니, 이제 남성성에 대해 돌아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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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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