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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죽기 전에 사향소를 보고 싶었어요 (G. 이원영 동물행동학자)

김하나의 측면돌파 (55회) 『물속을 나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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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매력을 떨칠 수 없기 때문에 계속 가게 되는 것 같아요. (2018.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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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에서 연구한다고 말하면 혹자들은 재밌어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추운 날씨 속에 동물들의 분비물에 맞고 공격을 당하기 일쑤여서 옷에는 악취가 배고 손은 상처투성이가 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관찰하는 일은 분명 신나고 흥분되는 일이다. 이제까지 내가 관찰한 바로는 극지의 치열한 환경 속에서 적응해 살아가는 동물들이 사는 삶도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귀여운 '뽀로로' 같은 펭귄도 채식주의자가 아닌 이상 물고기를 사냥해서 새끼들에게 먹여야 하고, 도둑갈매기도 펭귄 새끼를 잡아야 자기 새끼를 키울 수 있는 곳이 바로 남극이다.

 

동물행동학자 이원영의 에세이 『물속을 나는 새』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이원영 동물행동학자 편>


오늘 모신 분은, 국내 유일의 펭귄 행동 생태 연구자입니다. 한국에 겨울이 찾아오면 여름을 맞은 남극으로 떠나서 펭귄을 ‘뒷조사’ 하시고요. 반대로, 한국이 더울 때는 북극으로 가서 야생동물을 연구하신대요. 극지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자 책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 와  『물속을 나는 새』 의 저자이신 이원영 박사님 모셨습니다.

 

김하나 : 극단적인 남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북극을 갔다가 남극을 갔다가, 극적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그 말씀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요.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 에서, 남극 갔다 온 지 얼마 안 돼서 북극에 가야겠다고 했더니 부인이 한숨을 쉬시면서 ‘남극 다녀온 지 얼마나 됐다고’라고 하셨잖아요(웃음). 남극을 다녀오신 지 얼마 안 됐을 때 다시 북극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뭔가요?

 

이원영 : 가장 큰 이유는 북극에서 찍은 동물 사진을 봐서 그렇게 됐던 건데요. 덴마크 연구자인 제 친구가 자기가 봤던 사향소 사진을 찍어서 저한테 보내주면서 자랑을 하더라고요. ‘그린란드에 가면 이런 동물도 있어’ 하면서 자랑을 하는데 너무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나도 죽기 전에 저 동물을 봐야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북극을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김하나 : 그 시점은 결혼한 지 2년 밖에 안 됐을 때였죠(웃음)?


이원영 : 맞습니다(웃음).


김하나 : 남극에서 지내신 기간은 어느 정도 되나요?


이원영 : 남극은 보통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세 달 정도씩 가거든요. 아마 그 생각을 했을 때가 남극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였을 거예요.

 

김하나 : 북극을 가야겠다는 생각을요(웃음)?


이원영 : 네, 그랬던 것 같아요(웃음).


김하나 : 남극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이번에는 북극을 가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요(웃음). 그러면, 이건 사적인 질문이지만, 아내 분께서 서운해 하거나 힘들어하시지는 않나요?


이원영 : 조금 서운해 할 때도 있고, 특히나 떠날 때가 다가오면 더 힘들어하고 그래요. 그런데 연애할 때부터 제가 거의 매년 해외를 나갔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 주는 것 같아요.


김하나 : 약간 김삿갓 같은 느낌으로(웃음). 극지방은 가는 시간도 엄청 걸리잖아요. 


이원영 : 그렇죠. 남극이나 북극은 20시간 이상씩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니까요.


김하나 : 우리나라 겨울에는 남극을 가시고, 북극으로는 여름에 가시잖아요. 내년 여름에도 가시나요?


이원영 : 벌써 계획이 돼 있어요.

 
김하나 : 올해 여름에는 다녀오셨어요?

 

이원영 : 네, 이제 다녀온 지 2달 됐고요.


김하나 : 그런데 또 다음 달에는 남극으로 출발하셔야 되죠?


이원영 : 네, 맞습니다.

 

김하나 : 한국은 복닥복닥 하잖아요. 그런데 극지에서는 몇몇 사람들과 계속 같이 지내거나 그들도 다 따로 연구를 하니까 혼자 있게 되고, 마치 동안거나 하안거처럼 부대끼는 것 없이 아주 동떨어져서 있게 되는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되는 건데요. 그런 것에 대한 힘듦이나 매력 같은 게 있을까요?


이원영 : 분명히 힘든 점이 있고요. 혼자서 계속 생활한다는 게 외로움도 그렇고, 물리적으로 힘든 것도 있어요. 혼자 계속 걸어 다녀야 되니까. 그런데 그 매력을 떨칠 수 없기 때문에 계속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체질상 저는 조금 장돌뱅이 같이(웃음)...


김하나 : 김삿갓이 맞았네요(웃음).


이원영 : 네(웃음), 『역마』에 나오는 ‘성기’처럼. 그런 캐릭터인 것 같아요(웃음). 그게 체질에 잘 맞더라고요.


김하나 : 그러면 혹시, 한국에 계속 몇 달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해지시나요?


이원영 : 네, 그렇습니다(웃음). 저도 모르게 어느새 자꾸 계획을 짜고 있더라고요.

 

김하나 : 남극과 북극이라는 곳은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반경이랑은 워낙 다른 곳이잖아요. 그곳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의 기억이 궁금한데요. 인간 사회에서 동물이 수용되어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 사회에 인간이 진입하는 느낌이잖아요. 느낌이 어떠셨나요?


이원영 : 처음 남극 들어갈 때의 날짜와 모습이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요. 들어갈 때 약간 생경한 풍경들.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빙하의 모습들을 보면서 전혀 다른 외계 행성에 가는 듯한 기분이 많이 들었어요.


김하나 : 그게 언제였나요?


이원영 : 2014년 12월 7일 정도로 기억하는데요. 특히나 여러 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나서 마지막에 고무보트를 타고 세종과학기지로 가는 바다 위에서 펭귄을 처음 봤거든요. 저는 고무보트를 타고 가고 있고 그 옆으로는 펭귄들이 마치 돌고래처럼 수면을 통통 튀기면서 헤엄을 치고 있더라고요.


김하나 : 우와! 마치 『물속을 나는 새』  표지처럼요?


이원영 : 네, 정확합니다(웃음). 그래서 ‘와, 얘네들이 나를 반겨주는구나’라는...


김하나 : 착각이죠(웃음).


이원영 : 네, 지극히 인간 위주의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김하나 : 상상이 돼요. 저도 흥분이 되는 느낌이 드네요. 북극에 가서 사향소도 보셨죠? 


이원영 : 네, 봤습니다.


김하나 : 사향소는 미니어처 메머드처럼 생겼더라고요. 아주 태곳적부터 있어온 듯한 느낌으로, 영험한 것 같기도 하고요.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 에 사향소 열 몇 마리가 한꺼번에 다가오는 걸 보고 사진을 찍으신 게 있는데, 그런 경험을 하신 분은 다를 것 같아요. 그냥 여기 빌딩숲에 사는 분과는.


이원 : 확실히 그런 광경들을 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조금 적응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계속 그렇게 뻥 뚫린 공간에서 동물들을 관찰하다가 한국에 돌아오고 나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김하나 : 남극과 북극에서의 연구원의 일과는 어떤가요?


이원영 : 사실 매우 단조로운데요. 아침에 보통 7시 되면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하고, 8시에서 9시 사이에 조사를 시작하는 거죠. 극지역에 간다는 것 자체가 워낙 힘들기도 하지만 돈이 많이 드는 일이거든요. 많은 연구비가 투자됐기 때문에 저는 어떻게든 거기에서 결과를 얻어내야 되는 거죠. 많이 일할 때는 자정까지 일을 해요. 점심 도시락으로 라면, 주먹밥 같은 걸 챙겨가서 계속 일을 하다가 잠깐 돌아와서 저녁 먹고 다시 나갈 때도 많고요. 날씨만 허락하면 거의 자정까지는 늘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김하나 : 북극은 자정에도 밝은 거죠?


이원영 : 그렇죠, 백야의 기간에만 가니까 늘 밝았어요.


김하나 : 남극은 어떤가요?


이원영 : 남극도 제가 여름에 가기 때문에 늘 환했습니다, 자정에도. 아직 오로라를 못 봤어요.


김하나 : 일단 오로라가 보이려면 어두워야 할 테니까요. 그런 기간에는 가신 적이 없는 거군요.


이원영 : 그렇죠. 저는 한국이 제일 더울 때 북극에 가고, 한국이 제일 추울 때 남극에 가기 때문에. 극지역의 여름에만 가고 있습니다.

 

김하나 : 펭귄만 연구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북극에 가서 거기 사는 여러 생물들, 생태 연구를 하시고요. 한국의 여름과 겨울에 하는 활동만으로도 바쁘실 것 같은데요. 책도 두 권 째 쓰셨고 신문에 칼럼도 연재하시고 팟캐스트, 오디오클립까지 하시잖아요.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 이유는 뭘까요?


이원영 : 처음 시작하게 됐던 계기가, 제가 대학원에서 마지막 박사 학위 논문 쓸 때였어요. 정말 힘든 상황이었고 시간이 도저히 안 나는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그런 상황이 되니까 ‘나한테 재밌는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갑자기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됐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녹음을 하고 나면, 왠지 나한테 잘한 일을 한 것처럼 뿌듯하고 즐거움이 생기고 오히려 에너지가 조금씩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걸 원동력 삼아서 논문도 쓰고 연구실 생활도 버텨나갔던 것 같습니다.


김하나 : 그렇게 바쁘게 여러 활동을 하시는데,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시는 비결이 있나요?


이원영 :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딱히 효율적으로 쓴다는 생각은 안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따지고 보면 다 조금씩 연결이 돼 있어요. 오디오클립에 올렸던 걸로 칼럼에 쓰기도 하고, 칼럼에 썼던 걸 또 고쳐서 책에 싣기도 하고, 나쁘게 말하면 여기저기 우려먹은 건데요(웃음).


김하나 : 요즘 말로 하면 ‘원 소스 멀티 유즈’(웃음).


이원영 : 맞습니다(웃음). 자기 복제가 아닌 선에서, 조금 고쳐서... 나름 여기저기 틀어막고 있습니다(웃음).


김하나 : 두 권의 책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여름엔 북극에 갑니다』 는 하루하루의 일지 같은 식이고  『물속을 나는 새』 는 펭귄에 대해서 알려주는 게 더 위주더라고요. 남극에 계시는 동안 일기를 매일매일 쓰시나요?


이원영 : 네, 거의 날마다 쓰고 있고요.

 
김하나 : 그게 바탕이 되었나요?


이원영 : 네. 일기가 아니더라도 그림일기처럼 스케치를 남긴다든지, 메모를 끄적이는 건 늘 하고 있습니다.

김하나 : 그림도 잘 그리시더라고요.


이원영 : 솔직히 어디 내보이기는 부끄럽지만(웃음)...


김하나 : 다 보여서 봤는데요(웃음)? 그리고 특징들을 정확하게 그려야 되는 거잖아요. 실제에 기반한 그림을 그리시는 거죠.


이원영 : 그렇죠. 그래도 제가 명색이 동물행동학자인데, 그런 걸 틀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더 신경 써서 그런 특징들을 잡아서 그리게 되는 것 같아요.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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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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