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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들어봤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소설

‘문득 시리즈’ 『이상의 소설 김유정』 기획/편집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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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소설 김유정』은 이상의 저 말마따나 봤지만 몰랐던, 그래서 발견이 필요한 독자들을 위한, 발견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독자들을 위한 문득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2018.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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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상李箱의 소설 하면 대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날개」를 떠올린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봤을 이 작품만으로 한국 문학 최고의 모더니스트 이상을 다 읽었다고 대개는 착각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절친’을 대상으로 쓴 소설이 있다는 걸 들어본 적 있는가?

 

암만해도 성을 안 낼 뿐만 아니라 누구를 대할 때든지 늘 좋은 낯으로 해야 쓰느니 하는 타입의 우수한 견본이 김기림이라.


좋은 낯을 하기는 해도 적이 비례非禮를 했다거나 끔찍이 못난 소리를 했다거나 하면 잠자코 속으로만 꿀꺽 없이 여기고 그만두는 그러기 때문에 근시 안경을 쓴 위험인물이 박태원이다.


없이 여겨야 할 경우에 “이놈! 네까진 놈이 뭘 아느냐”라든가 성을 내면 “여! 어디 뎀벼봐라”쯤 할 줄 아는, 하되, 그저 그럴 줄 알다 뿐이지 그만큼 해두고 주저앉는 파에, 고만 이유로 코밑에 수염을 저축한 정지용이 있다.


모자를 홱 벗어 던지고 두루마기도 마고자도 민첩하게 턱 벗어 던지고 두 팔 훌떡 부르걷고 주먹으로는 적의 볼따구니를 발길로는 적의 사타구니를 격파하고도 오히려 행유여력行有餘力에 엉덩방아를 찧고야 그치는 희유의 투사가 있으니 김유정이다.

 

이상의 소설 「김유정」의 서두 부분이다. 이상은 김유정뿐만 아니라 김기림, 박태원, 정지용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도 구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만을 남긴 채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가 되어버리고 말아, 안타깝게도 우리는 김기림, 박태원, 정지용이란 소설은 만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다만 다행히도 이상이 동반자살을 도모할 정도로 ‘절친’이었던 ‘희유稀有의 투사’ 김유정만은 소설 속 인물로 만나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상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김유정」을 이미 만나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자들은 전집 속 작품 목록에 들어 있었을 이 작품을 읽지 않고 지나쳤을 테고, 그런 작품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날개」나 「오감도」만으로 이상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  한 작품만 썼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세르반테스는 다작의 작가였다. 하지만 대개의 우리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말고는 그의 어떤 작품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면 너무나 방대해서  『돈키호테』 마저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카프카는 어떤가? 카프카의 「변신」은 세계문학전집 목록 어디에서도 빠지지 않는 작품이고, 그렇기에 우리들은 그를 주로 「변신」의 작가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변신」만큼이나 훌륭한, 하지만 대개는 제목조차 알지 못하는 작품들도 많다. 왜 안 그렇겠는가? ‘20세기를 만든 작가’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위대한 작가인 카프카인데 말이다. 「검은 고양이」의 에드거 앨런 포도, 「모비딕」의 허먼 멜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감자」의 김동인도, 「운수 좋은 날」의 현진건도, 이상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한 「동백꽃」의 김유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이들은 대표작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가장 좋아한 작가는 셰익스피어도 단테도 아닌, 톨스토이도 도스토옙스키도 아닌, 스탕달도 위고도 아닌, 그 자신의 작품에서 자주 언급했던 에드거 앨런 포나 체스터턴도 아닌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라는 낯선 이름의 아르헨티나 작가였다. 그렇다면 그가 가장 좋아한 작품은 무엇일까? 그것은 조금 황당하게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었다. 보르헤스에게는 자신만의 작가와 비록 소설 작품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작품이 있었던 것이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첫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앙드레 보통처럼 말이다. 결국 모든 위대한 작가의 작품들은 일종의 ‘팔렝프세스트(씌어 있던 글자를 지우고 다시 글자를 써넣은 양피지)’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작가의 작품들은 다른 어떤 작가의, 다른 어떤 작품의 희미한 흔적 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흔적을 만나는 일은 한 작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되어주곤 한다. 그럼 한 작가의 작품들은 어떨까? 이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은 작가의 다른 작품, 그러나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작품을 흔적으로 가지고 있는 팔렝프세스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작가의 대표작이 아닌,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작품을 읽는 일은 이 흔적을 만나는 일이며, 작가와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해준다.


한 작가를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다른 대개의 독자들이 좋아하는 유명한 작품이 아닌, 다른 대개의 독자들은 잘 모르는 자신만의 작품을 갖는 것일지 모른다.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상대의 매력을 알고,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 그것이 곧 사랑 아니겠는가? ‘문득’ 시리즈는 시대를 초월해 문학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들을 다시 호출해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글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작가를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하고자 기획되었다.

 

“보고도 모르는 것을 폭로시켜라! 그것은 발명보다는 발견! 거기에도 노력은 필요하다. 李箱”

 

『이상의 소설 김유정』 은 이상의 저 말마따나 봤지만 몰랐던, 그래서 발견이 필요한 독자들을 위한, 발견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독자들을 위한 문득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우리는 이상의 「날개」를 좋아하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날개」만으로 이상을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김유정」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상과 더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앞으로 우리는 독자들이 카프카를 「가수 요제피네 또는 쥐의 종족」의 작가로, 김동인을 「K박사의 연구」의 작가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것이다. 부디 독자들이 이 자리를 통해 발견의 기쁨과 더 깊은 사랑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문득 시리즈를 기획한 시인 이명연과 편집자 원미연은 같은 대학에서 함께 문학 공부를 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부부가 되었다. 각자 대학과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문득’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으며 여전히 함께 살고 있다. 대개는 ‘문득 文得’ 속에서. 그리고 오늘, 그사이 읽었던 국내외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문득’ 발견한 새로운 목록들을 추려 문득 시리즈를 펴내게 되었다. 문학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을 믿으며. 앞으로 우리는 이 시리즈를 통해 너무나 익숙한 작가지만, 그 작가를 다시금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익숙하지 않은 작품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소설, 에세이 등 장르도, 문학, 철학 등 분야도 정해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느 곳 어떤 시간에도 문득 펼쳐 들고 잠시 빠져들 수 있는 짧은 단편들을 모아, 다른 작가가 아닌 영원한 문제적 작가 이상李箱을 먼저, 무작정(?) 펴낸 것은 새로운 이상을 발견하는 경험, 이상을 더 깊이 사랑하는 경험을 조금은 쉽게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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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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