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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에 대하여

이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다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순례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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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의 자리가 없다. 이걸 깨달을 때가 삶에서 가장 쓸쓸한 순간이 아닌지. 심지어 모두가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면 더욱 쓸쓸하다. (2018.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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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영어로 자동차를 가리키는 표현 오토모빌(automobile)이 있다. 운전을 하고부터는 이 말이 근본적으로 모순임을 깨달았다. 오토는 스스로, 자기(self)라는 뜻이고 모빌(mobile)은 움직인다는 뜻이라서 자동차를 가리키기에 적격인 표현 같지만, 실제로는 어떤 자동차도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적어도 완전한 자율 주행 자동차가 나오기 전에는 운전자가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동차는 이동하지 않을 때에는 가만히 있다. 달리는 차들만 바라보기만 하던 보행자였을 때는 이 동어반복적 당위를 깨닫지 못했다. 심지어 차는 움직이는 시간보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더 많고 그렇기에 운전자에게는 늘 주차할 공간이 필요하다.

 

공간의 문제 또한 운전자가 맞닥뜨리는 또 하나의 역설이다. 자동차를 사면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이점이 있다. 추가된 하나의 독립적 공간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주의 공간은 제로섬이 아닐까? 즉, 하나 늘어나면 하나 줄어들면서 균형을 맞추는 게 아닌가. 무언가 내가 들어갈 공간이 생긴 만큼 그 무엇을 놓아야 할 공간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주차의 기술을 논하기 전에, 이 공간의 필요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초보운전자 시절의 나는 개인의 주차 공간이 확보된 다세대 거주 건물에 살았다. 아래층은 회사나 병원이었기에, 낮에는 붐볐지만 밤에는 오히려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를 제치지 않고서도 차를 보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사는 도시, 서울에서는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차를 운전한다는 건 차가 멈출 때를 늘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디론가 이동할 때면 내 차가 놓일 자리가 있는지를 미리 계산해야만 했다.

 

모든 차가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이상의 주차장.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이 장소를 상상할 때마다 힐베르트의 무한 호텔을 떠올리고는 한다. 페터 회의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 나오는 바로 그 비유이다. 이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풍의 애니메이션과 함께 설명한 테드 강연 영상이 유튜브에 있다(https://youtu.be/Uj3_KqkI9Zo). 무한 개의 방이 있는 호텔이 있고, 여기는 늘 만원이다. 모든 방에는 손님이 들어 있다. 그런데 거기에 손님 한 명이 도착한다. 야간 근무 매니저는 손님을 돌려보낼 수 없어서 모든 손님을 하나씩 옆방으로 옮기고 새 손님에게 1호실을 준다. 40명을 실은 관광버스가 와도 다들 40호실씩 밀려서 이동하면 된다. N번 방에 있는 손님은 N 40호로 가면 된다. 스밀라는 이 비유의 아름다움이 한 사람의 방을 마련해주기 위해 모두가 기꺼이 이동을 한다는 데 있다고 했다. 무척 평화롭지만 성취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실제 세계에서는 나를 위해 그렇게 다들 자리를 내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차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평생은 내 자리를 찾기 위한 순례와 같다. 돈, 명예.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은 차와 집 같은 물리적 공간을 얻어내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회에서 내가 있을 적절한 자리를 찾아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애정, 호의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 이 자리에 당신이 있어도 된다는 환대를 뜻하는 모든 것들, 우리는 늘 그것을 찾아서 헤매고, 그를 얻지 못한다면 댈 자리 없는 주차장에서처럼 비참하고 괴롭다. 무엇보다 끝없이 빙글빙글 돌아야만 한다.

 

이제 내가 돌아갈 장소가 없다는 공허함,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는 여기서 시작한다. 이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 최고작이라고 하기는 어렵고, 남성 주인공의 시각에서 진행되므로 내가 공감할 수 없거나 동의하지 않는 면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다자키 쓰쿠루가 마음속에 지닌 상처만은 내 것처럼 여겨졌다. 완전하고 조화롭다고 생각된 공간에서 쫓겨난 쓰쿠루의 슬픔을 똑같이 겪어본 적은 없지만 그 두려움은 내게도 있기 때문이다.

 

다자키 쓰쿠루는 서른여섯 살의 남자이다. 그는 역을 만드는 일을 하고 고독하지만 외롭지는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여자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라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이전 경험을 되살린다. 대학교 2학년 여름, 그 후로 1년 동안 죽음을 생각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오던 네 명의 친구들에게서 절교 선언을 받은 것이다. 빨강의 아카, 파랑의 아오, 하양의 시로, 검정의 구로라는 별명의 친구들은 각각의 이름만큼이나 생생한 색을 지녔지만, 쓰쿠루 본인은 스스로 아무런 색채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모두 고향 나고야에 남았지만 쓰쿠루만은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다 해도 우정은 오래 지속될 줄 알았는데, 대학 2학년 여름 방학 때 영문도 모른 채 안온한 공동체에서 쫓겨나고 만 것이었다. 그 후로 15년이 흘렀다. 사라는 쓰쿠루의 마음에 있는 상처를 치유하려면 그 일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고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다” (51쪽)고.

 

세상에 나의 자리가 없다. 이걸 깨달을 때가 삶에서 가장 쓸쓸한 순간이 아닌지. 심지어 모두가 자기 자리를 찾아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면 더욱 쓸쓸하다. 그 느낌은 사람의 마음에 커다란 구멍을 남기고, 그 위에 무엇을 부어도 쉬 메워지지 않는다. 내 자리가 어딘지를 찾기 위해 떠나야 한다.

 

이 소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 있다. 친구들을 찾아가 자기를 내쫓은 이유를 알아내기로 한 쓰쿠루는 사라에게서 현재 친구들이 사는 곳에 대한 정보를 받는다. 그 후 사라와 헤어지고 돌아서는 길, 쓰쿠루는 갑자기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찾지 못한다. 그는 늘 좋아하던 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쓰쿠루는 감동했다. 그리고 또한 이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녹색 철도 차량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의 마음을 찡하게 했다. 마치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차량으로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자연스럽게 조직적으로 옮겨진다는 것.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제각기 가야 할 장소와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것.” (181쪽)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기묘하게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작  『노르웨이의 숲 』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자기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와타나베가 미도리에게 전화를 하는 대목. 하지만 당시에는 그 결말에 걱정도 불안도 생기지 않았다. 남의 도움을 받든, 자기 힘으로든, 자기가 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자리가 있다면 말이다. 20년이 지난 후 다자키 쓰쿠루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던 점은 이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내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지만, 나의 자리를 찾아 떠난다.

 

주차장에서 내가 느끼는 불안과 안도감도 규모는 작았지만 이와 비슷했다. 붐비는 주차장에 들어설 때마다 내가 자리를 제대로 찾을 수 없을까 봐 마음이 불안했다. 통로에 임시로 세워야 하는 상황에는 괴로웠고, 실제로 내 차는 중립 기어에서는 차 열쇠를 뺄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하지도 않았다. 어울리지 않게 요금이 비싼 주차장에 가면 빨리 차를 빼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했다. 내 자리가 없을 것 같은 곳에는 갈 수가 없었다. 그 상황이 내가 어디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내 삶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졌다.

 

결혼을 하고 싶다거나 안정된 직장을 갖고 싶다는 욕망의 이면에는 그 누구도 쫓아내지 않는 나만의 자리에 대한 갈망이 있으리라. 한편, 삶에는 그렇게 영원히 약속된 자리는 없다는 슬픈 예감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라도 아무도 무어라 할 수 없는 내 자리를 찾고 싶다. 친구, 가족, 동호회, 동료…… 어떤 형태든 상관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남을 밀어내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나는 바랐다. 인생에서는 영원히 찾아 헤맬지라도, 적어도 내 자동차만이라도 그런 자리가 있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밤에 차에서 내려, 모든 차들이 각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주차장을 볼 때면 나는 힐베르트 무한 호텔의 야간 지배인처럼 마음의 평화를 느끼곤 했다. 우리의 차들은 밤새 방해받지 않고 있을 자리가 있다는 평온함이 밀려왔다. 그럴 때 자동차들은 마치 자기가 들어갈 상자를 차지한 고양이들처럼 무척 느긋하고 흡족해 보였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억관 역 | 민음사
한 사람의 성인이 삶에서 겪은 상실을 돌아보는 여정, 고통스럽고 지난하지만 한편으로 그립고 소중한 그 시간을 다자키 쓰쿠루와 함께하며, 우리는 ‘다시’ 삶을 향해 나아갈 희망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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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현주(번역가)

소설을 번역하고 에세이와 로맨스 추리 소설을 쓴다. 그리고 드라마를 본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억관> 역13,32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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