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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내가 만난 페르난두 페소아 – 김한민 작가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수많은 이명(異名)을 창조한 시인, 이명 삼인방의 서로 다른 작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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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가 스스로의 이름까지 또 하나의 이명처럼 쓴 이유는 뭘까, 다소 증상적인 해석을 해 보자면,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 ‘다중인격이론’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2018.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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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책』 의 작가로 알려진 천재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대표 시선집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가 출간되며 수많은 정체성의 작가 페소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페소아라는 시인의 가장 큰 특징은 작가 특유의 ‘복수(複數)성’이다. 이명(異名)은 페소아의 문학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페소아가 말하는 이명이란, 쉽게 말하면 상상 속 문학 캐릭터들의 이름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이름 외에도 고유한 문체, 전기, 특징, 별자리 등을 갖춘 구체화된 존재라는 점에서 단순한 가명과 구분된다. 이명의 발명은 페소아의 모든 문학적 업적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고 널리 연구된 주제이며, 이명의 창조 없이 페소아의 문학이 현재의 고유성을 획득하지는 못했으리라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의 이명은 적게는 70여 개에서 많게는 12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세 개의 이명과 본명 페소아의 서로 다른 작품 세계에 대해 비교하면서 읽어본다면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가 더욱 매력이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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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안에서 태어난 나의 스승” 전원 시인 알베르투 카에이루

 

페소아는 이명들의 스승인 알베르투 카에이루가 자기 안에서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페소아가 “유일한 자연 시인”이라 부른 카에이루는 목가적 시인의 전형을 보여 주지만, 그가 치는 가축 떼는 소나 양이 아니라 바로 ‘생각들’이다. “내가 쓴 것들 중에 최고”라 스스로 평하는 「양 떼를 지키는 사람」의 첫 번째 시에서 그는 “추상적 자연주의”라는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나는 한 번도 양을 쳐 본 적이 없지만,
    쳐 본 것이나 다름없다.
    내 영혼은 목동과도 같아서,
    바람과 태양을 알고
    계절들과 손을 잡고 다닌다
 
카에이루는 “첫 시에서 일종의 사고-실험을 선보였다. ‘만약 그랬다면’의 주체에 관한 실험이다. 카에이루의 세계는 ‘~인 것이나 다름없는(as if)’의 세계다.” 카에이루가 전하는 메세지는 분명하다. 안 배우기를 배우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조르주 드 세나가 절묘하게 표현하듯이, 카에이루는 “영혼의 규율 파괴자”다. 그의 시는 완전한 순수와 단순성 그리고 실증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강조가 내용의 주종을 이룬다. 진리를 대하는 카에이루의 태도는 「양 떼를 지키는 사람」의 마흔세 번째 시에 압축적으로 나타나 있다.
 
    자연은 전체가 없는 부분이다.
    아마 이것이 이른바 신비겠지.
 

 

리스본의 페소아 동상.jpeg


 

2. 차가운 이성의 그리스적 신고전주의 시인, 리카르두 레이스

 

외과의사이자 시인이며 신고전주의 호라티우스주의자, 독학으로 그리스어를 배웠고, 그리스 철학을 애호하는 리카르두 레이스는 이명 삼인방 중에서는 가장 덜 알려져 있다. 1910년 포르투갈에서 공화혁명이 일어났을 때, 왕정주의자로서 자발적인 망명을 선택한 그는 1919년까지 브라질에 머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굳건한 기둥에 나를

 

나로 남을 시들의
    굳건한 기둥에 나는 단단히 앉는다,
망각과 시간들의  
    끝없는 미래의 쇄도도 두렵지 않다,
정신이 그 안에서 집중해, 세계의 투영들을
사색할 때, 
    그것들은 혈장으로 변한다, 그리고 세계가 예술을
창조하지, 정신은 아니다.
바로 그런 식으로 찰나의 외부는 자신을 비석에  
    새긴다, 그 안에 존속하면서.

― 「송시들 - 첫 번째 책」,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에서

 

레이스는 이명 삼인방 중 가장 고전적이라는 이유로 주목을 많이 받지 못했는데, 레이스의 전형적인 상징들, 즉 장미, 강, 운명, 죽음 그리고 체스 게임 들로 이루어진 시구의 행간을 세심하게 읽다 보면, 고전의 탈을 쓴 고뇌하는 모더니스트를 마주치는 것도 가능하다. 유한한 인간이 인생을 통틀어 본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대단히 적다는, 피할 수 없는 비극적 감각을 이 시인은 타고난 예민함으로 깨닫고 있다.

 

 

동료작가 코스타 브로샤두와 함께.jpg

 

 

3. 페소아가 가장 사랑한 이명, 모더니스트 알바루 드 캄푸스
 
포르투갈의 타비라에서 태어나 글래스고에서 교육받은 선박 엔지니어 알바루 드 캄푸스는 기술 전성시대를 시적으로 해석할 임무를 부여받은 도취된 모더니스트였다. 이명들 중에 가장 왕성한 생산성을 자랑했으며, 페소아가 죽을 때까지 그를 동반했을 정도로 장수하기도 했다. 모호한 성적 정체성으로 최근 퀴어 연구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현대적인 광기가 포르투갈 문학사에서 가장 시끄러운, 900행이 넘는 대표작 「해상 송시」에서 폭발하다

 

포르투갈 문학사에서 유례없는 방식으로, 캄푸스는 송시에서 형식적 자유를 누리며 현기증이 일 듯한 광폭함과 속도를 즐긴다. “페소아의 미친 쌍둥이 형제”라고도 불리는 캄푸스는 확실히 시인의 광기 어린 측면을 대표하며, 윤리적 진실에 대한 심판자로서 예술의 전통적인 역할에 대한 거부를 동반한다.” 바로 이러한 종류의 광기가 캄푸스 특유의 괴성과 결합하면서 「승리의 송시」와 「해상 송시」를 포르투갈 문학 사상 가장 ‘시끄러운’ 시로 등극시킨다. 페소아 연구자인 로렌수는 이렇게 말했다. “「해상 송시」에 나오는 고함들은 단순한 의성어 사용이 아니다. 그들은 모든 의식을 동원하여, 언어가 그것의 자연스러운 의미의 재료로부터 극복되기를 강요하는 하나의 시도다. 이 고함은 과거, 현재와 미래의 가치들을 조화시키는 데 실패한 좌절감을 “형언불가능성(ineffability)”의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공장의 커다란 전등불들의 고통스러운 불빛 아래  
나는 열에 들떠 쓴다.
이를 갈면서 쓴다, 이 아름다움을 향해 야수가 되어,
고대인들은 듣도 보도 못한 이 아름다움을 향해.

 

오 바퀴들, 오 기어들, 영원한 르-르-르-르-르-르-르!
분노하는 기계장치에 억눌린 강력한 경련!
나의 안과 바깥에서 오는 분노,
절개되어 드러난 내 모든 신경들로,
내가 감각하는 모든 돌기들로!
내 입술이 메말랐다, 오 위대한 현대의 소음들이여,
너희를 지나치게 가까이서 듣노라니,
그리고 내 머릿속은 너희를 노래하려는 욕구로 불탄다,
내 모든 감각들의 표현 과잉으로
너희의 동시대적인 과다로, 아 기계들이여!

― 「승리의 송시」,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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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신의 본명까지도 수많은 이명 중 하나의 정체성으로 재탄생, 페소아 자신

 
페소아라는 말은 포르투갈어로 “사람”을 뜻하며, 라틴어의 “페르조나,” 즉 배우의 가면에서 유래하며, 불어에서 “페르손(personne)”은 “아무도 아님”을 뜻하기도 한다. (가령 “Il y apersonne” 는 아무도 없다는 뜻) 그는 이명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실체가 불분명한 이명을 만들어 냈는데 그것은 페르난두 페소아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시를 “표현적이지 않은” 제목이 “느슨하고 분류 불가능한” 시라고 묘사했다.  아마도 이명의 이름이 부여되지 않은 모든 시들이 ‘페소아 본명’이라는 항목으로 분류된다고 보면 된다. 가령 페소아는 「기울어진 비」 같은 “교차주의” 시들을 알베르투 카에이루의 저작으로 분류하려고 한때 고민하긴 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결국 페소아 본인의 시로 낙점되었다. 이렇듯 페소아 본인의 시, 또는 본명 시를 다룰 때 우리는 자동적으로 여러 명의, 변화무쌍한 시적 정체성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내면에 존재하는 다수의 자아를 예술로 실천해내다


페소아가 스스로의 이름까지 또 하나의 이명처럼 쓴 이유는 뭘까, 다소 증상적인 해석을 해 보자면,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 ‘다중인격이론’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나로 묶일 수 있는 자아나 개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각각의 새로운 사회 환경에 맞도록 새롭게 생성되는 외면이 있을 뿐.”이니까.

 

내면에 다수의 자아를 인지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는 다중인격장애와 같은 심리학적인 병이나 증세로 간주되기도 하는데, 페소아의 시대에는 이런 진단이 지금처럼 일반적이지 않았다. 이런 증상적 ‘무지’가 페소아로 하여금 더욱 과감하게 실험을 감행하도록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심리학적 터부를 파괴할 수 있었다는 점은 확실히 인상적이다. 페소아는 “이미 60년도 전에, 다중인격 이론을 예술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영혼을 가졌는지 몰라.
나는 매 순간 변화했고
매 순간 스스로가 낯설어졌어.
그렇게 많은 것이 되다 보니, 내게는 영혼밖에 없지.
영혼이 있는 사람에게는 평온 따윈 없지.
 
비슷한 방식으로 그는 무한하고 헤아릴 수 없는 자아의 확장을 보여 주기도 한다.
 
(……) 모든 게 비현실적이며, 무기명이고 우연적이다.
드넓은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지 말라.
그것은 그 밑바탕보다는 덜 확장적이니.
그리고 그것을 너는 모를 것이다, 지금이든 언제든
바로 그것이 가장 진짜이고 가장 깊이 있는 것이다.

 

그의 문학적 발명품들은 생명력을 가지고 나름의 자립을 이루었다.  “카에이루 - 페소아 - 레이스 - 캄푸스 사중주는 역사와 전통 바깥에 존재하며, 그 어느 특정 장소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들의 시적 우주는 바로 그들 스스로 창조해 낸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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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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