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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다 이러고 사는 줄 알았어요 (G. 박상영 작가)

김하나의 측면돌파 (53회)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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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런 작품을 받아들일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2018. 10. 18)

[채널예스] 측면돌파 인터뷰.jpg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응. 뭔데.
너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아?


당연히 할 말이 있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았고,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얘기를 하고 싶었다. 너를 볼 때마다 자꾸만 어색해지는 내 모습을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왔다고, 넌 그저 더 철저히 자기를 속이기 위해 나를 밀어내고 있는 거잖아, 그건 너무 싸구려 퀴어 영화의 내러티브 같지 않니, 말하고 싶었다. 가장 묻고 싶은 것은 나의 존재였다. 도대체 너에게 있어서 나는 뭔데. 하지만 아무것도 말할 수도 물을 수도 없었다. 그는 이미 자기 자신을 향한 질문으로 가득차 보였으니까. 딱딱하게 경직된 그의 어깨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는 뻣뻣한 목이 이미 나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소설가 박상영의 단편 소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박상영 작가 편>


오늘 모신 분은 ‘떠오르는 신예’, ‘퀴어 소설의 계보를 이을 기대주’로 평가받는 소설가입니다. 2016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 올해에도 ‘젊은작가상’을 받으셨습니다. 첫 번째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로 찾아온 박상영 소설가입니다.

 

김하나 : 얼마 전에 트위터에 짤을 하나 올리셨잖아요. ‘아, 술 마시러 가고 싶다’라면서. 제가 트위터를 켰을 때 그 시간이 제일 처음 뜬 것이었어요. 면면이 너무 엄청난 사진인 거예요. 운전대를 잡은 것은 누구였죠?

 

박상영 : 패리스 힐튼이었죠. 그 옆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랑 린제이 로한이 같이 타고 있었죠.


김하나 : 게다가 와이퍼가 살짝 움직이고 있고 빗방울이 뿌리고 있었어요. 비가 약간 흩뿌릴 때 이 세 명이 술을 마시러 달려가는 것은 너무 엄청난... 그 사진 한 장으로 너무 많은 것들이 그려지더라고요.


 

박상영 : 한 시대를 거의 집약하고 있는 사진이죠.


김하나 : 그렇죠. 그들의 필모그래피나 노래, 생애, 성향, 이런 것들이 다 그려지면서 굉장했는데요. 저는 소설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박상영 : 영광입니다(웃음).


김하나 : 특히나 표제작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제목을 웃지 않으면서 읽을 수 없었는데요. 저의 감상은 ‘이 소설집 정말 쌔끈하다’였어요.


박상영 : 극찬이시네요(웃음).

 

김하나 : 이 질문은 너무 훅 들어가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여쭤봐야겠어요. 작가님은 스스로를 ‘관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박상영 : 관종이죠(웃음). 사실 글 쓰고 세상에 읽히기 위해서 내놓는다는 게 엄청나게 관심을 표하는 행동이잖아요. 이런 짓까지 해놓고 관종이 아니라고 우기는 건 너무 무책임한 것 같고(웃음), 정말 말도 못 할 관종인 것 같고요(웃음). 제가 이 직업의 본질을 모르고 있다가, 책을 내고 나서 ‘진짜 어마어마하게 관심을 원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구나’라고 느끼고 있습니다(웃음).


김하나 : (웃음) 이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에 보면 「강원도 형」이라는 단편이 있잖아요. 거기에 그런 표현이 있었어요. “내 피에는 하트가 흐른다” 그런 사람들이 이 책에도 많이 등장하죠.


박상영 : 그렇죠.


김하나 : 크게 보면 우리 모두가 관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요.


박상영 : 사실 관심에 대한 욕구는 누구나 갖고 있잖아요. SNS가 이렇게 오래도록 흥하는 데에도 그런 배경이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는 것 아닐까요.

 

김하나 : 첫 소설집을 출간하셨잖아요. 나온 지 얼마나 됐죠?


박상영 : 약 한 달 정도 됐고요. 그런데 물리적인 시간은 짧은데 그동안 제가 겪었던 일들이 너무 다이나믹하고 새로워서 되게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이에요.


김하나 : 인생에서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 두뇌도 처음 들어오는 정보들을 처리하느라고 그걸 아주 길게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박상영 :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김하나 : 출간 4주 만에 4쇄에 들어갔고, 반응이 정말 뜨겁잖아요. 일단 축하드립니다.


박상영 : 감사합니다.


김하나 : 기분 좋으시죠(웃음)?


박상영 : 네, 사실 이렇게까지 열렬히 반응해주실 줄 몰랐고요. 제가 신인 작가잖아요,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그래서 기대를 많이 안 했는데,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김하나 : 등단을 하셨고 이제 소설집이 출간이 됐는데, 변화를 몸으로 느끼시나요?


박상영 : 네. 책이 나오기 전에는 사실 작가 연습생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 업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친구들이 제가 등단했다고 하면 책 제목이 뭐냐고 물어보는데 제가 할 이야기가 없는 거예요. 이 소설집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런데 막상 책이 나오니까 이제 할 말이 생기고요. 그리고 친구들이 책을 읽더니 ‘네가 내 이야기를 이렇게 팔아먹었구나’ 하면서(웃음), 그래서 요즘 뒤늦게 선물 사주고 술 사주고 있고요. 달라진 점이라고 하면 독자의 존재가 생겨서, 피드백 받는 게 되게 신기한 경험이더라고요. 좋은 말은 좋은 말대로 기억에 많이 남고요. 슬슬 쿨타임이 한 달쯤 지나니까 원치 않게 제 책을 읽으신 분들도 나타나셔서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거든요.


김하나 : 어떤 건가요?


박상영 : ‘책날개를 펴는 순간 작가의 얼굴이 너무 부담스러웠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웃음), 그 분은 고맙게도 책을 사주신 분이었더라고요. 그래서 ‘그 정도는 보고 책을 사시지’ 싶기도 했고요(웃음). 또 다른 건, 종교에 굉장히 천착해 계신 분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혼전순결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게 됐다’고 하셔서 ‘내가 사회의 순기능에 기여하는 책을 썼구나, 성경 같은 책을 썼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웃음).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느끼셨는지 저는 모르겠어요(웃음).


김하나 : 첫 편인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 부터 저는 세다는 생각을 했어요. 섹스 묘사가 많고, 그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고, 덧붙여서 이성 섹스가 아니라 동성 섹스잖아요. 이런 것들이 넘쳐나니까 되게 생경하고 센 느낌이 들기는 했어요. 이런 반응에 대해서는 짐작하셨나요?


박상영 : 네(웃음). 일단 편집자 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통적으로 제일 좋다고 한 작품이어서 가장 앞에 실었거든요. 의도했던 것도 있고, 제 취향이기도 하고, 그 작품을 좋아합니다.


김하나 : 뭔가 두려운 마음 같은 건 없으셨어요?


박상영 : 사실 없었어요(웃음). ‘이제 사회도 이런 작품을 받아들일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데 제가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다른 반응을 보여주시는 분들도 많아서...


김하나 : 어떤 반응이요?


박상영 : 아까 말씀드린 대로 종교를 열심히 믿으시는 분들이나 혼전 순결을 종교처럼 떠받드시는 분께서는 비판적으로 느끼실 거라고 예상했는데, 소위 말해서 퀴어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는 분들께서 ‘게이들의 난잡한 성적 문화를 너무 잘 드러내고 있다’라든지 ‘되게 부정적으로 그려서 성적인 고정관념을 강화시킨다’고 보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제가 소설을 쓸 때 윤리적인 차원에서의 고민 같은 걸 많이 안 하는 편이기는 했는데, 그런 책임감 같은 것도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김하나 : 제가 보기에는 부정적으로 그렸다기보다는, 그런 인간형을 그렇게 그린 거라고 생각했어요. 껍데기의 문제에 아주 예민하고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사랑밖에 난 몰라’ 타입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한없이 순수한 어떤 것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종래에 잘 보지 못했던 인간형을 가리거나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그려낸 것 같아서 더 와 닿았거든요. 저는 딱히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작가님도 그러셨을 것 같아요.


박상영 : 저도 그런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어떤 전형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저는 모든 인물을 쓸 때 매우 개별적이고 세부적인 한 명의 캐릭터를 만든다는 느낌으로 임하거든요.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역시 좋구나, 소설 쓰길 잘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김하나 : 참 이상한 지점이 있잖아요. 이를테면 ‘몸을 막 굴리는 사람은 되게 타락한 사람, 정신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낙인을 찍어버리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일반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닿을 수 없는 지점까지 순수한 뭔가가 보일 때는, 정말 아름다워지는 부분도 있잖아요.


박상영 : 그렇죠. 한없이 솔직해지다 보면 가끔은 숭고해지기도 하잖아요.


김하나 : 맞아요. 바로 그 지점인 것 같아요.


박상영 : 조금 작가 같았나요(웃음)?


김하나 : 방금 조금 멋있었어요. 소름 돋았어요.


박상영 : 다행이네요, 한 건 했네요(웃음).

 

김하나 : 이 소설집이 마냥 신나고 즐겁기만 한 게 아니라, 헛헛함 허무함 같은 게 짙게 있어요. 우울하고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소주 5병을 가방에 넣고 노래방에 가서 리모콘과 마이크를 훔쳐서 나오고, 그렇게 신나게 놀다가 남는 헛헛함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게 너무 정확하게 전달이 됐어요.


박상영 : 일단 그런 감정을 아시는 분은 역시 주당이시고, 좋은 분이시라고, 제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고요(웃음).


김하나 : 정말 제 친구들한테 ‘우리가 하는 짓 다 나온다’고 했어요.


박상영 : 그럼요. ‘누가 이러고 살아?’라고 느끼시는 분들도 계신데...


김하나 : 저는 그게 놀라웠어요.


박상영 :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김하나 : 작가님도 놀라셨죠?


박상영 : 네, 심지어 ‘너무 널뛰기를 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도 있더라고요. 어떤 현실을 살아가시기에, 얼마나 아름답게 사시기에... 그런 인생이 궁금하더라고요(웃음).


김하나 : (웃음) 이렇게 조금 찌질하고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달렸다가 후회하고, 이런 것들 다들 하지 않나 싶었거든요.


박상영 : 저는 사실 그런 게 찌질한지도 몰랐어요. 다 이러고 사는 줄 알았거든요(웃음).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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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김하나(작가)

    브랜딩, 카피라이팅, 네이밍, 브랜드 스토리, 광고, 퍼블리싱까지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힘 빼기의 기술』,『15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을 썼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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