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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자라서 노인이 된다

늙는 것은 오래되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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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경비실 앞을 지나다 경비 아저씨가 “네가 있어 행복해”라는 가사에 맞춰 동요를 부르고 박수치는 모습을 보았다. (2018.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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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아주 많이 늙은 것과 아주 많이 어린 것, 그것은 동급이다. 둘 다 많은 시간을 누워 보내며 인지 능력이 떨어진다. 스스로 먹을 수도 대소변을 가릴 수도 없다. 둘 다 몸이 약해 바이러스에 취약하며 극진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세상 속에서 더없이 약한 존재다. 다만 한 쪽은 사람들의 호의와 감탄, 애정 어린 시선에 둘러싸여 자라고 다른 한 쪽은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과 한숨, 걱정에 둘러싸인 채 쇠락한다. 아기의 모습은 자랑거리가 되고, 노인의 모습은 누추한 이불 속 얼룩처럼 가려지기 일쑤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래 가치가 높은 것을 선호한다. 발전 가능성이 있는 것, 아름다운 것, 에너지가 넘치는 것을 선호한다. 그 사이에서 ‘늙어가는 사람’에 대한 사회 인식은 형편없다. 기껏해야 ‘공경’이란 명목으로 존중과 보호를 권하지만, 진심으로 노인을 공경하는 사람을 보는 일은 드물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화’라는 개념은 천대받는다. 노화는 상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노화를 늦출 수 있다고 알려진 것들만 천박한 포장에 싸여, 상품이 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모든 인간은 자라서 노인이 된다. 나 역시 이 다음에 노인이 될 것이다. 다만 어떤 노인이 될 것인가, 이게 문제다.

 

지금까지 다양한 노인들을 보아왔다. 길에서 내 손을 붙잡고 예수를 믿으라고 간곡히 말하던 할머니. 종교에 대한 믿음보다, 그녀가 오래 지켜온 ‘질긴 믿음의 시간’이 아려서, 나는 얌전히 물티슈를 받았다. 평생을 등산하듯 살아온 노인도 있다. 단단하게 굳은 얼굴 근육은 웃어본 시간이 많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그는 저승 갈 때도 등산하듯 갈지도 모른다. 남의 얘기라면 일단 듣지 않는 노인도 있다. 늙음의 첫 번째 징후는 주구장창 자기 얘기만 하는 것! 대화의 기본 원리를 잊는 거다. 자신이 틀리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노인을 볼 때면 피하고 싶다. 주름 하나하나가 선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노인도 있고, 삶에 찌든 표정 그대로 늙은 노인도 있다.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노인도 있고, 주머닛돈을 모아 어려운 사람을 돕는 노인도 있다. 한편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풍경과 할아버지들이 모여 있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할머니들이 작은 것을 두고 얘기하며 작은 것 속에서 우주를 본다면, 할아버지들은 큰 것을 두고 얘기하며 큰 것 속에서 쪼그매지기 일쑤다. 그런데 또 그렇게 쪼그매진 할아버지들도 사랑스럽다. 한때는 세상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을 것처럼 팔팔하고 당찼던 사람들. 시간은 공정하다. “어떻게 늙을래” 질문을 던지고, 멀찍이서 지켜본다.

 

우리 할아버지는 큰 병 없이 살다 아흔에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며 나는 한 사람이 사고나 지병 없이 ‘늙어’ 죽는 일이 얼마나 극귀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할아버지는 내가 사드린 푸른 스웨터를 입는 도중에도 졸았다. 식사를 앞에 놓고도, 음식물을 씹으면서도 졸았다. 다된 불꽃처럼, 그는 자꾸 꺼지고 싶어 했다. 한쪽 팔이 부러져 다른 한쪽 팔만 겨우 걸치듯 입은 스웨터 속에서 그는 공들여 작아졌다. 완전히 늙는 일. 그것은 초가 끝까지 녹아 없어지는 일과 같다. 그를 돌아가시게 ‘두고’, 무력한 나는 겨우, 이렇게 시작하는 시 한 편을 썼다.


“늙어 죽는 사람은 새벽이 가만히 놓아주는 사람
 달의 손바닥이 둥둥 바람에 흘러간다”

   시집 <베누스 푸디카>에 수록된 졸시, ‘귀가 무거운 사람’ 중

 

 달도, 자연도, 우주도 손을 놓고 그를 보내주는 일. 정말 아득한 일이다.

 

며칠 전 경비실 앞을 지나다 경비 아저씨가 “네가 있어 행복해”라는 가사에 맞춰 동요를 부르고 박수치는 모습을 보았다. 경비실에 놓인 작은 텔레비전을 보며, 아저씨는 박수를 치고 혼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만사가 시뜻해 시무룩하게 걷던 나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아 당황했다. 아저씨가 무안해 할까봐 못 본 척 얼른 지나갔다. 욕망도 소란도 없이, 자신의 처지에 감사하며 순하게 늙는 일이란 얼마나 귀한 일인가. 좁은 공간에 있으면 답답하고 우울하시겠지, 추측했던 내 판단이 틀렸다. 어떤 어른은 나이가 들수록 순해진다. 순한 노인이 된다. 스무 살 이후로 나는, 어떤 일을 겪어도 순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지금도 그 기도는 끝나지 않았다. 내 꿈은 순한 노인이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사라질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으니까. 영원이란 ‘아득하고 쓸쓸하게 사라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노인들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 ‘벌써’ 세상을 많이 살아온 사람들이다. 늙는 것은 오래되어가는 것이다. 오래된 것은 귀한 것이고. 

 

(※ 사족 : ‘영원’이란 말의 쓸쓸한 기미를 기막히게 ‘알고’ 쓴 시인은 서정주다. 그는 젊은 날의 과오 때문에 조금 쓸쓸하고 뒤척이는 노년을 살다 갔을지도 모르겠다. 빛나는 노년은 없다. 제 아무리 찬란히 살다 간 영혼이라도 노년은 쓸쓸하고 비루하다. 나는 그게 인생의 그윽함이라 생각한다. 잘못을 하고, 후회를 하고, 뒤척이고, 사라지는 것. 끝은 쓸쓸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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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연준(시인)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고, 산문집『소란』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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