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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진짜 관계가 아닐 때 무해한 사람 되기 더 쉬워요”

예스24 여름 문학학교 1강 ‘한여름 밤 함께 읽는 소설’
최은영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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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사람한테 관대하지만 자신한테 엄격한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 같은데요.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완전히 다 맞는 말 같진 않아요. 자기한테 엄격할 때 더 심하게 엄격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나한테 조금이나마 관대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2018. 0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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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1일 홍대 프리스타일에서 ‘2018 예스24 여름 문학학교’ 1강 ‘한여름 밤 함께 읽는 소설’행사가 진행되었다. 주인공은 소설가 최은영. 지난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예스24 홈페이지에서 진행된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독자 투표에서 최은영 작가는 61,447표(7.6%)로 소설 부문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 로 큰 사랑을 받았던 최은영 작가는 지난 6월,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을 출간해 베스트셀러 자리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막 북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최은영 작가는 『내게 무해한 사람』  출간이 “꿈같다”면서 “준비할 때는 불안하고, 무서웠는데 출간된 것을 보니 좋았다. 역시나 제 책은 귀엽다.”며 웃었다. 사회를 맡은 김중혁 작가는 “두 번째 책이 힘들다.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소포모어 징크스’를 얘기했던데 그 정도로 두 번째 책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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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적으로 쓰는 것 같아

 

김중혁 : 제목이 의미심장한 것 같아요.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제목이 최은영이라는 소설가를 그대로 반영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제목은 어떻게 정한 건가요?

 

최은영 : 원래는 표제작을 정하는데 마땅한 게 없었어요. 거의 마지막 교정 볼 때까지 제목이 없었어요. 하루 동안 다시 읽으면서 몇 개 골라서 친구들과 출판사에 물어봤고요. 가장 많은 득표수(웃음)를 차지한 제목으로 결정하게 됐어요. 이게 뽑힐 줄은 몰랐는데 돼서 ‘뭔가가 있는가?’ 생각했어요.

 

김중혁 : 작가님께 ‘무해하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요? ‘무해한 사람’이라는 게 좀 새로운 제목 같기도 하거든요. 반드시 좋은 건 아니잖아요. 나한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사람인 건 아니니까요.

 

최은영 :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할 때, 관계가 아닐 때 무해한 사람이 되기 더 쉬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번에 여행을 갔을 때도 ‘에어비앤비’로 지내면서 주인한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며칠 동안 노력하고 주인과 잘 지냈거든요. 할 수 있어요. 그럴 때 저는 무해한 사람일 수 있는 것 같은데요. 만약 제가 그 사람과 실제적인 삶에서 엮여 살게 된다면 그럴 수만은 없잖아요. 아마도 진짜 관계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김중혁 : 어제, 늦은 시간까지 책을 봤는데요. 작가님의 문학이 약간 바뀌었다는 생각도 했어요. 첫 번째 작품집보다 이번 작품집이 한 발 떨어져 있다는 느낌도 있고요. 회고하는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았어요. ‘그 시절이 좋았지’라고 얘기하는, 그런 시간의 감각 같은 것은 어떻게 생겨난 건가요?

 

최은영 : 제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컸어요. 말을 하면 친구들이 “넌 어쩜 그렇게 늙은이 같으냐?”고 해요. 그리고 저는 노인을 볼 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지가 않고 오히려 더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김중혁 : 저는 다른 작가가 퇴고하는 과정이 제일 궁금하더라고요. 이번 소설 퇴고를 어느 정도 하셨는지, 퇴고 하는 과정에서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최은영 : 퇴고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초고가 너무 이상하기 때문에(웃음) 그런 건데요. 초고는 마음 놓고 쉽게 써야 하는 것 같아요. 잘 써야지, 생각하면 완성을 못하니까요. 우선 최대한 편하게 쓰려고 노력하고요. 쓴 다음에 한 명에게 보여줘요. 그 사람이 얘기를 해주면 충고를 듣고 다시 한 번 쓰죠. 고쳐서 출판사에 드리고요. 책을 내기 전에는 편집자님이 또 읽어주시죠. 의견을 듣고 또 한 번 고치고요. 그런 과정을 거쳐요. 이번 책에 들어간 것 중에 한 편은 아예 다시 쓴 것과 마찬가지인 것도 있고요. 「그 여름」, 「모래로 지은 집」도 개작을 많이 한 거예요.

 

김중혁 : 마감을 잘 지키는 편인가요?

 

최은영 : 잘 지켜왔다고는 생각해요. 너무 심한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해온 것 같은데요. 딱 한 번, 쓰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그때 좀 힘들더라고요. 이런 일이 있어 마감을 좀 늦게 할 것 같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그래도 너무 집중이 안 되는 거예요. 그때는 정말 늦게 드렸어요.

 

김중혁 : 『쇼코의 미소』 도 그랬지만 이번  『내게 무해한 사람』 도 작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한 권에 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기획할 때, 두 번째 책은 어떤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하신 것이 있었나요?

 

최은영 : 그냥 막 썼죠.(웃음) 책을 기획한다는 것은 저의 영역이 아닌 것 같아요. 심지어 제가 쓰고 있는 단편 하나도 기획하고 쓰지를 못하니까요. 그때 생각나는 것을 쓰고요. 가장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것을 써요. 그렇게 쓰다 보니 시간도 가고, 작품도 모여서, 엮어 책을 낸 건데요. 무의식적으로 쓰는 것 같아요. 쓰다 보니 이런 사람이 나오는 식으로요. 생각해서 쓴다기보다 무의식적으로 쓰는 거예요.

 

 

여자들 이야기


김중혁 : 소설집을 낼 때 제일 신경 쓰는 게 순서인 것 같아요. 어떤 소설을 제일 앞에 둘지, 어떤 소설을 중간에, 어떤 소설을 끝에 둘지 고민하잖아요.  『내게 무해한 사람』  읽으신 분들은 첫 번째 작품부터 예사롭지 않은 주제와 소재를 다뤄서 깜짝 놀라셨을 것 같은데요. 첫 번째 소설을 「그 여름」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최은영 : 전체적인 틀은 편집자님과 상의하며 짰는데요. 이 작품을 1번으로 하겠다기보다 작품끼리 서로 잘 붙는지 보면서 짰던 것 같아요. 「그 여름」은 중편이라 처음에 넣길 잘한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를 텐데 저는 중편에 더 집중하기가 쉬운 것 같거든요. 그만큼 책으로 많이 들어가게 되고요. 그래서 좋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중혁 : 『내게 무해한 사람』 의 전체 주제를 하나로 요약하자면 ‘여성’ 같아요. 저는 이 소설집에 제대로 된 남자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이 아주 리얼하다(웃음)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된 배경 같은 게 있었을 것 같아요.

 

최은영 : 우선 어린 독자였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글이 여자들 이야기였어요. 여자들의 관계, 여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런 것들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또 여자 이야기를 읽을 때 아쉽다고 생각했던 것은 여자인데 남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볼 때였거든요. 그래서 아마 습작을 할 때부터 계속 그런 것들을 썼던 것 같고요. 재미있어요. 그래서 여자들의 관계나 여자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갖게 되는 느낌을 계속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중혁 : 이쯤에서 최은영 작가님의 낭독을 들어볼 텐데요. 작가님이 낭독하실 「모래로 지은 집」은 모래, 공무, 나비, 이 세 명의 친구가 긴 시간 동안 서로 좋아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난 공무만큼 널 생각해.”


모래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 말을 했다. 잡티도 별로 없는 깨끗한 얼굴에 그만큼이나 깨끗한 표정이 어렸다. 어떤 망설임도 불안도 없는 얼굴. 내가 가질 수 없는 얼굴. 내 눈에 모래는 의사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똑똑한 동생을 둔, 동네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의 가장 넓은 평수에 사는 온실 속 화초였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용돈을 받아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모래가 조금이라도 과시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그애를 속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마음을 위로라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모래로 지은 집」, 『내게 무해한 사람』 , 118쪽)

 

최은영 : 여행지에서 낭독할 부분을 찾다가 이 글을 썼을 때의 느낌이 생각났어요. 나비라는 인물이 이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되게 공감하며 썼거든요. 어릴 때 나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잘 사는 것 같은 친구를 보면 저 자신이 초라해지는 걸 느낌과 동시에 쟤는 나를 어떻게 볼까, 하면서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어요. 나를 동정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그런 친구를 약간 고깝게 보던 마음이 제게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 감정이 이 글을 쓸 때 들어갔어요. 


김중혁 : 저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님의 목소리가 많이 들어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모든 소설이 자전적이긴 하지만 왠지 이 소설은 조금 더 자전적일 것 같은 편견 같은 게 있었는데요. 어떤가요?

 

최은영 : 그런 것 같아요. 자전적인 이야기고요. 예전에는 제 얘기를 쓰면서도 제 얘기를 쓰는지 모르고 썼다면(웃음) 이제는 ‘그때 그랬지’ 하면서 제 경험이 많이 들어가는 이야기를 쓰죠. 「모래로 지은 집」은 <문학3>에서 연재를 하던 것인데요. 3개월 연재였어요. 쿠바에 갔는데 그때 목적은 그곳에서 초고를 다 써와서 연재를 할 때 개작하면서 올리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쿠바에서 한 줄도 못 쓰고 한국에 온 거예요. 그래서 정말 힘들게, 어렵게 쓴 소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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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을까


김중혁 : 글이 정말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세요?

 

최은영 : 안 써질 때 저는 자요. 머리가 과열됐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자고 일어나면 조금 식고요. 몸도 좀 편안해져서 약간 자기 전에 있었던 것을 잊고 다시 쓰게 돼요. 그런데 글이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해도 안 써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안 될 때는 내가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거니까 그냥 ‘이번엔 안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해요.

 

김중혁 : 「고백」이라는 소설을 보면 ‘회개’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무슨 한자인지 아느냐고 묻는데 소설에서 대답을 안 해줘요. 그냥 지나가버립니다. 제가 찾아봤는데요. 뉘우칠 회(悔), 고칠 개(改)예요. 말하자면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뉘우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뉘우치고 고치는 두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잖아요. 작가님이 그런 말을 하시려고 했던 것 같은데요. 작가님은 이 힘든, 폭력적이고 고통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좀 더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하네요.

 

최은영 :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을지 그게 항상 궁금해요. 제 경우 지금까지 정말 자기비난을 너무 많이 하면서 살아 왔어요. 자기비난을 하지 않는 이상 발전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어릴 때도 저 자신을 절대 인정해주지 않고,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그것에 다다르지 못했을 때 저를 채찍질 하면서 비난하고 못되게 굴었어요. 하지만 그건 잘사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다른 사람한테 관대하지만 자신한테 엄격한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 같은데요.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완전히 다 맞는 말 같진 않아요. 자기한테 엄격할 때 더 심하게 엄격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나한테 조금이나마 관대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특히 한국, 특히 여성들은 저 같은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은데요. 그게 그렇게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으니까요. 조금만 자기한테, 그리고 주변 여자들한테 관대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김중혁 :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최은영 : 다음 책은 장편소설이 될 것 같거든요. 그런데 한 줄도 안 썼어요.(웃음) 써야 할 단편이 세 개 있어서 그걸 먼저 쓴 후에 써야 해서요. 만약 쓴다면 장편소설이 2년이나 3년 뒤에 나올 수 있겠죠? 그러고 나서 긴 기간 동안 쓴 단편을 묶어서 낼 것이기 때문에 지금 상태에서는 예상할 수 없어요.

 

김중혁 : 저는 한국 남자 작가로서 제가 쓰고 있는 소설을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보니 생각이 참 많이 들었어요. 여성학자 정희진의 글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정확하진 않지만 ‘남성과 여성이 대립하고 있는가? 백인과 흑인이 대립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건 좋은 사회다.’라는 내용이에요. 지금은 대립하고 있지 않고, 한쪽이 한쪽을 폭력적으로 착취하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야만 그때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란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저는 그 이야기가 이 소설을 보면서 생각났어요. 아마 많은 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게 무해한 사람최은영 저 | 문학동네
현재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재조정되며 다시 살아나는 것임을, 기억을 마주한다는 건 미련이나 나약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용기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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