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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페미니즘이라는 환상을 깨자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이라영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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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나는 이러이러한데 그럼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내가 나름 이렇게 이렇게 해왔는데 화장했다고 페미니스트 자격이 없는 거야?’ 물론 저는 이에 대해 답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왜 이토록 ‘페미니스트의 자격’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는지를 같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2018.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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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페미니즘을 모른다’고 훈계하거나 ‘진짜 페미니스트다’라고 추켜세우는 목소리는 왜 똑같이 불편할까? 이 책은 무엇이 ‘진짜’와 ‘가짜’인지 논하는 대신, ‘진짜’가 언급되는 맥락을 살피는 데 집중한다. 이를 통해 진짜란 애초부터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억압된 목소리가 다양하게 분출되는 것은 페미니즘의 중요한 특징이고, 일단 ‘눈치 없이’ 활발하게 말할 수 있어야 페미니즘 논의 자체도 진전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불편하고 할 말 많은 여성의 몸과 공간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일이다.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에서 한국 사회의 소수자 이슈를 시원하게 해설해주며 인간 존중의 의미를 환기시켰던 예술사회학자 이라영이 신문과 블로그에 발표한 글들과 새로 쓴 글들을 한 권으로 묶었다. 폭발적인 ‘미투’의 흐름 속에서 페미니즘 입문서를 인상 깊게 읽었지만, 일상에서는 여전히 답답함을 느끼며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기 주저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씩 뜯어본다.

 

예술사회학 연구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술사회학의 범위와 하는 일을 설명해 주신다면.

 

이론적으로는 사회학의 분과지만 실제로 범위는 굉장히 넓어요. 작품의 미학적 차원을 포함해 주로 외적인 사회 현상을 많이 다뤄요. 작품과 작가를 둘러싼 사회에 많은 비중을 둡니다. 아놀드 하우저나 부르디외 등이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학자입니다. 예술운동사, 유통, 소비구조 등 매우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갈 수 있지요. 저는 주로 여성과 성소수자의 창작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록산 게이가 『나쁜 페미니스트』 에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기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를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했듯, 책에서 말한 ‘진짜 페미니스트’를 검열하는 태도가 페미니스트 스스로에게도,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검열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검열은 늘 있었지만, 아마도 목소리 내는 여성의 규모가 더 커지니 이에 대한 역공도 커지는 듯 합니다. 게다가 요즘 매체의 변화 등으로 모든 것이 빨리 전개되다 보니 이에 대한 반응도 그만큼 빨리 나타납니다. 여성들이 거리로 나오고 점점 이 목소리가 일상에서도 들리는 영역이 커지자 반격도 더 거칠어 보여요. 페미니즘이 뭔지는 몰라도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 여기고, ‘페미는 죽여도 된다’는 말을 내뱉습니다. 모든 작용에는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사실상 정치가 여성이라는 사람이 겪는 문제에 손 놓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개개인이 부정적인 외부의 시선과 검열하는 자기 내부의 시선에서 자유롭긴 쉽지 않습니다.


“여성이 여성을 돕자고 하면 비로소 ‘여성의 다양성’ 이 치솟”(34쪽)아 오르는 등 “페미니즘에게 완전무결한 요구를 하며 정의를 가장해 페미니스트의 입을 봉쇄하려는 시도”(41쪽)가 일어나는 현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시도를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답답합니다. 여성의 입과 남성의 귀 사이에 간극이 심합니다. ‘옳은 말’의 폭력이 있습니다. 윤리적 폭력. 원칙적으로 옳은 말.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원칙적인 옳은 말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을 뭉개버리는 말. 그게 정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권력행위입니다. 구체적인 맥락이 있고 목소리의 크기가 있는데 이런 구체적인 상황을 쉽게 지워버린 ‘옳은 말’이 과연 옳은 말로 작용할 수 있을까요. 말 좀 하게 내버려뒀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분노한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행동을 교정하려는 태도를 늘 지양합니다. 이런 태도는 분노를 더욱 고립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결국 유폐되어 곪거나 원치 않는 방향으로 분노의 감정이 휘어질 수 있죠.


외국에 나가 계실 동안 한국을 보며 쓴 칼럼 등이 모였습니다. 타지에서 이방인으로서 객관적으로 보거나, 혹은 답답한 마음으로 현상을 관찰했을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보는 한국의 페미니즘 상황은 어땠나요?


칼럼도 있고, 반 이상은 새로 쓴 글입니다. 칼럼은 지면의 한계도 있고, 그때그때 사안을 다뤄야 하는 부담도 있어서 가능하면 책 원고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외국에서 지내는 동안 꾸준히 한국 사회를 접하고 또 바라보는 입장에 있었지만 딱히 객관적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게다가 한국은 정말 변하는 속도가 빨라서요. 그저 제가 있는 각도에서 보이는 면이 있을 뿐입니다.


한국의 페미니즘이라기보다는 페미니즘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론에서는 자극적인 면만 들춰내서 그렇지, 일상에서 여성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말과 행동을 더 제약받습니다. 게다가 디지털 성폭력 문제는 정말 말이 안 나올 지경입니다. 이렇게 끔찍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데도 현실 정치에서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너무 모른 척 하고, 공권력은 대놓고 여성이 겪는 범죄에 무심합니다. 미디어는 점점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의 부정적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고, 이제는 페미니스트와 휴머니스트를 대립시키는 구도까지 만듭니다. 이건 온 사회가 모두 작당을 하는 분위기예요. 이 상황에서 여성들이 이 정도면 매우 교양 있는 대응을 하는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교양 있는 말은 안 듣다가 ‘막말’이 터져 나오면 ‘한국 페미니즘은 변질되었다’ 고 합니다. 불법 동영상의 ‘고객님들’은 얼마나 많을까요. 인간을 대하는 자세가 변질되었다는 고민이 우선입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불법 동영상을 유통시키고, 집 밖에서는 여자들이 화장실도 맘 졸이며 가야 하는 사회에서 ‘한국 페미니스트’를 어쩌고 저쩌고 가르치며 평가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페미니스트를 평가하기 전에 한국 사회가 여성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페미니즘을 “관계를 성찰하고 이에 대해 질문하여 관계의 재구성, 곧 권력과 관념의 재구성을 시도”(222쪽)한다고 정의했습니다. 넓은 범위의 질문이지만, 작가님에게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요?


페미니즘이 모든 문제에 해답을 찾아준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질문에 추동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념과 편견이 인간의 생각을 많이 지배합니다.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기준이 실은 힘 있는 사람의 주관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질문하는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때 그 질문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는가, 또 질문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얻는가,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하기 위해서도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생각한다는 건 힘든 일이잖아요. 제게는 페미니즘이 질문을 이어갈 수 있도록 꾸준히 질문거리를 던져주는 동력이 아닐까 합니다.


책을 누가 읽었으면 하나요?


누구라도 읽으면 좋지만, 막힌 말을 꺼내고 싶은 분들이 읽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제가 들은 말 중 정말 안타까웠던 말은, ‘나 같은 여자가 페미니즘에 민폐를 끼칠까 봐’였어요.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혹시 내가 틀렸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말을 주저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책이 막힌 말을 트이게 해준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글을 쓰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낸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보내는 신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책의 경우는 제가 쓰면서 ‘여성들이 덜 위축되었으면 좋겠다’는 신호를 마음속에서 계속 보내고 있더라고요.


곧 한국에서 북토크 등으로 독자를 만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 걸로 기대하나요?


답답한 이야기, 흥분조차 할 수 없는 그런 답답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까 합니다. 말 꺼냈다가 오히려 좌절한 이야기. 괜히 나만 ‘미친년’ 되어버린 그런 이야기들이 많지 않을까 합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주 ‘평범한 폭력’에 대해 더 많이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한 평소에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나는 이러이러한데 그럼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닌가?’ ‘내가 나름 이렇게 이렇게 해왔는데 화장했다고 페미니스트 자격이 없는 거야?’ 물론 저는 이에 대해 답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왜 이토록 ‘페미니스트의 자격’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는지를 같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말 그대로 ‘토크’였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이라영 저 | 동녘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상식과 논리는 책의 중요한 무기다. 이를 통해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언어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도록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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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이라영> 저13,5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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