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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겸 “한 짝의 운동화에서 시작했다"

이한열 열사 운동화 복원한 이야기 담은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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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으로 보존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은, 당시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의견과 의식, 생각, 철학이 모두 담기는 겁니다. 500년 된 유물을 현재 복원하고, 다시 500년이 지난 후에는 만든 당시 조상의 뜻뿐만 아니라 복원한 때의 사고도 함께 읽을 수 있는 거죠. (2018. 0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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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물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한 장면을 재연한다. 신촌에 자리한 이한열 기념관 2층에는 6월 항쟁 당시 그가 입었던 옷과 신발 한 짝이 전시되어 있다. 짝을 잃어버리고 덩그러니 남은 신발 한 짝을 김겸 작가가 복원했다. 복원한 신발은 기념관 유리 벽 뒤에서 가만히 사람들을 맞이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한 짝만 남은 운동화를 복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복원하는 내내 운동화가 이야기하는 바를 읽고 해석하는 복원가와는 달리, 사람들에게 운동화가 어떻게 가닿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운동화를 복원하는 과정이 소설 『L의 운동화』 로, 운동화 주인인 이한열 열사가 살아있던 때를 배경으로 한 영화 <1987>이 개봉한 후에는 전율이 일었다. “유물이나 예술작품의 가치는 물질로서의 존재보다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로부터 나온다.”라는 평소 신념이 실제로 구현되는 걸 지켜본 셈이다.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에는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뿐만 아니라 그가 복원한 수많은 예술 작품과 그의 이야기가 담겼다.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곱씹고, 생각하고, 다듬고, 매만진 생각이 담담하게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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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짝의 운동화에서 시작했습니다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 는 어떻게 기획하고 쓰게 됐나요?

 

꽤 오래전부터 보존복원 관련 서적 집필에 관한 문의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주로 전공서 수준의 책이었고, 실제로 준비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오래 전부터 일을 하면서 품고 있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는 문화예술이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것은 추상적인 개념으로는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보통은 현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거나 우리 삶에 깊숙하게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제가 전공 서적을 집필한다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드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근원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예술작품이나 유물이 왜 역사의 씨앗이 되는지, 그것을 보존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유물을 통해서 무엇을 바라볼 수 있는지, 왜 선진국에서는 문화와 예술, 예술가를 높게 평가하는지, 오랫동안 일하며 제가 묻고 답을 찾고 있는, 근본적인 것에 관한 생각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문학동네에서 비슷한 기획으로 제안해 주셨습니다.

 

제안을 받았던 시기가 김숨 작가님의 소설 『L의 운동화』 가 나온 이후인가요?


처음 이 책 제안을 받았던 건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복원하기 전입니다. 이한열 열사 운동화를 만나면서 이 책의 큰 주제가 되었습니다. 제게는 운명적인 만남이었죠.

 

처음 운동화를 복원한다고 했을 때,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했을 것 같아요.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복원할 때, 소중한 자료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 역시 “운동화 한 짝이 무엇이지?”라는 질문을 했죠. 그런데 운동화 한 짝이 복원된 것을 보고 소설이 나오고, <1987> 영화에 관한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이 영화는 한 짝의 운동화에서 시작했습니다.”라고 이야기하실 때, 소름이 돋는 것 같았습니다. 저로 인해서가 아니라 운동화가 자신의 모습으로 남아있음으로 여러 일이 촉발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 거예요. 유물이라는 씨앗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야기로 성장하는가를 짧은 시간에 체험하게 된 겁니다.

 

보존복원 의뢰를 모두 승낙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거나 하지 않는 기준이 있나요?


거절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저는 보존복원 전문가를 의사로 비유합니다. 의사가 환자를 가릴 이유가 있나요? 제게 오는 작품이나 유물은 ‘아픈’ 것들인데요. 대개 의뢰하는 분의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거든요. 이를테면 소중함 같은 거요. 지난주에는 3D프린터로 만든 평화의 소녀상을 고쳤어요. 아는 가족인데 가족여행을 할 때 항상 평화의 소녀상을 가지고 다니면서 여행을 다녔대요. 그런데 여행지에서 그만 부러진 거예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안 될까요?” 하는데, 제가 감쪽같이 고쳐드렸습니다. (웃음) 태권브이 로보트를 가지고 오는 동네 분도 있고요. 유물이어야만 한다, 유물 중에서도 어떤 유물이어야 한다, 그런 기준은 전혀 없습니다. 의사 분들이 아픈 환자를 가릴 수 없는 것처럼요.

 


제 일이 재미있습니다

 

진로를 선택하는 데 화가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정말 지금까지도 오로지 창작만 생각하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어렸을 때 집이 좀 어려웠어요. 슬레이트로 지은 네다섯 집이 모인 곳에 살았는데요. 밤이면 촛불을 들고 화장실에 가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힘드셨죠. 그러다 보니 제 능력과는 관계없이 의대에 가길 원하셨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에 순응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과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하고 싶으니까, 미술이나 예술과 관련된 것을 해야겠다고 말씀을 드렸죠. 아버지께서 실기는 절대 안 된다고 하셔서 미술비평이나 이론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합의를 본 거죠. 그때 이후로는 어떤 선택하는 것에 대해 크게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삼성문화재단 복원실 채용 공고를 우연히 보고 합격한 걸 계기로 보존복원 전문가의 길을 선택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모두 우연인데요. 계속 복원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어떤 점 때문이었나요?


일을 시작했을 때 ‘야, 이거 재밌는데?’ 했던 거죠. 그리고 일본에서 유학할 때 마키노 다카오 선생님의 생활을 보면서 내가 꿈꾸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에서의 생활은 도제식이니까 삶의 전반을 보거든요.

 

일이나 작품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도 많이 배울 수 있었겠네요.


거의 제가 따라쟁이예요. (웃음) 그분은 그분의 삶 자체가 보존복원과 일체화되어서 너무 자연스러우세요. 기가 막히게 작업을 하시는 데도 애쓰는 것 같지도 않고, 너무나 자연스러우시죠. 삶에서 대가의 느낌이 묻어나는 거예요. 장인의 향기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것들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복원가로 삶을 꾸리면서 고민할 때마다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신 분이죠.

 

마키노 선생님이 일본 전통 목조 불상 복원가라는 사실을 일본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26쪽)고 하셨어요. 원래 조각 복원을 배우고 싶으셨잖아요. 2년 동안 일본에서 공부한 시간을 후회하기도 했을 것 같아요.


영국에서 돌아왔을 때까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어릴 때는 좀 더 효과적이고 실리적인 고민을 하고 후회하죠. 처음부터 영국으로 갔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분명히 했는데요. 점점 일본에서 있었던 2년간이 오히려 저한테는 훨씬 소중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실감하게 되는 겁니다.

 

보존복원이 정말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직업인 것 같아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잖아요. 작품이 산산조각이 난 현장에 갔던 일화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했어요.


그런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 담당자분들은 반쯤 넋이 나가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계세요. 동분서주하며 걷는데 마치 허공에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복원이 시작되고, 작품이 조금씩 모습을 찾을 때마다 같이 살아나시는 거예요.

 

악몽도 많이 꿀 것 같아요. 일에 시달릴 때 일하는 악몽을 꾸기도 하잖아요.


책을 쓸 때 처음 모은 원고가 30~40% 더 많았는데요. 삭제된 원고 중에 악몽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 한 5년간은 복원한 작품이 눈앞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악몽을 꿨던 것 같아요. 꿈을 꾸고 나면, 다음날은 그 작품을 보러 가는 거예요. 안 그러면 또 잠이 안 오니까요. 한 5년간은 그렇게 계속, 악몽을 꿨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계속 보존복원 일을 하셨어요. 어떤 사명감 때문인가요?


음, 그런 것보다는요. 일단 저는 제 일이 재미있습니다. 저는 이 직업이 직업이자 취미이고, 생활입니다. 취미로 소설을 즐기시는 것처럼, 저는 이게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보게 되고요. 생각해보면 그렇게 악몽을 꿀 때도 일이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가끔 학생들에게 하는 이야기인데 행복한 순간이라는 건 무언가를 할 때 배도 안 고프고, 잠도 안 오고, 밤낮없이 그걸 할 수 있는 순간이 행복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데요. 이 일을 할 때 제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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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직업탐방 기사를 쓰러 온 대학생 기자분이 ‘유물을 왜 보존하고 복원해야 하나요?(184쪽)’라는 질문을 하셨다고요. 그 질문을 그대로 하고 싶었어요.


신입생이 들어오면 첫 시간에 이런 질문을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경제학을 전공하는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렇게 질문하면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이번에 어떤 문화재가 손상돼서 몇백 억 들여 복원했다고 하더라? 지금 우리나라가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밥 굶는 아이도 많고, 집이 없어서 비를 맞는 어르신이 그렇게 많은데, 그게 지금 우리나라에서 급하게 할 일이야? 어려운 사람들에게 밥 주고, 집 지어주는 게 먼저 아니야?”라고 한다면, 여러분께선 “아니야, 그래도 우리가 이런 것들을 복원해야 해.”라고 설득할 수 있습니까? 설득할 수 없다면, 진심으로 이걸 전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보통 학생들은 교과서적으로 대답을 합니다. 중요하다거나 유물의 소중함 같은 거요. 그럼 제가 다시 묻습니다. “집안이 어려워 며칠을 굶고 있는 아이 앞에서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너무 잔인한 상상이네요.


사실은 여기에 대한 제 믿음이, 답이 있습니다. 이것이 정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저는 이 답을 가지고 이 일을 하고 있고, 이 책을 쓰게 된 거였거든요. 이것에 대해서 답을 할 수 없다면 저는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문화체육관광부 보존담당관으로 일할 때, 보존예산을 따러 가거든요. 가면 무형문화재의 복지나 지원 예산이 필요해서 오신 다른 사무관이 계세요. 그러면 한정된 예산으로 “아니에요. 그분들의 복지보다 지금 미술작품을 복원하는 데 비용이 이만큼 드니까 거기에 떼어서 저도 예산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라는 주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답을 못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답이 뭘까요?


많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 하는 질문을 품고 선택하며 삽니다. 만약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불행을 피하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유방암에 걸린다는 미래를 보았다면, 발병을 피하거나 예방할 수 있잖아요. 이건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측을 잘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보면 됩니다. 과거의 수많은 데이터로 현재와 비교해 비슷한 상황을 찾습니다.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에 분명히 비슷한 상황이 있거든요.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선택한 것의 결과를 봅니다. 그런데 결과가 현재 원하는 방향과 맞지 않는다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 이런 예측은 전혀 의미 없어 보이는 수많은 과거의 데이터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역사가 있는 민족이 미래가 있다는 이야기가 그거예요. 과거의 경험이 없다면 절대 지금의 상황을 올바르게 볼 수도 없고,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복원가는 지금 현재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고, 이용 가치가 없는 것 같지만 앞으로 어떤 순간에 어떻게 이용될지 모르는 수많은 데이터를 열심히 보존해서 모으는 사람들입니다.

 

밥을 굶는 아이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한다고 답하나요?


왜 그걸 복원하냐고,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밖에 대답하지 못해요. 하지만 이게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될지,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서 역할을 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만약 남기지 못했을 때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역시 모든 것을 지금은 알 수 없지만요. 아이를 만나면 일단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사줄 겁니다. 그리고 이야기할 거예요. “네게 오늘처럼 매일 따뜻한 밥을 사줄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수많은 과거의 데이터를 모으는 일이다. 그걸 모아서 남길 테니 너는 앞으로 그걸 이용해서 좋은 선택을 해라. 너, 그리고 너의 후손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수많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서 남기도록 할게.”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스스로 질문했고, 거기에 내린 답 같은데요. 생각을 정리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성격 탓인데요.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잘 못 합니다. 계기는 없었고, 죽 해왔던 것 같습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내가 좋아서 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란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조금씩 했던 거죠.

 


한 사람의 마음을 알게 하는 도구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원한 작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도 있나요.


당연히 운동화도 그렇고요. 정확히 10년 전인 1998년에 삼성문화재단에서 일할 때 광화문 지나면서 페인트가 발려진 동상을 보면서 저 표면 작업을 내가 하면 어떨까 꿈을 꾸었는데 정확히 10년 후에 2008년에 이순신 동상 위에 있더라고요. 삶이 재미있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길이나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복원 후에 전시된 걸 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감회보다도 상태가 어떤지, 마치 환자 살피는 것처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원은 절대 치료가 끝났다고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정기적으로 다시 봐야 하고요. 치료는 정말 치료입니다. 계속해서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되고요.

 

외국과 우리나라가 보존복원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분명 차이가 있지만, 어디가 좋고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니까요. 그건 나라마다 문화나 취향이 다른 것처럼 그냥 다름인데요. 단지 문화선진국에서 문화재나 유물, 작품에 애정이 좀 더 깊은 것, 이것은 좀 더 닮았으면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어떤 건가요?


진심으로 소중히 하는 것, 그리고 그 소중함이 생활 속에 녹아있는 거죠. 예를 들어 영국은 할머니가 가지고 계시던, 작가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오래된 골동품 같은 것들이 훼손되면 복원연구소에 맡기거든요.

 

사설복원연구소가 많은 편인가 봐요.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길에 보면 자동차 수리하는 곳이 많지 않습니까. 많은 분이 자동차를 아끼기 때문에 조금만 다쳐도 수리를 하거든요. 영국은 집에서 오래 가지고 있던 인형 같은 것들도 복원연구소에 맡깁니다. 자연스러운 문화니까요.

 

그렇게까지 되려면 예술을 소비하는 문화가 수반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일반적으로 예술이 어렵다는 생각이 예술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미술사 강의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술의 재미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요. 한 작품은 그 시대 사람의 마음이 어땠는지 이야기합니다. 강의 시간에 역사책은 글로 쓴 역사이고, 미술작품은 그 시대 사람들의 정서 역사라고 하거든요. 100~200년 전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희로애락을 느꼈는지, 알 수 있는 게 예술입니다.

 

그 시대 사람의 마음을 알려주는 도구라고 생각하면 좀 더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겠네요.


맞습니다. 사람은 어떻게든 소통을 하고 살지 않습니까. 여러 방법으로 소통할 수 있는데 지금 시대는 너무 언어에만 의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어로 하는 소통은 너무 표면적인 것 같거든요. 말에 속고요. 말은 말하는 사람의 본의조차도 왜곡시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때는 백 마디 말보다 눈물 한 방울이 훨씬 정확하게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 같은데요. 예술 작품이 그런 것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알게 하는 도구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누군가 눈물을 흘린다면, 그건 노래만 듣고 그런 게 아니라 그때의 감정, 그 시대의 풍경,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가 떠올라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미술 작품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익숙해진다면 음악을 통해서 느끼는 감정을 얼마든지 미술 작품을 보면서도 느낄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보존도 물건에 새겨지는 기록입니다

 

보존복원가가 갖추어야 할 덕목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천 명의 복원가가 있다면 천 명이 모두 다른 복원가이기 때문에 복원가가 이래야 한다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요. 학생들에게도 기초를 철저히 하라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복원 후에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보통 많은 분이 기대하시는 게 이렇게 멋지게 복원했다고 작품을 드러내는 것인데요. 그럴 수 없는 게 제 성격은 둘째 치고요. 보존복원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하면, 완전한 복원이 없다는 것이 가장 기초이고, 기본이거든요. 그 어떤 물질도 영원한 것은 없고요. 계속해서 변해가는 거고요. 제 일은 변화를 다루는 일이어서요. 제가 복원했던 것도 수십 년 후면 또다시 변화할 것이고요. 그것을 후대의 복원가가 재복원해야 하고요. 마치 인간이 살아가며 어떤 병원에서 병 하나를 고쳤다고 해서 돌아가실 때까지 건강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재발하기도 하고, 다른 곳이 아프기도 하고요. 끊임없이 한 사람의 삶을 위해서 많은 분이 애쓰시는 것처럼. 저 혼자 감당할 일도 아니고요. 감당해서도 안 되고요.

 

저라면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들 것 같아요.


아니요. 아까운 게 아니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작품에서 내가 하는 복원의 역할이 어느 일부분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 생각이 아니라 그건 정답입니다. 유일하게 제가 확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모든 복원가가 알고 있는 사실이고요. 제 역할은 일부분입니다. 그것도 영원하지 않은 일부분이요.

 

유물에 보존복원하는 당시의 시간을 쌓는 작업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복원 이론 가운데 ‘사그라지는 대로 놔둬라, 계속 복원해서 살려라.’ 이 둘이 복원에 있어서 가장 핵심에 있는 이론인데요. 복원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는 복원가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또 그것은 복원가만의 판단이 아니라 유물을 둘러싼 모든 사람의 의견이 더해지는 거죠. 어떤 식으로 보존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은, 당시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의견과 의식, 생각, 철학이 모두 담기는 겁니다. 500년 된 유물을 현재 복원하고, 다시 500년이 지난 후에는 만든 당시 조상의 뜻뿐만 아니라 복원한 때의 사고도 함께 읽을 수 있는 거죠. 그게 유물의 역할일 겁니다. 보존도 물건에 새겨지는 기록입니다.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김겸 저 | 문학동네
모두가 숨 가쁘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재빨리 폐기 처분하기 바쁜 시대에 가까이는 수십 년, 멀리는 수백 년 전 태어난 작품을 붙잡고 사라져가는 기억을 되살리는 그의 손길이 특별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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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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