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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시스트 이태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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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윤은 자신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며 “성공했다기보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본 사람”이라고 말한다. (2018. 0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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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_임종진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가요계는 변혁에 가까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던 때였다. 최신 장르로 무장한, 음악성과 스타성을 겸비한 젊은 스타들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스타들은 어딘가 조금 덜 반짝이는 듯 보이게 되었다. 80년대를 자신의 왕국으로 만든 조용필마저 위기감 속에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 평론가들은 신해철, 윤상, 015B, 서태지와 아이들, 김현철, 김건모 등 향후 수십 년 동안 가요계의 중심이 될 이들이 등장한 90년대 초반을 한국 대중음악의 뉴웨이브 시대라 일컫는다.

 

세대교체는 가수들의 영역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가요계 전반의 인적, 기술적 체질 변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였고 그중에서도 세련된 음악성을 지닌 젊은 연주자들의 등장은 업계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왔다. 90년대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가요 수요를 뒷받침하고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뉴웨이브의 일원이자 기반이었던 이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90년대의 영광스러운 순간들은 가능하지 않았거나 조금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이때 등장한 연주자들은 대부분 1960년대 생으로 80년대 초에 중, 고등학교에 다닌 세대다. 어릴 적 우리나라의 70년대 그룹사운드 음악을 듣고 자란 이들은 당시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가정용 오디오와 ‘마이마이’로 대표되는 휴대용 음향기기로 국내외의 음악을 다양하게 접했다. 이들 세대는 가요의 감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양음악을 폭넓게 받아들여 기술적으로 뛰어났다. 한 세대 선배 뮤지션인 베이시스트 신현권은 이렇게 증언한다.


“80년대 중반에 갑자기 잘하는 애들이 엄청 나왔어. (함)춘호, (강)수호, (이)태윤이, (이)근형이……. 다 지금도 한 끗발 하는 친구들이잖아.”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베이시스트 이태윤은 그 시절 연주자 세대교체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것은 뛰어난 연주 실력만큼이나 그가 걸어온 이력으로 증명된다.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주인공의 행보가 역사적인 사건으로 연결되듯 그는 당시의 급변하는 음악 환경 속에서 모든 운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했다. 그는 처음부터 전설의 일부에 속해 있었고, 이후의 행보는 연주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1%의 기적에 가까웠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태윤은 서대문 연습실에서 김태원을 만나 ‘디 엔드’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보컬 김종서의 영입과 함께 밴드명을 ‘부활’로 바꾸고 당시 유행하던 L.A 메탈로 음악적 노선이 바뀌면서 그는 밴드를 탈퇴한다. 이태윤은 헤비메탈 음악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의 음악적 뿌리는 가요였고 무엇보다 좀 더 대중적인 음악으로 메이저 무대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다른 연주자들은 외국 뮤지션의 영향을 받았다고들 하잖아. 나는 가요를 좋아했어. 내가 좋아했던 건 최병걸, 조병수, 최헌, 이렇게 남성 트로이카였는데 듣다 보니까 그분들이 다 그룹사운드 출신이더라고. 그래서 밴드를 좋아하게 됐지. 이후에는 대학가요제, 해변가요제, 강변가요제 출신 밴드들, 배철수, 구창모, 홍서범 선배가 있던 ‘블랙 테트라’, ‘활주로’, ‘옥슨 80’ 같은 밴드들 노래 들으면서 자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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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_임종진

 

 

메이저 무대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된다. 그룹 ‘송골매’의 멤버로 발탁된 것이다. ‘부활’을 탈퇴한 지 1년여 만의 일이었다. 그는 당시 덕성여고 3학년이었던 박미경과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아마추어에 가까웠고, ‘부활’이 데뷔하기 전 탈퇴한 터라 연주자로서 제대로 된 경력이 일천했다. 어떻게 ‘송골매’에 들어갈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나도 그게 미스터리야”라며 웃어 보였다.
 
‘송골매’가 멤버를 정비하고 7집 음반을 준비하던 1986년은 신세대 밴드들이 쏟아져 나온 해였다. 이태윤이 속해 있었던 언더그라운드의 헤비메탈 밴드들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당시 ‘송골매’는 여전히 국민밴드로서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런 만큼 음악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시기였다. 리더 배철수는 밴드의 체질 변화를 꾀했고 그 일환으로 ‘사랑과 평화’ 출신의 키보디스트 이종욱과 베이시스트 이태윤을 영입한다. “미스터리”라고 겸손하게 답했지만 그가 발탁된 배경에는 당시 신세대 연주자에 대한 전반적인 기대감과 평판, 그리고 새로운 장르였던 퓨전재즈를 매끄럽게 소화할 수 있었던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87년부터 ‘송골매’ 멤버로서 각종 방송과 나이트클럽 등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 당시 이태윤의 나이는 23살이었는데 무대 위에서 거의 경이로운 수준의 여유와 넉살을 보여주며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송골매’가 해체한 1991년부터는 세션 뮤지션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스튜디오 세션은 녹음 경력이 다시 연주력으로 이어지기에 꾸준히 연주 활동을 했던 그는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젊은 세대 연주자들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냈다.

 

1993년, 그는 조용필 밴드 ‘위대한 탄생’에 합류하게 된다. 이때도 상황은 다르지만 맥락은 다르지 않다. 그는 20대 후반의 잘 나가는 스튜디오 뮤지션이었지만, 조용필의 세대와 경력을 고려하면 한창 젊은 뮤지션에 속했다. 1980년 데뷔 이래 조용필과 위대한 행보를 함께한 밴드 ‘위대한 탄생’은 80년대 말 이후 일본인 밴드로 대체되어 맥이 끊어져 있었다.


조용필은 새로운 스타들의 등장과 시대의 흐름을 지켜보며 음악을 재정비할 필요성을 느꼈다. 신세대 뮤지션을 중심으로 ‘위대한 탄생’을 부활시키고자 했던 그는 젊고 신선한 감각을 가진, 그러면서도 충분한 연주 경험이 있는 정상급 뮤지션을 찾아 나섰다. 이때 최희선(기타), 최태완(피아노), 이태윤(베이스) 등이 눈에 띈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들 주축 멤버는 현재까지도 ‘위대한 탄생’의 멤버로 조용필의 곁을 지키고 있다.

 

베이시스트 이태윤은 자신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며 “성공했다기보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본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대중음악 연주자 중에 이렇게 바라는 대로, 꿈꾸는 대로 이룰 수 있었던 인물이 또 있을까 싶다. ‘시대의 변화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 연주자, 이태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에게 다가온 무대라는 기회를 재능과 노력으로 감당해냈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베이시스트 이태윤
1964년 서울 출생. ‘부활’의 전신인 밴드 ‘디 엔드(The End)’의 베이시스트로 음악을 시작했다. 부활 1집이 발표되기 전 음악적 견해 차이로 밴드에서 탈퇴하였고 1년여 동안 소프트팝 밴드인 ‘박미경과 환희’를 결성해 활동했다. 1987년, 인기밴드 ‘송골매’의 멤버로 영입되어 7집 음반을 기점으로 활동했고 1991년 ‘송골매’가 해체되면서 본격적으로 세션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된다. 1993년 조용필의 전속 밴드인 ‘위대한 탄생’의 3기 멤버로 합류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스튜디오와 무대를 넘나들며 1990년대 이후 대중음악의 황금기를 견인한 베이스 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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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현성(가수)

<소원>, <헤븐> 등의 노래를 불렀다. 산문집 『당신처럼 나도 외로워서』를 발표했고, 현재 음악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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