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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그녀들이 중심이 된 현재진행형의 역사

위안부 피해의 역사는 아직 끝난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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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묘사하지 아니하고 회상하지 아니라고 피해 당사자의 시선을 취하지 아니함으로써 감정으로만 접근해서는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다. (2018. 0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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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허스토리>의 한 장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현재형의 사안이다.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 이뤄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정작 피해 당사자 할머니는 동의하지 않는 졸속 협정이었다. 지금도 일본의 아베 정부는 자신들의 만행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한국영화는 관련한 소재의 영화들을 심심찮게 만들었고 지금도 제작하고 있다.

 

영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 이슈화하는 건 긍정적이다. 아쉬운 건 이런 종류 소재의 영화들이 너무 감정적으로 접근해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자극적으로 재현한다든가, 과거 시제에만 치우쳐 현재형의 사연으로 치환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는 데 있다. 민규동 감독이 연출한 <허스토리>는 다른 접근을 보여주고 있어 참신하다.

 

<허스토리>의 주인공은 일제강점기 역사에 직접 피해를 보지 않은, 오히려 그런 역사일랑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은 문 사장 정숙(김희애)이다. 부산에서 큰 여행사를 운영하는 정숙은 부하 직원이 자신 몰래 일본인을 대상으로 색시 관광을 운영한 일 때문에 경찰에게 조사받은 전력이 있다. 역사에 문제의식이 있기보다 먹고 사는 일이 더 중요한 인물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와 재판을 할 수 있도록 여행사 사무실을 내준 것도 여자로서 연대나 한국인으로서 의무감 이전 우연이 계기가 됐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신고 전화를 개설한 일로 관심이 생겼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정부가 뒷짐을 지는 것에 분노하면서 정숙은 앞장 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피해 보상을 받고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할머니들을 설득하고 일을 진행하는 것. 이 소식을 신문으로 접한 재일교포 출신의 변호사 이상일(김준한)은 정숙에게 연락해  무료로 변론을 맡겠다고 약속한다. 그렇게 해서 일본 정부에 피해 보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성사된 재판, 10명의 원고단과 13명의 변호인이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23번의 재판에 참여했다. 이 재판은 시모노세키(下關)와 부산(釜山)을 오가며 진행된 까닭에 ‘관부 關釜’ 재판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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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허스토리>의 한 장면

 

 

<허스토리>는 관부 재판이 어떻게 열렸는지, 어떤 결과로 마무리되었는지 정숙을 중심으로 풀어간다. 정숙은 사실 위안부 할머니에 편견을 가졌던 인물 중 하나다. 딸을 둔 그녀는 위안부 할머니를 돕기 전 TV에 나온 그녀들을 보고 ”어렸을 때 저리 잘못되면 평생 못 고친다”는 상식 밖의 얘기를 하던 여자였다. 이 발언으로 과거를 숨긴 채 정숙의 집안일을 돌보는 위안부 피해자 정길(김해숙)의 아직 치료하지 못한 마음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만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목적 중 하나는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는 아니되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크지 않거나 잘못된 인식이 있는 이들이 경각심을 갖게 하는 데 있다. 궁극적으로 <허스토리>와 같은 위안부 피해 소재 영화들의 목적은 여기에 있다. <허스토리>가 다르다면 피해 할머니의 아픔에 분노하고 그들과 연대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조력자를 카메라의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이다.

 

당사자가 아닌 만큼 정숙의 입장에서 진행하는 이 영화에는 기존의 위안부 소재 한국 영화가 클리셰처럼 다뤄왔던 몇 가지 요소가 빠져있다. 1991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로 카메라를 가져가는 것과 같은 과거 시점에 함몰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피해를 자세하게 묘사하는 방식을 피해간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피해 역사의 흔적은 관부 재판에서 한 진술과 몸에 남아 있는 상처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이끈다. 이들 할머니의 피해를 일회용의 값싼 감정 배설의 이미지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게 하나요, 더 중요하게는 다시금 생각하기도 싫은 당사자의 피해의 상흔을 괜한 정의감에 사로잡혀 들쑤시지 않겠다는 태도다.

 

오히려 묘사하지 아니하고 회상하지 아니하고 피해 당사자의 시선을 취하지 아니함으로써 감정으로만 접근해서는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다. 현재진행형의 사건으로 끌고 가 당사자는 물론 이들과 같은 하늘 아래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으로 확장, 과거 위안부 소재 영화가 가졌던 한계를 넘어선다. 이런 영화의 정체성은 제목에서 확연하다. 얼핏 보면 역사를 뜻하는 ‘히스토리 history’로 보이지만, ‘허스토리 herstory’로 지어 과거 역사의 문제로 제한하지 않고 그녀(Her)라는 대명사 격이 갖는 일반의 관심사로 이끌어 동시대의 여성 이야기로 확정하는 것이다.

 

<허스토리>의 영화적 정체성은 정숙의 얼굴을 비추며 끝내는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녀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노력한 일련의 활동에 경의를 표하는 한편으로 더 중요하게 말하는 바가 있다고 이 장면을, 극 중 정숙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해를 아는 것만큼이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인식과 목소리와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 클로즈업된 정숙의 얼굴에서 관객이 주목하는 그녀의 시선은 우리와 눈을 맞춰 연대를 호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허스토리>가 다룬 관부 재판은 위안부 피해 재판 역사상 처음으로 보상 판결이 내려졌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에 불복하는 의미에서 즉각 항소했고 일본대법원은 2003년에 원고 승소 판결을 뒤집어 버렸다. 당연히 피해 할머니들이 가장 강력하게 요구했던 공식 사과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예 위안부 가해 역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아베 정부는 지난 정권의 졸속 합의를 근거로 사과는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위안부 피해의 역사는 아직 끝난 사안이 아니다. 진행형의 역사다. 여전히 그녀들의 이야기가 필요하고 그들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한국인 모두의 역사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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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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