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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생기는) 산책

궁을 산책하다 만난 이들이 알려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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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그를 쫓아가다 세 사람과 마주쳤고, 산책이 끝날 무렵에는 전에 없던 바람이 하나 생겼다. (2018. 06.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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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거리를 두고 앉아, 아주머니와 할아버지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둘은 길 고양이 간식을 번갈아 가며 챙겨주는 눈치였다. “오늘은 간식 없어. 미안하게 왜 안 가고 여기에 있니.” 앉아 있는 정자 근처를 서성이는 고양이들에게 여자가 말했다. 이쪽으로 걸어올 때, 정확히는 이쪽으로 걸어올 예정없이 창경궁을 산책할 때, 한 마리 고양이를 만났다. 녀석이 자꾸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그를 따라 걷게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아저씨가 이런 정보를 줬다. “이 고양이는 반대편 궁에 사는데 잠깐 마실 나온 거예요.” “그렇구나. 얘가 가는 쪽에는 뭐가 있어요?” “저 너머에는 정자가 하나 있거든요. 거기로 자주 놀러 가더라고.” 마실 나온 고양이를 계속 좇았고 그 고양이가 멈춰 선 곳에 나도 같이 앉게 된 거다.

 

이쪽으로 오는 길에 마주친 아저씨처럼 두 어르신도 고양이 정보를 갖고 있었다. 누가 엄마 고양이고, 얘는 누구의 자식이고, 태어난 지 얼마나 되었고, 그런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답할 줄 알았다. 묻지 않은 걸 자세히 말해주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두 사람 쪽에 고양이들이 앉아 있었기에 시선은 그쪽에 두었다.

 

“궁 근처에 사세요?” 내가 물었다. 내내 듣고 있던 사람이 질문을 던진 게 이상했는지, 아주머니와 할아버지는 멈칫거렸다. 오늘 내게 말을 건 세 어른에게 궁금한 것은 한 가지였다. ‘그들은 이 시간에 왜 여기에 와 있지?’ 처음에는 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듣다 보니 아닌 듯했다. 답을 머뭇거리는 여자를 보며 고쳐 물었다. “여기에 자주 산책 오시나 봐요.” 할아버지는 매일, 아주머니는 일주일에 두어 번, 이 궁으로 산책을 나온다고 했다. “저는 상시관람권을 끊어서 한 달에 만 원, 옆에 계신 어르신은 65세 이상이라 무료!” “이 근처에 살고 여기를 매일 산책할 수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두 어른은 고양이를 바라보던 표정으로 나를 보고 웃었다. 나도 그렇게 웃어 보였다. 우리는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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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일어서자 근처에 있던 네 마리 고양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길목으로 나왔다. 넷이 고개를 빼고 어르신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풍경이 영 귀여웠다. 뒤편에 서서 그들의 인사가 끝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며칠 전에 산 고양이 간식이 생각났다. 우리 집 고양이가 먹지 않아 냉장고에 일단 넣어둔 것. 그걸 갖고 나왔더라면 나는 지금쯤 인기 왕이었겠지. 아쉽다, 아쉬워. 집이 근처라면 달려가서 꺼내오고 싶었지만, 집이 멀다. 걔들은 빈 손인 나를 쳐다보다 숲으로, 아래로, 구석으로, 옆으로 사라졌다.

 

오래 쭈그리고 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저렸다. 들어올 땐 머리 위쪽에 떠 있던 해가 기울었다. 이런 식의 산책을 해도 괜찮은 날이었다. 앞서 가다 뒤를 돌아보는 고양이 한 마리를 따라갈 시간이 충분한 그런 산책. 서울에 산 지 10년 째, 산책을 좋아하지만 이런 산책로를 만난 적이 있었나를 생각해보면 비슷한 길은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바다 건너 다른 대륙의 공원들이 생각난 건 왜일까. ‘이번 집 계약이 끝나면 창경궁 근처 부동산을 돌아볼까? 아직 궁을 산책하기에는 이른 나이인가? 좀 더 나이가 들면 시도해볼까? 그때도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까?’ 그런 걸 생각하며 궁을 빠져나오는 길에 자판기가 하나 보였다. 목이 타던 차라 그 앞에 섰다. 어? 레몬 홍차? 지갑에 구겨 둔 천 원 짜리를 꺼냈다. 느릿한 산책을 해서 그런가. 지폐를 넣고 버튼을 누르던 순간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플라스틱 문을 열고 종이컵을 꺼낼 때, 레몬 냄새가 같이 빠져나왔다. 언젠가 와서 또, 마셔야지. 그때는 고양이 간식도 챙겨오고.


“누구나 자기만의 '정원'이 있다. 내 마음을 빼앗고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들로 둘러싸인 곳. 시간과 공간이 허물어지는 곳. 그 속에서 우리는 홀로 조용히 상상하고, 생각하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묻고 답한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내면으로 산책하는 공간. 그곳에서의 쉼이 일상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 백은영 『다가오는 식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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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박선아(비주얼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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