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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의 측면돌파] 몸으로 쓴 고기의 일대기 (G. 한승태 작가)

“절대적으로 약한 상대에게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드러나더라고요” 한승태 『고기로 태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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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신 분은 정말로 ‘몸으로 쓰는’ 작가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노동 현실을 기록해서 르포르타주 『인간의 조건』을 쓰셨고요. 이번에는 ‘고기로써의’ 닭과 돼지와 개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날 것 그대로 기록하셨습니다. 『고기로 태어나서』의 한승태 저자님 모셨습니다. (2018. 05. 31)

채널예스 [인터뷰].jpg

 


누구도 갓 태어난 동물을 쓸모없다는 이유로 폐기처리하는 것이 불가피한 일인지 의심해보지 않았다. 누구도 20년을 살 수 있는 동물을 한 달 만에 죽이는 것이 지나친 일이 아닌지 의심해보지 않았다. 누구도 살이 빨리 찌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물을 죽이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의심해보지 않았다. (중략) 전통도 스스로를 의심해볼 수 있어야 한다. 효율성도 스스로를 의심해볼 수 있어야 한다. 이윤 추구도 스스로를 의심해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의심해보지 않는 존재는 그것이 개인이든 집단이든 시스템이든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다. 

 

한승태 저자의 노동에세이 『고기로 태어나서』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이 책은 식용 동물이 태어나서 도축장으로 보내지기 전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데요. 어쩌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평아리가 산 채로 밟혀 죽고, 작은 돼지가 산 채로 바닥에 패대기쳐지고, 개는 뜬 장에서 평생을 살다 목이 매달려 죽는 일들 말이죠. 어쩌면 너무나 참혹해서, 애써 외면해 온 이야기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 아닐까요. 괴물이 되고 싶지 않다면, 현실을 의심해야 합니다. 과연 이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물어야 합니다.

 

<인터뷰 - 한승태 작가 편>


김하나 : 처음에 육체노동의 현장에 가시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한승태 : 딱히 육체노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갔다기보다는, 우연히 일이 그렇게 풀렸던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이 공무원이신데 저나 저희 형이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셨거든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못 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계속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에 다니는 척하면서 도서관에서 책도 보고 혼자 글도 쓰고...

 

김하나 : 반대가 있을까 봐 글을 쓸 거라는 말을 못하셨던 거예요?


한승태 : 네.


김하나 : 부모님은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셨고요?


한승태 : 네,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고 기대하셨던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부모님과 마찰을 빚었던 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학원 간다고 이야기하고서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서 지내다가 시험 결과가 나올 날이 됐죠. 더 이상 거짓말할 수 없는 순간이 온 거예요.


김하나 : 시험은 보신 거예요?


한승태 : 보기는 했어요. 그런데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죠. 전력 질주했던 것도 아니고. 그래서 말씀을 드리고 집에서 나오게 됐죠.


김하나 : 큰 트러블이 있었나요?


한승태 : 지금은 괜찮은데 당시에는 심각한 트러블이 있었어요. 받아들이지 못하셨죠. 그때 집을 나와서 친구 집에서 지내다가, 방을 구해야겠다 생각했는데 보증금을 구할 수가 없는 거예요. 목돈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생활정보지를 훑어보다가 선원 모집하는 광고를 봤어요. ‘단기간에 목돈 마련 가능’ 이렇게 써 있더라고요(웃음).


김하나 : 낚이신 거예요(웃음).


한승태 :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써 있는 대로 믿었어요(웃음). 그리고 주변에 그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배 타가지고 큰 돈 모아서 돌아왔다고. 그래서 막연히 보증금 모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배를 탔어요. 그런데 제 예상과는 달랐던 거죠. 그렇게 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경험이 힘들고 괴롭기는 했지만 그 안에서 글 쓰는 새로운 영역을 느꼈던 것 같아요. 이전에 혼자서 쓸 때는 약간 틀에 갇혀 있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까, 대한민국 사회라는 극장의 가장 앞자리에서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도 예전에 썼던 글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 학생 때 혼자 쓸 때는 문지방 앞에서 머뭇거리는 느낌이었는데, 현장에 있다 보니까 우연히 그 선을 살짝 넘어갔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원래 행동력이 있으신 편이세요?


한승태 : 행동력이 있다기보다는, 생각하는 걸 싫어해요(웃음). 글 쓰는 데에만 생각을 하고 싶고 다른 분야에 있어서는 그냥 뛰어들고 보는 것 같아요. 제가 긴장도 자주 하고 겁도 많아서 한 번 그러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그냥 그 상황 속으로 밀어 넣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자’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하나 :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거라면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 알바하는 건 납득이 되는데요. 주유소 알바 뒤에 가신 곳은 양돈장이었어요. 양돈장, 양계장, 개 농장까지 아주 힘든 현장들을 찾아다니시면서 글을 쓰셨는데요. 주유소와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양돈장으로 가신 이유는 뭐였어요?


한승태 : 개인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꼭 그런 일만 찾았던 건 아니에요. 책에 나온 일자리는 1년 주기로 찾아갔던 곳인데, 중간 중간 사무직 면접도 봤었어요. 다 떨어지기는 했는데요(웃음). 제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어려워하거든요. 그리고 저는 면접이 너무 무서워요. 그래서 면접을 안 봐도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상관이 없었어요(웃음). 면접을 피하고 돼지 농장에서 일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했어요. 말하자면 육체노동 업계에 대해서 거부감이 덜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스스로 그런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전체적인 그림을 맞춰보고 싶었어요. 1차 산업, 2차 산업, 3차 산업,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 이런 식으로 전체 그림을 짜 맞춰서 삶의 모습들과 이야기를 수집해나가고 싶었어요.

 

김하나 : 지금 누군가가 ‘무슨 일을 하시나요?’라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대답하실 것 같으세요?


한승태 : 작가라고 이야기할 것 같아요. 책을 읽어보신 분들이 제가 노동자인지 작가인지 물어보시기도 하는데요. 저 스스로는 항상 글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제 근본적인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밑바탕 안에서 양돈장에서도 일하고 주유소에서도 일하고 꽃게잡이 배에서도 일했던 것 같습니다.

 

김하나 : 원고를 쓰실 때 손으로 쓰시나요?


한승태 : 네, 손으로 씁니다.

 

김하나 : 그러면 『고기로 태어나서』 를 손으로 쓰셨어요?


한승태 : 네, 최종 원고만 컴퓨터로 옮기고 다 손으로 씁니다.


김하나 : 왜요?


한승태 : 습관이 그렇게 들었던 것 같아요. 일을 하다가 메모를 하게 되는데 전자기기를 들고 다닐 수가 없잖아요. 바로바로 꺼내서 쓸 수 있는 게 필요하다 보니까 손으로 쓰는 데 익숙하고요. 손으로 쓸 때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인데요. 컴퓨터로 쓸 때는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쓰는 느낌이라면, 노트에 쓸 때는 아무도 없는 고립된 상태에서 혼자 쓴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더 솔직하게, 조금 더 편안하게 내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고요. 그런 느낌들이 쌓여서 손으로 쓰기 시작했고요. 손으로 쓰면 고친 흔적이 다 보이잖아요. 그래서 손으로 쓰는 게 더 좋은 것 같고요.

 

김하나 : 『고기로 태어나서』 는 읽기 쉬운 책은 아닌 것 같아요. 문장이 잘 읽히는 것과는 별개로, 그리는 이미지와 받아들여야 되는 현실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쉽게 읽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여러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트라우마가 남지는 않으셨어요?


한승태 :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조금 무딘 면도 있는 것 같고요. 동물들의 사육 환경을 봤을 때 그게 굉장히 예외적이고 충격적인 상황으로 와 닿기보다는, 환경이 굉장히 열악한 일터로 먼저 와 닿았어요. 예를 들어서 죽은 닭이 있다고 하면 ‘너무 불쌍하다, 저 닭에게 저렇게 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 전에 ‘저걸 또 언제 치우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에, 트라우마 이전에 그냥 일거리였던 것 같아요. 오히려 더 무디게 하루하루 버텼던 것 같아요. 항상 ‘이걸 언제 끝내서 퇴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동물들이 너무 불쌍하다, 도와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지만, 그런 감정이 제 정신 상태를 지배할 여지가 없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동물들과 마주하며 지냈던 시간은 나를 약자의 고통에 민감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반대로 나는 무감각해졌다.” 다른 존재의 고통에 대해서 내가 무뎌져간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어떠셨어요? 두렵지는 않으셨나요?


한승태 : 식용 가축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그런 점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평소에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런 일은 안 해, 이런 일에는 반대해’라고 말하는 것과는 별개로 절대적으로 약한 상대, 내가 마음껏 힘을 휘두를 수 있는 대상에게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가 드러나는 것 같아요. 개 농장을 예로 들자면, 개들이 작은 케이지에 한두 마리씩 들어가 있는데...


김하나 : 뜬장이라고 하는 거죠?


한승태 : 네, 철망으로 된 케이지인데요. 지지대가 있어서 1m 간격으로 바닥과 떨어져 있어서 배설물이 아래에 쌓이게 되어 있어요.


김하나 : 개들은 철망을 딛느라 발이 부르터 있고요.


한승태 : 네. 그걸 보면서 정말 불쌍하고 안타까웠거든요. 그래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화도 나고. 그런데 저도 그 안에서 점점 무감각해졌어요. 농장에 있는 개들은 굉장히 심심해해요. 워낙 활동성도 높고 지능도 높은 동물이라 지적인 욕구를 풀고 싶어 하고 활동도 하고 싶어 하는데, 하루 종일 케이지 안에만 갇혀서 그걸 풀 기회가 없기 때문에, 사람이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굉장히 흥분해요. 저도 처음에는 개들이랑 놀아주고 먹을 것도 숨겼다가 주기도 했어요. 평소에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이야기하던 모습대로, 동물을 아끼는 선량한 사람처럼 행동했는데요. 동물농장의 동물은 이름도 없고 번호도 없고 그냥 하나로 뭉뚱그려져서...


김하나 : 사물인 거죠. 생산품.


한승태 : 네. 그러니까 어떤 생명체로 와 닿지 않는 거죠. 그리고 너무 많고 항상 일거리로만 대했기 때문에, 점점 안타까워하고 불쌍하게 여기던 마음이 사라져요. 나중에는 개들이 짖으면 막대기 같은 걸로 개장을 후려쳐요. 그러면 개들이 놀라서 정적이 생기거든요. 처음에 농장에 도착했을 때는 제가 그런 식으로 행동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었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나오더라고요.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케이지 두드린 것 가지고 너무 자책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케이지를 두드려서 자책했다기보다는, 심정적으로는 개들을 때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내 자신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과 실제 내 행동 사이에 이렇게까지 간격이 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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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김하나(작가)

    브랜딩, 카피라이팅, 네이밍, 브랜드 스토리, 광고, 퍼블리싱까지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힘 빼기의 기술』,『15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을 썼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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