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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세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저자 김응빈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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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은 인체의 일부입니다. 결국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관계인데, 자꾸 인간 입장에서만 바라보니 문제가 계속 생기는 것 같아요. (2018.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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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교양서 『나는 미생물과 산다』 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미생물 관련 국내 대중서가 딱히 없는 상황에서, 미생물 박사 김응빈 교수가 20년간 학생뿐 아니라 대중들에게 강연한 미생물 이야기를 좀 더 쉽고 흥미롭게 풀어 썼다. 과학을 잘 모르는 독자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사진, 그림, 도표, 그래프 등 시각 자료를 담아 최근 문제시 되는 병원내 감염이나 조류독감 등 미생물과 관련된 시의성 있는 주제부터 지구에 산소를 처음 선물한 시아노박테리아, 아기의 면역계를 형성하는 모유 속 비피도박테리아, 방사능을 잡아먹는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 범인 DNA를 분석해 내는 테르무스 아쿠아티쿠스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생물 이야기를 실었다. 과학 지식이 많지 않아도 편히 읽을 수 있을 만큼 친절한 미생물학 입문서다.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했는데, 이후 대학원에서는 미생물학을 전공했습니다. 미생물에 어떤 매력을 느꼈나요? 

 

대학교에 들어와서 첫 해부학 실험 시간이었어요. 제가 피를 좀 무서워하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때까지 그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붕어와 개구리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쥐나 토끼 같은 동물은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그날은 하얀 쥐를 실험해야 했는데, 쥐를 죽이는 과정에서 제가 큰 충격을 받았어요. 쥐도 떨고, 저도 떨고…… 그날 실험이 어떻게 끝난 지 모르겠어요. 이후 저는 동물학에서 멀어졌고, 대신 미생물에 끌렸어요. 미생물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그 보이지 않는 생물이 만들어 낸 결과물에 엄청 놀랐죠. 거기에 호기심이 생겨 미생물학을 전공하게 됐고, 미생물을 알면 알수록 그들의 공생하는 삶에 매력을 느껴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류 독감, 구제역 등 동물과 관련된 감염 사건이 2000년부터 자주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AI 바이러스 감염의 원인이라고 하는 철새가 2000년부터 한국을 찾았을 리 없을 텐데요.


대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 중반에 한 교수님이 “앞으로 지구 온도가 올라가면 많은 사람이 해수면 상승을 걱정하지만 진짜 문제는 감염병”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면 연중 감염병에 시달릴 거라 하셨는데, 불행하게도 그게 사실이 돼버린 것 같네요. 보통 우리는 조류독감의 원인을 철새 탓으로 돌리는데, 물론 철새가 AI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AI 바이러스가 왜 우리나라의 닭이나 오리에게만 유독 치명적일까요? 사육방식에 적어도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AI 바이러스가 번식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제공하거든요. 좁은 공간에 가두어 놓고 살만 찌우는 공장식 사육을 생각해 보세요. 닭이나 오리가 아주 좁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살다보니, 스트레스도 쌓이고 면역력도 약해져요. 그런 상태에서 닭 한 마리가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면, 그 바이러스가 다닥다닥 붙어서 사는 다른 닭들에게 옮겨 가는 건 시간문제죠. 그러니 우리나라의 조류 독감은 단순히 철새만을 탓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고보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등 바이러스 사고에 두려움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은, 미생물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육안으로 볼 수 없으니 통제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더 혼란을 느끼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되는 게 아닐까요?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미생물은 인체의 일부입니다. 결국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관계인데, 자꾸 인간 입장에서만 바라보니 문제가 계속 생기는 것 같아요. 인간 세상에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듯, 미생물 세계에서도 좋은 균과 나쁜 균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미생물에 대처하는 방식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요즘 아파트 화장실은 밀폐되어 있어요. 창문이 없죠. 환풍기는 돌아가지만 약해요. 그러니 습하죠. 거기에 따뜻해요. 또 우리 몸에서 떨어지는 각질 등 미생물이 좋아하는 영양분도 많아요. 혹시 여름에 화장실에서 불그스레한 것을 본 적이 있나요? 곰팡이 말고요. 그게 뭐냐면 세라티아 마르세센스(Serratia marcescens)라는 세균 무리에요. 이 세균이 빨개요. 불그스레하게 보인다는 것은 이 세균이 엄청나게 증식했다는 의미죠. 그리고 “물때 낀다”고 할 때, 그 물때는 미생물학 용어로 바이오필름(biofilm)이라고 해요. 다양한 미생물이 겹겹이 붙어사는 모습을 보여주죠. 그런 존재를 인정하고, 또 그들이 증식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자주 청소하면 해결돼요. 조류독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AI 바이러스가 쉽게 옮겨 다닐 수 없을 만큼 닭이나 오리가 튼튼하게 살 수 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겁니다. 그런 식으로 미생물에 관심을 갖고 알아가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면 아는 만큼 두려움도 줄어들 테니까요.


교수님이 특별히 좋아하는 미생물이 있나요?


좋아하는 미생물은 많지만, 지금은 테르무스 아쿠아티쿠스(Thermus aquaticus)를 꼽고 싶습니다. 그게 없으면 우리는 실험을 거의 할 수 없어요. 『나는 미생물과 산다』 에서도 이야기했는데, ‘열’을 뜻하는 그리스어 ‘thermos’와 ‘물’을 뜻하는 라틴어 ‘aqua’에서 유래한 세균명에서 알 수 있듯이, 섭씨 70도에서 가장 잘 자라는 세균이에요. 그래서 DNA를 증폭할 때 꼭 필요하죠. DNA는 두 가닥인데, 열을 가해 이중나선을 떨어뜨리는 과정에서 기존의 효소들은 열에 약해 사용하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열에 강한 테르무스 아쿠아티쿠스가 그 역할을 해 주어 생명공학 발달에 큰 몫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범죄 수사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건 현장에 있는 혈흔이나 머리카락 한 올에 있는 소량의 DNA에서 특정 유전자를 증폭하여 결정적인 증거를 잡잖아요. 이때 테르무스 아쿠아티쿠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는 거죠.


연세대에서 미생물을 가르치신지 올해 20년째가 됐다고요. 최근 출간한 『나는 미생물과 산다』 는 그동안 한교 안팎으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썼다고 들었는데,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나요?


학교에서 전공 필수 과목을 맡고 있는데, 생물학과 신입생들도 미생물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미생물을 배우는 거예요. 그래서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이해시키려고 비유를 많이 들어요. 그러면 학생들도 금방 이해하고 좋아하더라고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는 미생물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한 책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미생물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미생물의 정의부터 종류, 역사 등을 흥미롭게 하나씩 이야기해 준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그렇게 해서 미생물에 대한 인간의 오해를 풀고, 미생물을 제대로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거든요. 마지막으로 미생물이 공생하며 살아가는 방식도 꼭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개인주의 문화가 팽배한 오늘날에 미생물의 공존법은 우리가 배울 만한 삶의 지혜라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미생물과 산다』 의 1부에서는 미생물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는데, 참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미생물 입장에서 그동안 참 많이 억울했을 것 같더라고요.


제가 미생물을 알리려고 학교뿐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강연을 많이 하는데요, 강단에 서면 저를 ‘미생물 변호사’나 ‘미생물 기획사 대표’ 등으로 소개하기도 하고, 미생물을 “우리 아이들”이라고 말하기도 하거든요. 박테리아를 성이 ‘박’ 씨고, 이름이 ‘테리아’인 것처럼 표현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관객들 반응이 참 좋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세균 입장에서 보면 참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레지오넬라 세균은 보통 폐렴을 일으키는 나쁜 균으로만 알고 있잖아요. 사실 그들은 오랫동안 민물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인간이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나려고 민물을 끌어다 에어컨 냉각탑의 냉각수로 이용하면서 민물에서 사는 그들도 억지로 이동한 거죠. 걔네들 입장에서는 강제 이주를 당한 셈이니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그런데 자기들에게 나쁜 균이라는 딱지를 붙이니,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사실 미생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산 생물이에요. 반면 인간은 상대적으로 엄청 어린 존재죠. 미생물이 지구에 산소를 생산해 준 덕분에 오늘날 인간이 숨을 쉬며 살 수 있게 됐는데, 그것도 모르고 자기들을 박멸하려고 그러니 미생물 입장에서는 우리 인간이 얼마나 꼴불견이겠나 싶더라고요. 만약 미생물이 말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겠다 싶었어요. 저는 미생물을 미화하려는 게 아니고, 그런 오해를 풀어 주고 싶었어요.


『나는 미생물과 산다』 에서 다루지 못한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미생물을 모르는 독자들에게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책을 쓰고 싶었어요. 미생물을 잘 모르니까 사람들이 자꾸 미생물은 무조건 나쁜 균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아서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는 미생물의 정의나 종류, 역사 등을 설명하고, 우리가 미생물로부터 어떤 혜택을 누리는지 등을 다룬 재미있는 미생물 입문서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다음에 또 책을 쓸 기회가 생긴다면, 세균 입장에서 결핵균이나 녹농균, 포도상구균 등 병원균을 진화생태학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살펴보고 싶어요. 민족마다 질병에 대한 내성이 다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배탈에 강해요. 보통 설사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죠.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아주 난리가 나죠.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봐요. 우리가 먹는 음식도 그렇고, 문화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만의 특징과 그로 인해 달라지는 미생물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요. 그렇게 조금씩 우리를 괴롭히는 세균들을 알아 가게 된다면, 우리 인간의 대응 방식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미생물학자로서 인간과 미생물이 그만 싸우고, 서로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도록 중매자 역할을 잘 해내고 싶습니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김응빈 저 | 을유문화사
방사능을 잡아먹는 데이노코쿠스 라디오두란스, 범인 DNA를 분석해 내는 테르무스 아쿠아티쿠스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미생물 이야기까지 유익성과 재미를 동시에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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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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