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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타노스는 왜 CG 캐릭터여야 했는가

타노스에게서 목격되는 두 차례 감정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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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거의 흡사하지만, 인간은 아닐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으로 인간 캐릭터를 CG로 구현했던 몇몇 애니메이션에서 언캐니 밸리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2018. 0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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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의 한 장면


 

(*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하 ‘<어벤져스 3>’)에 관해서는 이제 스포일러를 포함해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 개봉 당일(4/25) 오전 7시까지 엠바고가 걸려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스포일러를 피하면 쓸 만한 게 얼마 되지 않는다. 주연급의 슈퍼히어로가 스무 명 넘게 등장하기 때문에 149분의 러닝타임 동안 이야기를 깊이 끌고 가는 데 한계가 있고 온통 파괴 장면에 집중하고 있어 좋게 말해 눈 호강, 나쁘게 말해 ‘상상 그 이상’의 규모로 버티는 인상이 강하다. 그와 별개로 내가 흥미를 느낀 부분이 하나 있었는데 이를 중심으로 글을 풀어갈까 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슈퍼히어로들이 총출동(앤트맨과 호크 아이는 등장하지 않는다!)한다고 해도 <어벤져스 3>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타노스(조쉬 브롤린)다. 타노스는 초인의 능력을 갖춘 마블의 슈퍼히어로들이 모두 달라붙어도 웬만해서는 저지가 되지 않는 말 그대로 ‘슈퍼’ 빌런이다. 막강하기는 해도 물리적인 능력이라는 점에서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타노스의 진가는 감정 조절의 여부에 있다. 관련해 내가 주목한 건 죽음을 대하는 타노스와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대응이다.

 

타노스는 막강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인피니티 스톤 6개를 손에 넣어 절대 파워까지 가지려 혈안이 된 상태다. 그중 한 행성에서 만난 <퍼스트 어벤져>(2011)의 레드 스컬에게 소울 스톤을 넘겨받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맞바꿔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받는다. 그 대상은 타노스의 수양딸인 가모라(조 샐다나)다. 닥터 스트레인지도 유사한 상황에 놓인다.

 

타임 스톤을 보관 중인 닥터 스트레인지는 이를 뺏으러 온 타노스와 타이탄 행성에서 맞붙는다. 어떻게든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던 중 타임 스톤을 넘겨주는 결정적인 계기는 타노스에게서 죽어가는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을 지켜보면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아이언맨을 살리는 조건으로 타임 스톤을 넘기는 데 동의한다. 타노스가 닥터 스트레인지와 같은 입장에서라면 결코 가까운 사람을 살리려고 인피니티 스톤을 포기하는 일 따위는 없다. 이미 가모라의 죽음을 교환 대상으로 삼아 소울 스톤을 얻은 전력이 있다.

 

마치 신이 두 사람의 상황 판단을 보기 위해 마련한 시험에서 다르게 대처하는 결과에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과 악은 모두에게 내재하여 있는 감정이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뀌고는 한다. 감정은 가슴의 영역이라서 이성적으로 콘트롤 하기에는 제한적이다. 그래서 인간은 감정 앞에서 무너지고 그렇지 않은 존재는 감정마저도 이성의 판단으로 제어한다. 그럴 때 판단 기준의 하나는 표정의 여부다. 우리는 인간에게서 표정을 보지만, 그렇지 않은 존재에게서는 표정을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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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의 한 장면

 

 

슈퍼히어로가 인간을 넘어선 능력이 있음에도 인간적인 건 우리처럼 흔들릴 때가 있어서다. 죽어가는 아이언맨을 보면서 닥터 스트레인저가 느끼는 감정은 동료의 죽음이 전달하는 고통과 이를 막을 방법을 찾기 위한 고뇌다. 타노스는 그런 감정까지도 조절한다. 감정에 맥을 못 추는 이성은 자연스러워도 이성에 포획된 감정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럴 때 쓰는 익숙한 용어가 있다. 불쾌한 골짜기 이론으로 불리는 ‘언캐니 밸리 Uncanny Valley’다.

 

인간과 거의 흡사하지만, 인간은 아닐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으로 인간 캐릭터를 CG로 구현했던 몇몇 애니메이션에서 언캐니 밸리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어벤져스 3>에서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타노스에게 적용한 언캐니 밸리였다. 극 중 슈퍼히어로의 대부분은 연기한 배우 그 자신의 모습으로 등장해 자연스러운 표정을 드러낸다. 그와 달리 모션 캡쳐로 구현된 타노스는 표정 변화가 없는 의도적으로 경직된 감정 연기를 선보인다. 타노스의 반대편에 있음에도 CG 캐릭터로 출연하는 로켓(브래들리 쿠퍼)과 그루트(빈 디젤)와 비교해도 확연하다.

 

감정 여부가 인피니스 스톤을 얻는 데 중요한 조건처럼 보이는 <어벤져스 3>에서 타노스는 그 어느 슈퍼히어로들보다 유리한 자격을 갖췄다. 안 그래도 타노스의 이름은 그리스신화에서 죽음을 의인화한 신 ‘타나토스 Thanatos’에서 나왔다. 타노스의 이름 앞에는 ‘죽음의 신’이라는 수식이 붙기도 한다. 아무렴 신이거나 최소 신의 능력에 버금가는 정도여야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법. 근데 짧은 순간, 타노스가 감정을 드러내는 때가 있다. 가모라의 죽음 이후 왼쪽 눈에서 흘리는 한줄기 눈물. 그리고 인피니티 스톤 6개를 모두 모아 엄지와 검지 한 번 튕기는 거로 세상의 절반 인구를 없앤 후 그의 눈에 비치는 허무의 감정이다.

 

원작 그래픽 노블에서 타노스가 세상에 존재하는 절반의 목숨을 앗아가는 이유는 죽음의 신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함이다. 영화에서는 늘어나는 인구 때문에 질서가 깨진 우주의 균형을 맞추려고 생명 절반을 줄이려는 목적임을 드러낸다. 타노스에게 파괴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일종의 땅 갈아엎기의 의미가 크다. 그 과정에서 생긴 가모라의 죽음은 타노스가 죽음의 신임을 증명하는 제의가 아니라 자기 딴에는 우주의 미래를 위해 거쳤어야 할 불가피한 희생이었던 셈이다. 신의 문턱까지 갔지만, 신이 되기에는 2% 부족했던 타노스에게도 일말의 감정이 존재했다! 이러려고 내가 인피니티 스톤 6개를 모았던 건가, 갑자기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타노스는 원작에서 농사를 짓는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타노스에게서 목격되는 두 차례 감정의 정체가 모두 ‘눈’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CG 캐릭터에서 목격되는 언캐니 밸리는 눈에 감정을 반영하는 데 실패한 결과다. <아이언맨>(2008)부터 <어벤져스 3>까지, 마블 스튜디오의 슈퍼히어로물 10년 역사는 할리우드의 컴퓨터 그래픽 능력이 언캐니 밸리를 극복한 그 시간과 얼추 일치한다. 이제는 언캐니 밸리를 의도적으로 활용해 감정을 전달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어쩌면 그와 같은 기술이야말로 <어벤져스 3>와 같은 마블 영화의 신의 존재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지금 슈퍼히어로물의 새역사가 아니라 기술의 새역사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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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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