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재피니즈 브렉퍼스트, 추상화처럼 그린 필청 트랙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 -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자신이 설계한 세상을 탄탄한 구조의 앨범으로 구현하고 잘 계산한 편곡으로 살을 붙여 제격인 보컬로 마무리하니 날의 감정이 그대로 들려온다. (2018. 04. 04)

2.jpg

 

 

다소 난해한 이름의 한국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음악적 영감은 ‘죽음’에서 비롯된다. 암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돌보며 그 이별의 과정을 25분 남짓한 짧은 러닝 타임으로 담아낸 1집 <Psychopomp>에서도, 그 후 1년 만에 발매된 이번 정규 2집도, 중심은 죽음에서 시작된 감정의 서술이다. 화려한 사운드도 없이 부정확한 발음과 노이즈로 가득 찬 선율 속에서 일궈낸 성취가 바로 이 감정의 ‘청각화’인 것이다.

 

저승사자로 번역되는 데뷔작은 추상화에 가까웠다. 대체로 2~3분 정도의 곡들은 서사보다는 순간에 집중했고 감정적이었으며 잔잔하다가도 거칠었다. 장르적 토대는 슈게이징. 「Everybody wants to love you」 같이 일렉트릭 기타로 댄서블한 리듬감을 앞세우고, 「Jane cum」처럼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표현할 때도 바탕에는 웅웅거리는 드론 사운드를 담아 어두운 감정을 살렸다. 여기에 날카롭고 선명하게 내지르는 보컬과 신경질적인 보이스 칼라는 죽음 앞의 불안정함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번 2집은 그 확장판이다. 곡 사이 배치된 인터루드나 노이즈 깔린 사운드 등 기본 골격은 유지하되 음반의 구조를 더 체계적으로 다듬었다. 6분 이상의 재생 시간 동안 총 3번의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반복을 통해 청자를 기묘한 행성 속으로 이끄는 「Diving woman」, 신시사이저와 토크박스로 로봇과 대화하는 설정을 준 「Machinist」, 우주의 소리를 담은 「Planetary ambience」 등 수록곡은 ‘또 다른 행성으로부터의 소리’라는 타이틀을 잘 다져낸다.

 

후반부 「The body is a blade」와 「Till death」 「This house」와 「Here come the tubular belles」의 배경 잡음을 같게 해 두 곡을 한 곡처럼 이어낸 노이즈의 활용도 돋보인다. 이러한 섬세한 편곡은 지나치게 몽롱한 사운드에 힘이 풀리는 「Boyish」 「Jimmy fallon big!」의 연약함을 무마하며 앨범의 얼개를 쌓는다. 2배로 늘린 재생시간 동안 호흡을 쌓고, 음색만 바뀐 재니스 조플린인 양 절절하게 부르는 「Till death」는 그래서 필청 트랙이다.

 

직접 어머니와 죽음에 관해 언급하는 건 두곡 뿐이지만(「Till death」 「This house」) 거기서 파생된 감정들을 전반에 고루 적어냈다. 서정성의 매개체인 ‘행성의 소리’라는 설정과 잔향 가득한 편곡도 훌륭하다. 자신이 설계한 세상을 탄탄한 구조의 앨범으로 구현하고 잘 계산한 편곡으로 살을 붙여 제격인 보컬로 마무리하니 날의 감정이 그대로 들려온다. 작년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한 고 조동진의 <나무가 되어>의 해외판 소규모 슈게이징 버전.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의 대표작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이 오마주한 시집. 황유원 시인의 번역으로 국내 첫 완역 출간되었다. 미국 20세기 현대문학에 큰 획을 그은 비트 세대 문학 선구자,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스타일을 최대한 살려 번역되었다. 도시 패터슨의 역사를 토대로 한, 폭포를 닮은 대서사시.

본격적인 투자 필독서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경제/재테크 최상위 채널의 투자 자료를 책으로 엮었다. 5명의 치과 전문의로 구성된 트레이딩 팀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최신 기술적 분석 자료까지 폭넓게 다룬다. 차트를 모르는 초보부터 중상급 투자자 모두 만족할 기술적 분석의 바이블을 만나보자.

타인과 만나는 황홀한 순간

『보보스』, 『두 번째 산』 데이비드 브룩스 신간. 날카로운 시선과 따뜻한 심장으로 세계와 인간을 꿰뚫어본 데이비드 브룩스가 이번에 시선을 모은 주제는 '관계'다.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을 황홀하게 그려냈다. 고립의 시대가 잃어버린 미덕을 되찾아줄 역작.

시는 왜 자꾸 태어나는가

등단 20주년을 맞이한 박연준 시인의 신작 시집. 돌멩이, 새 등 작은 존재를 오래 바라보고,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시선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불협화음에 맞춰 시를 소리 내어 따라 읽어보자. 죽음과 생,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우리를 기다린 또 하나의 시가 탄생하고 있을 테니.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