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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은 신체를 넘어 영혼까지 파괴한다

『굿바이, 세븐틴』 펴낸 최형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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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듯 ‘굿바이’는 어떤 것과의 이별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한 시기와의 결별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과의 결별일 수도 있습니다. (2018. 0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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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문단을 비롯하여 공연, 연예, 종교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밝혀지고 있는 성폭력 피해는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할 만큼이다. 여성들의 ‘미투’에, 남녀를 불문하는 ‘위드유’가 가세하면서, 이제는 세상이 바뀔까 기대도 품게 된다. 그러나 그 오랜 세월, 많은 여성들을 악몽에 시달리게 했던 성폭력은 두고두고 응징돼야 할 범죄행위일 것이다. 소설 굿바이, 세븐틴』 은 사회가 눈감았던 성폭력 가해 남성을 응징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최형아 작가는 “피해자가 숨고, 가해자가 당당한 사회는 잘못된 사회”라고 잘라 말했다.

 

최형아 작가는 전남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를 졸업했다. 2005년 「에스코트」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16년 소설집 『퓨어 러브』 를 펴냈다. 사회적으로 위기에 처한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섬세하게 응시하는 문체로 이야기의 울림을 키우는 작가라는 평을 받았다.


데뷔는 2005년이었는데, 무려 13년 만에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출간하는 겁니다. 첫 장편 소설을 출간하게 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 소감이 어떠신지요.

 

굉장히 기쁘고 뿌듯합니다. 출발이 늦은 만큼 기쁨도 두 배가 된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쓰다 보면 몇 년에 한 번씩 어떤 고비가 있는데 제게 2017년이 아주 큰 고비였습니다. 첫 데뷔 후 줄곧 장편 공모전에만 매달리다 보니 최종심에 올라갔다 떨어지는 일들이 매해 반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엔 혹 당선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뀔 때, 한동안 몸이 아플 정도로 마음이 흔들립니다. 다시 힘을 내야 하는데, 어떻게 힘을 낼 수 있을까. 다행히 저에겐 서랍 속에 쌓인 작품이 많았습니다. 오랜 습작 기간과 무명의 시간이 흔적처럼 제게 남겨준 보물들이었지요. 그것들을 어떻게든 세상에 내보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출간을 결정해준 출판사를 만나기까지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랬기에 지금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저의 이 기쁨과 설렘이 보다 많은 독자들과 행복한 교감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봅니다.


최근 ‘OO(계) 내 성폭력’ ‘미투(MeToo)’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폭력이 폭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침묵 대신 복수를 택한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굿바이, 세븐틴』 이 출간되었는데요. 처음 이 소설을 어떻게 구상하고 집필하게 되셨는지, 책을 출간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현재가 굉장히 불안하고 우울한 한 여자의 내면 풍경을 떠올린 적이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부러워하고 칭송하는데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는 그 여자의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그런 깊고 어두운 불행이 어디서부터 왔을까 생각해보다가 이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가장 끔찍한 폭력은 ‘성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매우 일상적으로 일어납니다. 물론 거기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다양한 인간관계, 힘의 역학관계들이 존재하지만 우선 이렇게 말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폭력이 파괴하는 것은 그 사람의 신체가 아니라 영혼이다, 라고. 그것이 얼마나 파괴적인 위력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고. 그렇지만 우리는 그 폭력의 결과에 대해 아주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런 작가의 집필 의도를 읽어준 출판사를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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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세븐틴』 이란 제목은 집필 때부터 정해놓고 쓰셨던 건지, 제목의 의미와 뒷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굿바이, 세븐틴』 은 출간 전 마지막으로 선택된 제목입니다. 처음 초고를 탈고했을 때 제목은 <세븐틴>이었습니다. 열일곱 살에 끔찍한 성폭력을 경험한 주인공의 파괴된 내면과, 그 이후의 끝나지 않는 고통을 보여주는 데 소설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고를 탈고하고 여러 번 수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복수의 서사’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때 비로소 제목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듯 ‘굿바이’는 어떤 것과의 이별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한 시기와의 결별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과의 결별일 수도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굿바이, 세븐틴』 은 주인공 윤영 자신의 끔찍했던 열일곱 살의 기억과의 결별임과 동시에, 가해자였지만 아무런 단죄를 받지 않고 살아온,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성폭력을 일삼고 있는 사내 D에 대한 응징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제 막 열일곱 살이 되어 한껏 꿈에 부풀어 있는 ‘세영’이라는 소녀와 여성으로서 연대를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얼굴과 가슴, 심지어 성기까지 여자들의 성형만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성형외과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취재하실 때 에피소드나 느끼신 게 있다면 들려주세요.

 

현대 여성에게 성형은 더 이상 낯선 영역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여성 병원을 찾았던 경험을 계기로 육체적 외형만을 중시하는 피상성의 시대적 현상에 대해 주목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들만의 외모와 성적 트러블을 갖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외과적 성형을 감행하는 욕망 속엔 여성으로서 자신의 성적 가치를 높이고 싶다는 욕구가 숨어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치료적 필요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남성들의 성적 만족을 위한 것에 보다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순결이나 정조에 대한 가부장 사회의 엄격한 요구와 그것을 자기도 모르게 내면화해버린 여성들의 강박, 타인들의 성적 만족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의 성을 대상화, 혹은 도구화해버린 여성들에 대한 연민, 그 안에 들어 있는 그녀들의 다양한 사연들에 여성 작가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인터뷰나 자료에 의존한 취재는 어려웠지만 소설 전편에 여성들의 성형 욕망과 세태를 어느 정도 보여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에서 서른아홉 살의 여자와 열일곱 살 소녀의 교감과 연대가 반갑게 다가왔습니다. 지금 열일곱 살 소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조금 추상적인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주장하는 여성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성희롱이나 성차별적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단호히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태도를 기르고, 오랜 시간 동안 여성들이 세상 속에 어떤 위치에 있었고 어떤 성 역할들을 내면화해올 수밖에 없었는지, 진지하게 공부하며 생각해보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여성 인물들이 등장하는 문학작품이나 여러 가지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이 소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삶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데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본문에서 ‘사람은 반성이 없는 한 점점 나쁜 쪽으로 진화할 뿐이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공교롭게도 최근 폭로된 유명 연출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성폭력과 맞물려 곱씹게 되는 문장입니다. 이러한 사태와 더불어 미투 운동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성차별과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미투’와 ‘위드유’로 연대해가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몹시 아프면서도 반갑고 희망적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변화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욕망과 앞으로의 실천 의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폭력에 대한 뒤늦은 저항이지만 이제 시작이니까요. 개인적으론 최초의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단죄가 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단죄되지 않은 폭력은 미래의 폭력을 용인하는 메시지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 소설 속 가해자로 등장하는 사내 D 또한 원초적 본능이라는 무지한 욕망에서 비롯된 첫 폭력이 무마되는 경험을 겪으면서, 더 교묘하고 더 악랄하게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여성들을 추행합니다. 아무런 죄의식이나 두려움도 없이. 피해자가 숨고 가해자가 당당한 사회는 분명히 잘못된 사회입니다. 더 많은 여성들이(남성들도 더불어) 이러한 현상을 지적하고 연대해야 하겠고, ‘미투’와 같은 고백이 피해자를 더 궁지에 몰아넣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더 갖추어지길 소망합니다. 지금처럼 여성들이 고통스럽게 자신을 발가벗기지 않아도 가해자가 처벌될 수 있는 법적 보호 장치의 마련 같은 것이 그것이겠죠. 미투 운동의 본질을 훼손하는 그 어떤 왜곡이나 공격에도 반대합니다. 저 또한 여성 작가이고 여성으로서 무수한 성적 폭력을 경험하였으니까요. 어떤 경우엔 그것이 성적 폭력인지도 모르고 지나갔고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겪은 크고 작은 성폭력들이 나의 여성성을 왜곡하고 현재의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고, 그것은 결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앞으로 독자들에게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가진 작가, 우리 삶 속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쉽게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작가, 아름다운 문체를 지닌 작가, 소소한 일상의 갈등에서부터 사회적 이슈를 담은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써낼 수 있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말하고 보니 역시 너무 어려운 꿈이네요. 하지만 꾸준히 그 방향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싶습니다.

 


 


 

 

굿바이, 세븐틴최형아 저 | 새움
더 이상 어리고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고통받았지만 자신의 힘을 키워서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복수를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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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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