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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으로 자주 외출하는 저자들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편집자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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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지방의 해변에서 읽기에도 썩 괜찮은 책이다. 꼭 심각한 표정, 비장한 마음으로 '인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2018. 0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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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소와 엄은 인기에 목말라 있다. 간간히 팬심을 보여주는 독자들의 메일을 받곤 하지만 프랑소와 엄의 기대치에 못 미치고 있다. 두 번째 고군분투하는 심정으로 인터뷰이를 찾아 나섰다. 주인공은 바로 메일 서명란에 엄청난 문장을 적어놓은 편집자 K다. K와의 인연은 1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쿨한 외모에 다정한 말투, 그녀는 책을 정말 좋아서 만드는 사람처럼 보였다. 우연히 페친을 맺고 알게 된 사실. 그의 딸 이름과 프랑소와 엄의 아들 이름이 같지 않은가! 어쩐지 그와의 만남은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나저나, 그 엄청난 문장이 궁금하지 않은가? 어서 빨리 이 인터뷰를 읽어보도록 하시라. 아 참, 그가 기획하고 편집한 책의 제목은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 다. K의 엄청난 문장과 상통하는 책이기도 하다.

 

 

‘의식의 흐름대로’ 묻다  

 

목차를 읽고 깜짝 놀랐다. 아, 이 책은 내가 안 읽으면 안 되는 책이구나! 생각했다. 허겁지겁 읽다가 다시 숨을 고르고 천천히 읽었다. 편집자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라. 일단 묻겠다. 어떻게 기획한 책인가?

 

2016년 봄이었던가? 사회학, 과학, 인류학, 교육 등 여러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휴머니즘'을 엮어 보면 어떨까 싶어 기획안을 썼다. 써놓고도 어떤 책이 될지, 실감이 안 나던 와중에 백남기 농민이 소천했다. 2015년 겨울, 백남기 농민 사건이 일어난 뒤 이를 둘러싼 갖가지 행태를 지켜보면서 '인간이라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결국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보고 내 안에서 뭔가가 퍽 하고 터지는 것 같았다. 인간이 인간 아닌 것이 되는 순간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휴머니즘'이라는 두루뭉술한 접근이 아닌, 다분히 감정적인 접근으로 인간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기획안을 다시 썼다.

 

필자 여덟 분에게 글을 받았다. 청탁 과정이 궁금하다.


아, 편집자란 책을 내고 나면 그 어려웠던 과정들은 까마득해지기 마련인데. 프랑소와 엄을 위해 기억을 상기해보겠다. 아마 2016년 10월쯤에 첫 청탁 메일을 쓴 것 같다. 그 메일을 시작으로 반 년에 걸쳐 총 24명 작가에게 집필을 부탁했다. 꼭 3배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 들어간 작가들이 청탁 우선 순위 뒤쪽에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애초에 여성과 남성 작가 반반에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해 글을 싣고자 했다. 그 조건을 맞추려다 보니 유독 섭외가 잘 안 되는 연령대에서 작가를 찾고 기획안을 보내는 횟수가 늘어났다.

 

앗, 그렇다면 16명에게 거절당한 것인가? 믿을 수 없다. 당신의 메일을 받으면 나는 기분이 좋아서 조금이라도 빨리 회신을 주고 싶던데.


(웃음) 편집자로서 거절당하는 덴 이골이 났다. 밀린 계약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안 나서, 주제를 풀어낼 자신이 없어서 등등.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기획안이 안 당겼거나 출판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거절한 분도 있을 거다. 바로 거절 메일을 보내 오는 작가도 있었지만, 한참을 뜸 들이다 거절한 분, 처음엔 쓰겠다고 한 뒤 며칠 혹은 몇 주 뒤 못 쓰겠다고 연락해 온 분도 있었다.

 

청탁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필자가 있나?


가장 마지막에 청탁한 천주희 작가다. 첫 메일에서 확답을 하진 않았지만 기획안에 호감을 표하셔서 쓰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열흘 뒤쯤 아무래도 참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메일이 왔다. 몇 차례 다시 생각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했으나, 쓸 수 없는 처지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정중한 거절의 말에 더는 매달릴 수가 없었다. 기운이 쪽 빠졌다. 또 다시 다른 작가를 찾고 그 작가의 저작물들을 읽고 청탁 메일을 쓸 엄두가 안 났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밤 깊은 시각 천주희 작가에게서 문자가 한 통 왔다. "거절 메시지를 보내놓고 계속 마음에 남았다"면서 마감 일자를 조금만 늦춰준다면 '장애'를 주제로 써보겠다는 거였다. 어지간히 진이 빠져 있던 터라, 집필 수락 답변을 받고 가장 기뻤던 순간이다.

 

필자를 선정한 기준은 무엇이었나?


가장 우선한 기준은 '백면서생이 아닐 것'이었다. 분야가 무엇이든 간에 홀로 공부하는 사람이 아닌, 다양한 이들과 소통하고 책 밖으로 자주 외출하며 '함께' 배우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런 분들이라야 '생활의 감각'이 짙게 배어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강연 등을 통해 독자와 부지런히 만나고, SNS 상에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분들 위주로 섭외하게 되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책 작가 대부분이 SNS 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들이다.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의 성격은 대중서였다. 인간 자체에 대한 만만치 않은 사유를 자기 경험에서 출발하는 구체적인 언어와 감각으로, 재미있게 풀어냈으면 했다. 필자들에게도 그 점을 거듭 강조했고, 다소 거칠더라고 ‘감정적으로’ 써도 좋다고 말했다.

 

프랑소와 엄은 항상 마감에 집착하기 때문에, 가장 빨리 원고를 준 필자가 몹시 궁금하다.


섭외 시점이 달라(처음 청탁한 분과 마지막 청탁한 분이 8개월 정도 차이 난다) 가장 빨리 원고를 주신 분보다는 청탁하고 원고를 받기까지의 기간이 가장 짧았던 작가를 말하는 것이 낫겠다. 청탁하고 원고를 가장 빨리 써서 보내주신 분은 정지우 선생님이다. 참고로 기획안이 나온 직후 2016년 10월에 섭외하면서 말씀드린 마감일을 칼같이 지켜주신 분은 강남순 선생님이었다. 마감 잘 지키는 작가들, 각별히 사랑한다.

 

역시! 실은 고백하자면 프랑소와 엄은 강남순 선생님을 무척 좋아하고 신뢰한다. 독자로만 만나왔지만 언젠가 꼭 만나고 싶다.


오호, 그런가? (웃음) 이 지면을 꼭 보여드려야겠다.

 

어려운 질문이겠지만, 유독 감탄했던 원고가 있었나?


곤란해서라기보다는 정말 모든 원고에 빛나는 부분이 있어서 하나만 꼽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학 때 시를 가르치는 교수님이 "단 한 문장만 있으면 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단 한 문장이 작품 전체를 살린다는 얘기였다. 빛나는 하나의 문장은(통찰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미숙하거나 평범한 나머지 문장까지 압도한다. 취향 때문이건 '잘 쓴 글'에 대한 나름의 기준 때문이건 어떤 독자는 이 책의 여덟 편 글에서 편차를 느낄 수도 있을 테다. 그럼에도 여덟 편의 글은 예외없이 어느 한 지점에서 반짝이는 사유가 터져 나온다.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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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대표하는 하나의 글귀를 뽑아준다면?


전성원 작가가 글쓴이들을 대표해서 쓴 서문의 한 구절을 꼽겠다. "증언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증언이 결여하고 있는 것에 있다." 조르조 아감벤의 말에 기대어 쓴 문장이다. 인간이란 게 무엇인지 100인에게 묻는다면 100개의 답이 나올 것이다. 100개의 답의 가치는 아직 답해지지 않은 무수한 나머지 답에 있다. '증언이 결여하고 있는 것'은 아직 말해지지 않은 증언, 말할 수 없었던 증언이다. 더 많은 사람이 인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각자의 답을 찾는다면,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줄어들 것이다.

 

표지 이야기를 해보자. 눈치를 이미 챘을 지도 모르겠지만 <프랑소와 엄의 북관리사무소>는 표지가 예쁘지 않은 책은 소개하지 않는다. 왜냐, 표지가 예쁘지 않으면 예쁜 지면이 나올 수가 없다. 듣기로 K는 표지 디자인을 단번에 정했다고 들었다. 확신이 있었나?


스스로를 미감이 떨어지는 인간으로 평가한다. 그래서 표지를 고를 때 확신을 갖지 못하는 편이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좋은 게 맞나? 늘 의심한다. 그런데 사람 인(人) 자를 그래픽화 한 이 책 표지 시안들을 받았을 때 머뭇거림 없이 "아, 이거 좋다!" 외쳤다. 어느 독자의 해석으로 뒤늦게 발견했는데, 인(人) 자 꼭짓점마다 찍힌 붉은 점이 8개더라. 하나의 꼭짓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어지는 선은 여덟 명의 작가, 여덟 개의 목소리가 '사람'이라는 주제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단순하면서도 심오하지 않은가!

 

왠지 지금까지 만든 다른 책들과는 좀 더 큰 애정이 느껴진다. 출간 후의 편집자 마음이 궁금하다.


여덟 분 저자와의 작업은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여덟 분 모두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남다른 분들이다. 글뿐만 아니라 현실에서의 태도 역시 그랬다. 글과 삶이 다르지 않았다. 작업하는 과정 내내 정말이지 크고 작은 부분에서 놀랐고 부끄러웠고 감동했다. 멀리 있는 타인에겐 관대하고 공정한 사람이 가까운 타인에게 함부로 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여덟 분은 마지막까지 편집자를 배려하고 나의 사정을 깊이 헤아려주었다. '진짜 공부'는 사람을 저렇게 만드는 거구나, 더 겸손하고 더 따듯하고 더 너그러운 태도를 갖게 하는구나, 새삼 깨달았다.

 

2018년, 몇 쇄까지 기대하나?


(웃음) 사실 큰 기대가 없다. 그래도 기대해본다면? 이라고 묻는다면, 그래도 기대가 없다. 숱하게 배반당한 덕에 판매 부분은 득도했다. 할 수 있는 한 독자에게 가 닿으려 애쓰지만, 판매는 내 손을 떠난 운이라고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그게 정신 건강에도 좋고, 지치지 않고 다음 책을 만들 수 있다.

 

웃픈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영광스럽게도 프랑소와 엄의 관리에 들어간 책 아닌가? 기대를 좀 해달라. (웃음) 자, 이제 대놓고 어필하는 시간이다. 특히 어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


음, 특정 상황에 놓여 있는 독자라면, 이 책보다는 문학을 권하고 싶다. 읽는 이의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문학은 가장 멀리 돌아 가장 정확하게 마음에 착지하는 장르니까. 사실 '인간'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그렇게 신나고 재미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모르는 존재인데, 그렇다고 딱히 알아야 한다거나 알고 싶지도 않고. 인간이란 게 너무 자주 징그럽고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 묘하게 인간이라는 존재에 감동하게도 된다. 한없이 어리석고 나쁘고 구제 불능인 인간이 그런 자신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려는 분투가 곳곳에서 느껴져 눈물겹기까지 하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회의가 바닥까지 내려간 독자와 인간에게서 희망을 찾는 독자 모두 읽어보면 좋겠다.

 

정말 궁금했던 질문이다. 당신은 메일 서명에 다소 심오한 문장(“좋은 책을 만들기 이전에 책을 통해 좋은 사람 되기”)을 달아 놓았다. 이런 문장을 써놓으면 메일을 받는 사람이 당신에게 거는 기대가 크지 않나? 왜 이 문장을 달아 놓았나?


앗, 프랑소와 엄의 예리한 지적에 뜨끔했다. 책을 통해 좋은 사람 되는 게 좋은 책 만드는 것보다 100배는 어려운 일인데, 어쩌자고 이런 무시무시한 내용을 서명으로 썼을까! '되고 싶다'도 아니고 '되기'라니...  이 서명을 꽤 오래 사용하고 있는데, 이걸 메일 말미에 붙이면서는 성의 없거나 불친절한 메일은 절대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사무적으로, 혹은 까칠하게 메일을 써놓고 마지막에 이 서명이 붙어 있는 걸 보면 그대로 보낼 수가 없더라. 말할 것도 없이 책은 사람이 쓰고 만든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좋은 책'보다 '좋은 사람'이 먼저다. 결과만 봤을 때 그 둘이 언제나 등호로 연결되지는 않을지라도. 내 자신이 좋은 책 잘 만드는 능력 있는 편집자이기보다는 같이 작업하는 이들부터 세심하게 헤아리는 좋은 사람이길 바란다. 책 많이 읽고 공부 많이 한 분들의 오만과 불친절을 간혹 본다. 읽는 책, 만드는 책이 독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경계하는 마음으로 이런 서명을 붙였다......고 부랴부랴 부연해본다.

 

<월간 채널예스> 독자들은 책 좀 읽는 사람들 아닌가? 독자 분들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얼마 전 동생이 휴가지에서 내가 만든 책을 읽더라. 아무래도 휴가를 보내면서 읽을 책은 아닌 것 같아 다른 책을 추천했더니, 이미 읽기 시작했다며 사양하더라. 그런데 동생은 어린 아들을 돌보는 틈틈이, 수영을 하다가 돌아와서, 이동 중에 그 책을 내내 손에 쥐고 있더니 사흘 만에 다 읽어버렸다. "재미없으면 다른 거 읽으려고 했는데, 멈출 수가 없더라. 묵직한데 재밌다"라면서, 어떤 대목에서 감탄하고 자극을 받았는지 얘기를 이어 갔다. 그러니까, 내가 독자들에게 하려는 말은, 이 책이 주제가 묵직해서 그렇지 열대지방의 해변에 누워 따뜻한 바닷바람을 느끼며 읽기에도 썩 괜찮은 책이라는 거다. (웃음) 꼭 심각한 표정, 비장한 마음으로 '인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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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홍세화, 하승우, 류은숙, 전성원, 정지우 저 외 3명 | 낮은산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8명이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 생물학적 인간 종(種)을 넘어 '윤리적 인간'이 되는 길을 고민한 사유의 흔적을 담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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