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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의 측면돌파] 『고고심령학자』는 ‘공부 활극’이에요 (G. 배명훈 작가)

“‘고고심령학’은 계속 쓸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어요” 배명훈 『고고심령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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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주 두터운 팬층을 갖고 계신 소설가를 한 분 모셨습니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분들, 혹은 ‘나는 장르소설을 잘 안 읽는다’ 하시는 분들도 모두 이 분의 작품을 좋아하시죠. 『타워』, 『안녕, 인공존재!』, 『예술과 중력가속도』, 『고고심령학자』 등 수많은 작품을 쓰신 배명훈 소설가님 모셨습니다. (2018.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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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기가 정점에 머무는 순간은 기껏해야 이 초도 안돼요. 그 다음은 그냥 바닥에 툭 던져 놓는 거예요.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요, 그 사람이 정말 얼마나 훌륭해 보이는지 몰라요. 그걸 들어 올리는 데 성공해서가 아니라 한계점 근처에 서 있었다는 것 때문에요. 진짜로 위대해지는 지점은 한계선을 넘어선 이후가 아니라 그 한계선 근처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거든요. 사실은 거기가 더 높은 지점인 거죠. 저 위쪽 어딘가 한계를 넘어선 존재들이 유유히 떠다니는 곳보다 더. 

 

배명훈 소설가의 『신의 궤도』 속 한 구절이었습니다. 역기를 들어 올리는 일에 대한 비유가 나오는데요. 삶을 견뎌내는 것도 그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오늘 정점에 이르지 못했다고 해도 초조해하지 마세요. 당신은 더 높은 지점, 진짜로 위대해지는 지점에 있었던 거니까요.

 

<인터뷰 - 배명훈 작가 편>


김하나 : 최근에 제가 『고고심령학자』 를 읽었습니다. 의외였어요.

 

배명훈 : 어떤 점이요?


김하나 : 많은 SF 작가들이 SF가 ‘공상과학’으로 번역되는 것에 불만이 많잖아요.


배명훈 : 네, 많아요.


김하나 : 특히 science fiction, 과학소설에서 비롯된 말인데 ‘공상’이 붙으면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은데요. 제가 『고고심령학자』 를 읽어봤더니 심령의 부분, 정말로 유령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조금 놀랐어요.


배명훈 : 그렇죠...?


김하나 :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초자연적 현상이 일상에서 발생하고는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배명훈 :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고요.


김하나 : 설정인 거군요.


배명훈 : 네. 사실 과학소설의 범위가 꽤 넓어요. 과학 부분이 강조되기는 하지만. SF가 역사가 되게 길잖아요. 대한민국 역사보다 긴대요. 사조라고 해야 할까요, 어떤 면을 더 강조하는 시기가 있어요. 그 중에 과학을 강조했던 시기가 분명히 있고요. 그러다가 조금 성찰적이거나 문학적인 면을 강조하던 시기도 있고, 여러 시기가 겹쳐져요. 그러면서 폭이 굉장히 넓어졌는데요. 『고고심령학자』 는 과학소설이냐,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요. 과학소설이 아니라고 읽어도 무방하기도 한데, 일단 해설을 써주시면 정소연 작가님이 과학소설로 생각하고 해설을 해주셨죠. 그때의 중요한 점은 소재가 심령학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심령학에 접근하는 태도는 과학적인 방법론이라는 것, 그 지점이 과학소설에서는 더 중요한 지점인 것 같아요.


김하나 : 『고고심령학자』 가 ‘Go Go 심령학자’가 아니라 ‘고고학’과 ‘심령학’이 만나있는 거잖아요. 설정이 너무 재밌어요. 추락하는 원혼이 계속 나타나기 때문에 워크숍을 할 때 그 영혼을 보고 저 유령의 복식이 어떤지를 기록하잖아요. ‘저 원혼이 어떤 사연으로 억울하게 죽었는가’는 이 학문이 다루는 영역이 아니고, 복식이라든가 ‘어떤 음운으로 말하는가’ 이런 걸 고고학적으로 관찰하는 거잖아요. 일단 이 설정이 너무 흥미로운데요. 이 생각을 처음 하시게 된 때는 언제인가요?


배명훈 : 굉장히 오래됐는데요. 여러분들이 저를 아시기 전부터 있던 거예요.


김하나 : 고고심령학이라는 분과에 대한 아이디어가요?


배명훈 : 네. 예전에 『안녕, 인공존재』 라는 단편집의 「누군가를 만났어」라는 단편이 실려 있어요. 그것도 고고심령학 이야기예요. 그때 고고심령학 이야기를 처음 쓴 건 아니고, 주변 사람들한테만 공개했던 글 중에 ‘고고심령학자’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십여 년 됐죠, 굉장히 오래 됐는데요. 그 글을 공개할 수 있는 형태로 다시 발표를 하려고 「누군가를 만났어」라는 단편을 썼었거든요. 그러면서 ‘이 아이디어는 『타워』처럼 한 30년 간 써먹어야겠다’....(웃음)


김하나 : (웃음) 끌어낼 게 많다고 생각하셨군요.


배명훈 : 네(웃음). 계속 쓸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었죠.

 

김하나 : ‘은경’을 비롯해서 작가님의 소설에는 여성 화자가 많이 등장하는데요. 『고고심령학자』 도 네 명의 여성이 주인공이잖아요. 문인지 박사, 조은수, 김은경, 한나 파키노티라는 학자가 다 여성 화자인데요. 이런 작업을 어려워하는 남성 작가들도 많잖아요.


배명훈 : 그러게요(웃음).


김하나 : (웃음) 작가님은 여성 화자를 등장시키는 게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으세요?


배명훈 :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는데, 분명히 한계는 있죠. 젠더 경험이라고 하는 건 없으니까, 그걸 쓸 수는 없는데요. 그런데 ‘꼭 써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말하자면, 그냥 사람이 등장하는 걸 써놓고 성별을 여자로 하는 거잖아요. 되게 옛날부터 그렇게 해왔었어요. ‘김은경’이라는 인물이 저의 default, 기본값으로 주어지는 주인공인 건데요. 습작하는 기간에 제일 듣기 싫은 이야기 중에 하나가 ‘이거 내 이야기지?’ 아니면 ‘이거 네 이야기지?’라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안 들으려면 성별을 바꿔 놓으면 그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고요.


김하나 : 정말 간단하고 효율적인 장치이긴 하네요.


배명훈 : 네. 그래서 만들어진 여성 주인공인데요. 그리고 같은 이름을 계속 쓰는 건, 소설 쓰려고 붙들고 앉았을 때 주인공 이름을 짓는 게 되게 중요해요. 그게 안 정해지면 진도가 안 나가요. 그런데 그때 아이디어가 없어져요.


김하나 : 그러니까 일단 ‘은경’으로 쓰기 시작하는 거군요.


배명훈 : 네, 우연히 그렇게 됐어요.

 

김하나 : 처음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뭐였을까요?


배명훈 : 글쓰기를 워낙 좋아해서요...


김하나 : 그 글쓰기는 소설은 아니었어요? 아니면 소설이었어요?


배명훈 : 소설도 쓰기 시작했었어요. 그래도 저는 이걸 직업으로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요. ‘과학기술창작문예’로 데뷔한 뒤에도 이걸 직업으로 한다고는 생각을 못했죠.


김하나 : 학자의 길을 걷고 싶으셨던 거고, 취미로 소설을 쓰고 싶으셨던 거죠.


배명훈 : 네. 그래서 가지 않은 한쪽 길, 공부하는 길에 대한 로망 같은 게 남아있어요. 공부하시는 분이 『고고심령학자』 를 읽어보시면 아실 텐데, 이게 ‘공부 활극’이에요(웃음).


김하나 : (웃음) 너무 재밌다. 공부 활극, 너무 좋은데요?


배명훈 : 사람이 공부를 이렇게 잘할 수는 없어요, 사실(웃음).


김하나 : 공부 활극 너무 좋아요. 저 지금 감동했어요(웃음).


배명훈 : (웃음) 이렇게 잘할 수는 없고요. 뭐라고 할까요, 태극권이나 태권도 같은 걸 조금 배워본 사람이 홍콩영화를 보면 느낄 것 같은 느낌 있죠? ‘저건 불가능하지만 내가 조금 해봤으니까 저런 활극에 대해서 더 알 것 같다’ 싶으면서 신나는 느낌의 공부 활극이라서, 약간 제 로망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내가 만약에 공부를 계속 했으면 이런 아름다운 분위기에서, 어려움은 있었겠지만, 이런 걸 이뤄냈을 거야’ 그런 로망을 담은 것 같아요.


김하나 : 만약에 진짜로 공부를 계속 하셨으면 ‘이한철’ 같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계시다가 그만두시고 결국 SF 작가가 되셨을 것 같아요.


배명훈 : 그럴 수도 있죠(웃음).

 

김하나 : 취미가 소설을 쓰는 거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는데요. 이 말을 들은 주변 작가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배명훈 : 보통은 ‘지금도 그게 취미냐, 지금도 재미있냐’ 이런 이야기인데요(웃음).


김하나 : (웃음) 책을 이렇게 많이 쓰셨는데, 여전히 취미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명훈 : 네, 그런 부분이 분명히 아직 남아있어요.


김하나 : 즐거우시군요.


배명훈 : 네, 즐거운 부분이 남아 있고요. 저는 즐거운 영역으로 남겨두려고 애를 썼던 게 있어요. 청탁을 받고 쓰는 게 반복되는 주기로 가면 힘들어요. 그런데 주기를 조금 바꾸면, 내가 먼저 쓰고 청탁이 들어오는 일이 반복될 수 있거든요. 물론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지는 않으니까 먼저 써놓고 지면을 구하러 다녀야 할 때도 있는데요. 적어도 청탁 받기 전에 먼저 글을 써두면 즐거워요. 즐거운 기간이 더 오래 가요.

 

김하나 : 제가 정말 새겨들어야 될 부분인 것 같아요. 저도 그랬던 경험이 있거든요. 쓰고 싶어서 쓰다가 청탁이 들어와서 그 글을 분량에 맞춰서 넘겼었는데, 제가 너무 즐거운 거예요. 이건 정말 너무 좋은 팁입니다.


배명훈 : 주기를 조정하는 게 쉽지는 않은데요. 그래도 즐거우려면 그런 노력이 조금 필요한 것 같아요.

 

김하나 : 제가 독자로서, 특히 여성 독자로서 바라건대 배명훈 작가님이 즐거움과 책무의 균형을 잘 다스리셔서 끝까지 즐겁게 많이, 창작활동을 ‘김은경’과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배명훈 : 네, 감사합니다.


김하나 : 부탁드립니다. 오늘 나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배명훈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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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하나(작가)

브랜딩, 카피라이팅, 네이밍, 브랜드 스토리, 광고, 퍼블리싱까지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힘 빼기의 기술』,『15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을 썼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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