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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작가 엘레나 페란테, 그리고 나폴리 4부작

‘나폴리 4부작’ 완간 기념 문학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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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간되자 전 세계가 ‘페란테 열병’을 앓았습니다. 미국에서만 200만 부가 팔렸고요. HBO에서는 『나의 눈부신 친구』를 배경으로 미니시리즈 8부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엘레나 페란테는 <타임>이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2018.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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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탈리아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엘레나 페란테. 그러나 작가가 나폴리 출신이라는 점 외에 작가의 신상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1992년 세상에 작품을 내보인 이후 한 번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작가는 언론 인터뷰도 드물게 서면으로 하는 정도다. “책은 한 번 출간되고 나면 그 이후부터 저자는 필요 없다고 믿습니다. 만약 책에 대해 무언가 할 말이 남아 있다면 저자가 독자를 찾아 나서겠지만, 남아 있지 않다면 굳이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한 엘레나 페란테는 25년 동안 은둔하며 오직 작품으로만 말하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본명조차 알 수 없는 작가의 정체에 대한 무수한 풍문만이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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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성과 보편성을 함께

 

지난 1월 12일 금요일 저녁, 인문예술공간 순화동천에서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세트』  완간을 기념한 문학의 밤 행사가 진행되었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 마르코 델라 세타 주한 이탈리아 대사의 감사 인사와 앙상블 ‘더 브릿지’의 공연, 번역가 김지우와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의 이야기가 행사를 풍성하게 했다.

 

먼저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주로 인문학을 하는 출판사로 알려져 있지만, 최명희 작가의 『혼불』과 같은 큰 소설도 많이 했다. 엘레나 페란테와 크나우스고르의 소설을 내면서 다시 문학을 시작하고자 한다.”고 말하며 엘레나 페란테의 책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다.
 
“작년에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갔습니다. 그때 엘레나 페란테 책을 출판하는 전 세계 출판사 사장이 모여서 파티를 했습니다. 파티 중간에 에이전시 측에서 한국 책 표지가 가장 아름답다고 이야기했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서점에 많은 책이 있지만 ‘나폴리 4부작’이 특히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이어 마르코 델라 세타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이날 문학의 밤 행사에 대해 “이탈리아 대사로서 정말 행복하다. 평범한 이탈리아 독자로서 말하자면,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이런 성공을 거둘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한 도시인 나폴리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이탈리아의 근현대사를 깊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수하고 특별한 주제를 다루는 소설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한편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을 “이탈리아 문학 전통을 충실하게 잇는 작품”이라고 설명하며 대사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에 속하는 문학 전통을 언급했다.

 

“지방색이 강한 지방 묘사가 뛰어난 것은 이탈리아 문학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는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이탈리아는 통일 된 지 150년 정도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문학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잘 드러납니다. 지역적인 특색이 강하면서도 지극히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인간의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특별성과 보편성을 함께 보여주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엘레나 페란테야말로 그런 재능을 가진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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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모든 것


앙상블 ‘더 브릿지’의 노래 공연에 이어 『나의 눈부신 친구』 ,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등 ‘나폴리 4부작’을 모두 번역한 김지우 번역가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김지우 번역가는 세계가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해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은 페미니즘, 세대 간 갈등, 계급 간 갈등, 지식인의 허상, 역사, 글쓰기, 문학 등 많은 담론을 형성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장치를 작품 속에 남겨놓았다”고 평가하며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작가에 대한 정보를 꼼꼼하게 전해주었다.

 

“엘레나 페란테는 얼굴 없는 작가입니다. 우리가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한 정보는 1950년대 나폴리 태생이라는 것과 고전문학을 전공했다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엘레나 페렌테가 누군지 많이 궁금해 했습니다. 탐사 보도 전문기자인 클라우디 가티는 페란테의 부동산 기록과 작가의 전속출판사 ‘에디치오니 e/o’의 재정상태 기록을 분석해 페란테가 독일문학 번역가인 아니타 라자(Anita Raja)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엘레나 페란테는 1992년 『성가신 사랑』을 출간하며 처음 세상에 나온다. 이후 2002년 『홀로서기』 , 2006년 『어둠의 딸』을 출간하며(‘나쁜 사랑 3부작’) 독자들의 큰 관심을 받는다. ‘나쁜 사랑 3부작’은 30대 평범한 여성이 친구의 어린 딸과 사랑에 빠진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 받고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는 내용이다. 첫 책『성가신 사랑』 출간 이후 10년 만에 『홀로서기』 를, 그리고 이후 4년 만에 『어둠의 딸』을 출간한 것에 비해 ‘나폴리 4부작’은 정확하게 1년 간격으로 전권이 출간되었다. 김지우 번역가는 이에 대해 “‘나폴리 4부작’이 작가가 평생 준비한 역작이 아닐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책이 출간되자 전 세계가 ‘페란테 열병’을 앓았습니다. 미국에서만 200만 부가 팔렸고요. HBO에서는 『나의 눈부신 친구』 를 배경으로 미니시리즈 8부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엘레나 페란테는 <타임>이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엘레나 페란테가 건축에도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인데요. 이탈리아의 건축가 마테오 페리콜리(Matteo Pericoli)는 소설 주인공 ‘릴라’와 ‘레누’의 관계를 건축 디자인으로 형상화 한 ‘나의 눈부신 친구’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은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다. 릴라와 레누라는 두 주인공의 60년에 걸친 우정을 다룬 소설로, 무엇보다 이 소설의 탁월한 점은 두 주인공의 삶과 우정, 사랑이 당시 시대적 상황과 매끄럽게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1권 『나의 눈부신 친구』 는 전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는 격동의 시기 1960년대를 다루는데 특히 브루노의 햄 공장에서 일하는 릴라의 모습을 통해 독자는 당시 노동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는 ‘68운동’과 ‘납탄 시대(Anni di piombo, 1960년대 말-1980년대 초에 걸친 이탈리아의 사회정치적 혼란기)’를 서술하는데 테러의 시대로 많은 사람이 대낮에 공공연하게 죽는 모습을 통해 혼란한 당시의 시대 상황을 절박하게 전하며, 마지막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는 1990년대 이탈리아의 적폐청산 시기를 그린다. 그럼에도 엘레나 페란테는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이 인물을 압도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김지우 번역가는 “리드미컬한 사건위주로 개인이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를 상세히 서술하면서도 역사적인 사건을 통찰력 있게 꿰뚫어 보는 작품”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60년이라는 긴 시간을 통과하는 작품인 만큼 등장인물을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많은 등장인물과 복잡한 인물 간 관계가 소설로의 진입을 다소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려한 김지우 번역가는 간략하게 인물 관계도를 설명하기도 했다. 특히 김지우 번역가는 주인공 레누의 아버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심장하게 지켜보았다. 딸과 어머니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것을 ‘상징’이라고 표현했다.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일 뿐이에요. 상징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만큼 엘레나 페란테의 작품에서는 모계, 즉 딸과 어머니의 관계가 굉장히 부각됩니다.”

 

김지우 번역가는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영화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작품인 <1900년 Novecento>(1976), <몽상가들>(2003), 마르코 벨로치오의 <굿모닝, 나잇>(2003)을 추천하며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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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폴리


이어 앞에 선 이탈리아 출신의 방송인 알베르토는 ‘나의 나폴리, 나의 엘레나 페란테’라는 제목으로 이탈리아에 관한 편안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이탈리아 문학을 위해 노력해주셔서 감사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을 대표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폴리를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나폴리 문화의 힘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탈리아에서 나폴리만큼 문화가 풍부하고 이탈리아 문화 전체에 영향을 미친 도시는 없습니다. 나폴리는 행복을 추구하는 철학자들인 에피쿠로스의 도시, 철학의 도시였습니다. 저는 이런 철학이 나폴리 사람들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폴리는 이탈리아 도시 가운데 잘 사는 편에 속하는 도시는 아니지만 이탈리아 사람 가운데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나폴리는 이탈리아가 통일되기 전까지 독립된 나라였고요. 역사적으로 침략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때문에 여러 문화가 섞였을 뿐 아니라 나폴리 만의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알베르토는 나폴리를 “이탈리아 문화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시내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을 정도로 문화유산이 풍부하며 이것은 이탈리아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나폴리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은 피자가 아니라 커피입니다. 나폴리 사람들에게 커피는 음식 아니고 철학입니다. 나폴리 사람의 사랑표현은 ‘단 둘이 커피 한잔하자.’입니다. 나폴리 사람들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시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커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씀 드릴게요. 나폴리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때 카페에 가서 커피를 두 잔 시킵니다. 한잔은 자신이 먹고 나머지 한잔은 다음 사람을 위해 남겨놓습니다. 기분이 좋으니까 ‘전 세계 사람들에게 커피를 사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 음악과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 즐거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도시, 알베르토가 말하는 나폴리는 그런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알베르토는 이탈리아의 속담을 전하며 이야기를 마쳤다.

 

“나폴리를 보고 죽으라.(Vedi Napoli e poi muori)”

 

 

 


 

 

나폴리 4부작 세트엘레나 페란테 저 | 한길사
감정선은 강렬하고 인물들은 욕망과 분노에 차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지만 소설에는 뜨거운 마그마가 들어 있는 광활한 문장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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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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