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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담배를 원하십니까

전자담배와 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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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 씨는 병원 건물을 나와 버스 정류장에 섰다. 담배 생각이 강하게 났지만 담뱃갑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진 않았다. (2018. 0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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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최 사장님, 아직도 담배 안 끊으셨나 봐요.”

 

데스크 앞을 지나치는 환자에게 김희정 씨가 부드럽게 말했다. 깡마른 얼굴의 남자가 멋쩍은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아, 네…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서요. 끊으려 생각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네요.”


“꼭 끊으셨으면 좋겠어요. 원장님도 여러 번 말씀하셨잖아요.”


“그, 그렇죠. 당뇨병도 있으니 끊긴 끊어야 하는데….”


“새해도 되니 다시 한 번 계획을 꼭 세워보세요.”

 

어린아이를 타이르는 선생님처럼 조곤조곤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간호조무사 앞에서 스무 살은 더 먹었을 듯한 남자는 쩔쩔매며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던 남자가 옆자리에 앉는 순간 김형철 씨는 얼굴을 찌푸렸다. 막 담배를 피운 뒤의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기 때문이었다. 예전이라면 다른 사람에게서 풍기는 담배 냄새를 느끼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도 금연을 하고 나서야 담배 냄새가 그렇게 강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구수하기만 했던 향기가 역하게 느껴진 것은 금연을 하고 한 달쯤 지난 다음이었다. 함께 담배를 피우던 동료와 마주앉아 회의를 할 때면 그에게서 풍기는 재떨이 냄새에 불쾌감을 느껴야 했다. 그동안 자신이 가까이 갈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냄새를 참았을 거란 생각에 김형철 씨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동안 나한테서 나는 담배 냄새를 어떻게 참았어?”

 

김형철 씨가 저녁 식사를 하다가 아내에게 이렇게 물었던 것은 금연을 시작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아내는 새삼스럽다는 듯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한두 해도 아니고 이십 년이 넘었으니 포기하고 살았지 뭐. 당신이 담배를 끊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거든. 이제야 말하지만 그 냄새 때문에 당신하고 각방 쓸까 생각했던 적이 족히 수십 번은 될 거야.”

 

김형철 씨는 다시 담배를 피웠던 날을 떠올렸다. 유월에 끊고 십이월쯤 되었을 때니 거의 육 개월이 될 무렵이었다. 한 해 실적을 결산하는 연말은 직장인들이 압박감을 심하게 느끼는 시기였고, 김형철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갈수록 엄격해지는 연말 인사 평가를 위한 업무 능력 시험을 앞둔 직원들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실적 악화로 본사 직원을 인건비 대비 십 퍼센트 감축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사내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흡연 공간에 모인 부하 직원들은 전날 밤 회식 뒤끝의 숙취가 깨지 않은 부석부석한 얼굴로 숙덕이다 김형철 씨가 다가가면 황급히 흩어지곤 했다.

 

그날은 하반기 사업 결산 보고를 앞두고 하루 종일 긴장했던 차였다. 늦은 저녁 식사 때 폭탄주 몇 잔을 마시고 취한 것이 화근이었다. 숙취 해소 음료를 사려고 들른 편의점에서 나왔을 때 그의 손에는 담배 한 갑이 들려 있었고 다음 날 아침에 두통을 느끼며 잠을 깼을 땐 이미 그 절반이 사라진 뒤였다.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스트레스가 많은 연말까진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새해가 되면 어떻게든 다시 담배를 끊어야 했다. 지난번처럼 병원에서 금연 약을 처방 받아 먹는다면 이번에도 가능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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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담뱃갑을 본 아내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형철 씨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느끼는 불쾌함을 이전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가열담배’였다. 몇 달 전부터 회사 건물 앞에서 굵은 볼펜 같은 스틱에 담배를 끼워 피우는 젊은 직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땐 담배를 끊은 뒤였기에 그냥 지나쳤었지만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기존 담배처럼 태우는 게 아니고 저온에서 찌는 방식이라 해로움이 덜하다고 했다. 김형철 씨의 부서에도 이런 가열담배를 피우는 직원들이 있었다. 최 과장도 그중 하나였다. 점심을 먹으며 그에게 새 담배에 대해 슬쩍 묻자 무엇보다 냄새가 몸에 배지 않는 게 장점이라고 침을 튀겨 가며 이야기했다. 내친 김에 최 과장의 담배를 빌려 한 대 피워보았다. 연기를 들이마실 때 좀 빡빡한 느낌이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그는 그날로 당장 가열담배를 구입했다.

 

새 담배는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예전에 피워본 액상 전자담배는 플라스틱을 물고 피우는 게 어색해 오래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에 비해 이 담배의 빠는 맛은 기존 담배와 비슷했다. 처음엔 기존 담배와 달리 옥수수 찐 듯한 맛이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사흘쯤 지나자 적응이 되는 듯했다. 가장 좋은 점은 역시 냄새가 덜 난다는 것이었다. 새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부턴 기존 담배를 피우는 직원들에게서 나는 역한 냄새가 금연하고 있을 때처럼 심하게 느껴졌다. 냄새가 없어 실내나 자동차 안에서 피운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장 불편한 점은 한 대를 피우고 나서 몇 분간은 충전을 해야 해서 줄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건강에는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틱을 청소하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지만 장점을 생각하면 감수할 만한 번거로움이었다.

 

김형철 씨는 옆에 앉은 남자를 다시 쳐다보았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지 눈 아래가 거무스름했다. 그가 어딜 갔었는지 알 것 같았다. 오래된 건물이라 양쪽 끝에 실외 비상 계단이 있었고 병원은 3층 복도 끝에 위치했기 때문에 계단으로 바로 나갈 수 있었다. 각 층의 계단참은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오기 적당한 장소였다. 사실 김형철 씨도 이곳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두어 번 3층 계단참을 이용한 경험이 있었다. 간호사가 김형철 씨의 이름을 부른 것은 그도 계단참에 다녀오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때였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반백의 의사가 그를 알아보고 미소를 띄었다.

 

“오랜만입니다. 오늘은 무슨 문제로 오셨나요?”


“요즘 연말이라 일이 많은 데다 술자리가 잦아서 그런지 속이 자주 쓰립니다. 지난달 건강검진에서 위내시경을 했을 땐 가벼운 위염 정도라 했고 그땐 증상도 심하진 않았거든요. 급한 대로 약국에서 위장약을 사 먹었는데 아무래도 선생님께 처방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왔습니다.”

 

증상에 대해 몇 가지 문답이 오가는 동안 의사는 익숙한 태도로 타이핑을 치듯 손가락을 책상에 가볍게 두드렸다.

 

“약을 두 주분 처방하겠습니다. 연말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아지실 것 같지만 술은 최대한 줄이셔야 해요.”

 

김형철 씨는 순간 실소를 지었다. 사실 오늘 저녁에도 부서 회식이 있었다. 적어도 남은 열흘간은 의사의 처방을 지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금연은 잘 유지하고 계신가요?”

 

어떻게 하면 예정된 술자리를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그는 갑작스런 의사의 질문에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게, 다시 피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연말에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요.”

 

의사는 김형철 씨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김형철 씨는 순간 담뱃갑과 자신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아내의 표정이 떠올라 황급히 말을 이었다.

 

“다음 달에 업무가 좀 정리되면 다시 끊으려고 합니다. 지난번처럼 선생님께 금연 약 처방을 받으려고 해요. 당분간은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아이코스 말씀인가요?”


“선생님도 아시네요. 기존 담배보다 훨씬 해가 적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요즘은 얼마나 피우시나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부담이 없어서인지 예전보다 더 많이 피워요. 한 갑 반쯤 되는 것 같습니다.”


“해가 적다는 건 담배 회사에서 하는 말인데 곧이곧대로 믿긴 어려워요. 냄새가 덜 나도 기존에 피우시던 담배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 그렇군요.”

 

단호한 대답에 실망한 표정을 짓는 김형철 씨에게 의사는 다소 누그러진 말투로 덧붙였다.

 

“보통 전자담배라면 액상 니코틴 담배를 말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코스는 전자담배가 아니에요. 예전에 유행했던 순한 담배도 그렇고, 확실히 덜 해로운 담배는 아직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끊으시는 게 답이에요.”

 

김형철 씨는 병원 건물을 나와 버스 정류장에 섰다. 담배 생각이 강하게 났지만 담뱃갑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진 않았다. 정류장 안쪽에선 갈색 코트 차림의 젊은 남자가 익숙한 볼펜 모양의 스틱에 끼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금연 버스 정류소”라고 적힌 초록색 스티커가 가로등 불빛에 반짝였다.

 

 

흡연은 국제질병분류(ICD-10) 기준에선 ‘Tobacco dependence’이고,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V) 기준에선 ‘Tobacco Use Disorder’로 분류되는 약물중독의 일종이다. 담배에 함유되어 있는 니코틴은 금연을 방해하는 주범으로 담배에 대한 갈망을 일으키는 성분이기도 하다. 담배를 오랫동안 피우지 않았을 때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짜증이 나는 것은 혈중 니코틴 농도가 떨어지면서 생기는 금단 증상이다. 흔히 흡연자들이 금연하기 어려운 이유로 담배가 스트레스를 풀어준다는 점을 든다. 하지만 애초에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는 것이 니코틴 금단 증상으로 인해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가 낮아졌기 때문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흡연을 했을 때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나 만족감을 크게 느낀다면, 그것은 오히려 니코틴 중독이 심하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니코틴 대체제는 가장 오래된 금연치료제로,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용되어왔다. 금단 증상의 원인이 되는 니코틴을 다른 경로로 제공해 흡연 욕구를 억제하는 것이 핵심 원리이다. 껌이나 사탕, 피부에 붙이는 패치 등의 형태로 만든 니코틴 대체제를 사용할 경우 금연 성공률은 두 배가량 높아진다. 2006년 화이자(Pfizer)에서 출시한 바레니클린(성분명 챔픽스, Champix)은 니코틴 수용체에 작용해 금단 증상을 줄이는 약으로, 기존의 니코틴 대체제보다 효과가 더 좋아 금연 성공률을 세 배까지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연치료제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지만, 2015년부터 시행 중인 건강보험공단 금연치료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에는 금연 약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있다. 이곳의 도움을 받는다면 금전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전자담배는 연소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니코틴 용액을 기화시켜 흡입할 수 있게 만드는 전자 기구이며, 타르 등의 발암 성분이 없어 궐련에 비해 안전할 수 있다. 전자담배의 판매량은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여왔으며, 미국 십 대 청소년의 경우 2014년에 이미 전자 담배 사용자가 궐련 사용자를 추월한 바 있다. 전자담배의 유해성과 금연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다. 200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처음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경고한 이후 세계보건기구(WHO)를 포함한 많은 전문 단체에서 그 잠재적 위험성을 보고해왔다. 반면 영국에서는 2016년에 일부 전자담배를 금연 목적으로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학계에서 ‘HNB(Heat-not-burn) tobacco’로 통칭하는 ‘가열담배’는 2014년 일본에서 시판된 아이코스가 최초다. 아이코스는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2017년에는 12퍼센트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2017년 출시 이후 3개월만에 시장점유율 5퍼센트를 기록했다. 제조사인 필립모리스는 섭씨 850도에서 불완전 연소되는 일반 궐련과 달리 아이코스의 경우 섭씨 300~350도에서 가열하므로 연기에 포함된 유해물질의 90퍼센트를 줄였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아이코스 연기를 분석한 결과 궐련에 비해 양은 적었지만 다수의 독성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에 HNB의 안전성을 홍보하려는 담배 회사와 안전성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근거를 요구하는 학계 사이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HNB를 ‘궐련형 전자담배’로 분류하고 있지만 현재까지의 연구를 종합하면 액상 전자담배보다 기존 궐련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HNB 제품은 아이코스(iQOS), 글로(Glo), 릴(Lil) 등 3종이다.

 

* 참고문헌: 이철민, “아이코스와 글로: 더 안전한 담배인가?”, <금연정책포럼> 제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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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만성 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에세이 <반딧불 의원>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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