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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재 “엄마의 치매로 나를 돌아보게 됐다”

『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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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는 죄책감이라는 부정적인 마음을 뿌듯함이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변환시켜 준 고마운 책입니다. (2017.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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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아 온 하윤재 영화감독이 치매에 걸린 엄마를 10년 동안 돌봐 오며 발견한 일상의 소중함을 담아낸 에세이 『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가 판미동에서 출간되었다. 자신의 엄마를 모티브로 단편 영화 「봄날의 약속」을 연출한 저자는, 감독 특유의 예민하고 세심한 관찰력으로 누구보다 빨리 엄마의 이상 신호를 알아채고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보살펴 왔다.

 

‘치매’라고 하면 대개 무겁고 어두운 현실을 떠올리기 쉽다. 저자는 극단적인 부분만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매체를 통해 치매에 대한 극복하지 못할 두려움이 우리에게 생긴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더불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병에는 과정이 있기 마련인데, 오로지 ‘치매’라는 이유로 사망선고를 내린 후 절망의 늪으로 몰아넣는 상황에 대해 우려한다. 이 책은 ‘치매’라는 무게감에 눌려 놓치기 쉬운 일상을 잔잔하고 경쾌하게 보여 주며 가족과 삶, 시간, 사랑,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터뷰를 통해 저자 하윤재 감독과 더 깊고 진솔한 이야기 나눠 보았다.

 

엄마를 통해, 엄마의 치매를 통해 변하고 있다

 

치매 1기에 이 책을 쓰기 시작해서 글을 다 쓰실 즈음엔 어머님의 기억이 말기에 다다랐다고 하셨습니다. 작가님 개인적으로 이 책의 출간은 어떤 의미일까요?

 

누군가가 제게 엄마와의 관계에서 가장 후회되는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0.3초도 망설이지 않고 엄마와 외국 여행 한 번 같이 가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동안 저는 엄마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여러 번 외국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부끄럽게도 엄마와 간 적은 한 번도 없었죠. 그 죄책감 때문에 가끔씩 마음이 힘들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엄마와의 추억을 담은 이 책을 쓰고, 출간하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죄책감이 많이 옅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엄마의 인생 여행에 제가 함께하고 있고 그 일지를 제 손으로 정리한다는 뿌듯함이 생긴 것이죠. 『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는 죄책감이라는 부정적인 마음을 뿌듯함이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변환시켜 준 고마운 책입니다.


미디어에서 ‘치매’를 다루는 경우 대부분 굉장히 신파적으로 묘사하거나, 가족들의 인생을 암울하고 불행하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책에서도 ‘치매=가정파괴범’이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기사를 볼 때마다 안타깝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막연히 가지고 있는 이런 인식에 대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할 때는 지극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나타나는 치매 증상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안만 해도 친할머니는 욕설을 내뱉는 등 공격성을 밖으로 나타내는 유형이었고, 외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는 채로 하루 종일 누워만 계신 비교적 얌전한 유형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치매 말기에 다다른 현재까지 착한 치매 환자 그룹에 들어가시고요. 거칠고 공격성 강한 치매 환자분을 가족으로 두신 분들의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제 책의 취지인, 부모를 최대한 가족이 책임지자는 말은 크나큰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만, 매체에서 보여주는 치매 유형이 극단적인 한 부분만을 반복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치매에 대해서 우리에게 극복하지 못할 두려움을 심어준 것은 아닌지 되짚어 봤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병에는 과정이 있는데, 치매의 경우 처음부터 사망선고를 내린 후 사람들을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는 형국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


작가님은 인생에서 “엄마를 통해, 엄마의 치매를 통해 변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어떤 점이 작가님을 변화시켰고, 어떤 변화를 겪으셨는지요?

 

엄마가 치매에 걸리기 전까지는 무엇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지 깊게 생각해 본적도 없고, 생각하더라도 결론이 애매모호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병을 알게 되고, 엄마 곁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제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다름 아닌 ‘사람과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1순위가 무엇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뒤늦게 제 인생의 1순위가 ‘사람과의 관계’라는 걸 깨달은 후 엄마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들을 되짚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능력이 생기기 시작했고요. 진짜 관계라고 생각되는 것 외에는 가지치기를 하고 나니 덤으로 엄마와의 시간은 더욱더 늘어났습니다. 지금 현재도 그런 과정이 반복되고 있으며, 그 과정의 변화가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치매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따고 요양원 체험을 하셨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느끼신 바가 많을 것 같습니다.

 

요양원 체험을 하기 전에는 저 또한 요양원에 대한 시각이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증세가 심해질 경우(대소변을 가리는 유무가 판단 기준)를 대비해 좋은 요양원에 보내드리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요양원 체험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고요. 당시 제가 생각한 좋은 요양원의 기준은, 시설이 좋고, 전문성이 뛰어난 직원들이 상주해 있으며, 영양 만점의 식단 메뉴를 갖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어르신들을 직접 겪어 보니, 그 분들에겐 제 기준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추운 집에서 못 먹고 어려워도 자식 곁에서 살 부대끼고 살고 싶은 게 어르신들의 간절한 마음이었던 것이죠. 요양원에서 아무리 케어를 잘해도 어르신들의 병세가 집보다 심해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인 것이죠. 어르신들의 마음을 직접 듣고, 또 겉으로 말씀하시지 않아도 온몸으로 깨달은 후로는 요양원에 대한 제 생각이 솔직히 부정적으로 변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싶은 건, 요양시설이나 그곳에 근무하시는 분들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 자신을 비롯한 우리 모두가 ‘요양원’이라는 곳을 너무나 쉽게 떠올리는 인식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이죠. 그래서 저는 최대한 있는 힘껏 버티고 또 버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엄마를 위한 요양시설을 알아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보살피는 지난 10년간의 시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우리 모녀가 30년 넘게 함께 살았던 방배동 집을 한날 한 시에 떠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만약 엄마가 방배동 집에 그대로 사시는데 제가 독립을 해서 엄마와 헤어졌거나, 아니면 제가 방배동 집에 사는데 엄마가 하동으로 떠나셨다면 기분이 어떠했을까? 아마도 그곳에 누가 남아 있든 그 아픔과 고통은 지금보다 훨씬 더했을 겁니다. 물론 떠난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저는 그 또한 우리 모녀가 신의 가호를 받은 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2009년 작가님의 엄마를 모티브로 한 영화 <봄날의 약속>을 연출하셨습니다. 이 영화로 단편영화제의 칸이라는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는 등 10여 개국에 초청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머니가 작가님께 미친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 들어보고 싶습니다.

 

엄마가 힘든 인생을 묵묵히 버텨 오는 모습을 제게 보여주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영화의 한 장면에는 엄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왔던 사기그릇이 나옵니다. 그 그릇은 50년이 지난 지금, 귀퉁이한 곳이 깨진 채로 주방 서랍의 한 자리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엄마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그 그릇을 왜 버리지 못한 것은, 낡은 그릇이 엄마의 분신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그 그릇을 촬영장에 가지고 가서 메타포로 활용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영화가 곧 엄마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어머님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제 첫 장편영화를 엄마와 함께 극장에서 보는 것입니다. 더 욕심을 부리자면 시사회장에 엄마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엄마를 힘들게 서울까지 모셔 오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하동 집에서 제 영화를 보는 그날까지 지금처럼만 엄마의 건강이 잘 유지 됐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하윤재 저 | 판미동
슬픈 멜로디인데도 노랫말은 비교적 경쾌하고 밝은 경우가 있듯 고통과 절망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치매에도 기쁨과 환희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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