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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아 “자신한테 너무 집중하면 안 행복한 것 같아요”

에세이 『어떤 이름에게』 펴내
올 겨울에는 많은 편지가 오고 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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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편지를 쓰면서 기쁨을 찾았다고 말한 거거든요. 그걸 읽은 누군가가 편지를 쓴다면, 만약에 올 겨울에 유독 많은 편지가 오고 갔다면, 거기에 이 책의 영향도 있었다면 좋은 일 아닐까 싶어요. 재밌는 일이 될 것 같아요. (2017.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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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꼭 책으로 남아야 될까’ 의문을 품었던 작가는 자신의 책이 ‘하나의 아름다운 물건’, ‘재밌는 물건’으로 완성되기를 바랐다. 『어떤 이름에게』는 그 결과물이다. 서간집과 사진엽서집,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한 장의 겉표지에 감싸여 있다. 마치 선물의 포장지처럼, 스르륵 풀어지는 겉표지의 뒷면에는 손편지가 쓰여있다. ‘아빠에게’로 시작되어 ‘파리의 어느 거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로 끝을 맺는, 박선아 작가가 직접 쓴 손편지다.

 

다른 이의 편지를 훔쳐보는 은밀한 행위는 『어떤 이름에게』를 읽는 내내 이어진다. 작가는 베를린에서, 바르셀로나, 파리에서, 많은 이들을 향해 편지를 띄웠다. 그 대상은 때로 가족이었고, 친구였고, 직장 동료였다. 그러나 수신인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까닭에, 독자들은 그 위로 자신의 이야기를 겹쳐본다. 작가가 바라보는 풍경과 경험한 사건, 당시에 떠올렸던 사람들이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나에게도 비슷한 누군가와 비슷한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이 느껴진다.

 

프리랜서 에디터이자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는 작가 박선아는 <나일론> 매거진의 피처 어시스턴트를 거쳐 <어라운드>와 ‘안그라픽스’의 에디터로 일했다. <어라운드>에서 힐링을 주제로 3년간 연재했던 글은 수필집 『20킬로그램의 삶』으로 출간됐다. 소박한 순간들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사진과 ‘작은 집에서, 넓은 사람과, 깊은 마음으로 살기를 꿈꾼다’는 담백한 감성은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어떤 이름에게』가 전하는 것 또한 다르지 않다. 작가의 친구들은 말했다. “『20킬로그램의 삶』은 그냥 너 자신이었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어떤 이름에게』는 더 너 같다”고. 자신과 꼭 닮은 두 번째 책으로 찾아온 박선아 작가를  ‘사적인서점’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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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선물처럼 느껴지길 바랐어요

 

표지부터 구성까지, 독특한 책이에요. 작가님의 아이디어인가요?

 

네, 2년 전에 퇴사를 앞두고 있을 때 음악 공연을 보다가 이런 책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여행을 가서 편지를 쓰고 그걸 책으로 엮어야겠다고요. 그래서 휴대폰에 메모해 놓고 있다가, 작년에 3개월 동안 여행하면서 실제로 해본 거죠. 그것만을 위해서 간 여행은 아니었지만, 엽서를 써서 부치기도 했고요.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안그라픽스에서 일하게 되면서, 신간 계획할 때 이 책의 기획안을 제출했어요.

 

음악 공연을 보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셨다고요. 이유가 있었나요?


잘 모르겠는데... 그 음악가 분이 제 첫 인터뷰이였어요. 스반홀름이라는 도시에 가셨을 때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셨었는데, 마침 공연에서 그 노래를 부르시더라고요. 그때 ‘스반홀름에 여행을 가서 이 분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다른 인터뷰이도 생각났는데, 그 분은 벨기에의 어느 도시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셨었어요. 그 분한테도 편지를 써볼까 생각하다가, 편지를 책으로 엮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공연에서 들었던 노래처럼 제가 쓸 편지들도 누군가한테 말하는 형식이 될 거니까요. 그런데 막상 여행을 가니까, 인터뷰이 분들께 쓸 말이 없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게 됐죠.

 

베를린, 파리, 바르셀로나를 여행하셨어요. 목적지를 고른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이전까지는 가고 싶은 도시들을 갔었는데요. 이 여행은 친구들을 만나러 간 거였어요. 베를린과 바르셀로나에 친구가 살고 있어서 만나러 갔었고요. 파리는, 거기로 휴가를 오는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서 갔었어요.

 

표지에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가 적혀 있어요. 손글씨로 쓰신 거죠?


네, 제가 쓴 거예요. 겉표지가 약간 포장지처럼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안에 담긴 책이 선물, 겉표지가 포장지, 그런 느낌이 되면 좋을 것 같았어요. 표지에 제목을 넣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고요. 또 뒷면이 여백으로 남아있는 것보다 손편지를 넣으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책 속의 편지 중에서 하나를 고른 건데요. 이 글은 지난 여름에 제가 좋아하는 친구한테 보내줬었어요. 제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를 담아서 보냈었죠. 원래 아빠한테 쓴 건데 바꿔서 보내도 말이 되더라고요(웃음). 그 친구한테 책을 선물할 때 이 편지가 안에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겉표지에도 실었어요.

 

아버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빠는 영문을 모르시고, 그냥 아빠한테 편지 썼다고 좋아하셨어요(웃음).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이 편지가 실린 꼭지의 제목이 「기다림에 대하여」인데요. 기다림과 이 책의 성격이 참 잘 맞는 것 같아요. 편지를 써서 보낸다는 건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또 책에 실린 사진이 다 필름 카메라로 촬영된 건데, 그것도 기다림이 필요한 작업이고요.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써놓고, 정작 저는 여름부터 지금까지 잘 기다리지 못했어요. 진짜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이 편지는 작년 가을에 쓴 건데, 올 가을에는 또 다른 기다림을 배운 것 같아요.

 

어떤 기다림인가요?


사랑의 기다림.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거죠.

 

그 기다림이 즐거우세요? 괴롭지는 않으세요?


즐거울 때도 있고 괴로울 때도 있는 것 같아요.

 

편지의 수신인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요. 편지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이야기인 줄 알던가요?


네, 신기하게 알더라고요. 친구들은 목차만 보고도 찾았다고 하고요(웃음). 그룹 채팅 창에서 서로의 편지를 맞추기도 해요. 그렇게 아는 척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넌지시 돌려 말하는 친구도 있어요. 대놓고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는 친구도 있고요. 다들 찾더라고요.

 

친구 분들이 정말 기뻐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책도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친밀하기는 했지만, 그들한테만 쓴 글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 책은 더 가깝게 느끼더라고요. 제가 에필로그에 가족들끼리 주고받는 ‘손 사인’에 대해서 썼거든요. 그런데 며칠 전에 엄마가 ‘오랜만에 손 꾹꾹 한 번 할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 자연스럽게 해야지.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하는 거 아니잖아’라고 했는데 ‘왜, 책에 썼던데?’ 하시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친구들이랑 오랜만에 같이 여행을 가게 됐어요. 어린 시절부터 만나온 친구들은 서먹해진 게 사실이거든요. 살면서 모이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1월에 여행 날짜를 잡았어요. 친구들이 이 책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데, 서로 말은 안 해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한 친구가 사진을 보내줬어요. 그 친구가 책을 진짜 안 읽거든요(웃음). 그런데 제 책 들고 나왔다고 사진을 찍어서 보냈더라고요. 중고서점에 제 책을 팔러 간대요(웃음).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해 주는 게 재밌어요.

 

애정을 담아 찍을 땐 ‘필름 카메라’

 

일부 편지는 여행지에서 부치셨어요?


처음의 생각은, 실제로 보낸 엽서를 스캔해서 책으로 만드는 거였어요. 그런데 한 달쯤 됐을 때 보니까, 초반에 부친 편지들 중에 도착하지 않은 것들이 많더라고요. 아직까지 못 받은 친구들도 많아요. 그리고 실제로 쓴 편지랑 원고용으로 쓰는 거랑 내용이 약간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중간에 마음을 바꿨죠. 부칠 편지는 부치고, 책에 실을 편지는 따로 쓰자고요.

 

「병에 담긴 편지」가 떠오르네요.

 

실제로 그 편지의 주인공에게 보낸 편지가 두 통이나 실종됐어요.

 

편지의 운명인가 봐요(웃음). ‘병에 담긴 편지’처럼 전혀 다른 사람이 수신인이 되는 거잖아요.


그러게요. 그 편지도 어딘가에 있겠죠.

 

『20킬로그램의 삶』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내가 쓴 것을 읽는다고 의식하는 순간, 끔찍한 기분이 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도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이유는 뭔가요?


그러게요. 『20킬로그램의 삶』은 그렇게까지 멀리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시작한 일이었어요. 그냥 잡지에 매달 하나씩 썼던 기사를 묶은 거라서 별 다른 생각이 없었어요. 피드백 받을 일도 많지 않았고, 그래서 의식하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런 것 같아요. 조금 고민이 되기는 해요. 제 이야기를 하는 게 저 자신이나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를 파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거든요. 나를 소비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그렇게까지 생각 안 해도 되는 일인 것 같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어라운드>에서 힐링을 주제로 글을 쓰실 때, 공항 이야기를 하셨어요. 요즘도 가끔 공항에 가세요?


네, 여름에 갔다 왔어요.

 

“공항에 오면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적어서 찢은 후 꼬깃꼬깃 접어 공항 휴지통에 버리고 가는 습관”이 있으시다고요. 이번 여름에는 어떤 걸 적으셨나요? 짝사랑하는 그 분(웃음)?


그 친구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썼는데요(웃음). 버리고 온다는 게 깜빡하고 주머니에 넣고 온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찝찝했어요. 며칠 후에 그 친구한테 ‘너 자꾸 이러면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명단에 적을 거야’라고 말했는데, 사실 이미 적었었어요(웃음).

 

지금까지 적으신 건 어떤 것들이었나요?


기사 쓸 때 적었던 것들도 있는데요. 부모님은 거의 항상 적었던 것 같아요. 그때그때 다르기는 한데, 지난 여름에는 밤을 적었던 것 같아요. 이번 여름밤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부모님을 적으셨던 이유는 뭐예요?


항상 슬픈 것 같아요, 생각하면.

 

여행 가실 때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같이 가지고 가시잖아요. 이번 책에는 필름 카메라로 찍으신 사진만 실으셨어요. 이유가 있나요?


디카로 찍는 사진들은 취재용일 때가 많아요. 여행을 갔을 때 청탁이 들어올 때가 있어서 디카를 가지고 가기는 하는데요. 디카로 찍은 사진을 쓸 때는 잡지 기사 때문일 때가 많고요. 애정을 담아 찍는 사진은 필름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 같아요.

 

디지털로 찍은 사진과 필름으로 찍은 사진이 서로 다른 맛이 있나요?


네,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일단 바로 볼 수 없는 것에서도 차이가 있고요. 디카나 아이폰 카메라로 찍었을 때는 깔끔하고 쨍한 느낌이 있죠. 디카를 가지고 필름 느낌을 낼 수 있는 필터가 계속 나오기는 하는데, 아무리 해도 똑같이 안 나오더라고요. 신기해요.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의 차이도 있을까요? 서간집에는 흑백, 엽서집에는 컬러 사진이 실려 있잖아요.


서간집에서는 글의 언어로 전달하고 싶었고요. 사진집 형태인 엽서집에서는 사진의 언어를 그대로 쓰고 싶었어요. 원래 흑백 필름이 더 비싸거든요. 인화도 비싸고. 그래서 흑백 필름으로 찍지 않고, 컬러로 찍은 걸 흑백으로 전환했어요. 사진을 조금 단순화시켰으면 했어요. 글에 집중될 수 있게. 서간집은 글이 주인공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엽서집은 사진이 주인공이라서, 시선이 조금 더 사진에 갔으면 했어요. 그리고 제가 흑백 사진에 많이 빠져 있기도 해요. 컬러 사진을 흑백으로 바꿔서 보정하는 과정도 굉장히 재밌었어요.

 

흑백 사진만의 맛이 있죠? 필름 카메라의 맛과 비슷하다고 해야 될까요.


흑백 필름으로 찍어서 인화했을 때도 좋기는 한데요. 컬러 사진을 흑백으로 전환해서 보정하는 작업도 좋아요. 제가 본 것들은 분명 컬러였는데, 그게 흑과 백으로 다시 보이는 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이 책을 만들면서 그런 작업을 좋아하게 됐고, 그래서 다음 달부터는 흑백 인화와 현상 수업도 들으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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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근육’을 씁니다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아날로그적인 인간인가요?


그런 것 같아요. 요즘에는 기계 만지려고 하면 귀찮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뭘 배우는 것도 어렵고요. 그렇다고 기계를 싫어하지는 않아요. 익숙해지면 괜찮은데 새로운 걸 배우는 과정이 귀찮은 거죠. 아이폰도 익숙해지기까지 그랬고, 텔레뱅킹 같은 것도 그래요(웃음). 그렇다고 아날로그가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할 수 있으면 기계를 쓰죠.

 

『어떤 이름에게』에는 직접 써서 부치는 편지,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 담겨 있잖아요. 그래서 ‘아날로그적인 걸 지향하시는 분인가?’ 싶기도 했어요.


그런 것들이 전달해 주는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받았을 때의 느낌보다, 상대방한테 갔을 때의 느낌 있잖아요. 쪽지를 쓰더라도 메신저로 보내는 거랑 손으로 써서 보내는 거랑 다른데, 그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실제 제 삶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요(웃음). 책에 실린 편지도 아이폰 메모장에 있던 거니까요(웃음).

 

올해 책이 두 권이나 나왔어요. 의미가 남다른 해였을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까 두 권이나 나왔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올해 쓴 것들은 없거든요. 『20킬로그램의 삶』은 3년 동안 찬찬히 썼던 것들을 모은 거고, 이번 책도 작년에 써 놓은 걸 정리하는 정도였어요. 그래서 책 때문에 바쁜 건 거의 없었고요. 오히려 프리랜서로 받은 새로운 일들 때문에 조금 바쁘거나 아예 한가했던 것 같아요. 책이 나온 건... 그냥 신기했던 것 같아요. ‘누가 사 읽지?’ 싶었는데 첫 번째 책이 4쇄까지 찍었었거든요. 2쇄를 찍으면 괜찮은 거겠다 싶었는데 4쇄 찍은 걸 보고 ‘신기하네’ 했었어요. 이번 책도 ‘사람들이 사서 읽는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그런 정도의 느낌인 것 같아요.

 

『20킬로그램의 삶』도 표지가 독특했어요.


표지에 엄마아빠 사진을 넣고 싶다고 고집했었어요. 그 사진을 앨범에서 봤는데 너무 좋았거든요. 그래서 그걸로 꼭 했으면 좋겠다고 했었어요. 디자인은 <어라운드>의 편집장님이 해주셨는데, 처음에는 이번 책처럼 사진을 꽉 채워서 넣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편집장님이 사진을 떼어서 디자인 해주셨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뒤에 여백이 생겼고, 사람들에게 공간을 줄 수 있도록 의미를 넣다 보니까 그렇게 나왔어요.

 

왜 부모님 사진을 표지에 싣고 싶으셨어요?


모르겠어요. 그냥 그 사진이 좋았어요. 그 좋은 느낌이 다 전달이 될 것 같았고요. 또 부모님 나름대로 의미 있고 재밌을 것 같기도 했어요.

 

아트 디렉터로서 시각적인 작업을 많이 하시는데요. 대학에서는 문헌정보학을 전공하셨더라고요. 방향을 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전공을 잘못 선택했던 것 같아요. 고3 때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거기 나오는 도서관 관장이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어릴 때부터 도서관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막연하게 꿈을 꿨던 거죠. 도서관에 가면 다 읽을 수 있으니까 그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진도 찍고 블로그에 일기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학에 가서 배워보니까 전혀 다른 공부였어요. 미술관 아카이빙이나 큐레이팅에도 관심이 있어서 인턴도 해봤는데, 제 성향이랑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전공을 버리고 가고 싶은 쪽으로 가자고 마음먹었는데요. 막상 가보니까 쓸모가 있더라고요. 다 정보가 필요한 일들이고, 책이랑 연관이 있었어요.

 

주로 매거진과 협업하시나요?


매체에서는 거의 에디터로 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매체에서는 거의 디자이너들이 아트 디렉팅을 총괄하는 경우가 많고요. 제가 디렉팅을 하는 경우는 브랜드 광고 이미지 촬영을 할 때, 아니면 뮤직비디오나 영상을 만드는 친구들이 작업할 때예요. 약간 PD로써의 아트 디렉터라고 할 수 있죠. 제가 하는 일은 대행사랑 조율하고 전체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조정하는 거예요.

 

아트 디렉터로의 감각은 어떻게 배우셨어요?


굉장히 오래 전부터 이어진 것 같아요. 저는 ‘눈의 근육’이라고 말하는데요. 잡지사에서 일할 때 후배들을 보면, 자신이 본 시각적인 것들을 못 믿는 경우가 있었어요. 자신 없어 하거나. 그런데 계속해서 보면 볼수록 쌓이고 쌓이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뭔가를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고요. 천부적인 것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발레도 그렇잖아요. 자신이 천재라 하더라도 어느 단계까지는 연습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야 가능해지는 것들이 있는데, 눈도 똑같은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영화를 봐도 장면으로 끊어서 봤어요. 캡쳐해서요. 스토리를 떠나서 빛이나 장면 같은 걸 보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 식으로 쌓아둔 것들을 계속 쓰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소진되고, 또 다시 봐야 되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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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너무 집중하면 안 행복한 것 같아요


“한 손에 책을 들고 다니는 일이 유행인 세상을 상상해본 적이 있어. 신발장에서 구두를 고르듯이 책장에서 책을 고르는 거야”라고 쓰셨어요. 오늘은 어떤 책이 어울릴 것 같나요?


오늘 같은 날은 안 될 것 같아요. 너무 추워서(웃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친구가 사진을 찍어서 보냈어요. 책을 들고 찍은 사진인데, 장갑도 안 꼈더라고요. 다행히 주차장인 것 같아서 ‘차 타고 가는 거지?’라고 물어봤어요. 그리고 이렇게 추운 날씨에 장갑도 안 끼고 책 들고 나오지 말라고 말했죠. 겨울에는 책을 들고 다니지 않는 게 좋은 것 같아요(웃음).

 

다른 계절은 어떨까요(웃음)?


그런 건 있어요. 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서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한데요. 옷이 무거울 때는 작은 문고판이 좋을 것 같아요. 겨울에는 코트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책이 좋더라고요. 봄이나 여름에는 옷이 가벼우니까 양장으로 무거운 책을 들어도 좋은 것 같고요. 또 어느 거리의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 같아요. 책 읽을 시간이 없는 날에는 시집 같은 책이 좋은 것 같고, 짬이 많이 나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많을 때는 소설도 좋은 것 같아요.

 

책을 선택하실 때 표지 디자인을 많이 보시나요?


절대적인 건 아닌데요. 조금 그런 것 같아요. 요새는 책들이 다 너무 예쁜데, 오래된 문학작품이나 진짜 좋은 작가의 책인데 표지가 안 예쁜 경우도 있잖아요. 그러면 그냥 읽어요(웃음). 오래 되어서 예쁜 책들도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처음으로 연애 심리학 책을 읽었는데, 그건 들고 다니면서 읽기는 창피하더라고요(웃음). 한 번은 독일 소설을 읽었는데 그것도 표지가 안 예뻐서 책싸개로 감쌌어요. 이왕이면 아름다운 게 좋지만, 표지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 것 같아요.

 

책 속에 인상적인 구절이 많이 있었는데요. 그 중 하나는 이거였어요. “자신을 사랑하고,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나’를 행복하게 해줄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겁지”라는 문장이요. 작가님은 ‘어떻게 해야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지’ 알고 계신가요?


요새는 사실 안 행복한데요. 자신한테 너무 집중하면 안 행복한 것 같아요. 외롭거나 힘들 때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해요. 친구들이 아니라, 그냥 길 가는 사람들처럼 모르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거예요. 나 아닌 다른 것들에게 눈을 돌리면서 나를 잊게 될 때, 그때 뭔가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서 다른 사람들한테 편지나 선물 같은 걸 전달할 수 있을 때, 행복한 마음이 들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것이 행복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체로 그런 과정에서 무언가가 오지 않나 싶어요. 나를 잊어버리는 과정을 거쳐서 편안한 상태가 됐을 때, 그 편안한 마음으로 누군가한테 무언가를 전해줄 수 있을 때, 그 사이 어디에 행복이라는 게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의 엽서집은 뜯어서 쓸 수 있게 되어 있는데요. 그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들어요.


엽서집 안에 흐름이 있어서 사진집의 형태로 보관해도 좋을 것 같아요. 진짜 뜯어서 편지를 써도 좋고요. 인테리어 소품으로 써도 좋아요. 액자에 끼워서 담아놓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고 받은 기억이 까마득한데요. 『어떤 이름에게』가 나비 효과를 일으키면 좋겠어요. 책 속의 엽서를 활용해서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보내보는 거죠. 


『20킬로그램의 삶』 원고를 쓸 때 동료가 그런 이야기를 해줬어요. 제 글을 읽고 주말에 공항을 다녀왔는데 좋았다고요. 그때의 기쁨이 책을 처음 쓸 때의 가장 순수한 마음이었어요. 이번 책도 그런 것 같아요. 제가 편지를 쓰면서 기쁨을 찾았다고 말한 거거든요. 그걸 읽은 누군가가 편지를 쓴다면, 만약에 올 겨울에 유독 많은 편지가 오고 갔다면, 거기에 이 책의 영향도 있었다면 좋은 일 아닐까 싶어요. 재밌는 일이 될 것 같아요.

 

 



 

 

어떤 이름에게박선아 저 | 안그라픽스
그저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했던 따뜻한 순간들로 이동해 그것들을 어루만진다. 그 안에서 현재와 미래를 그려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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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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