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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와 예술은 한 쌍

영화 <러브 앤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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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폭제는 몸이 점점 나빠지는 델산토가 ‘지금 아니면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몰라서’라는 이유였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알아보았다. 직업과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서로를 알아보고 끌렸던 것이리라.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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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 앤 아트의 한 장면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러브 앤 아트>의 미술교사 디나 델산토는 영어교사 잭 마커스에게 단호하게 말한다. “사람한테 필요한 건 음식, 집, 공기예요. 섹스도요. 나머지는 부수적이죠. 말도 포함해서요.” 호옷, 참으로 대단한 언니시다. 나이 들어도 여전히 상큼한 데다 지적인 눈빛까지 쏘아대는 배우 줄리엣 비노쉬의 대사는 ‘인간은 빵이면 된다구’ 같은 본능에 충실한 말인 것이다. 이렇게까지 시니컬하게 대응하는 데는 사정이 있다.
 
‘말’과 ‘그림’의 예술적 우위를 놓고 다투는 두 사람. 그림의 가치에 삶을 헌신하는 델산토는 수업 중에도 학생 그림을 대충 봐주는 법이 없다. 날카롭고 탁월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가슴으로 직접 느껴지는 작품’을 완성하라고 요구한다. 수업 중에 문득 말이란 ‘거짓이고 함정’이라고 던진 한마디가 잭과의 전쟁 시작이자 연애의 발화점이 되었다.
 
문단에서 천재라고 불리기까지 했던 잭 마커스는 상처가 깊은 알코올중독자다. 몇 년째 작품을 쓰지 못하고 있고 카페에서 취한 채 난동을 부려 해고 위기에 처해 있다.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교사지만 이혼한 뒤 대학생 아들에게 변변한 아비 노릇도 못 하고 있다.
 
류머티즘 관절염이 심해지자 화가로서 성공을 거둔 뉴욕을 떠나 가족 곁으로 돌아온 디나 델산토는 비록 지팡이에 의지한 채 지내지만 수업과 창작 열의는 조금도 꺾이지 않은 예술가.


영화의 원제는 <Words and Pictures>다. 잭은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말을 만들었고 하나씩 성문화하고 관례와 합의를 거쳐 형성된 언어에 경의를 표한다. 국가도 말로써 시작했노라고 단언한다. 학생들에게는 호기심이 동할 때 검색 말고 책을 펼치라고 다그친다. “단어를 보면 거기에 뛰어들어라, 단어가 다가올 때도 있다. 그럼 그 단어가 너희 것이 된다”고 새로운 낱말 만들기 숙제를 내주는 교사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각각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결함이 있는 남녀가 갈등하다 끌리고 연애에 이르는 것. 연애는 또한 순조롭지 않지만. 단순한 이야기 구조에서 내 눈에 빛나 보이는 두 사람의 직업적인 태도는 각별했다.
 
해고 위기 속에서 끝까지 잭이 붙든 것은 학교 잡지였다. 영감이 뛰어난 학생들의 작품이 실리는 잡지를 이사회에서 폐간하려고 하자 잡지의 교육적 가치를 걸고 맞선다. 자신도 새로 쓴 시를 잡지에 수록하겠노라고 약속하면서까지. 결국 이 약속을 지키고자 아들의 시를 도용하는 엄청난 일을 벌이지만, 훗날 크게 반성하며 괴로워한 건 교사로서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사직서를 제출하는 잭을 학교는 다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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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 앤 아트의 한 장면

 

연애의 기폭제는 몸이 점점 나빠지는 델산토가 ‘지금 아니면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몰라서’라는 이유였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알아보았다. 직업과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서로를 알아보고 끌렸던 것이리라.
 
‘말과 그림의 전쟁’은 어떻게 되었을까.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연인이 된 두 사람과 그를 따르는 학생들은 신나는 전쟁 한 판을 치른다. 말과 그림의 예술적 우위를 놓고 학교 공식 행사에서 학생들과 교사는 에밀리 디킨스, 이반 투르게네프와 에드가 드가, 존 업다이크, 조이스 캐리, 제임스 에이지, 오스카 와일드의 예술에 대한 명언을 인용하며 자기 주장을 펼친다.
 
이 행사의 마지막은 잭의 다정하고 단정한 말로 매듭 짓는다. “예술가는 말과 그림을 통해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든다. 그리고 우리도 발전하게 한다. 넓은 시야를 펼쳐지게 하니까.” 이어 아름다운 종전 선언을 한다. “말과 그림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죠.”
 
삶에서 예술이 먼저일까 연애가 먼저일까. 책 제목처럼 ‘인생은 한 뼘 예술은 한 줌’이라면 ‘사랑하라, 예술하라’는 명제는 삶에 주어진 소중한 의무다. 예술이라면 그것이 말이든 그림이든 무슨 상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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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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