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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과 인스턴트라는 양 극단의 주거형태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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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이 가장 아름답고 의미있는 인간의 활동들 중 하나라는 믿음을 내가 철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2017.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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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내 경우,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또 하나의 큰 변화는 부쩍 부동산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둘러보면 나뿐이 아닌 것 같다. 대체로 가구나 개인당 생애 최초 주택 구입 시기는 임신과 출산 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다. 전에는 어떤 동네든 적응하고 살 수 있을 것 같고 또 언제든 싫증이 나면 이사를 가면 된다는 노마드 같은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아이를 낳으니 ‘정착’해야 할 듯한 부담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아니 시간이 나지 않더라도 틈틈이, 어떤 동네에 살고 싶은지, 어떤 동네는 왜 좋고 어떤 동네는 왜 싫은지 생각했다. 지도를 보거나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구했다. 각 동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부동산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집값을 검색해보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아이를 낳은 후에 안전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또 아이를 부양해야 하는 부모로서 더 쾌적하고 편리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 역시 진부할 정도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걸로 설명이 충분한가?

 

1.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각종 정보를 섭렵하며 수도권 각 지역의 시세 추이를 파악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런 공부를 통해 대한민국 부동산 자산의 특이성도 깨달았고, 청문회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의혹이 ‘부동산 투기’인 이유도 알게 되었다. 부동산을 통한 자산 증식이 거의 전 국민이 몰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중적인’ 투자(투기) 행위였던 것이다.(주식과 비교해볼 수 있겠지만, 주식 투자가 전 국민의 스포츠가 되기까지의 다양한 정책 차원의 장려를 고려하면 그보다 더 대중적이고 자연발생적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그 근본적인, 혹은 역사적인 원인이 무엇일지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다고 하지만(가령 한국인들이 원래 ‘땅’에 집착하는 민족이라든가, 아니면 한국뿐 아니라 원래 부동산 경제가 금융 경제 시대에 중요한 축이 될 수밖에 없다든가), 아직 공부가 그런 원인들의 타당성을 따질 수 있는 경지에 미치지 못했다. 다만 출산 및 양육과 부동산의 긴밀한 관계(부동산 입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학군’ 혹은 ‘학원가’라는 점을 상기해보자.)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정도는 알게 되었다.

 

2.
조금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 고백을 해보겠다. 사실 임신과 출산을 앞두고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너무 소중한 것이 생겨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세상의 소금까지는 못되더라도) 그럭저럭 세상에 나쁜 일을 보태지 않으면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에게 ‘반드시 지켜야 할, 너무나 소중한 무엇’인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심증이 있었다.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 아직도 종종 답 없이 생각해본다. 아니, 이것은 내가 가장 풀고 싶은, 양육에 관한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사적으로 중요한 것을 지키는 일과 공적인 가치를 지키는 일이 양립할 수 있는가, 이 둘은 혹시 단순히 무관한 것이 아니라 항상 대립하는 것은 아닌가, 사적으로 좋은 사람이 공적으로 좋은 사람일 수도 있는가. 내 윤리적 감각은, 사적으로 엉망인 사람이 어떤 층위에서건 결코 좋은 사람일 수 없다는 명제를 강력하게 지지하지만, 그 역이 성립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공적으로 훌륭해지려면 정말로 사적으로 훌륭해야 하는가. 결국은 돌봄이 공적으로 가치 있는 일인가 하는 문제도 이 수수께끼와 연관되어 있으리라. 개인과 구조가 선명하게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이에 이미 가치의 위계가 정해져 있다는 것에 대해 사유한다는 건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양육이 가장 아름답고 의미있는 인간의 활동들 중 하나라는 믿음을 내가 철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아이를 지키고 이롭게 하는 일이 다른 인간이나 종에게 늘 좋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런 현실의 경험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양육이 다양한 문제들을 발생시키는 메커니즘은 모두 이와 연관되어 있다. 가령 한국 사회에서 ‘집’이 품고 있는, ‘집’이 발생시키는 다양한 문제들은 돌봄이나 양육에 대한 부담이나 열의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나는 공적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내 아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멈추거나 자제할 의향이 전혀 없다. 이는 내가 의심 없이 단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말 중 하나다. 나는 양육 이후에 내 ‘윤리’가 이전처럼 추상 차원이 아니라 몸의 차원에서 발생한다고 느낀다. 아이에게 이롭고 이득이 되는 것을 몸으로 감각한다. 그리고 어떤 근사한, 명예로운 가치와도 그것을 맞바꿀 마음이 없다. 이런 ‘동물적인’ 윤리의 작동방식이 스스로도 당혹스러울 때가 있지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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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3.
어쨌거나 다시 집과 공간 그 자체로 돌아와서, 집은 의식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집에 관한 꿈을 많이 꾼다. 꿈에 등장하는 집들은 모두 출입구가 많고 방들도 많고 각각의 공간을 이용하는 이용자들도 많다. 공간마다 바닥도 천정도 높이가 모두 다르다. 거실로 가려면 반층 정도를 내려가거나 올라가야 하고 방과 방을 연결하는 비밀스러운 문이 있기도 하고, 미로 같은 긴 복도가 있기도 하다. 거실에서 바로 정원으로 나가는 문이 있고, 부엌 옆쪽으로도 문이 있고 현관문도 따로 있는 매우 산만한 구조의 집이다. 그렇지만 하루 종일 탐험을 해도 절대로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집이다. 해가 잘 비치고 아늑한 집이기도 하다.

 

실제로 집에 대한 내 취향도 이와 비슷하다. 숨을 곳이 많고 구석구석 살펴볼 곳이 많아 질리지 않는 집, 층계나 다락방 같은 부속물이 달려서 더 다양한 공간을 구현하는 집. 나는 이와 비슷한 집에서 자라기도 했다. 내 가장 초기 기억 중 하나가 5살경까지 살았던 외할머니댁이다. 그 집에는 식구들이 많았다. 또 가파른 언덕에 지어져서 언덕 아래쪽에서 보면 1층인 집이 언덕 위쪽에서 보면 지하가 되었다. 총 3층으로 이루어진 집인데, 각 층에는 다른 가구들이 세를 들어 있었다. 나는 1층에서 살아본 적도 있고 2층에서 살아본 적도 있다. 1층에는 자그마한 시멘트 마당이, 2층에는 잔디가 깔린 정원이 있었다. 이집에서 나에게 가장 감정값이 큰 공간은 1층과 2층을 뒤로 연결하는 좁고 가파른 계단이다. 그 계단은 각 층의 부엌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좁고 기다랗고 가파른 공간이야말로 그 집의 모든 움직임을 가장 핵심적으로 제어하는, 일종의 컨트롤타워처럼 여겨졌다.

 

지금 내 아이가 사는 집도 거의 이런 이상형에 가까운 집이다.(역시 아이의 외할머니댁이다) 구조가 복잡하고 천정의 층고가 공간마다 다르며 층계가 있고 숨을 곳이 많다. 아이는 누우면 층계 한 칸에 꼭 맞아 떨어지던 나이부터 이 집에서 살았다. 3년 반 정도가 되었는데 아이는 이제 다리를 최대한 접어야 겨우 층계에 누울 수 있다. 어떤 집에 사는가 하는 것, 가령 깔끔하게 정리된 집에서 사는가, 가구와 가전과 소품이 많은 집에서 사는가 하는 것조차 의식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래서 나는 아이가 답답하고 지루한 평면의 아파트보다는 이런 곳에서 자라기를 바랐다.

 

4.
재미있는 구조의 집,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게 하는 집, 그리고 이렇게 독특한 집들이 모인 동네, 걷기를 위협하는 요소들(가령 너무 빨리 달리는 차들, 시야를 가리는 고압적인 건물들, 바라보기 민망한 종류의 업소들)이 적은 동네, 적당히 풀과 나무들과 공원이 있는 동네, 무엇보다 오래 그 자리를 지켜온 든든한 가게들이 많이 있는 동네, 학교와 유치원과 놀이터가 있고 아이들이 많은 동네. 비유하자면 집에 대한 내 취향은 ‘유기농 나물 반찬, 보글보글 찌개가 곁들여진 집밥’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이와 공원을 산책할 시간도, 동네 가게에서 이웃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집안 곳곳의 다양한 공간을 감각할 시간도 없다.(시간보다는 근면성의 문제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정신없이 등원과 출근을 하고 밤에는 남편과 교대로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놀려서 재우든가 아니면 야근을 하는 것이 일상적인 패턴이다. 집에서는 밥 한 끼 안 먹는 날이 대부분이고 몇 시간 잠만 자고 다시 그대로 나가는 날이 더 많다. 이런 삶에 과연 집밥 같은 집이 적합하다고 할 수 있을까? 비유를 조금 확장해보자면 대단지 초품아라는 인스턴트식품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그렇게 비유하기엔 너무 턱없이 비싸긴 하지만.)(혹시 눈치채지 못하는 분이 계실까 부연하자면 이 비유는 『한식의 품격』의 문제의식에서 착안한 것이다)

 

단지 내부에 학교가 있어서 등학교가 쉽고, 놀이터에는 경제적 환경이 비슷비슷한 친구들이 있고,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하교 이후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셔틀을 운행하는 학원들이 과목별로 골고루 갖추어지고, 주차 공간이 넓으며, 대형마트가 가까이 있고, 단지 내 차량이나 외부인 출입이 완벽하게 통제되는 대단지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지만 효율적인 경비 인력 운용으로 관리비가 비싸지 않은 곳. 1000세대를 넘겨 손 바뀜이 자주 이루어짐으로써 전세가와 매매가가 계속해서 갱신되고, 가격 하락기에는 가격 방어가 되어 자산 가치를 유지시킬 수 있는 곳. 주인이 계속 바뀌어도 특별한 문제가 없을 만한 무난한 인테리어. 방 셋, 화장실 두 개 평면에 계단식 구조. 베란다가 확장되어 전용면적보다 넓어 보이고 마루에는 편안한 소파와 벽걸이 티비가 마주보고 있는 집.

 

1년 후면 또 이사를 해야 한다. 그때 어디로 갈 것인가. 회사 옆인가,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인가, 싼 곳인가 비싼 곳인가, 내가 잘 알고 익숙한 곳인가, 모두가 아이 키우기 편하다고 하는 곳인가, 학군이 좋고 학원가와 가까운 곳인가, 대단지 아파트인가 나홀로 아파트인가 빌라인가 단독주택인가,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집밥과 인스턴트라는 양 극단의 주거형태 사이에서, 사적인 편익과 공적인 편익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나도 궁금하다.(실은 뭐라도 좋으니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결정이 이루어져서 이 지긋지긋한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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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희진(인문서 편집자)

6세 여아를 키우는 엄마이자, 인문서를 만드는 편집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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