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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파렴치한 2차 가해자의 구차한 변명

피해자 중심주의와 공감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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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말씀드리지만, 억울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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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가해’라는 말이 있다. 주로 성폭력 사건의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는 일련의 행위를 가리킨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주목할 때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여자가 속옷이 비치는 블라우스를 입었네” “여자가 치마를 짧게 입었네” “여자가 먼저 꼬리를 쳤네” “여자가 꽃뱀이네”처럼 성폭력 사건에서 “여자가...”로 시작되는 웬만한 말들은 대개 2차 가해에 해당된다. 그리고 그 2차 가해는 피해자 탓에서 그치지 않고, ‘가해자 옹호’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령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 말을 모두 들어보자는 중립적인 태도와 판단을 미루는 신중한 태도는 가해자 옹호로 비치기 십상이다. 또 만일 누군가 어떤 사건의 여론 심판 또는 사법적 심판은 다소 부당하다고 얘기한다면, 가해자를 지나치게 이해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나도 같은 비난을 몇 차례 들었고, 졸지에 가해자를 옹호하는 파렴치한이 된 적도 있다.


억울하진 않다. 오히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샘 성폭력 사건만 해도 “힘내라 한샘”이라며 굳이 한샘 가구 구매 인증샷을 남기는 남자들이 있다. 아마도 그 남자들은 여성혐오 범죄가 있을 때마다 “모든 남자들이 잠재적 가해자는 아니다”라며 굳이 모든 남자를 변호하려 했을 것이다. 또 도처에서 쏟아지는 여자들의 요구와 점점 거세지는 여자들의 저항은 갈등만 부추긴다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남자들도 여전히 많다. 그런데 갈등을 부추기는 쪽은 사실 변하지 않으려는 남자들이고, 여자들의 요구와 저항은 오랜 세월 대물림된 차별에서 비롯됐을 뿐이다. 말하자면 여자들이 처한 부조리한 현실을 외면하는 남자들이 존재하는 한, 2차 가해와 가해자 옹호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가해와 가해자 옹호라는 말이 공유되는 방식에는 다소 의문이 든다. 이 말의 사용자들은 대개 피해자의 고통에 먼저 공감할 것을 주문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적개심을 감추지 않는 편이다. 요컨대 ‘공감 능력’을 최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저마다 다른 공감 능력을 대체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피해자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입하는 일은 가능하겠다. 하지만 그걸 피해자의 고통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고통 역시 공감처럼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또한 무조건적인 공감은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는 걸까. 나는 이 무조건적인 공감이 피해자의 진술이나 주장을 먼저 살피는 ‘피해자 중심주의’와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피해 회복에는 무엇보다 시간이 걸리고, 피해자는 그동안 사람들의 공감과 가해자를 향한 집단적인 비난을 통해 잠시 위로를 받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 위로가 피해자를 피해 상태에 계속 머물게 만들지는 않을까. 다시 말해 우리는 내심 완벽한 피해자를 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잠결에 중간부터 보다 자세를 고쳐 앉았던 영화가 하나 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님포매니악>인데, 결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평소 독서를 즐기고 교양이 넘치는 셀리그먼은 떠돌이 색정광 조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준다. 조는 자신의 이야기를 제멋대로 해석하려는 셀리그먼이 때로는 불만스럽지만, 마침내 친구를 얻었다며 마음의 안식을 되찾는다. 하지만 셀리그먼은 잠든 조를 덮치고, 조는 셀리그먼을 거부한다. 셀리그먼은 자신을 거부하는 조에게 말한다.


“But you’ve fucked thousands of men.”


셀리그먼의 한마디는 이른바 ‘헤픈 여자’를 향한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헤픈 여자는 강간을 당해도 마땅하고,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조는 자신을 동정하는 척하다 결국 성적 도구로 삼으려 했던 셀리그먼을 향해 망설임 없이 권총 방아쇠를 당긴다. (스포일러 정말 죄송합니다) 조는 피해자가 못 될 바에 가해자라도 되려고 했던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욕망하는 여자들은 가부장제가 일으키는 강간을 더 이상 강간으로 인정?수신하길 거부하는 쪽으로 질주해야 한다. 여성의 몸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와 같은 문장을 수신하길 거부해야 한다. 강간은 그저 폭력일 뿐이다. 물론 폭력은 고통, 상처, 흉터, 외상을 남긴다. 그러나 강간이 여타의 폭력과 다른 상처나 외상으로, 특별한 폭력으로, 중요한 폭력으로 정당화될 때 가부장제 역시 정당화된다. 강간을 씻을 수 있는 폭력으로, 나을 수 있는 고통으로 다시 쓸 수 있는 여성들이 있어야 한다.”

 

『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의 공동저자인 양효실 씨의 이야기 「이 여자들을 보라」 중 한 대목이다. 조가 자신을 기만한 셀리그먼을 향해 망설임 없이 권총 방아쇠를 당긴 까닭이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리 헤픈 여자 취급을 받아도 원하는 상대가 아니면 자신의 몸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얘기가 아닐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꽤 많은 남자들이 그 허락을 곧잘 오해한다. “너도 원했잖아” “너도 좋았잖아” 따위의 말들로 상대방의 욕망을 통제하려 든다. 남자들의 이 걷잡을 수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비롯됐으며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걸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학 문제보다 성평등과 인권을 더 중요하게 가르친다면 조금 달라질까. 집에서 엄마 아빠의 성역할 구분이 사라지면 조금 달라질까. 직장에서 성폭력 방지 교육을 빠짐없이 이수한 직원에게 인사고과 점수를 후하게 준다면 조금 달라질까. 페미니스트가 되겠다고 선언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책을 통해 예의 그 걷잡을 수 없는 자신감을 마음껏 뽐냈던 탁현민 행정관을 꾸짖거나 내쫓으면 조금 달라질까. 조금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큰 변화가 없을지 몰라도 파렴치한 가해자에게 자신의 분노를 있는 힘껏 쏟아내는 것보다 어쩌면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아닌 곳(또는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지금은 불금문화가 당연하고 학교마다 9시 등교가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적어도 다음 세대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세상을 살지 않을까. 물론 그 현실의 작은 변화들은 절박한 쪽의 요구와 저항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부디 오해 없길 바란다.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게 <님포매니악>의 조가 되라는 얘기는 아니다. 주변의 위로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얘기도 아니다. 나는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무너진 존엄을 추스르는 일조차 요구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공감 능력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을 뿐이다. 피해자의 고통을 내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삼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기계적 중립을 지키거나 애써 균형을 맞추겠다는 얘기도 아니다. 다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해일이 와도 조개나 열심히 줍는 일? 아니면 낙태죄 폐지 청원이나 직장 내 성희롱에 시달리던 페친의 탄원서에 조가 망설임 없이 권총 방아쇠를 당겼던 것처럼 기꺼이 서명하는 일?


죄송합니다. 고작 이 정도밖에 도움이 안 돼서.

 

추신
『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는 작년 10월 무렵 미성년자 성폭력을 방조한 가해자로 지목된 만화가 이자혜 씨를 둘러싼 여러 논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제는 ‘페미니즘이 이자혜 사건에서 말한 것과 말하지 못한 것’인데, 단순히 이자혜 씨를 변호하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자혜 씨가 파렴치한 가해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책일 수밖에 없겠죠. 더구나 공교롭게도 저는 이자혜 씨를 향한 여론 심판(저작물의 신속한 폐기처분과 연재 중단)이 너무 성급하고 부당하다는 주장을 했다가 피해자의 고통에 먼저 공감할 줄 모르는 파렴치한 2차 가해자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억울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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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권용득(만화가)

영화 <분노>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자기 생각을 일단 글로 쓰는 놈이야.” 영화 속 형사들이 발견한 살인범의 결정적 단서였는데, 제 얘긴 줄 알았지 뭡니까. 생각을 멈추지 못해 거의 중독 수준으로 글쓰기에 열중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주로 술을 먹습니다. 틈틈이 애랑 놀고 집안일도 합니다. 마누라와 사소한 일로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가끔 만화도 만들고요.

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

<양효실>,<박수연>,<박연아>,<이나라>,<이미래>,<이연숙>,<이진실>,<이춘식>,<허성원> 공저13,500원(10% + 5%)

피해자냐 가해자냐 하는 물음이, 너는 누구의 편이냐고 묻는 질문이 감추고 잊히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이자혜라는 사건’과 속도의 페미니즘에 대해 온 힘으로 성찰한 기록들 #??계_내_성폭력. 2016년 10월, 이 짧은 해시태그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오타쿠’라 불리는 하위문화에서 시작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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