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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여왕”이 된 열매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이세문
반려인들이 보낸 고양이 사진과 사연이 그림으로 탄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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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그림을 반년쯤 그리다 보니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고양이 집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2013년 초 개인 작업을 좀 더 부지런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100마리의 고양이"라는 개인 그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각자 고유한 이야기를 가진 100마리의 고양이를 그리는 것이 목표였고, 우여곡절 끝에 책으로 엮어 출간하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100마리 고양이』다. 햇수로는 5년. 짧지 않은 기간이었기에 기억에 남는 일이 무척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고양이의 ‘고’자도 몰랐던 내가 고양이를 반려하는 ‘고양이 집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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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를 기획할 당시에는 그림의 모델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미지를 검색해서 그릴 수도 있었지만, 저작권 등의 문제로 사진을 그대로 활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여러 이미지를 참고해서 적절히 변형해야 했는데,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그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생생한 느낌을 살려서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실제로 고양이를 반려하는 반려인들에게 신청을 받기로 했다. 반려인들이 보낸 고양이 사진과 사연을 보고 그중에서 그리고 싶은 고양이를 모델로 선정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기 위한 모델 고양이를 구하는 과정이었는데, 수많은 사연을 접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고양이 그림을 반년쯤 그리다 보니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고양이 집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막상 고양이를 데려오려고 보니 걱정되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14년 여름, 오랜 고민 끝에 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하기로 결심했다. 고양이 커뮤니티 게시판을 뒤지고 뒤져서 예쁘고 건강해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를 점찍어 두고 입양 신청글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고양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 6마리 고양이를 반려하고 있는 베테랑 고양이 집사 친구가 다급하게 메시지 하나를 보내왔다. 어느 유기묘의 입양 홍보글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찾고 있던 고양이는 하얀색 페르시안 고양이였는데 구조 당시부터 얼마 동안 임시 보호를 받으면서 건강이 점차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사진들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내고 보호소로 잡혀 들어와 안락사를 기다리던 고양이였는데, 운 좋게 구조되긴 했지만, 내가 점찍어 두었던 고양이와는 확연히 비교될 만큼 처참한 몰골이었다. 길고양이들과 싸웠는지 얼굴엔 상처가 가득했고, 누렇게 변한 털은 군데군데 빠져서 영 볼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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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고양이의 눈빛이 참 신기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듯 소리를 지르면서도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살 거다, 나는 살아야겠다!"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누렇고 지저분한 고양이에게서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그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그 고양이가 바로 나의 첫 번째 고양이 ‘열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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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에 찬 눈빛으로 살아야겠다고 소리치던 그 고양이는 "열매"가 된 후, 더 이상 그런 눈빛을 보여주지 않는다. 언제 길에서 살았었냐는 듯이 볼록한 배를 자랑하는 뚱보 고양이가 되어 늘 반쯤 감은 눈으로 꾸벅꾸벅 졸면서 평화롭고 게으른 날들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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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반려인들은 종종 ‘묘연’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쩌면 나와 나의 고양이는 반려인과 반려묘로 만나야만 했던 운명을 지닌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 열매에게는 분명 내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를 향해 소리치던 단호한 눈빛, 그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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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을 씩씩하게 이겨내고, 죽음의 문턱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 나와 나에게로 와준 열매는 『100마리 고양이』의 100번째 고양이로, 따뜻한 겨울을 만드는 "겨울의 여왕"이 되어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인간 세계에 살고 있는 열매의 겨울도 더 이상 춥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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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세문(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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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문> 저22,5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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