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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에 대한 오해, 재판이란 무엇인가? (1)

『사회, 법정에 서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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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분쟁의 해결을 목적으로 합니다. 물론 분쟁이 없어도 재판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입니다. 그런데 소송을 통해 판결을 받으면 분쟁이 바로 해결될까요? (2017.10.19)

재판은 갈등 상황을 법적으로 해결해준다. 그런데 재판에서 내려진 판결이 어떻게 법적 효력을 갖고 해결책이 되는지 궁금한 적이 없는가? 재판이란 무엇인지, 판결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판결이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법학에 대한 오해


얼마 전 고등학교 은사님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은사님은 제게 법대나 로스쿨에 관심이 있는 후배들에게 법에 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셨죠. 저 역시 고등학교 때 선배님들로부터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어 기쁘게 수락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수락하고 나니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물론 은사님께서는 부담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부담감은 점점 커져만 갔죠.

 

저는 고등학교 때 이과생이었습니다. 원래 공대에 입학했다가 재수를 해서 법대로 진학했어요. 재수를 한 이유는 분명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겁니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도 있었겠죠. 하지만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 사회과학 분야 교양 수업을 들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서 한 가지 불만이 생겼습니다. 바로 결론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었어요. 예를 들어 여러 가지 학설을 배우면, 결론적으로 그 학설 가운데 어떤 주장이 가장 타당한지 누구도 딱 부러지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법대는 다를 것 같았습니다. ‘법학은 결론이 명확히 나오지 않을까? 재판에서 승소 또는 패소라는 결론이 나오잖아’라고 생각했죠.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이유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진지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재판에 대한 오해가 법대를 지망한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번 시간에는 여러분이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재판이 무엇인지, 특히 재판이 어떻게 분쟁을 해결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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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정(왼쪽)은 대법원 전원 합의체 재판이 열리는 곳이다. 국민의 법률생활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 국가의 중요 정책과 관련된 사건,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 등에 관한 공개변론이 진행되기도 한다. 소법정(오른쪽)은 대법관 4인으로 구성되는 부가 재판을 하는 법정이다. 부에서 대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을 경우 전원 합의체로 회부하여 심리한다.


재판 이야기

 

재판이란 ‘사법 기관인 법원이 분쟁에 대해 일정한 절차를 거쳐 공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을 의미합니다. 즉 재판은 분쟁의 해결을 목적으로 합니다. 물론 분쟁이 없어도 재판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입니다. 그런데 소송을 통해 판결을 받으면 분쟁이 바로 해결될까요? 다음 사례들은 몇 해 전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각색한 것입니다.

 

초등학생인 김철수는 6학년이 되면서 같은 반 친구인 박일진으로부터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박일진은 학기 초에는 김철수가 운동을 잘하지 못한다고 놀리더니, 4월경부터 교실에서 손바닥으로 머리를 툭툭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5월경부터 김철수를 화장실로 불러내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기도 했죠. 그러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알리면 더 괴롭히겠다고 협박했어요.


박일진에게는 최이진이라는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박일진이 김철수를 화장실로 불러낼 때 최이진은 박일진을 따라 화장실로 갔지만, 박일진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았죠. 다만 박일진이 너무 과하게 김철수를 때린다 싶으면 박일진에게 “선생님이 오는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해서 박일진의 폭행을 막았습니다. 김철수의 친구인 이영희는 김철수가 박일진, 최이진과 같이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얼굴에 멍이 드는 모습을 보고 김철수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봤지만, 김철수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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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는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박일진, 최이진이 김철수를 때리는 것 같다고 알렸어요. 담임선생님은 박일진, 최이진을 불러 김철수를 때린 사실이 있는지 추궁했고, 그들은 때린 사실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최이진은 자신만 때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면 박일진에게 보복을 당할까 봐 사실대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김철수, 박일진, 최이진의 부모님을 불러 박일진, 최이진이 김철수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김철수의 부모님은 박일진과 최이진을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내는 등 격리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전학 조치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며, 앞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박일진, 최이진의 부모님도 김철수 부모님에게 앞으로 김철수를 괴롭히지 않도록 철저히 지도하겠다고 사죄했죠. 박일진, 최이진의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앞으로 절대 김철수를 괴롭히거나 때리지 말라며 크게 혼을 냈고요. 최이진은 조금 억울했지만 박일진이 김철수를 때릴 때 옆에서 보기만 한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해 그냥 넘어갔습니다.


다음 날 최이진은 김철수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박일진은 김철수가 담임선생님께 고자질했다고 생각하고,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툭툭 치면서 몰래 괴롭혔어요. 화장실로 불러 얼굴이 아닌 몸 부위를 때리기도 했죠. 김철수는 박일진의 괴롭힘을 더 이상 견딜 자신이 없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김철수는 창문을 보며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창밖으로 뛰어내렸고, 결국 사망했습니다. - 사례1

 

많은 사람들이 분쟁이 생기고 재판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거짓말하지 않는 경우에도 분쟁은 생깁니다. 이럴 때는 어떤 결론에 이르더라도 한쪽 당사자는 억울함을 느낄 수밖에 없죠.

 

김철수의 부모님은 박일진과 그의 부모님, 최이진과 그의 부모님을 상대로, 박일진과 최이진의 폭행으로 인해 아들이 사망하게 되었다며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했습니다. 최이진은 박일진이 법정에서 사실대로만 이야기한다면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 믿고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박일진은 법정에서 “최이진은 제가 김철수를 폭행할 때 선생님이 오시는지 망을 봐주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오시면 제게 알려주어 폭행이 오랜 기간 들통 나지 않을 수 있게 도왔습니다. 물론 제가 가장 잘못했지만, 모든 책임을 혼자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 사례2

 

판사가 김철수, 박일진, 최이진 사이에 벌어진 모든 일을 알고 있다면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할까요? 먼저 박일진 때문에 김철수가 사망했는지부터 살펴보죠. 박일진의 폭행이라는 원인이 김철수의 죽음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는가, 즉 이른바 ‘인과관계’가 존재하는지가 판단의 기초가 됩니다. 여기서 ‘인과관계’는 자연과학적 판단이 아닌 법적 가치판단을 의미한다는 것을 주의하세요(자연과학적 판단이 의미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는 법적 인과관계를 판단하기에 앞서 항상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술에 취해 길에 쓰러진 갑돌이를 A차량과 B차량이 연속해서 치고 나서 도주했다고 가정해보자. 갑돌이가 A차량에 치인 직후 사망했다면 B차량 운전사는 ‘당연히’ 갑돌이 사망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갑돌이가 B차량에 치인 직후에 사망했지만, A차량에 치였을 때 이미 사망에 이를 정도에 상해를 입었다는 사실(즉 B차량에 치이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곧 죽었을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밝혀졌다면 어떻게 될까? 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인과관계를 어떤 행위가 없었더라면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조건관계로만 보는 ‘조건설’이라는 학설이 있습니다. 사례에서 ‘박일진의 폭행이 없었더라면 김철수가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결론이 도출된다면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죠. 얼핏 보면 논리적으로 수긍이 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조건설’이 마냥 타당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죠. 갑돌이가 강도 범행을 저질렀을 때 판사가 갑돌이 모친에게 ‘갑돌이를 낳지 않았다면 강도 범행도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 갑돌이의 범행으로 생긴 손해를 모두 배상하라’고 판결할 수 있을까요? 갑돌이 모친이 갑돌이를 낳지 않았다면 당연히 범행도 발생하지 않았을 거예요. 갑돌이 모친의 출산과 범죄 사이에 조건적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말이죠. 이 논리가 이상하지 않나요? 논리적 반박을 고민하기 이전에 뭔가 찜찜한 생각이 들지 않나요? 갑돌이 모친이 갑돌이를 낳은 것이 갑돌이가 강도 범행을 저지른 것에 중요한 원인이 아닌데도, ‘조건설’에 따르면 모든 원인을 동등하게 평가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런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앞서 말한 인과관계란 규범적 의미에서의 인과관계를 의미하고, 이는 결국 가치판단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대법원은 “초등학교 내에서 발생한 폭행 등 괴롭힘이 상당 기간 지속되어, 고통과 이에 따른 정신 장애로 피해 학생이 자살에 이른 경우, 다른 요인이 자살에 일부 작용했다 하더라도 가해 학생들의 폭행 등 괴롭힘이 주된 원인인 이상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라고 판시했습니다. 즉 박일진의 행위와 김철수의 자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 것입니다.

 

 


 

 

사회, 법정에 서다허승 저 | 궁리출판
“우리는 일상에 얽혀 있는 수많은 법률관계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을까?” 법과 제도의 기원, 민/형사소송의 기본원리로부터 손해, 상속, 권리금, 영업비밀, 고용과 해고, 퍼블리시티권, 저작권과 유전자 특허 등 최신의 쟁점까지, 2016년 대전지방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된 허승 판사가 들려주는 흥미진진 재미있는 법학과 재판 이야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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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승(판사)

사회, 법정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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