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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우울에 대하여

슬플 땐 마음껏 슬플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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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새로운 걸 배웠는데, 그러고 보니 뭔가를 배우는 게 꽤 오랜만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슬슬 무서움이 즐거움으로 바뀔 무렵, 나 이제 괜찮은가봐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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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사방팔방 팔딱팔딱 뛰어다니며 행복하다고 소리를 지른 건 아닙니다. 그냥 문득문득 불쑥불쑥, 날씨가 좋아서 행복해, 오늘 일이 잘돼서 행복해, 요거 되게 맛있어서 행복해, 라는 식으로 온종일 좋은 기분이 계속되는 식이었다. 나의 행복도를 그래프로 만든다면 아마 꾸준히 위로 쭉쭉 올라갔을 것이다. 중간중간 일이든 뭐든 깝깝한 일이 생길 때면 '아하하, 거지 같구만!' 하고 웃으며 쓱싹 해치웠다. 그러고 나선 맛있는 걸 먹으러 갔다. 그것만으로도 좋지 않은 기분이 사르륵 사라졌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흐름이 뚝 하고 멈췄다. 그리곤 곧 아래로 훅훅 떨어지기 시작했다. 잔뜩 짜증이 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극에 무뎌진, 마치 마비된 것 같은 기분(심드렁한 것과는 꽤 다르다). 그래서 자극을 찾아, 입에 계속 맵고 짠 음식을 집어넣었다. 맛있게 맵고 짠 걸 찾아다니며 먹은 게 아니라, 젓갈이든 김치든 그냥 냅다 푹푹 퍼먹었다. 냉장고가 비면 튜브에 든 마요네즈와 초고추장까지 쭉쭉 짜 먹었다. 집 밖에 나가지 않았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다 겁이 덜컥 났다. 분명 이건 정상이 아니야. 도움이 필요해. 2년 전, 나는 나만의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누가 나를 도와줄까?

 

나 우울증인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면 '야, 세상 사람 다 우울해. 나도 우울해'라며 핀잔을 준다. 누가?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그런 말들이 나를 화나게 만든다. 네가 뭔데 나를 진단해. 하지만 동시에, 주춤주춤 소심하게도 만든다. 정말 그런가, 우울증 같은 게 아니라 그저 징징대는 것일 뿐인가. 징징이라니, 보기 싫겠네. 모두에게 미움받지 않으려면 그만둬야겠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씩 웃으면 '거 봐라, 우울증이면 그렇게 못 웃지'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이쯤 되면 더는 내 상황을 설명할 용기가 나지 않아 계속 입을 다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꾸만 자책하게 된다. 모임 자리에 나왔지만, 미소가 지어지지 않고 입이 떨어지지 않으니 속으로 나를 나무란다. 지금 여기 분위기 별로인 것 같은데, 나 때문인가? 그렇겠지? 이 생각은 점점 확장된다. 뭐든 다 나 때문인가? 내가 망쳤나? 그렇겠지?

 

하지만 대체 누구에게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하고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오히려 가까운 사람일수록 들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엉뚱한 대답을 한다. 배고파? 당 떨어졌어? 옷이나 사러 갈까? 그런 게 아니라고, 난 그저 힘들다는 얘길 하고 싶은 거라고 하면 네가 그럴 리 없다며 나를 부정한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곧 대화가 끊긴다. 다시 입을 꾹 다문다.

 

어쩌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보통은 고개를 끄덕거리는 동시에 속으론 다른 생각을 한다. 주로 자기 생각인데, 얘한테 어떤 근사한 대답을, 일침을, 해결을, 결론을 내려줄까 궁리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빨리 끊고 싶어 안달한다. 나도 다 겪어봤다며, 경험치를 뽐낼 기회를 노린다(저도 이런 짓을 종종 저지릅니다). 때론 그들의 극복담에 힘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내 경험, 내 아픔, 내 감정은 누구의 것과도 같을 수 없다. '다들 그런 거야'라는 식의 반응은 종종 나만의 고유한 감정을 폭력적으로 찍어누른다.

 

슬플 땐 마음껏 슬퍼할 권리가 있다. 빡칠 땐 마음껏 빡칠 권리가 있다. 사람은 마음속 상실을 충분히 애도하고 나서야 다시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다. 가족이든 친구든 그걸 몰라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는 건 아닐 거다. 아마도 마음이 불편해지니, 나를 돌봐줘야 할 것 같은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끼게 되니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것이겠다. 혹은 우울한 기분이 전염될까봐 방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몹시 미안해진다.

 

역시 결론은 전문가다. 그리하여 저는 전문의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상담 및 약물치료를 경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라고 뚝 끝내면 왠지 좀 싱겁죠? 의학적 치료 외에 나에게 상당히 도움이 된 행위가 있는데, 바로 운전이다. 당시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그게 아주 잘 먹혔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건 20년 전쯤이지만 실제로 운전을 해본 경험은 없다. 이유는 다양하다. 차를 몰고 다니려면 돈이 드니까, 사고 위험이 있으니까, 여차하면 택시 타면 되니까, 그리고 방향치니까. 그러니 운전은 무슨 운전. 그런 거 안 해도 사는 데 전혀 지장 없어. 하지만 나에게 문제가 생기고 그로 인해 와락 겁이 나니 이제 변명은 그만두자,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 나가야겠어, 어디로든 달려가야겠어, 나는 운전을 해야겠어. 그 생각을 하자마자 마음 바뀌기 전에 후다닥 가까운 자동차 대리점으로 달려갔고, 앞뒤 재지 않고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세상 사람들, 내가 드디어 차를 질렀어요!

 

이제 1년 7개월 차다. 얼마 전 주행거리 13,000km를 돌파했다. 그 사이 여러 가지를 배웠다. 익숙한 동네보다 고속도로 운전이 더 쉬울 거라는 얘기도, 핸들 조작은 주로 왼손으로 하게 될 거라는 얘기도, 전면 주차보다 후면 주차가 편하다는 얘기도 모두 믿지 못했다. 무슨 개소리야, 고속도로에서 고속으로 달리는 게 더 위험하겠지. 평생 오른손잡이로 살았는데 핸들도 오른손으로 돌려야 안전하겠지. 눈에 보이는 대로, 차 머리 부분부터 들이밀어야 주차하기 편하겠지. 그러나 실제로 해보니 그 개소리가 모두 찰떡같이 맞는 소리더만요.

 

그리고 가장 큰 것,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된다는 걸 배웠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일단 아주 많은 사람이 하는 거라면 엔간해선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운전 연수 첫 시간,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자 귀에선 삐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겨드랑이는 축축이 젖었고 시야는 경주마처럼 좁았다. 앞만 보는 것도 이렇게 정신 없고 어려운데 사이드미러고 룸미러고, 대체 그런 것까지 볼 정신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시간이, 연습이, 많은 걸 해결해준다. 같은 길을 반복해 다녀보고, 같은 삽질을 거듭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예외는 없을 것이다.

 

바들바들 떨며 잔뜩 긴장한 채 운전을 익히는 사이 우울감이 서서히 사라졌다. 아니, 그보단 우울한 감정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보다 운전이 훨씬 더 무서웠거든. 매일매일 새로운 걸 배웠는데, 그러고 보니 뭔가를 배우는 게 꽤 오랜만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슬슬 무서움이 즐거움으로 바뀔 무렵, 나 이제 괜찮은가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해? 일단 나가자. 창문 내리고 부아앙 달리면 좀 나아질 거라는 걸 이젠 안다. 덕분에 내가 살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운전할 엄두가 안 난다는 사람에게 자 나를 봐라, 어서 나처럼 해봐라 소리를 할 마음은 없다. 내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로 하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 다르다. 남들 다 하는 거, 내가 못하면 좀 어때. 남들 다 괜찮다는 거, 내가 싫으면 좀 어때.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뭐, 여차저차해서 해보니 운전이 좋긴 좋습니다만 그야 제가 그렇다는 것이고, 당신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싫은데 기어이 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서사를 참으로 좋아한다. 자신을 채찍질해가며 한계까지 밀어붙여 즙을 쥐어짜내는 것, 이놈의 사회는 그런 걸 너무 좋아한다(돈을 받고 해도 모자랄 판에 피 같은 돈을 내고 극기훈련씩이나 받았던 걸 떠올려보자). 이거나 잡숴, 하며 입에다 엿을 넣어주마.

 

어쨌든 나는 행복하고 싶다. 그리고 행복이란 참으로 아슬아슬한 구조를 갖추었다는 걸 이제 안다. 몸의 체력과 마음의 체력을 갖추고 적절한 여건도 착착 갖추어 아슬아슬 쌓은 행복은 사소한 이유로 다시 와르르 무너진다. 쌓고 무너지고를 반복하는 사이 지치기도 하지만, 잠깐 쉬었다가 다시 쌓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약간 안심이 된다.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 재미있는 책, 커버력 끝내주는 컨실러, 그리고 새로 만난 즐거움인 운전. 좋아하는 것들이 그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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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예희(작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재미난 일, 궁금한 일만 골라서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탓에 혼자서 시각과 후각의 기쁨을 찾아 주구장창 배낭여행만 하는 중이다. 큼직한 카메라와 편한 신발,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한 위장 하나 믿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40회에 가까운 외국여행을 했다. 여전히 구순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처음 보는 음식, 궁금한 음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습성을 지녔다. ISO 9000 인증급의 방향치로서 동병상련자들을 모아 월방연(월드 방향치 연합회)을 설립하는 것이 소박한 꿈.
저서로는 『까칠한 여우들이 찾아낸 맛집 54』(조선일보 생활미디어), 『결혼 전에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한 서른여섯 가지』(이가서), 『2만원으로 와인 즐기기』(조선일보 생활미디어),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시그마북스), 『여행자의 밥』(이덴슬리벨)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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