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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물 저자를 만나다] 책은 공부의 결과가 아닌 시작 - 전기가오리

<월간 채널예스>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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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 안 팔리는 책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가 서로의 선생이 되는 출판사, 전기가오리의 운영자 신우승을 만났다. (201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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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오리의 ‘스탠퍼드 철학 백과의 항목들’ 시리즈 책은 작고 얇다. 그러나 펼쳐보면 보기와 다르게 진중한 서양 철학에 관한 말이 쏟아진다. 이후 출판한 ‘근대 철학 총서’와 ‘서양 철학의 논문들’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가벼워 보여 가볍게 시작했다가는 큰코다친다.


전기가오리는 사실 공부 모임에서 시작했다. 전기가오리 공부 모임 운영자이자 출판사 대표인 신우승은 철학 공부를 하다 보니 번역물이 쌓여 자연스레 책으로 묶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호기심이 많고 추진력은 좋은데 기세가 떨어져서 뭘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못 읽어요.그래서 철학 관련 글을 같이 읽을 사람들을 모집하면서 공부 모임을 시작했어요. 관심을 가지고 이것도 저것도 읽고 번역하다 보니 계속 모임이 커지고 번역한 텍스트도 많아졌어요.”


번역한 결과물로 책을 내고 싶었으나 안 팔리는 책을 펴내겠다는 출판사를 찾기 힘들었다. 결국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 최근에는 피터 애덤슨의 팟캐스트 <빈틈없는 철학사> 시리즈를 번역한 ‘빈틈없는 철학사’ 시리즈도 냈다. 그야말로 ‘빈틈없이’ 철학사의 전 영역을 밀도 높게 다루겠다는 욕심이다. 현재까지 나온 원서의 양으로 볼 때 이 시리즈로만 100권이 넘어갈 예정이다.


“라인업도 다양하고 (독립 출판 중에는) 제일 전문적이라고 자신합니다. 재수없나요?(웃음) ‘빈틈없는 철학사’ 빼고는 다 전문서예요. 일반적으로 서점에서 보는 철학 책들은 다 입문서입니다. 전기가오리는 입문 내용보다는 되도록 한 학자의 좁은 주제에 관한 논문을 한국어로 옮기고 비전공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고민합니다.”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정확한 번역이 필요하다. 철학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에는 생소한 번역어도 한몫한다. 외국어로 쓰인 철학 개념을 단어 하나하나 옮기다 보면 가뜩이나 어려운 주제가 더욱 어렵게 와 닿는다.


“칸트나 헤겔의 저서를 번역하면 출발 언어에 매우 큰 비중을 둡니다. 텍스트의 한 단어라도 빼면 번역을 잘못했다고 여기죠. 원 텍스트의 의미를 왜곡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for’를 흔히 ‘~를 위해’라고 번역하지만, 전기가오리에서는 주로 ‘하고자’ ‘하려고’ 등으로 번역합니다. 사소하지만 그게 쌓이면 다른 문장이 되거든요.”


별다른 홍보 없이, 독자가 혹할 만한 디자인 없이 전문 내용을 다루는 책이 많이 나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떻게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출판사가 될 수 있었을까. 답은 협동 조합 같은 후원자 제도다. 출판되는 모든 도서에 후원인의 이름을 기재하고, 후원자가 신청하면 ‘설명 배달 왔습니다’라는 제목의 방문 공부 시간을 누린다.


“책 판매보다는 후원자를 늘리는 데 신경을 많이 써요. 이번 달에 후원자가 500명이 넘었습니다. 이전에 냈던 방식대로 책을 내면 금방 흑자가 나겠죠. 하지만 이번에 내는 책은 디자인에 신경을 쓰려고 합니다. 그러면 제책 비용과 디자인 비용은 늘어나겠지만 거기까지는 해보려고요. 저희에게 장기적으로 중요한 건 공부하는 공간을 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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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출판을 하는 사람들은 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때가 많다. 반면 신우승은 지식을 전파하는 데 꼭 책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책의 만듦새보다는 책이 가진 지식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후원자들은 전기가오리의 책에 반응을 보였고 후원자의 요구에 맞춰 전기가오리도 변화하고자 한다. 초판을 다 판매한 책은 표지 및 내지 디자인을 바꾸고 PUR 제본 방식으로 부피가 작으면서도 잘 펴질 수 있게 했다.


“처음에는 홈페이지에 공부 모임에서 번역한 내용을 올렸는데 아무도 안 읽었어요. 책을 내니까 반응이 있더라고요. 후원자들이 책의 물성을 더 원하는 느낌이 들어요. 후원자들이 책을 받고 만족하면 저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출판사의 활동 중에는 일요일마다 하는 ‘왜 이렇게 안 끝나는 세미나’라는 제목의 세미나도 있다.장소를 정해 모여서 모든 사람이 철학 관련 텍스트를 상당한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는 걸 목표로 하는 공부 모임이다.


“기본적으로 선생과 학생을 구분하지 않고 공부 모임을 진행합니다. 공부를 오래 하면 학생이 강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공부 모임에 온 사람들에게 많이 요구하는 편이고, 질 좋은 번역을 해서 그분들의 이름으로 책을 내려고 합니다. 이른바 아카데미에 권위를 허락하는 이유는 거기서 석사, 박사를 받으면 그 사람의 학문적 수준이 어느 정도 될 거라고 보장을 하기 때문이죠. 전기가오리도 궁극적으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기가오리의 이름은 플라톤의 『메논』에 나온 전기가오리의 비유에서 따 왔다. 메논은 소크라테스와 논쟁하다 궁지에 몰리자, 소크라테스가 마치 전기가오리처럼 생겼고, 전기가오리처럼 접촉하는 사람들을 마비시킨다며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플라톤은 여기서 철학자의 자세를 발견한다. 전기가오리가 스스로 마비되면서 남들을 마비시키는 것처럼, 철학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난관에 빠뜨리지 않고 서로 새로운 차원에서 함께 탐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기가오리도 ‘서로 같이 자극을 주고받고 지적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관계’를 추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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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오리의 주요 출간 시리즈


스탠퍼드 철학 백과의 항목들


『스탠포드 철학 백과』는 세계 유수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하는 철학 백과사전이다. 집필진을 학자로 엄밀하게 제한하지만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누구에게나 자료를 공개하기에 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텍스트다. 주요 항목을 골라 번역해 낼 예정이다.

 

서양 철학의 논문들


잘 알려진 철학자의 덜 알려진 문헌, 정통적인 해석에 얽매이지 않는 연구, 철학의 특정한 문제를 상반되게 해석한 논문 등을 소개하는 시리즈.

 

근대 철학 총서


칸트와 헤겔을 중심으로 근대 철학의 1차, 2차 문헌을 번역하는 시리즈. 헤겔의 『논리의 학』 원전 및 연구서, 요벨의 『헤겔 정신현상학 서문 읽기』 및 우드의 『칸트』 등을 준비 중이다.

 

빈틈없는 철학사


2010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하는 철학 팟캐스트를 주제별로 묶어 낸다. 고대 철학에서부터 출발해 최근 첫 번째 책 『초기 그리스 철학』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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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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