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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처럼 못해도 괜찮아

노력도 재능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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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소도시에서 자라온 나의 유년시절. 재능도 없었지만 말로도 꺼내지 못했던 어떤 것을 해보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내게 그런 기회가 없다고 단정하지 않고 쟁취해보고 싶었다. (201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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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퇴근을 기다린다. 나 역시 그렇다. 그렇지만 올해부터는 그전과는 조금 다른 설렘이다. 그동안은 주중 5일 내내 피로했다면, 상쾌한 기운으로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을 기다린다. 금요일 퇴근 후, 토요일을 상상한다. 퇴근하고 술을 마시거나 그저 몸을 쇼파에 눕히기 바빴던 옛날과 다른 기다림이다. 조금씩 일상이 변화하고 있다.


올해 초 <솔직히 말해서>를 통해 선언했던 취미발레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다. (보러가기)다행히 지금껏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냈다. 어느덧 6개월차. 처음 발레를 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은 내가 금방 지칠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옆에서 불행히도 계속 발레학원을 가고, 발레영상을 돌려보는 나를 허탈하게 바라보고 있다. 나도 이렇게 발레에 푹 빠지게 될지 몰랐다. 심지어 몸치, 박치, 음치인데도 홀에 들어가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폴짝 뛰고 싶다.


처음엔 발레가 그냥 해보고 싶었다. 회사일 말고는 다른 것에 열중하는 시간이 없었던지 오래였다. 이왕이면 내가 꿈꿔보지도 못했던 걸 해보는 건? 예체능에 관심이 없었던 부모님이 가르쳐주시긴 어려웠을 그것. 전라북도 소도시에서 자라온 나의 유년시절. 재능도 없었지만 말로도 꺼내지 못했던 어떤 것을 해보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내게 그런 기회가 없다고 단정하지 않고 쟁취해보고 싶었다. 실패하고, 헛돈만 쓸지라도. 그게 나한테는 발레였다. 뒤구르기도 무서워서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던 15살을 까마득하게 잊은 채로.


6개월이나 발레를 배웠지만, 몸은 뻣뻣하다. 고교시절 체력장에서 팔도 제대로 뻗지 못해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내 등에게 유연성을 크게 기대한 건 아니었다. 사람이 염치가 있지. 통나무로 2n년간 살아온 내가 어떻게 바로 다리를 쭉 뻗은 상태로 배를 납작하게 엎드리겠는가. 처음에는 포인-플렉스(point-flex)하면서 등도 똑바로 펴지 못했었다. 그나마 이제 등은 펴지만 새끼발가락까지 싹 정리되는 포인(point)은 아직도 멀었다. 이런 상태에서 사이드 스트레칭은 무리. 스트레칭이 그나마 많이 늘 수 있다는 여름에도 성공하지 못했으니 향후 1년간은 큰 기대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발레를 하면서 내 팔근육과 등근육을 발견한다. 불필요한 승모근은 쓰지 않으려 노력하고, 평소에도 등을 피려 한다. 데가제(degage)와 피케(pique)를 섞어 할 때 흔들리는 허벅지 안쪽 살과 내 몸둥아리도 어느 새, 중심을 잡아간다. 파세(passe) 발란스도 손 떼지 못하다가 이제 여유있게 흉내를 낸다. 무엇보다 어깨, 골반, 무릎이 우르르 기울어지던 데벨로페(developpe)가 45도 수준에서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같은 클래스를 듣는 분들 중 유연성 있는 분들은 이미 standing split, port de bras도 능숙하게 한다. 허벅지 근육이 유연하지 못한 내 경우에는 그림의 떡. 실수하고, 넘어지고, 웃음 속에 휩싸인다. 그래도 발레는 즐겁다. 물론 언제가 되어야 스탠딩 자세에서 내 발목을 잡고 귀에 닿게 할지 전전긍긍하지만.


발레를 3개월째 했을 때였다. 나보다 훨씬 유연한 분이 한번에 사이드 스프릿(side split)을 성공하는 걸 보며 남몰래 좌절도 했었다. 그다음날 술자리에서 웃으며 지인들에게 말했다. “나는 뭘 잘하는 재능은 없고, 그저 또 노력하는 재수없는 재능밖에 없나봐.” 웃자고 한 소리였지만 친구 한명이 진지하게 맞받았다. “유리야, 그게 네가 가진 재능이야. 아무리 잘해도 노력 안하면 못 해.” 순간 코가 찡해졌다. 그뒤로 기분이 좋아 술 계산도 내가 했을 정도. 그 뒤로 남들보다 못해도 창피해 하지 않고,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 뛸 자세를 취한다. 내가 잘하는 건 이거니까. 엇박자로 뛰어도, 나 혼자 무릎을 잘 못 펴도 다시 한 번 더 해본다.


친구 말대로 노력도 재능이었을까. 선생님이 4개월 차에 비기너에서 베이직 클래스로 올라가라 권해주셨다. 이제 한손으로 롱드잠 앙레르(rong de rambe en l’air)를 해야만 한다. 글리샤드(glissade)와 아삼블레(assemble)도 익숙해져야 하고. 점프는 포인과 플리에(plie)를 정확히 거쳐서 높고 가볍게!


이 원고를 쓰면서도 BGM으로는 꼭 해보고 싶은 탈리스만 영상을 틀어놓았다. 휴대폰으로는 늦가을과 겨울을 대비하여 레그워머를 찾고 있다. 프로보다 더 비싼 레오타드와 워머를 탐내고 있지만, 뭐 어떤가. 취미에 빠르게 빠져드는 방법은 역시 장비병뿐이다. 발레를 시작했다면 아낌없이 레오타드와 발레스커드의 세계에 풍덩 뛰어드시길. 혹시 아는가. 언젠간 토슈즈를 신고 그랑제떼(grandfete)를 백조처럼 우아하게 뛸 날이 있을지. 음, 엉성해도 좋지 않을까. 그랑제떼를 완벽하게 한다고 생각하면서 짓는 표정, 그리고 포즈. 분명 당신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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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유리(문학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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